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영국의 다큐멘터리 전문 기자가 나섰다.
미국 '폭스 뉴스'의 전 앵커 터커 칼슨이 최근 푸틴 대통령을 2시간 여 인터뷰한 뒤 그 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 공개한 데 이어, 영국 언론인 션 랑건(Sean Langan)이 러시아군 치하의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서 찍은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 필름을 19일 영국 TV 채널 ITV를 통해 내보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이후, 서방 언론인의 첫 푸틴 대통령 인터뷰이고, 친러시아 성향의 다큐 영상이다.
러시아 외무부의 협조를 얻어 돈바스 지역과 최전선을 찾은 랑건 기자가 제작한 다큐는, '우크라이나 전쟁: 그 반대편에선(Ukraine's War: The Other Side)'이다. 제목에서 짐작하듯, 우리가 서방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접해온 뉴스와는 다른 톤이다. 정반대다. 칼슨 전 앵커와 마찬가지로 그가 러시아 당국의 '프로파간다'(선전)에 이용된 것이라는 비난을 거세게 받은 이유다.
그러나 ITV 측은 "이 다큐는 무력 분쟁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독립 저널리즘의 전형적인 사례"라며 방영을 강행했다. 랑건 기자는 "러시아의 선전에 빠지지 않으면서, '인간의 얼굴'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TV채널 360도, 일간지 로시스카야 가제타(RGru)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랑건 기자는 세 차례나(2022년 가을부터 2023년 봄까지) 러시아군이 통제하고 있는 돈바스 지역을 방문, 최전방의 군인들과 현지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진솔한 이야기를 2시간 짜리 다큐 영상으로 만들었다. 르포 형식이다.
그는 서두에서 “우리는 이 전쟁의 한 면만을 계속 보아왔는데, 다른 면을 보고 싶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공격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넘어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에서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 과정도 소개했다. 2022년 가을 처음으로 도네츠크시(市)에 도착한 그는 "러시아 당국이 결코 '모든 진실을 보여주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성 조언을 받았으니, 정작 어려움은 비자를 받을 때 뿐이었다"고 털어놨다. 또 "도네츠크 지역과 최전선에서 많은 러시아 군사 장비와 군인을 촬영했다"며 "마을 사람들은 물론, 군인들도 얼굴을 숨기지 않은 채 기자를 친절하게 대하고 기꺼이 취재에 응했다"고 말했다.
단 한번, 러시아 특수부대원들이 그의 촬영 팀에게 욕설을 퍼부었지만, 결국에는 취재에 응했다고 했다.
다큐 '전쟁의 반대편에선'의 한 장면. 아래 러시아어 자막은 RGRU측이 삽입한 것이다/사진출처:러시아 매체 RGRU
러시아 언론이 전한 다큐 내용에 따르면, 그는 도네츠크에서 큰 환대를 받았다. 현지 주민들은 며칠에 한 번씩 물이 공급되고,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으로 전기가 끊어진 허름한 집으로 그를 초대해 차를 대접했다. 도네츠크의 한 주민은 "우리는 포격 속에서 걷고 일한다"며 "올해로 이미 9년째로, (포격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실제로 확인할 기회도 있었다. 촬영하는 동안, 도네츠크시와 주변 지역에는 포격이 계속됐고, 랑건 기자도 비록 (전쟁을)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겁을 집어먹곤 했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포탄의 떨어진 지역과 날아온 방향 등을 정확하게 인식한 뒤 침작하게 행동했다. 다큐는 그 과정에서 불타고 파괴된 집과 자동차, 주검들을 영상에 담았다.
랑건 기자는 "나는 '러시아인들에게 엮이지 말라'는 경고도 받았고, 일부는 '왜 우리가 러시아의 시각에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비판도 심했다"면서 "하지만 이 다큐는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도네츠크 주민들은 우크라이나인에 대해 어떤 증오도 느끼지 않으며,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일부는 자신을 우크라이나인이라고 생각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러시아의 일부라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영상에 따르면, 주민들은 카메라 앞에서 이같은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 모두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는 정치와 거리가 멀고, 단순히 평화로운 삶을 원한다"며 "돈바스와 2014년 쿠데타(유로 마이단/편집자)를 망각한 것은, 우크라이나인이 아니라 키예프(키이우) 당국"이라고도 했다.
도네츠크의 한 여성음 카메라 앞에서 “(키예프에 있는) 당국이 결코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한 뒤, 공기를 찢는 폭음이 들여왔지만, 그녀는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우리는 이렇게 산다"며 말을 계속했다.
다큐 '전쟁의 반대편에선'의 한장면/캡처
랑건 기자는 "현지인들은 2022년 2월 특수 군사작전이 2014년부터 돈바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분쟁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라며 "그 곳의 생활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고, 처음에는 도네츠크시가 전쟁의 최전방에 있는 도시쯤으로 여겨졌지만, 나중에는 포위된 도시처럼 보였다"고 밝혔다.
최전선에 주둔한 러시아군의 참호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여기 저기서 포탄이 떨어지는 큰 폭발음과 머리 위로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적(우크라이나군) 드론, 이에 따른 스트레스와 피로감에 대해 병사들은 이야기했다. 그러나 한 특수대원은 "러시아의 혼(정신)은 무적"이라며 "러시아는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이는 러시아 역사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 철수후 러시아 텔레그램이 공개한, 거의 폐허로 변한 아브데예프카(아우디우카)/출처:텔레그램
다큐는 최근 러시아군에게 함락된 아브데예프카(아우디우카) 근처의 '셰르부드스키 숲'(Шервудский лес)에서 끝난다. 파괴된 군사 장비와 우크라이나군 시체가 뒤섞인 나무들 사이에서 랑건 기자는 "왜 이 땅에서 이토록 치열하고 파괴적인 전투가 벌어졌는지 모르겠다"고 읊조린다.
그는 다큐에서 이 의문을 계속 던지며, "인터뷰에 응한 상당수의 병사들이 자원 입대자"라는 점을 빠뜨리지 않았다. 한 러시아군 위생병은 그에게 아브데예프카 전투를 '위대한 애국 전쟁'(제 2차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된 '스탈린그라드'와 비교하며 "아브데예프카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은 앞서 러시아에서는 극 영화 '목격자'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러시아에서 개봉된 '목격자'(Свидетель)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외곽의 '부차'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 그 소재로, 주인공은 벨기에 출신의 바이올린 거장 다니엘 코헨(Daniel Cohen)이다.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재벌)의 초청을 받아 '세미드베리'라는 도시로 공연을 왔다가 목격한 비인도적인 범죄 행위를 증언하는 형식의 영화다. '세미드베리'는 '부차'를 연상시키는 가상의 도시다.
영화 '목격자'의 한 장면/캡처
주인공 코헨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무장세력(네오나치)에 의해 고초를 겪지만, 그가 본 많은 범죄들은 끔찍했다. 거기에는 소위 '부차 학살' 사건과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폭격, 마리우폴 산부인과 병원의 비극 등을 연상시키난 장면들이 포함된다. 러-우크라·서방 간에 주장이 서로 엇갈리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눈을 통해 이 사건들이 바로 '네오나치'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뮤지션'이었으나, '바그너 그룹'의 6·24 군사반란 이후 '목격자'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흥행에는 실패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