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꽁초 5회
“여보, 나 그냥 출근할게”
그의 목소리는 약간 허스키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면 조금은 무게 있게
들리곤 하는데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침 거르지 말고 조금 들고 가요.”
아내의 목소리가 주방 안에서 그의 귀까지 들려오는데 그의 가슴이 갑자기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아내의 목소리 톤이 다른 날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몸이 안 좋은가?’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그의 코 점막을 자극하는 냄새가 들어온다. 콩나물국 냄새였다.
‘아하! 이 사람이 내가 술 많이 마셨다고 콩나물국을 끓였군.’
그는 콩나물국 냄새를 맡으며 ‘고추 가루를 조금 타서 매콤하게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걸음
을 식탁 쪽으로 옮긴다.
두어 걸음을 옮기면서 그는 문득 아내가 끓인 콩나물국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벌써 삼
십 년 가까이 함께 사는 부부사이였고 아들과 딸 남매가 장성한 지금까지 아내는 콩나물국을 끓
인 적이 없다는 기억 때문이었다. 그가 아무리 많은 술을 마신 다음 날에도 아내는 콩나물국을 끓
여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가 콩나물국을 먹고 싶다는 눈치를 주어도 고집스럽게 콩나물국을 끓이지 않았고 대신
북어 국을 끓여 내거나 우거지 된장국을 끓여 내면서 그 국이 술 마신 다음날 몸에 더 좋다는 논
리를 펴는 아내였던 것이다. 그런 아내가 오늘 아침에는 콩나물국을 끓인 것이다.
‘왜냐고요? 콩나물국을 드시고 싶으면 식당가서 사 드세요. 나는 콩나물국을 좋아하지 않아요.’
처음 결혼 후 그가 회식으로 많은 술을 마신 다음 날 아침에 아내에게 콩나물국을 부탁하자 아
내에게서 나온 답변이었다. 그 때만 해도 자신이 술을 많이 마신 것에 대한 아내의 불평이 그렇
게 표현된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얼마 후 다시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신 다음 날 콩
나물국을 부탁하자 아내의 얼굴 표정이 뾰르퉁해지면서
‘지난 번 한 말 벌써 잊었어요?’
하면서 콩나물국을 싫어한다는 말을 잊어버렸다는 것에 대한 불평을 드러낸 것이다.
그 날은 그가 화를 낼 뻔했었다. 아무리 자신이 콩나물국을 싫어한다 해도 남편이 부탁을 하는데
그렇게 야멸차게 거절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었다. 그렇다고 콩나물국을 싫어하는 아내에 대한
실망보다 콩나물국을 찾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신 원인 제공을 한 탓이 자신에게 있기에
별다른 대꾸도 하지 못하고 빈속으로 출근을 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콩나물국을 싫어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그 얼마 후 장모의 생일을 맞아
처갓집에 갔을 때였다. 처갓집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한 후 여자들이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두 명의 처남과 근처 호프집에서 술을 한 잔 하면서 은연중에 콩나물국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