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유림
아니라고 마음을 다 잡아도 너의 말 한마디에 그깟 말 한마디 때문에 맑은 물이 다시 흙탕물이 돼버렸네 /지그재그, 권진아
시나브로의 뜻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이다. 2학기 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관계에서도, 성격에서도, 그 모든 행동에서도.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좋은 뜻만은 아니지만, 안 좋게 변해버린 내 자신도, 나도 모르는 새에 조금 씩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하늘이 파래서 햇살이 빛나서 내 눈물이 더 잘 보이나봐/ I NEED YOU, 방탄소년단
나는 눈물이 많다. 속상할 때도 잘 울고, 화날 때도 잘 울고, 아플 때도 잘 울고, 억울할 때도 잘 운다. 하지만 그렇게나 많은 눈물을 흘리는 나는 이번 2학기 때, 우는 것을 계속해서 숨겨왔다. 이불 안은 아무도 보지 못한다. 투명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울기에는 딱 좋은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을 때도, 가끔 나 혼자 슬퍼져서는 이불 안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울었다. 아무래도 찔끔찔끔 울다보니, 눈도 붉어지지 않고, 코를 훌쩍이는 것은 감기라고 이야기 하면 되는 것이니. 애들은 내가 우는 것을 잘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건 내 생각이지만,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눈물을 많이 흘리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2학기 때 나는 계속 참기만 했었다. 내가 기분 나쁜 순간에서도 꾹 참았다.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었지만, 그런 건 그냥 슥 닦으면 끝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많이 숨긴 것 같았다. 왜 참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내가 기분 나빴던 걸 다른 애들에게 이야기 했다가는 애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 때문에, 혹시라도 이걸 이야기하면 애들이랑 싸우지 않을까, 또 1학년 때처럼 따돌림 당하는 게 아닐까 라는 걱정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봤다. 나는 애들이 하는 사소한 행동에서 짜증이 많이 났었다. 정말 사소한 부분에서, 하지만 아무래도 사소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부분에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물론 장난 식으로 너 내 발 밟았어! 라는 것은 이야기 하겠지만. 정말 진심으로 내가 기분 나빴던 순간에서 하하, 억지웃음 지으며 그냥 넘어갔었다.
그런 게 쌓이고 쌓여서, 이상한 부분에서, 정말 내가 슬프지 않고, 화나지도 않은 순간에서 눈물이 터져 나올 때가 많았다. 오히려 애들은 그런 나를 이상하게 여겼고, 나는 그런 부분에서 울다가 또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그 애들을 대해왔었다. 애들 하는 말이 가끔은 내 마음을 뒤엎기도 했었고, 가슴에 박히기도 했었다. 그래도, 저 애들은 나를 상처 입히려는 생각이 아니었으니까. 라고 이기적인 생각으로만 단지 내가 참으면 저 애들이랑 싸울 필요도,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을 거야, 라고만 생각해왔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보니 내 몸에서도 병이 나기 시작했고, 슬슬 지치고 짜증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참아왔었다. 항상 가슴이 묵직하게 답답한 기분이었다. 앞으로는 내가 짜증나는 일이 있거나, 화나는 일이 있으면 말하고 싶다. 말해서 훌훌히 털어버리고 싶다. 애들이랑 싸워도 괜찮다. 애들이랑 틀어져도 좋다. 그냥 내 마음을 이야기 하고 싶다. 앞으로 그러도록 노력할 것이고, 그렇게 하도록 하려고 하겠다.
※슬퍼도 웃는척 아파도 아닌척 말없이 안아주세요/난 니가 필요해, 에이핑크
이번에 조금씩 더 변하게 되었던 건, 아마도 쌤들과의 사이가 아닐까 싶다. 1학년 때 나는 쌤들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거나 제대로 내 이야기도 꺼내지도 못했었고, 쌤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 조심스럽게 부르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하지만 지금은 쌤들에게 가서 안기기도 하고, 내가 힘들 때는 쌤들에게 찾아가 쌤 나랑 같이 이야기해요! 라는 식으로 먼저 말을 꺼내서 같이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보니 쌤들도 나를 장난스럽게 대해주기도 했었고, 내가 정말 필요할 때는 와서 같이 이야기도 해주는 사이가 되었었다.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쌤들이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내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에는 제가요? 라는 반응이었는데, 내 옛날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그러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브로의 뜻처럼, 나는 쌤들에게 조금 씩 조금씩 다가가 지금의 관계를 만든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정말 중요했지만, 쌤들과의 관계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정말 간절히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가끔은 애들도 좋지만 쌤들한테도 다가갈수록 더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좀 더 쌤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밖에도 많이 놀러 다니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 친해지지 못한 쌤들과도, 조금 더 친해지고 싶다. 편하게 어깨동무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사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좀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지금 난 너무나도 행복한 생각에 이야기를 쓰지만 모든게 바램일 뿐이라고/여전히, Fiction
나는 지금 3학년이 되면 어쩌지 라는 고민에 빠져있다. 1학년 때는, 마냥 3학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3학년이 되려고 하니까 무서워졌다. 3학년에도, 지금 2학년 때처럼 놀고만 있지는 않을까, 논문을 쓰려는데 혹시 제대로 쓰질 않아서 2학기까지 넘어가다 결국 끝까지 가진 않을까, 논문 발표 때 실수하면 어쩌지 등의 쓸데없고 말만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나 혼자 수료되어서 졸업을 못 할 거야 하며 시무룩해질 때가 많았다. 물론 그게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넌 못 할 거야! 라는 말이 계속해서 맴돌아 나를 슬프게 만들고 무기력 하게 만들었었다. 막상 하면 또 잘할 거 같으면서도 안할 거 같으니까 나는 내가 3학년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논문도 그렇고, 발표도 그렇지만, 관계 면에서도 여러모로 무서운 점도 많았다. 1학년 때처럼 돌아가 버릴까봐 무섭기도 했었고, 혹시나 우리 애들끼리 싸워서 또 편이 갈라지는 건 아닐까 라는 걱정도 굉장히 많이 했었고, 나는 우리가 3학년이 되기 전에 한번쯤은 마음나누기를 했으면 좋겠다. 그 마음을 쪼개는 마음나누기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나누자는 의미의 그 마음나누기를.. 그렇게라도 해서 좀 더 아이들과 마음을 쉽게 털어놓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고, 사실 나는 2학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3학년 때가 더 행복하고 좋겠지! 라는 희망을 가지고 가고 싶다. 논문도 멋지게 써서 멋지게 발표하고 싶고, 멋진 선배로 남고 싶기도 했었다. 물론 안 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99%에 1%의 희망을 믿고 싶었다.. 우리 9기 영원하길.. 졸업해도 9기는 영원할 거라고 믿는다.
※아빠와 빼닮은 내가 울면 울던 그가 보일까봐/ 에픽하이, 막을 올리며
나는 아빠와 이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었다. 이 학교에 오고 난 후에 나는 인터넷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랬었지만, 아무래도 학교에서는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가 없으니까 방학이나 주말에 집에 와서 하루 종일, 잠도 제대로 안 자고 인터넷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런 나의 모습에 아빠는 화가 나서 나를 혼낸 적도 많았고, 그것 때문에 많이 싸우기도 했었다. 나는 싸우던 날이면 항상 미안한 마음 때문에 이불속에 들어가 울었다. 내가 억울해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 아빠랑 싸웠다는 그런 느낌 때문에, 내가 잘 못 한 거 같아서 너무 속상해서 항상 울었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나랑 싸울 때나 혼낼 때 눈물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었다. 우리 아빠는 강하니까 라는 그런 것이 내 머릿속에 박혀, 우리 아빠는 아무리 슬퍼도 울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내 생각보다 마음도 여리고, 상처도 쉽게 받는 사람이었다. 같이 이야기를 할 때면, 가끔 울기도 했었고, 상처받기도 했었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 둘이 정말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빠가 정말 좋다. 아빠랑 이야기 할 때면 조금 마음이 편해질 때도 많았고, 고민상담도 가끔 할 수도 있는 사
9기 2학년 2학기 유림의 에세이.hwp
람이었다. 하지만 아빠에게 진짜 내 마음을 많이 못 털어놓아서 가끔 서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조금씩 더 다가간다면, 그때는 정말 내 마음을 다 털어놓고 아빠와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러도록 노력할 것이고, 꼭 해볼 것이다.
※흘러간다 유난히 따갑던 햇살도 흘러간다 차가운 바람마저 흘러간다 수많았던 나의 기억들흘러간다 어김없이 오늘도 이렇게/ 제이투엠, 흘러간다
이번 2학기는 정말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빠르게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듯하다. 아직 다 하지 못한 필사, 애들이랑 풀지 못했던 이야기, 산더미처럼 쌓인 간식 쓰레기들.. 사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으악 할지도 모를 2학기였지만, 나는 이 순간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싶었다. 1학년 때는 무작정 자퇴하고 싶다 노래를 불렀지만, 지금은 어느새 이 순간순간들을 전부 가지고 3학년이 돼서, 멋지게 논문도 발표하고, 그리고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서 졸업하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있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아빠가 옆에 있다면, 나는 이 거대한 산을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