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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9) 즈카르야서
메시아의 수난 · 죽음 통해 정화되리라
히브리어 즈카르야는 ‘자카르’(기억하다) 동사에서 파생한 고유명사로 우리말로 “야훼께서 기억하신다”란 뜻입니다. 구약 제1경전 「타낙」의 ‘즈카르야’를 음차해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Ζαχαριαs’(자카리아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Zacharia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즈카르야서’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즈카르야서를 하까이서 다음으로 배열해 놓았습니다. 즈카르야가 하까이 예언자 바로 뒤이어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즈카르야는 ‘다리우스 제이년 여덟째 달’인 기원전 520년 10~11월, 곧 하까이 예언자가 마지막 신탁을 선포하기 한 달 전에 예언 활동을 시작합니다.(1,1; 하까 2,10.20) 그리고 그는 기원전 518년 11월까지, 곧 기원전 515년 새 성전이 봉헌되기 3년 전까지 활동합니다.(7,1) 즈카르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실성에 호소하고 미래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을 선포하며 성전 재건 운동을 촉구한 하까이의 예언을 강화합니다. 그리고 즈카르야는 하까이처럼 성전 재건과 하느님의 구원을 예언하지만 하까이와 달리 “종말이 임박했다”고 선포합니다.
즈카르야는 ‘이또의 손자’(1,1.7) 또는 ‘이또의 아들’(에즈 5,1; 6,14)로 성경에 소개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또 집안의 우두머리 사제였습니다.(느헤 12,16) 그래서 그는 거룩한 땅의 정결과 거룩함을 염려하고 성전의 역할을 강조할 뿐 아니라 기념 단식의 존폐와 제의에 관해 자문받아 하느님의 답을 전합니다.(2,16; 5,5-11; 7,1-3; 8,18-19)
즈카르야는 여느 예언자들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를 호소합니다.(1,3-6; 7,4-14; 8,16-17) 환시 역시 이전의 예언자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의 환시 대부분은 아모스서 7장과 또 ‘측량줄을 쥔 천사’(에제 40,3-4)와 ‘날아다니는 두루마리’(에제 2,9-10)는 에제키엘서와 연관돼 있습니다.
즈카르야서는 소예언서 가운데 가장 긴 분량인 1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또 제1ㆍ2ㆍ3 이사야로 구분하는 이사야서처럼 즈카르야 예언자의 정통을 잇는 2개의 작품이 묶어져 완성된 경전입니다. 이를 성경학자들은 ‘제1즈카르야서’(1-8장)와 ‘제2 즈카르야서’(9-14장)로 구분합니다. 이 두 부분은 ‘머리글’을 통해 구별합니다. 제1 즈카르야서의 머리글은 하까이서처럼 특정한 날짜와 신탁의 정식이 드러납니다. “다리우스 제이년 여덟째 달에 주님의 말씀이 이또의 손자이며 베레크야의 아들인 즈카르야 예언자에게 내렸다.”(1,1) 반면 제2 즈카르야서의 머리글은 단순히 “신탁”(9,1)으로 시작합니다.
제1 즈카르야서는 다시 ‘여덟 개의 환시’(1-6장)와 ‘참다운 단식과 메시아 왕국의 도래’(7-8장) 내용으로 구분됩니다. 8개 환시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당신 백성을 해방하고 새로운 성전과 함께 메시아를 통한 구원의 시대를 열어 줄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그중 3개의 환시는 조상들처럼 되지 말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고, 나머지 5개 환시는 아직도 바빌론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 재건에 참여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즈카르야는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인들이 단식하거나 축제를 지키는 것은 모두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질책합니다. 단식일들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고, 그날들은 오히려 즐거운 축일이 되고, 바르게 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예루살렘은 구원된 세상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제2 즈카르야서 역시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메시아 도래에 대한 희망’(9-11장)을 전하는 전반부와 ‘예루살렘의 종말론적 재건’(12─14장)을 예언하는 후반부입니다. 전반부는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모든 민족을 정화한 후 모든 이가 하느님 백성으로 합류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메시아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설 것입니다.(9,9-10) 그러나 그 전에 세상의 많은 민족이 하느님과 전쟁을 치를 것이며 그 전쟁이 끝나면 흩어졌던 백성이 모이게 될 것입니다.(9,11-17) 또 참된 목자이신 분이 목자 없는 양 떼처럼 헤매며 고생하는 백성을 몸소 보살피시기 위해 오십니다.(10,1-2) 그는 거짓 목자들을 쳐부수고 흩어진 양 떼를 모아 재건하실 것입니다.(10,3-11,17)
후반부는 하느님께서 회개하는 이스라엘을 보시고 이스라엘을 정화하십니다.(13장) 이민족들의 승리라는 고통을 통해 예루살렘이 새로 태어남으로써 정화는 완성됩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새 백성의 중심지가 되고, 하느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여드는 신앙의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14,1-21)
제2 즈카르야서의 중요성은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을 희망으로 제시한 데 있습니다. 특히 12,1-13,6은 메시아의 희생을 통한 다윗 왕조의 재건을 시사합니다. 제2 즈카르야서에 등장하는 메시아는 ‘겸손하시어 나귀를 타고 오시는 분’(9,9) ‘찔려 죽은 이’(12,9-14)의 모습입니다. 제2 즈카르야서가 선포하는 메시아는 수난과 죽음을 통해 결국에는 백성을 정화하고 죄로부터 그들을 구원하는 메시아십니다. 이러한 메시아의 모습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구체적으로 일치합니다. 신약 성경 특히 네 복음서는 이를 생생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17) 명예와 재물에 빠져 타락한 예언자 발라암
예전에 사목했던 본당 중에 주변에 무속인들이 유난히 많았던 곳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성 무속인이 예비자 교리에 등록했다. 그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교리를 들었고 시간이 흘러 세례식을 앞두고 있었다.
개인 면담 시간에 그는 “그동안 너무 심한 어지러움과 두통과 구토에 시달렸”면서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고 특히 주변의 신자들이 함께 기도해 주어서 다행히 오늘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신자들도 열심히 기도하지만 무속인들도 정말 무섭게 열심히 기도한다”며 알듯 모를듯한 이야기를 했다. 무속인을 찾은 사람에게 예언을 해주면 그 예언이 이루어지도록 무속인도 산속에 올라가 며칠씩 잠을 자지 않고 금식하면서 자신이 모시는 신(神)에게 기도를 바친다고 한다. 점술이 맞지 않으면 밥줄(?)이 끊긴다고 하면서 웃었다. 그분은 세례를 받고 모든 고통에서 깔끔하게 벗어나 열심히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요르단 건너편 모압 평야에 진을 쳤는데, 모압 왕인 발락의 눈에 이스라엘 백성의 기세가 등등했다. 그 숫자도 너무 많아 겁에 질릴 정도였다. 모압 왕은 당시 명성이 자자한 점쟁이 발라암을 불렀다. 그러나 처음엔 발라암이 순순히 왕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따라가지 마라.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면 안 된다”고 단단히 이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의 끈질기게 부르자 결국 발라암은 왕이 보낸 관리들을 따라나섰다. 왕은 발라암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주면 무엇이든 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발라암은 제단을 쌓고 황소와 숫양을 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발라암이 왕에게 점술 내용을 밝혔다. 재미있는 것은 왕의 소원과는 정반대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상심한 왕은 발라암에게 세 번씩이나 장소를 옮겨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제사를 지내게 했지만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발라암은 계속해서 제사를 지냈지만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떠한 재앙도 어떠한 불행도 내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왕은 할 수 없이 아무런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발라암에게 돌아갈 것을 분부했다. 그러자 발라암은 왕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패시키는 비법을 가르쳐주었다.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게 하고, 예쁜 모압 여자로 유혹해 죄를 짓게 하라는 것이었다. 발라암의 비법이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어 수만 명이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발라암도 결국 칼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발라암은 다른 예언자 못지않게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했지만 결국 명예와 재물의 유혹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예전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이 점술이 발달하고 번성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하고 닥쳐올 화근을 없애줄 방법을 찾으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근본 성향 때문에 지금도 사람들은 점술에 여전히 매력을 느낀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기드온, 판관의 소명을 받다
기드온은 므나쎄 지파 출신의 판관입니다. 그가 백성의 지도자로 소명을 받은 일은 판관 6장에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충실치 않은 대가로 노동의 결실을 적에게 빼앗기는 고통을 겪습니다. 백성이 씨를 뿌려 놓으면 미디안의 무리가 올라와 양식을 남겨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3-4절). 판관 드보라 시대에는 카인족 야엘, 곧 모세의 미디안 사람 장인 호밥의 후손(판관 4,11)이 이스라엘을 도와 가나안 장군 시스라를 쓰러뜨렸지만, 기드온 시대에는 미디안이 위협 세력으로 바뀌었습니다. 국제 관계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고 하는데, 이스라엘과 미디안이 바로 그랬습니다.
기드온이 판관으로 세워진 과정은 퍽 특이합니다. 그는 오프라의 집에서 적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밀을 몰래 떨다가, 향엽나무 아래에서 발현한 천사에게 메시지를 받습니다. 처음에는 천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천사들이 대부분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도 아들에 대한 수태고지를 전해들었을 때, 그 소식을 알려준 이가 천사였음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천사가 제단 불길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깨닫게 되지요(13,16.20-21). 기드온의 경우에는 그가 정말 하느님의 전령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천사에게 징표를 청합니다. 이에 천사는 돌에서 불이 나오게 하여, 기드온이 놓아둔 고기와 빵을 불사름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였습니다(6,20-22).
그런데 사실 기드온은 겁쟁이였습니다(7,9-11). 그랬던 그가 용사로 거듭나 이스라엘을 구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이 판관으로 세워졌다는 천사의 말에 기드온은 하롯 샘에 진을 치지만(1절), 정작 그가 두려워 떨자 이를 아신 주님께서는 시종 푸라와 함께 미디안 진영을 먼저 살펴보게 하십니다. 거기서 기드온은 적군이 꾼 꿈, 곧 보리 빵 하나가 굴러와 미디안의 천막을 쓰러뜨렸다는 꿈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냅니다(13-15절). 그 보리 빵이 자신과 이스라엘 군대이고, 농경민(보리 빵)이 유목민(천막)을 꺾는다는 의미임을 알아 차렸기 때문입니다. 그 뒤 기드온은 군사 삼백 명과 함께 미디안을 제압하기 위해 나섭니다. 이때, 미디안의 보초병이 교대하는 시간을 노리는데요(19절), 아마도 임무를 마친 이들은 피곤하고 막 교대한 이들은 잠에서 덜 깼을 터이므로, 그들을 쉽게 혼란에 빠뜨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백 명의 병사가 단지를 깨고 나팔을 불어 적을 교란시키자, 미디안은 혼란에 빠져 자기들끼리 치고 받다가 쓰러졌으며, 이스라엘은 자리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21절). 미디안은 한동안 서로를 죽이다가 요르단 동쪽, 곧 자신들이 쳐들어온 방향으로 도망쳤고(22절)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않았습니다(8,28).
성소 주일인 오늘, 참으로 부족한 우리 자신이지만, 주님께서는 이런 결핍까지 살펴 채우시어 당신의 도구로 쓰신다는 사실을, 처음엔 겁쟁이였다가 용사로 거듭난 판관 기드온의 이야기에서 배우게 됩니다.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5,34)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엄청난 인파가 몰립니다. 소문에 이끌려 단순한 호기심으로 예수님이 누구인지 보려고 온 사람들도 있지만, 일찍이 그들 가운데서 스승이라 불리던 이들에게서는 보지 못한 권위 있는 가르침을 주셨기에 그분 말씀 안에서 진리와 삶의 의미를 찾고자 달려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리고 있는 사회적, 종교적 지위를 빼앗길까 두려워 도대체 예수라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때 야이로라 불리던 회당장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지금 자기 딸이 너무 아프니 제발 자기 집으로 가서 딸아이의 병을 치유해달라고 간곡히 청합니다. 간절한 그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함께 길을 나서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또 기적을 행하시는 줄 알고 흥분에 싸여 그분을 따라나섭니다. “이러다 다칩니다. 제발 좀 밀지 마세요!” 행여 몰려드는 인파로 예수님께서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 제자들은 그분 곁에 바짝 붙어 사람들에게 고함을 칩니다.
마르코는 바로 이 북적거리는 순간 예수님을 통해 또 하나의 놀라운 기적이 이루어졌다고 증언합니다. 군중 속에 파묻혀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기던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서 하느님의 권능이 흘러 나갔음을 감지하시고 멈춰 서십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스승님, 이렇게 많은 사람 가운데 누가 스승님 옷을 만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 제자들은 심통 난 표정으로 반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뒤따르던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십니다. 그 순간 한 여자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 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한 일을 예수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립니다.
여자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멈추지 않는 출혈에서 비롯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출혈한 여성은 ‘불결’한 상태이기에 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타인과 접촉도 불가하다는 율법 규정(레위 15장 참조) 때문에 그녀는 언제나 죄인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산을 다 쏟아부어 병을 치료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절망 속에 신음하던 그때,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분이다. 내 병을 낫게 해주실 유일한 분이시다. 그분만이 다시 살게 해주실 수 있다!’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중의 틈을 비집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아니 그분의 옷자락이라도 만져보기 위해 그녀는 간절히 손을 뻗습니다. 그 순간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병고가 사라졌음을 직감합니다. 두려움과 기쁨이 뒤섞인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분의 말씀에 그녀는 땅에 엎드려 통곡합니다.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그녀의 간절함에 하느님께서 응답해 주셨다는 기쁨에 그녀는 다시 태어납니다. 예수님만이 자신을 치유하실 수 있다는 그 간절한 믿음으로.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8) 하까이서
예루살렘 성전 재건하면 영광의 시대가 온다
구약 성경 제1경전 「타낙」의 히브리어 ‘하까이’는 우리말로 ‘나의 축제’라는 뜻입니다. 이를 음차해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Αγγαιοs’(하까이오스)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ggaeu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우리말 「성경」은 ‘하까이서’로 표기합니다.
하까이 예언자는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1,1)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다리우스 1세는 기원전 522년부터 기원전 486년까지 페르시아를 통치한 임금입니다. 하까이 예언자는 기원전 520년 8월 27일부터 12월 사이에 약 4개월 동안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로서 활동합니다.
하까이 예언자는 에즈라기(5,1; 6,14)에도 등장합니다. 에즈라기에 따르면, 하까이는 키루스 칙령 이후 18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방치돼 있던 예루살렘 성전을 서둘러 재건하라고 즈루빠벨과 예수아에게 권고한 인물입니다. 유다 총독 즈루빠벨은 기원전 597년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바빌로니아로 끌려간 남 왕국 유다 여호야킨 임금의 손자입니다.(2열왕 24,8-17; 25,27-30; 1역대 3,17) 그는 페르시아에 의해 유다 지방의 행정권을 위임받아 예루살렘 재건에 힘썼죠. 예수아는 기원전 587년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처형된 스라야 대사제의 손자입니다.(2열왕 25,18-21) 그는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 귀환 공동체에서 대사제로 활동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하까이 예언자에 관한 정보는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학자들은 하까이서가 신명기계 문서와 에제키엘 예언자의 영향을 받은 것을 토대로 하까이 예언자가 바빌로니아 유배지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율법과 제사 의식 교육을 받았으며 예루살렘 귀환 후 성전 재건에 관한 예언직을 수행했다고 추정합니다.
기원전 538년 바빌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은 칙령을 반포해 유다인들을 포로생활에서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려보냅니다. 세스바차르를 대표로 한 1차 귀국단입니다. 이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복구하고, 하느님 현존을 드러내는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올바른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들은 귀환 다음 해에 성전 기초 공사에 착수합니다.(에즈 3,8 참조)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이미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주민들의 강력한 방해로 성전 재건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반대한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남의 집과 땅을 차지하고 살고 있던 유다인들입니다. 두 번째는 신바빌로니아의 통합 정책으로 남 왕국 유다 땅으로 이주해와 유다인들과 피를 섞은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은 야훼 신앙이 아닌 이방 종교를 믿고 있었기에 주님의 성전 재건을 당연히 반대하였습니다. 역대기계 문헌들은 이들을 ‘사마리아 집단’이라 부르면서 그들이 성전 재건에 가장 큰 방해자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에즈 4,1 이하) 결국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은 이들 두 부류의 반대로 18년째 답보하게 되고 맙니다.
기원전 522년 캄비세스 임금이 죽은 뒤 왕좌에 오른 다리우스 1세 임금은 집권 초기 격렬한 내부 혼란을 겪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은 예루살렘에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하까이와 그 뒤를 잇는 즈카르야 예언자는 이 혼란을 유다인들을 일깨우는 기회로 삼습니다. 이들은 지금 겪는 빈곤과 흉작이 하느님 경배에 소홀한 벌이며, 신앙의 열성을 되찾고 주님께 합당한 집을 지어 드리는 공사를 재개하면 많은 복을 받고 구원의 시기가 결정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예언자들의 말을 들은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기원전 515년입니다. 이들 두 예언자의 호소로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은 재건됩니다.(에즈 1-6장 참조)
하까이서는 2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를 내용에 따라 ‘성전 재건 호소’(1,1-15), ‘새 성전이 받을 영광’(2,1-9), ‘전례 문제’(2,10-19), ‘즈루빠벨을 향한 메시아적 신탁’(2,20-23)으로 구분합니다.
하느님의 신탁을 받은 하까이는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1,4) 성전 재건 사업을 게을리한(1,2) 대사제와 귀환자들을 질책하면서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예수아 대사제에게 성전을 재건하라고 재촉합니다. 하까이의 말을 들은 즈루빠벨과 예수아,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회심하여 “여섯째 달 스무나흗날”(1,5)에 성전을 짓는 일에 착수합니다.(1,12-15)
하까이는 “그해 일곱째 달 스무하룻날”(2,1) 성전 재건을 시작하고 거의 한 달이 지났을 때 다시 하느님은 성전 재건을 독려하시며, 하느님께서 그 집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시고 평화를 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고 격려합니다. 그러면서 성전 재건이 완료되면 메시아의 구원 시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선포합니다.(2,1-9)
하까이 예언자는 성전 재건을 시작하고 꼭 석 달 후인 “아홉째 달 스무나흗날”(2,10) 곧 기원전 520년 12월께 사제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전에는 백성 모두와 그들이 하는 일, 그들이 바치는 재물이 모두 부정했지만, 성전 재건을 시작함으로써 이제 그 모든 부정을 씻고 축복과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알립니다.(2,10-19) 성전을 짓는 일이 그들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까이는 다윗 가문의 후손인 즈루빠벨에게 세상의 왕국과 왕좌의 권세를 꺾고 그를 당신의 인장 반지처럼 만들어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즈루빠벨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은 새로운 성전 시대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광의 시대이며, 메시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이 도래할 시대라는 희망을 고취해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희망하며 성전 재건에 온 마음과 힘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16) 모세의 대변인 아론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대목은 미국 역사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고 가장 위대한 연설로 평가된다. 명연설은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고 국민을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다. 2004년 7월 미국 보스턴에서 3박4일 동안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치인들은 당원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다. 보통 정치가들의 연설은 지루한데 정치신인 버락 오바마의 연설에는 기립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오고 단 몇 분 만에 무명에 가까웠던 오바마는 벼락스타가 되었고 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거절할 이유로 자신은 입이 둔하고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하느님은 형인 아론을 협조자로 보냈다. 아론은 말을 아주 잘하는 연설가였다. 아론의 출중한 연설 실력과 여유는 파라오에 대항해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킬 때 유감없이 잘 드러났다. 그래서 말을 잘 못하는 모세에게 아론은 모세의 최고 대변인이었다. 아론은 동생 모세를 대할 때도 거들먹거리거나 교만하지 않고 지도자라고 부르면서 겸손한 자세를 가졌다. 아론은 순종적이고 온유한 성격을 지녔는데 이러한 마음 좋은 사람의 단점은 다른 이의 말에 잘 휘둘리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지닐 때도 많다는 것이다.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나이산으로 들어갔을 때 정치 공백을 아론이 맡게 되었다. 광야 생활에 지친 백성들이 모세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자 자연히 불평불만이 대단했다. 많은 백성이 아론에게 몰려왔고 백성을 지도할 신을 만들자며 우상인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성경에는 아론이 백성들의 요구에 쉽게 응답하여 금송아지를 만드는 데 협조한 이유가 잘 나오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상상을 해보면 모세가 없는 틈에 백성들의 불평을 들으며 혹시 권력을 탐한 것은 아닐까?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금송아지 사건을 보고 크게 화를 낼 때 아론은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했다. 사실 그에게는 화난 백성의 요구를 거절할 용기도 애초에 없었다. 어떤 사람의 참다운 모습은 책임을 져야 할 때 나타난다. 특별히 정치지도자에게 책임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모세와 아론은 형제이면서도 성격에서 차이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실제로 오랫동안 두 사람은 서로 대립관계에 있었다. 모세는 형 아론에게 제사장직을 맡기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봉합하고 공동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은 모두가 십인십색이다. 그러면서도 공존하려면 타협과 양보가 필요하다. 나와 다른 타인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공존은 시작된다. 다른 이가 나와 성격과 사고방식, 가치관 생각이 다른 것을 너무 적대시해선 안 된다. 공동선을 향해 함께 나가야 하는 공동체의 같은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묵시사회를 살아가는 신앙인] 일곱 교회에 보내진 사랑의 편지(묵시 2-3장)
살아가는 데 있어 유일한 정답은 없다. 저마다 삶의 관점이 다르기도 하거니와 처한 상황에 따라 그 관점 역시 늘 변화하기 마련이니까. 간혹 삶이 휘청이거나 아슬아슬할 때 혼자 고민하며 성경을 펼칠 때가 있다. 성경의 몇몇 구절에서 위안을 얻고 참된 삶의 방향을 다시 설계해 보기도 한다. 대개는 성경을 통한 제 삶의 미래가 보다 숭고하고 아름답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다시 살아본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요한 묵시록이 소개하는 일곱 교회의 편지들 역시 서로 다른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닮고 그분을 살아내는 길이 무엇인지 묻고 답한다. 각각의 편지 서두엔 묵시 1장에 소개된 사람의 아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묵시 1,16에 일곱 별을 쥐고 있는 이로 소개된 사람의 아들은 일곱 교회의 주도권을 가진 예수님으로 해석된다. 주목할 것은 사람의 아들이 특정적이고 유일한 이미지가 아니라 일곱 교회의 구체적 모습이나 각각의 편지가 전하는 메시지에 부합하는 이미지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가령, 교회 지도자들을 향한 메시지를 담은 에페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사람의 아들은 지도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오른 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묵시 2,1) 페르가몬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날카로운 쌍날칼”을 가진 이로 사람의 아들이 소개된다.(묵시 2,12) 페르가몬은 가파른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도시의 이미지를 사람의 아들의 모습과 연계하여 묘사한 듯하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묵시 3,1)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는 사르디스에 보내진 편지는 17년 어느 날 밤 사르디스에 닥친 크나큰 지진의 재앙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의 아들 예수는 한 분이시되, 그분을 따르는 신앙 공동체는 사람의 아들을 자신에게 익숙한 이미지로 각색하여 만나고 있다. 요한계문헌의 핵심이 육화 사상에 있다면 사람의 아들은 고유한 삶의 자리에 고유한 방식으로 서로 다르게 해석되어 육화하고 있는 셈이다.
요한 묵시록의 일곱 교회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꽤나 성공한 도시들 안에 위치한다. 일곱 교회는 상업적 왕래가 잦은 중심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신앙 공동체 간의 연락 또한 용이했으리라. 그래서인지 일곱 교회의 편지는 그 형식에 있어 서로 대동소이한 모습을 띈다. 일곱 개의 편지는 회개를 중심으로 짜여진다. 사람의 아들, 곧 예수님이 특정 교회의 현실에 대해 언급하고 부족한 것을 되돌아 보게함으로써 다시 회개하길 촉구한다. 회개하는 이를 이른바 ‘승리하는 사람’이라 일컫고 그들에겐 갖가지 선물이 주어지는 것으로 일곱 편지들은 마무리된다. 그리고 편지마다 반복되는 구절, 그러니까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라는 구절은 편지의 메시지가 소아시아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여러 교회’로 번역한 것은 다소 아쉽다. 그리스어 본문에는 지시대명사가 쓰여 ‘일곱’ 교회를 구체적으로 지칭한다. 다시 고쳐 번역하자면 ‘그 일곱 교회들’이 맞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보편적이고 완전한 가치를 담고 있어 일곱 교회에 보내진 편지는 시,공간을 초월한 모든 교회에 보내진 것으로 해석된다. 일곱 개의 편지 모두 2000년 전 기록이지만 오늘, 그리고 내일 역사를 살아가는 모든 교회에게 보내진 예수님의 당부가 된다.
일곱 편지가 말하는 회개는 무엇일까. 에페소에 보내진 편지는 회개에 대한 단상을 사랑의 이름으로 정리한다. 이를테면 회개는 자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사랑의 실천으로 방향지워진다.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비판하는 에페소의 편지는 사랑의 걸림돌로 니콜라오스파의 소행을 문제 삼는다. 사도행전에 니콜라오스는 일곱 부제 중 한 분으로 소개되는데, 교부들의 전통적 해석에 따르면 니콜라오스를 중심으로 한 신앙인의 무리가 있었고 그 무리는 혼잡한 세상에서 정갈하고 모범적인 신앙인의 삶을 갈구하고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보다 훌륭한 신앙 공동체가 기대되는 엄격한 신앙 생활은 불행히도 다른 형제들을 비난하는 잣대가 되어 공동체 내부를 휘젓고 친교와 조화를 살아가야 할 사랑의 공동체는 분열의 자리가 되어 버린다. 사랑과 일치를 강조하는 요한 복음, 나아가 요한계문헌이 쓰여진 이유를 이러한 공동체 분열에서 찾는 학자들이 많다.
에페소의 편지는 놀랍게도 니콜라오스의 소행에 대해 예수님의 1인칭 화법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너에게 좋은 점도 있다. 네가 니콜라오스파의 소행을 싫어한다는 것이 나도 그것을 싫어한다.”(묵시 2,6) 본디 모든 이단과 사이비 종교는 ‘선민의식’을 제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는다. 다른 이와 다르다, 그리하여 다른 이들이 가지지 못하는 은총과 특혜를 우리만이 누린다,는 식이 그렇다. 신앙 생활은 수련을 통한 제 삶의 안위나 올바름을 견지하는 데 있지 않다. 에페소 교회에 보내진 편지의 끝에 ‘승리하는 이’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묵시 2,7) 하느님처럼 되고픈 순수한 열정과 바람을 원죄의 이름으로 처리해 버리는 에덴 동산의 이야기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생명 나무 열매는 하느님과의 친교, 나아가 모든 피조물과의 조화를 살아가는 에덴 동산의 유일한 규칙이자 원리의 메타포다. 이를테면, 친교는 획일적 하나가 아니라 다름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전제한다는 것. 다름에 대한 이해없는 친교는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바벨탑의 횡포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다른 것을 굳이 하나로 만들어 집단의 통일을 이뤄내는 식의 신앙은 참 슬프거나 지루한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본디 태고적 우리 인간은 선과 악의 이원론을 도무지 몰랐고, 조화와 연대를 제 삶의 근본으로 살아내었다. 서로에겐 그저 ‘알맞은 협력자’(창세 2,18)였을 뿐이었고 그땐 사랑만 있었다. 거기엔 옳고 그름으로 따지는 잣대도, 보다 나은 내일도 없으며,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도덕군자의 가르침도 필요 없었다. 에페소에 건네진 편지는 그래서 이렇게 우리에게 말한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묵시 2,4-5)
첫사랑. 그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다. 서로가 달라서 겪고야 마는 갈등과 다툼, 대립과 반목, 그럼에도 기쁨과 행복, 감사와 감동이 중첩된 삶의 희로애락을 모조리 품고 있는 것이다. 신앙이 사랑이라면 사랑으로 품지 못할 것이 없다. 얼룩이 묻어 더럽더라도 제 자식이고 제 형제고 자매면 아름답게 보이는 게 사랑이니까. 회개는 사랑이다.
[순간포착! 성경에 이런 일이] 요나탄
“…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울었는데 다윗이 더 크게 울었다.”(1사무 20,41)
요나탄은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의 아들이었는데 난처한 입장에 처합니다. 요나탄이 목숨처럼 사랑하는 벗이자 백성에게서 나날이 인기가 치솟는 신하였던 다윗을 아버지가 시기하여 죽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억울함에 “차라리 왕자님의 손으로 저를 죽여달라”(1사무 20,8 참조)고 청하는 다윗을 위해 요나탄은 사울의 의중을 파악하여 성 밖으로 나가 다윗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마침내 아무도 없는 들판에 남은 두 사람은 이별을 직감하며 얼싸안고 웁니다.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의 흐름 앞에 너무나도 무력한 두 젊은이가 우정으로 흘린 눈물이, 하느님 구원 업적의 대서사인 성경에 이렇게나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는 사실이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성경 저자는 이스라엘의 성왕 다윗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윗이 더 크게 울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왕위 계승의 걸림돌이 될지도 모를 아버지의 정적(政敵)의 목숨을 구해주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요나탄의 우정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다윗과 요나탄의 이별’ 그림에서 심적으로 크게 동요하는 다윗에 비해 요나탄은 그림 중심에 위치하여 절제된 슬픔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또한 성경에서도 요나탄은 다윗과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계약에 희망을 두며 “평안히 가게.”(1사무 20,42)라는 말로 다윗을 격려합니다. 빛의 화가라는 별명답게 렘브란트는 요나탄과 다윗을 밝게 비추고 궁궐을 포함한 배경을 어둡게 채색합니다. 마치 불의한 권력이 지배하는 암울한 세상 속에서 무력해 보이지만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이 그분의 특별한 시선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요나탄은 인간의 도리를 지켜 다윗의 목숨을 구해주었고 그로 인해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역사가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데에는 분명 요나탄의 역할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처럼 선을 이루기 위한 보잘것없는 이의 작은 노력조차도 헛되이 사라져 버리게 하지 않으시고 지고(至高)의 선에 합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 요나탄과 다윗의 우정 이야기가 짧지만 강렬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들이 보여준 뜨거운 우정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이웃과 공명(共鳴)하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세상에 일으키시는 일에 협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하신 하느님의 능력에 희망을 두면서 지치지 않고 사랑하며 살아갈 힘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라자로의 소생
올리브산 동편에 자리한 베타니아는 예수님 시대에 라자로, 마리아, 마르타 남매가 살던 옛 고을입니다. 베타니아라는 지명의 뜻은 두 가지로 추정됩니다. 하나는 ‘가난의 동네’입니다. 나병 환자 시몬이 베타니아에 살았고(마르 14,3) 라자로도 그곳에서 앓다가 죽었다는 점(요한 11장)을 생각하면, 가난한 병자들이 많은 동네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베타니아를 ‘무화과 고을’로도 풀이하는데요, 예수님께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곳도 베타니아였습니다(마르 11,12-14).
주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활동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라자로 남매의 집에서 자주 머무신 것 같습니다. 마리아와 마르타가 자기 오빠를 말할 때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요한 11,3)라고 일컬은 점에서도 예수님과 이들이 각별한 사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라자로가 죽었다는 부고에 예수님께서는 베타니아까지 가셔서 그를 살려내시는데요, 다만 곧장 가시지 않고 이틀 뒤에 가십니다(11,6-11). 라자로의 일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막상 두 자매를 만나자 눈물을 흘리십니다. 곧 라자로를 소생시켜 주실 터였는데, 왜 눈물을 보이셨을까요? 이는 아마도 오빠를 잃은 마리아와 마르타를 위한 눈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까지 고스란히 이입되곤 합니다.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누이들의 마음이 예수님께도 전해져 함께 울어 주신 게 아니었을까요. 그런 뒤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시자, 라자로는 수의에 싸인 채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음에도 걸어 나왔습니다.
라자로의 히브리어 이름은 [엘아자르]로 ‘하느님께서 도우셨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름 뜻처럼 라자로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두 번째 생을 선사 받았습니다. 이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일곱 기적, 곧 일곱 표징 가운데 마지막이자 절정이 되는 기적입니다. 하지만 라자로가 되살아난 일을 ‘부활’이라고 칭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언젠가 다시 죽음을 맞이해야 할 운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죽을 때 그는 하느님 안에서 평화로우리라는 확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베타니아에 자리한 라자로의 무덤 안에 들어가보면, 칠흑 같은 어둠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편안함과 함께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어둠입니다. 이런 게 바로 죽음의 어둠이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혼자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죽음을 대하는 마음 자세는 저마다 다르겠지요. 우리는 단순히 죽음을 망각하고 외면할 게 아니라, 언젠가는 찾아올 손님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라자로가 경험한 죽음과 소생은, 우리 역시 언젠가 죽더라도 하느님 안에서 평화로우리라는 확신을 얻게 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