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래/이길섭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아내가 뭐라하면 그래 그래.
특별한 공감이 없이도
그니가 말을 하면 그래 그래.
아니 그게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래 그래.
아들이 그래 그래
하라 해서 그래 그래.
딸이 시집 가며
그래 그래 하라 해서 그래 그래.
옳다 그르다 하기보다
평화가 더 우선이라 그래 그래.
합리적인 판단보다
그니의 마음 배려해서 그래 그래.
돈이 좀 밑가더라도
내 마음 더 편해서 그래 그래.
나이 들어 둘이 살면서는
따뜻한 눈빛으로 그래 그래.
그래 그래 하다 보면
마음도 더불어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생뚱맞은 가설/이길섭
천국이라 말하는 곳, 아니 극락이라 해도 좋다. 그곳에 가면 영혼들은 이 세상에 살던 기억을 여전히 갖고 있을까? 진정으로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마추피추나 설원의 괴물에게는 호기심이 별반 없지만. 그리고 그곳에서 지구별 소식을 알 수 있을까? 궁금하다. 이 가설에 대하여 디지털 방식으로 눈을 꿈먹꿈먹해 본다.
이 세상에 살았던 기억이 없다면 그곳이 천국임을 알아보는 기준이 무었일까, 이 세상의 공덕을 평가받고 도달한 공간인지 사실확인은 어떻게 할까. 만난 대상이 신인지 초대교황인지 인식하는 근거는 무었인지. 나는 천국이라는 곳에 갈 형편도 아니기는 하지만 궁금하기가 그지없다.
천국에서도 이 세상에 살던 기억이 있다면, 능력 있는 영혼들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푸른별의 소식을 입수할 터이다. 전능한 분의 인정을 받는 이들이기도 하거니와 이 세상에서 살았던 몸짓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영적이든지 공간적이든지 인공위성의 위치에서 자손들의 성장과 퇴행을 바라보는 그곳에서, 천상의 행복이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잠 못 이루는 밤의 망상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들.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고 믿음으로 처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퇴회된 날개의 흔적이 남아있는 시인에게는 그것이 궁금하다. 배고픈 새벽까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