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생각을 벗자
어리석은 생각을 벗자?
어쩌면 조금은 추상적인 단어가 되기도 할 겁니다.
무엇이 어리석은 데서 벗어나는 것일까?
어리석음의 반대는 곧 지혜智慧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지혜롭게 살라는 얘기가 되겠지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이 어리석고
또 어떤 생각이 지혜로운 생각일까요?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길,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요,
여로역여진如露亦如震이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마치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요,
여로역여진如露亦如震이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하라.”의
단어는 많이 익히 들어 잘 아실 겁니다.
‘유의법’이란 인연에 따라서 생긴
유형·무형의 온갖 현상들을 말합니다.
인연에 의해서 생성된 온갖 현상들은
실체가 없이 때문에 일시적인 존재요,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면 산하대지山河大地도
아침 이슬과 다름없고
그림자와 다름없으니 이와 같은 관점에서
온갖 현상을 바로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바르게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지혜요,
이와 반대로 영구불변의 존재인양 착각하는 것이
바로 어리석은 생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성이 없는 공空한 현상을
자성이 있는 실實다운 것으로 보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바로 여기서 오해가 생기고,
여기서 집착이 생기고,
여기서 탐욕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해와 집착과 탐욕은
온갖 악한 일을 만들어 내는 진실의 적으로 보면 됩니다.
따라서 그 인과는 좋은 일이 아니라
나쁜 일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삶,
즉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서
지혜로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더러는 집착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나면,
그러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말을 합니다.
남보다 두 배, 세 배 더 노력해도 살기 힘든 세상일진데
집착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
그렇게 되면 실업자 밖에 더 될 것이 있느냐?
그러나 이 생각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집착을 벗어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상을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집착은 눈감고 사는 것과 같은 것과 같고
집착을 버리면 눈을 뜨는 것과 같습니다.
집착은 착각 속에서 사는 것이요,
집착을 벗어난 삶은
올바른 가치관으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남에게 해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팔부신중님들이 허공에서 바로보고 있는 것이고
그 허공신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도 안 보니까,
아무도 모를 테지,
이거 가지고 갖고 무슨 일 있겠여?
이 정도는 누가 알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나쁜 일을 저지르게 되면
항상 얘기하지만 삼재 혹은 9수에 된통 걸리게 됩니다.
바로 이런 것이 어리석은 생각인 것입니다.
누가 안 본다고 교통질서도 안 지키다가
큰 대형사고 난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어리석은 생각에 습習이 되어 있습니다.
하루속히 그 습習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는 사업도 잘 되는 것이고
자녀들도 잘 자라고 속을 안 썩입니다.
왜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안 되지?
왜 나는 왜 하는 생각하는 대로 안 되지?
왜 나는 왜 하는 사업이 자꾸 꼬이지?
왜 나는 왜 하는 장사가 안 되지?
마치 누가 해코지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생각 해 보셨습니까?
원인은 불자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복하고,
바르게 뜻을 베는 것을 익혀야 합니다.
어떤 식당에서는 손님이 미어터지게 모이는데
어떤 식당은 한 두 테이블 손님 받는다면
‘경기가 어려우니까 그럴 거야’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 아니한 생각이 바로 어두운 생각입니다.
오늘부터는 두 눈을 치켜뜨고
바른 생각, 바른 언어, 바른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바로 허공신虛空神은 불자님을 도와 드릴 겁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일이다.
2024년 07월 23일 오전 06:11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운월야인雲月野人 진각珍覺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