2025.3.9. 오전 9시 주일예배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3 기뻐하며 경배하세
대표기도 조용림 권사
성경 말씀 마가복음 1:14~20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내 뒤에 오시는 이
찬송 908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
헌금 기도 농협 3010178504011 연세소망교회
새 가족 이개옥 간호사, 웨이민 선생님
광고 목사님 딸 결혼을 축복해 주신 우리 성도님들께 감사(3/8, 토)
감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가족 방문, 프로그램 강사 마스크 착용 부탁
가족 방문 김복순 권사 아들 부부, 전연월 권사 가족, 김복순 권사 대전 딸
조용림 권사 인천 큰아들 가족, 임배근 집사 따님(약)
찬송 209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잖아요.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 이은상 시, 홍난파 작곡
14절입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절,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6절,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절, 곧 그물을 버려두고 쫓으니라
19절,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절,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3월입니다.
널따란 잔디에 초록초록 잡초가 깍꿍 하며 고개를 내밉니다.
그래서 엊그제 죄송스럽게도 제초제를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피곤했는지 입술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아직도 이석 후유증도 남아 있어 어질어질하기도 합니다.
14절입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제 세례 요한의 시대는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형 교회를 보면
개척하신 담임목사께서 성공적으로 목회를 잘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수천, 수만 명이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은퇴 후에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이 목회를 더 잘해야겠는데
은퇴하신 목사님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분오열되고 맙니다.
그럴 때 은퇴한 목사님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은퇴하신 목사님 책임이 큽니다.
전,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대한민국 위상이 얼마나 세계적이었습니까?
그래서 눈 떠 보니 선진국이더라.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후임 대통령이 누구입니까?
윤석열 씨가 대한민국을 다 말아먹지 않았습니까?
그럼 전, 문재인 대통령이 아무리 국가 경영을 잘했을지라도 빵점입니다.
엊그제도 법원에서 윤석열 구속이 취소되어
송아지 고삐 풀린 것처럼 풀려났습니다.
12.3 비상계엄으로 온 국민이 얼마나 놀랐습니까?
그런데 또다시 윤석열 구속 취소라니 심장이 벌렁벌렁 떨립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전, 문재인 대통령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후임 대통령을 잘 선택할 수 있도록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까지 나쁜 윤석열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고급 정보를 통해서
못된 윤석열에 대해서 세세하게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 미리 막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윤석열에게 힘을 더 보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나라 꼴이 이 모양 이 꼴입니다.
목사님은 우리 요양원에 뿌리 같은 사람입니다.
그냥 흙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언제 죽을지라도 아무 이상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양원 일에 잘 나서지를 않습니다.
그냥 격려만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 요한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마가복음의 매력입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세례 요한이 떠난 자리에 예수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15절입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형기 님의 낙화라는 시가 있습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그렇습니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벚꽃이 필 때보다 벚꽃이 질 때의 모습이
슬프지만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것이 카이오스, 때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위대합니다.
세례 요한이 떠난 자리에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입니까?
하나님의 섭리입니까?
요한복음 1장 26절입니다.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매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그래서 복음이 다스리는 나라가 도래했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사야 11장 6~9절입니다.
🎶🎵1198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내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들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사막에 숲이 우거지리라
사막에 예쁜 새들 노래하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낙원 되리라
독사 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참 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
이런 세상이 속히 왔으면 무슨 미련이 남겠습니까?
그냥 지는 꽃잎 한 장일지라도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나라는
비상계엄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총칼로 만들어지는 나라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음으로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이 그냥 살아지겠습니까?
마가복음 8장 31절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그래서 도종환 시인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지금이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바로 change of mind, 내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해탈이라 함은
내 모든 생각,
욕심 욕망 원망 자만 따위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어제 서울 전혀 모르는 낯선 땅에서
그러니 그 누군들 아는 사람 하나나 있었겠습니까?
바로 그곳에서 목사님 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온누리교회 목사님 집례로 결혼식을 했습니다.
찬송가를 부르고
온누리교회 장로님께서 축복 기도를 하시고
청년 대표가 축송을 부르고
참 기쁘고 은혜로웠습니다.
목사님은 새벽같이 일어나 요양원 병상에서만 누어 사시는 아버님께
A4 용지 위에
오늘 미연이 결혼식 올립니다. 서울에서 글씨를 눌러써서
보여 드렸더니
치매가 심하신 아버님께서 금방 눈물을 닦으시며
미안하다 못 가서
그래서 목사님도 목이 메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가는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낯선 예식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딸의 손을 붙잡고 아빠의 잰걸음으로 걸어 나갈 때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목사님은 아빠로서 잘 살았을까?
예식을 잘 마치고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도 수많은 생각들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래, 오늘부터 잘 사는 거다.
그래, 지금부터 잘 살아야지.
그래,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바르고 진실되게 사는 거다.
그리고 죽어가는 작은 생명까지도 사랑해야지.
그러면서 공교롭게도 그렇게 바쁜 일손이었을 텐데
정헌율 시장께서
그 머나먼 서울까지 찾아오셔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익산시 정헌율 시장을 그렇게도 원망했던 일까지도
그래, 모든 건 내 못난 탓이었지.
이렇게 훌훌 털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redirection입니다.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내 태도, 내 행동이 바뀌는 것입니다.
redirection, 내 인생이 송두리째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원수처럼 죽이려던 사도바울도
redirection, 인생이 완전히 변하지 않았습니까?
16절입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절, 곧 그물을 버려두고 쫓으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전혀 주저함이 없이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시몬(히브리어, 게바-아람어, 반석, 베드로-헬라어)과 안드레를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모든 것을 버릴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입니다.
목사님도 이것에 발목이 잡히곤 했습니다.
그래서 더 괴롭습니다.
19절입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절,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목사님도 이렇게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
바로 이것이 죽느냐? 사느냐? 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뭘 더 주저하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이 버리고 갈 것뿐인데도
우리는 주저주저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부르시니
곧(유튀스), 따라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처럼
곧,
아무런 토를 달지도 않았고
하던 일마저 멈추어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지?
지금 우리는 두근두근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야겠습니다.
전혀 주저함 없는 것
이것이 곧 순종입니다.
감사합니다.
묵상, 인애하신 주님, 3월입니다. 그리고 벌써 둘째 주일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푸릇푸릇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3살 버릇 버리지 못하고 사는 이 있습니까?
목사님조차도 이 못 된 버릇, 이 못 된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불쑥불쑥 튀어나올 땐 너무나 당혹스럽습니다.
인애하신 주님, 이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래서 요단강가로 달려가게 하옵소서.
그래서 세례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게 하옵소서.
그래서 새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이런 심정, 이런 믿음으로 주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 믿는 자로서 세상의 창 끝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양심마저 무디어져 버렸습니다.
이런 우리를 주님 요단강 물에 씻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 주님,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했습니까?
주님 이러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주님 것을 구별하여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 하심이
지금 즉시 요단강가로 달려가 세례를 받기를 원하는
그래서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우리 성도님들 머리 위에
그 가정 위에 그리고 오늘 새 가족이 된 이개옥 간호사, 웨이민 선생님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