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부의 날(21일)♡♡
둘이 하나가 된다는
2026년 5월21일 목요일
🍃
남편이란?, 아내란?,
오늘은 부부의 날 입니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21날.
남편이란.!?
안고 있으면 포근하고
말이 많으면 귀찮고
옆에 있음 보기싫고
하지만 보이지 않으면
보고 싶은게 남편이다,
당신이 큰 병에 걸리면
당신보다 더 고생하는게 남편이고
한번 싸움하면
모른척 못이기는척
먼저 다가와서
손을 잡는게 남편이고
당신몰래 수많은
좋은 일들을 하고도
티내지 않는 그런 남편,
세상의 모든 남편은
훌륭합니다~^^
아내란?,
당신이 다른여자를
보지도 말하지도 칭찬하지도 못하게 하는
속좁은 여자입니다,
아내란?,
가끔 당신이 보내온
닭살문자를 꺼내들고 보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여린 소녀입니다,
아내란?,
당신이 곁에없을때
목이 빠져라,
그리워하는
해바라기 같은 여자입니다,
아내란?,
집에서 당신이 조금만
잘못해도 욕하면서,
남이 당신을 욕하면
큰일나는 여자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참 소중한 부부 입니다.
늘 좋은일만 있으셔요.♡
<퍼온글>
참 서글픈 글이네요.. 🏡
나는 매달 연금 130만 원을 받았다.
그중 80만 원은 늘 아들 집에 보탰다.
그런데 아들이 나한테 한 말은 이거였다.
“엄마, 그냥 시골집에 내려가서 사는 게 어때.
며느리가 엄마한테 노인 냄새가 난대.”
나는 한마디만 했다.
“그래.”
더 말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바로 방으로 들어가 짐부터 쌌다.
옷장에 있는 옷은 대부분 며느리가 안 입는 것들이었다.
나는 내가 자주 입던 옷 몇 벌만 골라서 낡은 여행가방에 넣었다.
머리맡에 두던 혈압약, 혈당 측정기, 평소 쓰던 보온병도 하나씩 챙겼다.
30분도 안 걸렸다.
아들 집 물건에는 손대지 않았다.
며느리 얼굴도 굳이 보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말을 더 보태 봐야 나만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아들은 거실 입구에 서서 내가 짐 싸는 걸 보고만 있었다.
붙잡는 말은 끝내 없었다.
내가 가방을 끌고 나가려 하자 그제야 4만 원을 내밀었다.
길에서 뭐라도 사 먹으라고 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손만 한번 저어 보이고 그냥 나왔다.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갔다.
시골집으로 내려가는 시외버스표를 샀다.
세 시간쯤 걸리는 길이었다.
창밖만 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잠잠했다.
서운함보다 먼저 든 건 해방감이었다.
시골집은 오래된 단층집이다.
대문 자물쇠도 녹이 슬었고, 마당에는 마른 잎이 수북했다.
방 안 가구마다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먼저 마당을 쓸었다.
그다음 탁자랑 의자를 닦고 물을 끓였다.
뜨거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집은 낡았어도 내 집이었다.
눈치 볼 사람도 없고, 괜히 맞춰 줄 사람도 없었다.
아들 집에 있을 때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며느리는 담백한 걸 좋아했고, 아들은 간이 센 음식을 찾았다.
나는 그 입맛 맞추느라 매일 다르게 차렸다.
밥 먹고 나면 설거지하고, 바닥 닦고, 부엌 정리했다.
오후에는 시장에 가서 장을 봤고, 저녁도 내가 했다.
내 연금 130만 원 가운데 내가 쓰는 돈은 50만 원뿐이었다.
나머지 80만 원은 전부 아들한테 줬다.
주택담보대출 갚는 데 보태고, 아이 키우는 데 보태라고 했다.
나는 내 몸에서 냄새날까 봐 늘 신경 썼다.
매일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세탁할 때는 며느리가 좋아하는 향의 섬유유연제까지 썼다.
그런데도 결국 돌아온 건 핀잔이었다.
시골로 내려온 뒤에는 새벽같이 일어날 필요가 없어졌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 됐다.
아침엔 죽 한 그릇 끓여서 김치랑 먹었다.
소박했지만 편했다.
오후에는 동네 장터에서 채소를 샀다.
신선했고 값도 덜 부담스러웠다.
마당 한쪽 빈 땅은 다시 뒤집었다.
거기에 푸성귀랑 대파, 고추를 심었다.
반찬거리 하나는 내 손으로 해결됐다.
할 일 없을 때는 마당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근처 사는 나이 든 이웃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하루가 천천히 갔다.
연금 130만 원이면 혼자 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남았다.
읍내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도 다시 받았다.
의사는 내가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혈압이 흔들렸던 것 같다고 했다.
지금처럼 마음이 편해지면 수치도 안정될 거라고 했다.
나는 나를 위해 새 옷도 샀다.
이불도 새로 들였다.
집 안을 다시 정리해 놓고 보니 숨이 좀 트였다.
누구 허락 없이 내 돈으로 내 생활을 챙긴 게 참 오랜만이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며느리가 요즘 돈 문제로 자꾸 싸운다고 했다.
내가 매달 주던 80만 원이 끊기고 나니 생활이 팍팍해졌다고 했다.
대출 갚는 것도 벅차다고 했다.
며느리도 잘못한 걸 안다면서, 다시 들어와 살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이제는 절대 그런 말 안 하겠다고도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난 여기서 잘 지낸다. 안 돌아간다.”
너희 살림은 너희가 꾸려야 한다.
나는 이제 늙어서, 내 집 지키면서 조용히 살고 싶다.
아들은 더 말하려고 했다.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도 아들은 가끔 전화를 했다.
나는 짧게만 받아줬다.
다시 돈을 좀 보태 달라는 말도 했지만, 나는 응하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자식 인생까지 끝까지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는 걸.
나는 평생 가족 챙기느라 내 몫을 미뤘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도 되는 나이다.
지금 내 생활에는 고부갈등도 없고, 돈 때문에 끌려다닐 일도 없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내가 정한다.
나는 그게 좋다.
황혼에 비로소, 내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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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네요.
첫댓글 효자,효부는 없는가보다.
우짜든동 안아프고,건강하게 내맘데로 사는게 최고여!!!
정성들여 키워준 아들이 부모를 대하는 장면이 정말 서글프군요. 왜이리되었는지 모두 생각해볼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