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갈릴래아 호수에서 어부 네 사람을 불렀다. 성경에서 그들은 곧장 직업과 가족을 버리고 예수의 제자가 됐다.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은 무슨 생각으로 낯선 이의 부름에 주저 없이 응했던 것일까.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니 그렇다 쳐도 제자가 된 어부들은 인간적인 욕망과 집착을 버리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모르긴 해도 아마 밤잠을 설치며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았을까.
고기를 낚는 삶과 사람을 낚는 삶 중 무엇이 더 행복할까. 만약 떠난다면 내 재산을 모두 버리고 가야 할까. 결혼해서 자식 낳고 오순도순 살려고 했는데 괜한 고생만 하는 건 아닐까. 깊은 고민의 한 가운데 어느 순간 그들은 확신을 얻었을 거다.
예수의 부름이 낯선 이방인의 즉흥적인 제안이 아니라 나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기시려는 그분의 뜻이라는 것을.
예수가 가까이 둔 제자는 12명이었지만 하느님은 예수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진실한 말씀에 마음이 동한 이들은 굳이 예수를 따라다니지 않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랐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느님의 기준으로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이끌림. 그 이끌림의 원천에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었다.
50번째 성소 주일을 앞두고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여섯 사람을 만났다. 수도생활을 시작한 지 2년 남짓한 예비 수녀 4명과 올해로 사제수품 50년을 맞은 노(老) 사제, 기도에 삶을 봉헌하고 착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 믿고 있는 교우. 하느님을 따르는 길에서 만난 이들에게 부르심의 의미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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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부르심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수련기 수도자 김소원 · 이진아 · 이혜영 · 지영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호수만큼 커다란 저수지가 있는 정류장에 내렸다. 수녀원에서 알려준 대로 주유소를 끼고 돌아 유행가가 흘러나오는 식당 겸 노래방을 지나 좀 더 걸어 올라가니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수련원이 나왔다. 아담한 수련원 건물 뒤 나지막한 언덕엔 진달래가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마당 안 작은 텃밭에서는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한 새싹들이 파릇파릇 자라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수련자 4명을 포함해 십여 명의 수녀들이 살아간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김소원 · 이진아 · 이혜영 · 지영 수련자가 동그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마침 점심시간을 앞두고 있어 건물 복도는 구수한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기자님, 오늘 먹을 복이 있나 봐요. 하하.” 같은 식탁에 앉게 된 이진아 수련자가 젓가락을 집으며 말했다. 이날 점심 메뉴는 감자탕이었다. 다른 수도회의 한 수사가 “언제 수도회에 가서 감자탕 한번 끓여주겠다”는 몇 달 전 약속을 지키러 방문한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네댓 명씩 한 식탁에 모여앉아 빨간 국물이 밴 뼈다귀 고기를 알뜰하게 발라먹으며 오고가는 이야기는 여느 평범한 가족의 대화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 불쑥 꺼낸 축구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빨간 때수건과 고무 대야까지 등장했던 2002년 월드컵 응원의 기억으로까지 옮겨갔고, 선배 수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수련자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빵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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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창립자 마리 드 라 빠시옹 수녀 동상 주변에 모인 김소원 · 이혜영 · 이진아 · 지영 수련자(왼쪽부터)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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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시간
“바깥사람들 중에는 ‘수도자들이 수도원에서 기도만 하면 되지, 왜 밖에 관심을 가지냐’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렇지만 수녀원에서 지내다보니 왜 우리가 세상 밖으로 열려 있어야 하는지 배우게 됐어요.” (이진아)
이처럼 수련자들에게 식탁은 또 다른 수업의 공간이기도 했다. 수련자들은 수련장 수녀의 허락과 동행 없이는 외출이 불가능하고 인터넷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수도회의 하루 일과에 맞춰 생활하다보면 세상 소식에 무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는 ‘어디든지, 누구에게나 갈 각오가 되어 있는 선교’ 수도회다. 언젠가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그 때를 위해 항상 하느님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수녀원에 오면 시야가 더 좁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예전에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바깥세상 소식을 들을 때면 예수님이 마음 아파하고 함께하실 사람이 누구일까를 먼저 생각하게 돼요.” (김소원)
아직 수련기 1~2년차를 보내고 있는 수련자들은 벌써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갈망이 크다고 했다. 지원기와 청원기, 수련기를 거치면서 얻은 좋은 경험과 생각들을 토대로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게 많아서다. 거기에 지영 수련자는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하느님은 빛’(1요한 1,5)이라는 성경 구절처럼 빛이 넓게 퍼져나가듯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자연스럽게 세상에 나가고 싶어지는 것 같다”는 게 이혜영 수련자의 설명이었다.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마음이 들던 때
수련자들의 목소리에는 자신이 말하는 바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해맑은 얼굴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 분도 보고 계실까. 수련자 네 명의 반짝이는 눈동자에서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린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떠올랐다. 불현듯 이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김소원 수련자는 입회 준비를 하라는 수도회의 전화를 받던 순간 정말로 하늘에서 종소리가 들렸다고 기억했다. 그가 처음 수도성소를 느낀 것은 한 피정에서였다. ‘길’을 주제로 향심기도를 드리다가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하느님과 가까이 하고 싶고 그분께서 나를 부르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피정을 하면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참가자들과 나눔을 하다 보니 다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아,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하느님이 이끌어주시는 거구나. 그때 나를 초대하시는 하느님을 만난 것 같아요.” (김소원)
이혜영 수련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에 그는 사회생활에 맞춰 언제 직장을 옮기고 돈을 얼마나 벌 것인가, 결혼은 언제 할 것인가 하는 인생 계획을 이미 갖고 있었다. 그렇게 바쁘게 사는 틈틈이 피정을 다니면서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게 전부였다.
“피정을 하고 싶던 차에 때마침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에서 여는 피정 초대장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곳 수녀님들은 그동안 만나왔던 수녀님들과 달랐어요. 기쁨에 차 있고 빛이 나는 느낌이었어요. 도대체 저 수녀님들은 뭐가 그렇게 행복하고 좋을까. 그때 저는 돈을 벌고 쓰기를 무지 좋아하면서도 정작 행복하다고 느끼진 못했거든요. 수녀님들을 보면서 제 삶의 방향을 고민하게 됐죠.” (이혜영)
그는 성소 모임에 나간 지 일 년 만에 입회를 결심했다. 입회를 결심한 순간, 그 전까지 그의 마음을 붙들고 있던 것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이혜영 수련자는 “다 버리고 갈 수 있겠다는 편안한 마음”이 들었을 때 하느님이 부르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에 비해 이진아 수련자는 수도회에서 ‘한번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성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가한 2박3일간의 성소 피정을 마치고 다음날 바로 수도회 입회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도 다른 수련자들처럼 세상 기준에 따라 앞만 보고 달려왔던 자신을 내려놓으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다.
“피정 때 10년 가까이 성소 모임에 나오면서 아직 입회 결정을 하지 못한 자매님과 한 방을 쓰게 됐어요. 그분을 보면서 내가 느낀 이 이끌림에 대해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겠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다음날 아침에 부모님께 수도회에 가야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적금을 깨서 돈 정리를 다 했어요. 저를 잡고 있었던 것이 돈이었거든요.” (이진아)
지영 수련자는 수도 성소를 결심하기 전 삶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든 경험을 했다. 아토피가 심해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던 어느 날 밤 그는 너무 큰 고통 때문에 “이 밤이 끝나면 죽자”는 결심을 했다. 그러다 지쳐서 잠들었는데 낭떠러지에 몸을 던지는 꿈을 꿨다.
“몸이 떨어지는 순간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어요. 마치 자식이 자살했을 때 아버지가 느꼈을 법한 마음이 쑥 밀려들어오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자마자 하느님께 죄송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어요. 하느님이 정말로 아버지시구나, 자식을 잃은 마음으로 항상 함께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영)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하느님의 기억은 그를 다시 성당으로 이끌었다. 삶 자체로 기쁠 수 있음을 가르쳐준 하느님은 미사와 본당 활동을 거쳐 성소 모임에까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예수님 사랑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수련자 네 명의 수도원 입회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점을 요약하면 ‘채워지지 않던 마음을 가득 채운 하느님(예수님)의 사랑’이었다. 인생의 큰 고민을 해결해주었기 때문일까. 그들은 하느님 사랑에 푹 빠져있는 듯 보였다. 성소 모임을 다니던 시기에 그들이 닮고 싶어 했던 수녀들의 밝고 기쁨에 찬 미소는 어느새 그들의 것이 되어 있었다.
“하느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이해해주시는 분이시면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모든 피조물을 그렇게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이 너무 좋아요.” (이진아)
그런 이진아 수련자를 바라보며 “어떤 사람이 예수님처럼 저한테 붙어있을 수 있겠어요”라고 말하는 지영 수련자의 눈에도 하트가 총총 박혔다. 김소원 수련자는 예수와의 사랑은 둘 사이에 머무르지 않고 멀리 퍼져나가게 되어서 좋다고 했다.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타인의 사랑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내가 사랑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또 그 사람도 사랑을 베푸는 것, 이것이 복음이고 행복일거예요. 저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서 예수님을 사랑해요.” (김소원)
물론 사랑에 빠진다고 연애가 쉽게 굴러가지 않듯이 하느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느끼는 것만으로 수도생활이 마냥 수월할 수는 없는 법이다. 수도 성소의 길이 나의 길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얻는 시기가 지원기와 청원기라면, 수련기는 본격적인 수도생활이 시작되는 단계로 집중적인 양성을 받는 시기다. 마음의 혼란은 줄어들지만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를 더 깊이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수련기에 들어와서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돼요. 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죠.” (지영)
“다 버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인정받고 싶어 하고, 화를 내고, 내 의지대로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발견할 때 제일 힘들어요. 어떨 때는 잘 될 때도 있지만 계속 그럴 수 있다면 ‘성인’이겠죠.” (이혜영)
하느님은 나를 무한히 사랑하고 있으니 결국 하느님과 나 사이의 걸림돌은 나의 부족함이다. 그런데 반대로 하느님은 그런 부족함 때문에 나를 택하셨다는 것이다.
“저의 약점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약점을 극복하는 경험이 하나 둘 쌓이면서, 저의 이런 경험을 하느님께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진아)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면서, 위안을 받고 싶었어요. 그런데 하느님은 늘 저를 지지해주시고 제가 몰랐던 능력을 발견하게 해주세요. 내가 아등바등해서 이뤄놓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인 거죠. 제가 받은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도구가 되라고 저를 부르신 게 아닐까요.” (김소원)
네 명의 예비 수녀들은 그렇게 하느님이 인간에게 선물한 사랑이 본래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아가고 있었다.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무한하고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 말이다. 이들을 통해 하느님은, 바깥세상 사람들이 촌스럽고 효율적이지 않다고 치부해버린 자신의 선물을 인간에게 다시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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