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2월16일
철원 겨울여행
얼어붙은 한탄강에서 쉬고 있는 두루미 무리. [사진/진성철 기자]
(철원=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한탄강변은 은빛으로 밤새 얼어붙었다. 붉은 정수리, 긴 목구멍에서 터져 나온 입김도 -15℃ 한파에 하얗게 번졌다. 철원의 겨울 손님 두루미는 한탄강에서 목청껏 울었고 우아하게 춤췄다. 한겨울 철원은 한탄강을 따라 겨울 철새를 구경하거나 벼랑길·물윗길을 따라 걷기에 그만인 곳이다.
해가 솟자 금빛으로 변하는 한탄강변에 내려앉는 두루미. [사진/진성철 기자]
철원의 겨울은 두루미 세상
철원 하늘을 나는 재두루미 한 쌍. [사진/진성철 기자]
강원도 철원엔 한반도를 찾는 겨울 손님 두루미가 많다. 붉은 정수리에 몸이 하얀 두루미와 회색인 재두루미가 주로 철원을 찾는다. 민간인통제선 인근 금강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한낮에도 길가 옆 논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두루미들이 두세 마리씩 눈에 띈다.
내비게이션에 '이길리 383번지'로 찾아갈 수 있는 '철원철새도래지관찰소'는 민통선 밖이라 자유롭게 갈 수 있다.
관찰소 자체가 천연기념물 제245호다. 두루미는 제202호, 재두루미는 제203호다. 한 철새도래지 직원은 "흑두루미는 지금까지 4마리 봤다"고 했다. 철원 두루미 가이드북은 "시베리아흰두루미, 검은목두루미, 쇠재두루미, 캐나다두루미도 관찰됐다"고 설명한다.
두루미·큰고니·오리 떼들의 '겨울 세렝게티' 한탄강
하늘 향해 크게 우는 두루미 한 쌍. 차가운 공기에 입김이 하얗게 번진다. [사진/진성철 기자]
여명이 밝아오면 오리 떼들이 먼저 날기 시작한다. 8시 무렵이면 "꾸~욱, 꾸~욱" 거리는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인근 토교저수지에서 잠을 잔 두루미들이 무리 지어 난다. 하늘을 크게 돌아 비행한 뒤 이길리 한탄강변 철새도래지에 내린다. 큰고니 무리, 오리 떼는 이미 흐르는 한탄강물에서 노닐고 있다.
사흘 내 아침 기온은 -15℃ 정도였다. 밤새 서리가 내려앉아 한탄강변의 갈대에는 상고대가 하얗게 폈다. 앞산 위쪽으로 해가 나오자 하얗던 강변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두루미 두 마리가 짝을 지어 하늘을 향해 목청껏 크게 울었다. 긴 부리에서 입김이 하얗게 뿜어졌다.
큰고니 무리도 크게 울어댔다. 또 다른 큰고니 무리가 날개를 크게 퍼덕거리며 착륙했다. 반기는 건지 텃세를 부리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채 1년이 안 된 회색 깃털의 새끼 고니들도 어미 옆에서 헤엄쳤다.
한탄강에서 겨울을 보내는 큰고니 무리. [사진/진성철 기자]
갑자기 오리 떼가 날았다. 이리저리 날더니 한탄강물에 금세 다시 앉았다. 옆을 보니 흰꼬리수리 한 마리가 사냥한 오리를 맛보고 있다. 수리 새끼는 조금 떨어져 어미를 기다렸다. 두루미, 큰고니는 아랑곳없이 아침을 즐겼다.
사냥한 오리를 먹는 흰꼬리수리와 아랑곳없이 쉬는 큰고니들. [사진/진성철 기자]
'우아한 춤꾼' 두루미들의 맛동산 파티
재두루미 무리 가운데서 춤추는 두루미. [사진/진성철 기자]
월요일, 금요일에는 강변 모래톱에 벼, 옥수수 등을 뿌려준다. 두루미들이 맛동산에서 잔치하는 날이다. 모래톱에 빼곡히 선 천연기념물들이 긴 목을 숙이고 사람이 뿌려준 먹이를 먹는다. 양 떼들이 모였나 착각할 정도다. 오리 떼에 포위된 군부일학(群鳧一鶴) 격이다. "철새 먹이로 한 해에 30t가량을 구매한다"고 철원군 관계자가 말했다.
오리 떼에 포위된 두루미. [사진/진성철 기자]
10시쯤이 되자 배부른 두루미들이 고함을 지르며 싸우기 시작했다. 두 마리가 상대를 향해 커다란 날개를 펼쳐 들고 긴 다리를 앞으로 내밀며 달려들었다. 두루미는 '학(鶴)'으로도 부르는데 예쁘게 말하면 '학춤'을 춘다. 날개깃이 아침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면 우아함의 정수다. 두루미 무리를 보려 사진작가들도 북적였다.
두루미와 큰고니를 관찰하도록 망원경이 설치된 탐조건물. [사진/진성철 기자]
철원철새도래지관찰소는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건물 다섯 동이 있다. 망원경이 설치된 건물도 있다. 핫팩과 두툼한 겨울 옷차림은 필수다. 입장료는 1만5천 원이고 '철원사랑상품권'으로 1만 원을 돌려준다. 입장료는 두루미 먹이값으로 주로 쓰인다.
철원 논에서 먹이활동 중인 재두루미 두 마리. [사진/진성철 기자]
한탄강 순담계곡에서 만나는 '주상절리 잔도'와 '물윗길'. [사진/진성철 기자]
벼랑을 따라 한탄강을 유람하다…주상절리 잔도
순담계곡스카이전망대. [사진/진성철 기자]
할아버지와 손자가 손을 잡고 벼랑길을 걷는다. 꼬맹이가 아빠의 목마를 타고 한탄강을 유람한다. 철원의 '한탄강 주상절리 잔도'다.
2021년 철원은 용암이 만든 한탄강과 수직 절벽, 협곡을 따라 사람이 발 디딜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지난해 11월 18일 개통해 올해 1월 10일까지 벌써 14만 8천여 명이 다녀갔다. 한탄강은 큰 여울이란 뜻이다. 한탄강 일대는 지난 2020년 7월 유네스코(UNESCO)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철원한탄강스카이전망대에서 만나는 주상절리. [사진/진성철 기자]
순담·드르니매표소 두 군데 중 하나를 골라 걸을 수 있다. "순담 출발은 오르는 계단이 많고 드르니는 내려가는 계단이 많아 노약자나 어린이는 드르니 쪽이 좋다"고 관계자가 말했다. 실제 걸어보니 순담 쪽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이 이날은 더 많았다.
'잔도'(棧道)로 불리는 인공으로 조성한 길은 주로 배수로 덮개로 쓰이는 스틸그레이팅(Steel grating)으로 제작해 바닥이 보인다. 교량 구간은 출렁거린다. 고소공포증이 없고 약간의 스릴을 즐긴다면 쉬운 코스다. 계단이 몇 번 나오긴 해도 깔딱고개 코스는 한두 번밖에 없다. 잔도를 걸으면 절벽에서는 주상절리와 작은 얼음폭포를, 강에서는 얼음과 눈이 그린 수묵화를 만날 수 있다. 총 길이는 3.6㎞다. 1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지만 주상절리와 한탄강 풍경을 즐기며 걸으면 2시간가량 소요된다.
세종강무정 전망대에서 바라본 고석바위와 한탄강 물윗길. [사진/진성철 기자]
강 따라 물 위를 걷다… 물윗길 트레킹한탄강 물소리를 쉼 없이 들으며 걷는다. 가끔은 물에 젖은 현무암의 냄새를 맡는다. 얼어붙은 강에 쌓인 눈밭엔 연인의 '♡사랑해♡', 아이의 '엄마 바보' 낙서가 웃음 짓게 한다. '한탄강 물윗길 트레킹'이다.
잔도에서 바라본 순담계곡 물윗길. [사진/진성철 기자]
겨울철에만 걸을 수 있다. 태봉대교부터 은하수교(송대소), 고석정, 순담계곡까지 물 위에 띄운 부교를 걷는 길이다. 물윗길은 잔도보다 더 걷기 쉽다. 풍광은 막상막하다. 전체 코스는 8㎞로 살짝 부담스러울 수 있다. 고석정부터 순담계곡까지가 1.85㎞로 부담 없다. 잔도, 물윗길 입장료는 각각 1만 원씩이고 상품권 5천 원씩을 돌려준다. 철원에서 택시비로도 사용할 수 있다. 주말과 공휴일에만 잔도, 물윗길을 아우르는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화요일엔 두 길 모두 입장 금지다.
물윗길에서 만나는 한탄강 얼음 위 낙서와 바위벽에 세운 돌탑. [사진/진성철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zj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