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 前)국민은행 지점장
· 영종초등학교총동문회 사무총장
· 중구 구민감사관
▶ A 씨는 지난 해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치킨집을 개업했다. 퇴직금을 탈탈 턴 것도 모자라 개인 대출까지 받아 겨우 가게를 오픈했다. 꼭 성공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시작했지만, 올해 코로나19로 장사가 어려워지면서 대출금도 갚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다. 휴대폰은 빛 독촉 전화로 불이 날 지경이다. 시간이 갈수록 갚아야할 돈이 많아지고 있어 그야말로 '멘붕'상태다.
금융당국이 A 씨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관계부처, 금융업권 협의를 거쳐 소비자신용법안을 입법 예고하고 후속 절차를 추진할 예정이다. 채무자들이 채권자에게 '빚을 깎아달라'고 요구할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채무조정 요청권), 채권자의 추심 연락도 제한(추심총량제 및 연락제한 요청권)하는 게 큰 줄기다. 채무를 조정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금융당국은 개인 채무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만큼 오히려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대출을 상환하는 단계에서는 앞으로 도입될 채무조정 요청권이 버팀목이 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채무조정 요청권’은 개인채무자가 빚을 갚기가 어려울 경우 금융사에 채무 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다.
소비자신용법안에 따르면, 채무자가 채무조정을 요청하면 금융사는 10영업일 이내에 조정안을 제안해야 한다. 금융사는 채무 감면율이나 상환 일정 등을 정한 내부 기준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채무자의 소득과 재산 등으로 빚을 갚기 어려운 상황임을 입증하지 못하거나 금융사 내부 기준과 어긋나면 조정을 거절할 수 있다. 채무자의 협상력을 보강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교섭을 해주는 업체도 생겨나게 된다.
개인이 신청을 하지 않더라도 금융기관에 의해 조정절차가 시작될 수 있다. 금융사는 개인 연체채권에 대한 대출회수와 양도절차를 진행할 경우 사전에 채무자와 채무조정 협상을 해야 할 의무를 갖게 된다. 금융회사는 채무자에게 대출회수와 양도 예정일까지 채무조정 요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10일 이전에 통지해야 한다.
소비자신용법안이 제정되면 과도한 빚 독촉도 제한된다. ‘추심총량제’에 따라 1주일에 7번까지만 빚 독촉 연락을 할 수 있고, ‘연락제한 요청권’에 따라 채무자가 원치 않는 시간대나 장소에서 빚 독촉을 말아달라는 요청도 할 수 있다.
연체채무자의 재기를 돕기 위한 제도라는 평가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금융사의 재산권 행사를 제약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필자는 은행에 근무하는 동안 본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과도한 채무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고객들을 접해왔다. 앞으로 도입하게 될 ‘채무조정 요청권’을 통해 채무를 감면받고 상환일정을 조정하여 채무를 줄여나갈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채무조정 요청권을 잘 이용해서 건전한 금융소비자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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