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 도전이다. 그런지 달리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그만큼 부담이 컸던 것이다. 무더운 한 여름의 열기는 땅에 고스란히 남는다. 바다와 섬, 멀리 태양이 지는 저녁노을, 구름이 드리운 풍경은 낮 달리기와 전혀 다르기에 새롭다. 허나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첫 하프 도전이라 여유가 없다. 익숙한 길을 따라 달리기는 계속된다. 이음다리가 끝나는 창선 쪽 반환점의 칩 확인을 위해 몸을 구부려 출발지점과 마찬가지로 호주머니에 넣어둔 칩을 꺼내 삐이 소리를 확인하는 것도 빠트려서는 안될 일이다. 1968년 시골에서 중학을 졸업하고 부산에 유학하기 위해 남해도 지족에서 창선도 장포를 거쳐 삼천포까지 운항선을 탔던 기억이 이제는 38년의 나이테를 긋고 있다. 시골집에서 부산 중앙동 여수 뱃머리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12시간. 고속도로가 놓이기 전까지 한려수도를 오고가고 하던 추억의 출발점이자 처음으로 뭍과 기차를, 그리고 육지 사람들을 본 곳이 바로 삼천포이다. 나이 15세 소년이었다. 당시 이곳에 다리가 놓였으면 하던 바람이 한 세대를 거치는 동안 이루어진 것이다. 해서 삼천포 다리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첫 창선-삼천포다리 개통 기념 하프마라톤대회 참가도 그런 의미에서다.
다리를 왕복한 후 이어지는 실안도로, 해는 서쪽 하늘 아래로 잠기고 나머지 밝음이 드문드문 구름 사이사이로 드리우고 섬은 검게 변신을 한다. 허나 아스팔트는 뜨겁다. 아니 발바닥이 무척 화끈거린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어려움이 발바닥에서부터 시작된다. 7킬로미터 지점에서 나의 생각은 이전에 경험한 10킬로미터 완주는 어렵지 않겠지만, 남은 14킬로미터는 그야말로 미지의 공간이자 시간이 된다는데 이른다. 속도와 보폭은 규칙적이다, 많은 달림이들이 지나가고 뒤에 남은 달림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추월할 것이다. 간이식수대는 약 2.5킬로미터 단위로 있는 것 같다.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물을 마신다. 갈증이라기보다는 발의 휴식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흥건히 젖어있는 식수대 주변 어지럽게 널려진 종이컵들 사이에서 발바닥은 잠시 시원해진다. 실안마을-요트계류장-2차 반환점-결승점 사이의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기보다는 발에 차가운 물을 붓는 일이 급하다. 그만큼 발바닥은 화끈거렸으며, 발바닥에 한 테이핑은 촉감으로 너덜너덜 찢긴 것 같다.
10킬로미터, 12킬로미터, 남은 거리, 숫자의 노예가 된다. 어느 마을의 인분 냄새, 키케한 못개불 냄새,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낮은 기압의 저녁시간이라 온몸을 덮치고 후각을 여지없이 파고든다. 바람도 없다. 발목이 약간 시근거린다. 무릎은 아무 이상이 없다. 모레 설악산 공룡능선이 어른거린다. 오랜만의 설악산 등산을 놓칠 수는 없다. 과연 맨발로 달리기 이후 등산이 가능하겠는가? 그것도 설악의 공룡이 아니던가. 이미 두 번을 경험한 적이 있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코스이며, 넉넉잡아 11시간이 소요되므로 등산의 필수조건인 발목과 무릎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이틀의 시간적인 여유가 이를 가능하게 할까도 궁금하다. 휴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중히 여기는 나의 무모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허나 평소대로 하자. 주어진 여건을 탓할 수는 없다. 이곳에서의 최선은 맨발로 완주이지만, 진정한 완주는 체력의 소모가 80% 정도로 끝마치는 데 있다. 일상의 달림이라면, 달리기 후 생활에 지장이 가는 체력 소모는 한 마디로 실패다. 해서 일정한 속도를 처음부터 끝가지 유지하면서 마침내 완주하였다. 칩 반납 후 샤워로 몸을 씻는다. 발바닥의 테이핑은 완전히 걸레가 되어 있으며, 발가락 곰탁곰탁 아스팔트의 콜타르가 묻어있다. 효마클 달림이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나의 맨발로 마라톤 하프 코스 달리기는 이것으로 끝났다. 이제 남은 건 혹시 염려했던 후유증이다. 집에 전화를 한다. 무사히 덕분에 마쳤다고... . 풀코스의 도전은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 한다면, 약 2년 정도의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 선다. 맨발로 달리기의 원형은 어디까지나 숲길이나 흙길에 있으며, 1시간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작은 결론이다.
왼쪽 발목이 약간 불편한 것 이외는 다른 증상은 없다. 다음날 목욕탕에서 발목 중심으로 몸을 풀고 푹 잤다. 월요일 아침에는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가볍게 산보를 한다. 양 허벅지와 장딴지에 고르게 뭉쳐있는 근육통을 풀기 위해서다. 그러나 모레 아침 광복절 등산이 걱정이다. 발목보호대 대신 두 겹의 양말을 신고 새벽을 가르면서 대청봉을 먼저 향한다. 앞서가는 김도수, 서정목, 도기정 회원들은 그야말로 아방가르드(Avantgarde), 즉 전투용어에서 비롯한 ‘전위부대’이다. 숫제 산을 달린다는 표현이 맞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대청봉을 거쳐 희운각에서 천불동이냐 공룡능선이냐를 고민하다가 일행에 묻혀 결국은 공룡을 탄다. 마등령까지가 한계였다. 이후 비선대로 내려가는 걸음은 한 마디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했다. 함께 한 김상근, 오억세, 박병인 회원들의 걸음을 맞출 수 없어 먼저 가도록 권유한 다음, 혼자 걷는다. 여기서 만약 발목이 접히거나 부상을 당하면 낭패 중에 낭패가 아닌가. 단 한 번도 산을 업신여긴 적은 없다. 발목의 통증은 크지는 않았지만, 남은 3.7KM의 마등령-비선대는 정말 걷기 싫은 코스다. 어떻게 내려 왔는지 기억하기도 싫다. 비선대 편의점 위쪽 다리 아래에서 염치불구 개울에 옷 입은 채로 머리끝까지 몸을 담구니 피로가 가신다. 그리고 일행들과 정겹게 막걸리 한 잔을 마시니 발목의 통증도 없어진다. 백약의 으뜸이 술인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발목은 물론 몸의 상태는 정상이다.
무서우리만큼 일상은 어김없이 시작된다. 달림의 형태를 달리하는 갖가지 형상들, 산행, 사이클, 수영 등 육체적인 움직임은 물론 사유 및 정신세계도 움직임에서 의미를 찾는다. 움직이는 실체가 행복을 지양한다면, 행복의 근원은 달림에서 비롯한다는 역설을 채우는 과정이 바로 나의 현실적 삶인지도 모른다.
첫댓글 맨발로의 첫 하프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올 가을 경이로운 풀코스 완주를 기대해도 될 것 같은디요. 이제는 맨발로 달리는 노하우를 터득하셨으니--- 올 가을에 42.195km를 달린 철인의 발바닥을 구경하게 해주이소!
그 무더위 속의 맨발로 하프완주, 그리고 설악산행까지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근대성이라는 이름 하에 잃어버렸던 인간의 원시성을 회복하려는 '맨발로'가 아마추어 마라톤계의 새로운 기원임을 확신하며 그 새로운 신새벽에 우리 '효원'이 함께하고 있음을 무한한 자랑으로 여깁니다. 이상금 회장님 힘!
달리기의 새로운 콘텐츠를 수립하신 이회장님~.힘!!
대단하신 상금 오빠... 노을 마라톤 맨발 주행에 공룡 등산 까지... 감격^^
맨발로 하프를 뛰시고 설악산 등산까지.... 회장님~ 힘!!! 우리 효마클의 정신적 지주이십니다~ ^^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교수님의 준비하는 마음자세 배우고 싶사옵니다...도전하시고 또한 이룬 것들에 대한 기록 또한 남기시어 오래도록 저희들이 읽고 느낄수 있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멋쟁이 회장님 화이팅
맨발로 집합장소는 "수달 코스 꺼트머리에 있던데요" 해운대쪽 마지막 지하도 밑에
존경하는 우리 ㅅㄱ 교수님 우선 지면으로 축하드리고, 글 잘 읽었습니다. 같은 백약의 의뜸이라도 약효가 다른듯합니다.
고향에서의 맨발로 첫 하프완주! 감회가 남 달랐겠습니다. 곧 바로 설악을 완등하신걸로 보아 몸을 회복되신것 같고 가을에 맨발로 첫 풀 완주라는 낭보를 기대합니다. 힘!!!
맨발바닥 교수님! 발바닥 열불나구로 울트라까지 함 가봅시더^^.
존경스럽습니다..회장님..그리고 대단하십니다...발바닥...맨발로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