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나고 났는데도 지칠 줄 모르는 무더워는 여전합니다.
기후 변화를 실감합니다.
이런 날씨에도 산에 생명체는 어김없이 꽃은 피고 지고 열매는 매달려서 영글어가고 있습니다.
발길에 채이는 애기 밤송이에 눈길이 갑니다.
밤꽃 향기 풍기며 떨어지던 숫꽃 본 것이 엊그제만 같은데 벌써 알밤 모양을 갖춘 밤송이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기 시작합니다.
아래 사진은 계룡산 줄기인 향적산 산책길에 찍은 사진입니다.
숫꽃과 앙징맞게 매달린 암꽃 밤송이가 인상적입니다.
100일도 못 돼서 알밤으로 토실토실 영글어 가는 것을 보면 자연의 경이에 저절로 고개 숙여집니다.
알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바늘같은 밤송이의 겉모습에서 전율을 느낍니다.
사실 전율(戰慄)이란 낱말에도 밤 율(栗)자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새삼 옛조상님들의 지혜를 느낍니다.
밤 율(栗) 자 역시 밤나무 (木) 위에 밤송이(西)가 매달린 모습을 상형화 한 것이랍니다.
갑골문자를 보면 더욱 생생합니다.
속에 있는 밤알을 가혹하게 지켜내려는 모습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밤송이 속에 밤알들이 다정하게 둥지에 새새끼들처럼 들어있습니다.
형제들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이 알밤을 그냥 먹지를 못 합니다. 겉껍질을 까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또 속껍질까지 까야 비로소 먹을 수 있는 밤 속이 나타납니다.
단단한 겉껍질에 비해 속껍질은 부드럽기는 하지만 대신 떫은 탄닌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냥 먹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감싸고 있는 밤의 보호장치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것은 밤과 비슷한 도토리나 상수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상수리나 도토리는 그냥 먹을 수 없습니다. 떫은 맛을 우려내지 않으면 먹을 수 없지만, 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고 게다가 단맛도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니 밤의 가치는 더욱 높아집니다.
이래서 밤은 예로부터 귀하게 여겼나봅니다. 제사상에 빠질 수 없는 다섯과일 중의 하나가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옛날 선사시대 특히 석기시대 인류들은 밤을 알기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밤이 밥 노릇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원도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해봅니다.
조선시대까지도 군량미가 없을때는 쌀 곡식 대신 밤을 지급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을 정도이니.
밤이 얼마나 중요한 양식 대용품이었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밤과 모양이 흡사해서 흔히 구별하기 어려운 것 중에 참나무류가 있습니다.
상수리가 달리는 상수리나무, 도토리가 열리는 떡갈나무, 신갈나무 등이 있습니다. 이 모두를 통틀어서 참나무라고 부릅니다.
왜 참나무라 불리우는지 궁금해집니다. 나무가 단단해서 차지다는 뜻의 참나무인가요, 아니면 나무 중에서 진짜 나무라는 뜻에서 나온 것일까요? 추정컨대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달려서 얻어진 이름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모양이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데도 함께 두루뭉실하게 참나무로 모아서 부르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해봅니다. 너도밤나무도 있고 나도밤나무라는 이름의 비슷한 나무들도 있습니다.
흉년이 들면 반대로 산에 참나무 열매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죽으라는 법은 없나봅니다.
자연의 이치가 이런 것일까요 !
소라실 고개 마루에는 상수리나무가 몇 그루 있습니다.
칠팔월 무렵이면 참나무 순이 잘려나간 것들이 하룻밤새 길가에 수북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참나무거위벌레가 알을 낳고 잘라낸 것들이랍니다.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어서 들여다 봅니다. 1cm도 안되는 그 작은 거위벌레가 잘라낸 부위가 마치 잘 드는 톱으로 썬 것 같습니다. 거위벌레라기보다는 차라리 가위로 잘라낸 것처럼 가위벌레라고 부르고 싶어집니다.
도토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검은 구멍이 보입니다. 그 속에 알을 낳고 땅에 떨어뜨리면 도토리알맹이를 식량으로 먹고 자란 애벌레는 땅으로 들어가서 성충이 될 때를 기다린답니다. 다 자란 성충은 다시 제 어미가 했던 일을 되풀이 할 테고...
밤나무 벌레 역시 밤나무가 영글기 전에 애기 밤송이 시절 밤 속에 알을 낳고 떨어뜨리는 것 같습니다.
자연은 혼자 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농사의 3분법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열매의 1/3은 하늘에, 1/3은 땅의 동식물에게, 나머지 1/3만이 사람 차지가 된다고 믿었다는 말이 있더군요. 다람쥐도, 새도 먹고 살고 벌레도 먹고 살아야 되고, 나만이 아닌 우리가 모두 같이 먹고 산다고 , 서로 도우면서 산다고 믿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정 많은 우리나라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맨 처음 곡식은 하늘에 제사올리며 "고수레", '"고시레"하며 천신(薦新)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밤알을 세는 말에 곡식에 쓰는 양사 "톨"을 쓰는 데에 감탄합니다.
'쌀 한 톨' 하듯이' 밤 한 톨' 하는 것이 옛날옛날 밤이 쌀밥 노릇하던 시절의 흔적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ㅣ
훗날 곡식이 일반화되면서 이제는 밤은 뒷전으로 밀려 겨우 차롓상에나 올리는 것으로 남아있지나 않나하고 생각해봅니다.
밤나무의 위엄은 신주나 위패를 만드는 나무재료로서 신령하게 여긴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훗날 그것도 향나무에게 자리를 내주기는 하지만,
머리통에 꿀밤을 맞으면 밤톨 만한 혹이 툭 튀어나오던 학창 시절의 추억이 밤 한 톨에 묻어 나옵니다.
귀하디 귀한 밤 한 톨의 추억이 긴긴 겨울 밤에는 군밤 냄새로 더욱 그리워집니다.
(2024.09.20(금) 카페지기 자부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