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가난했다.
6남1녀의 맏아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마을에 서당을 열고 훈장을 하셨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여섯 동생을 챙기는 것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여섯 동생을 차례차례 결혼시켰다. 그냥 결혼만을 시킬 수는 없는 일. 땅 몇 뙈기라도 떼어주기 위해선 부지런히 일해야 했다. 그게 바로 맏이의 숙명이었다. 아버님은 농사짓고 화전도 일구고 소도 열심히 키웠다. 그렇게 열심히 키운 소는 팔아서 동생들을 장가보내고 시집보내는데 썼다.
아버지는 아들을 일등 농사꾼으로 키우고 싶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열 살 무렵부터 농사짓는 일을 배우도록 했다. 새벽 4시께 아들을 깨워 6킬로미터쯤 떨어진 논밭으로 데리고 나갔다.
밭에 나가면 동녘 하늘이 부옇게 밝아 왔다. 그리고 하루 종일 허리 한번 펴보기 어려운 힘든 노동이 시작됐다. 삼복더위에도 아들에게 삿갓을 씌우고 함께 일을 했다. 아들과 함께 논밭에 난 잡풀을 함께 뜯어 없애고 맨손으로 흙을 파다가 논밭에 옮겼다. 그러다 보면 뒤집어 쓴 흙먼지가 온몸에 흐르는 땀에 섞여 아버지와 아들의 삼베옷은 걸레처럼 변해 있었다.
일을 하면서도 무뚝뚝한 아버지는 한 말씀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간간히 저린 허리를 펴려고 일어설 때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아들은 그 애처로운 휘파람 소리가 <한오백년> 노래의 처음부분 같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한테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붙잡고 가장 긴 말을 한 건, 고향 뛰쳐나간 아들을 찾아내 집으로 데려가려 설득하셨을 때였다.
날이 가물어도 물이 없이 애를 태워야 했고, 장마가 지면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고향은 아들에게 지긋지긋한 곳만은 아니었다. 아들은 이렇게 추억한다. “그러나 홍수 끝에 개천에서 감는 미역은 너무나 즐거웠고, 폭양 아래서 일하다 밭둑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쉴 때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느꼈던 그 상쾌한 행복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다 어머니가 나무 함지에 이고 나온 감자밥을 호박 된장찌개로 비벼 먹던 꿀맛 같은 점심은 아들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뒤 아버지와 아들은 새벽별을 보며 소를 몰고 밭으로 나가 저녁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저녁이면 어두운 앞마당에 쑥대 모깃불을 피워 놓고 강냉이를 먹으면서 말 잘하는 어머니의 이야기기를 듣곤 했다. 항상 무표정하시던 아버지도 어머니의 이야기 소리에 가끔은 웃었다.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아들에겐 신바람이 날 만큼 행복하게 만들었다.
아들은 가난 자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가난하게 살기는 싫었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농촌생활이 싫었다. 평생 이렇게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게 싫었다. 씨를 뿌리면 그 다음날 벼가 주렁주렁 열렸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허리한편 펴보지 못하고 농사를 지어야 했지만 일의 대가는 너무나 빈약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생각을 한다. 아버지는 부지런히 일해 조금씩 땅 몇 뙈기를 넓혀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차라리 공사판에 나가서 막일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땅을 개간할 필요 없이 돈을 벌어 어엿한 농토를 사는 편이 훨씬 낫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사고의 전환이고 창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어떻게 땅을 산단 말인가? 아들은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꿈에 도전한다. 가출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아버지를 배반하는 것이기도 했다.
첫 가출은 아들의 나이 16살 때였다. 무더운 7월 여름날 밤, 아들은 식구들이 모두 잠들기를 기다렸다 같이 가출하기로 한 동네 친구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아버지가 새벽에 일하러 나가자고 깨울 때쯤이면 그는 밤새도록 걸어 이미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둘 다 보따리 하나 없이 입고 있던 무명바지 저고리 차림에 돈이라고는 둘의 것을 합쳐 47전이 고작이었다.
두 달 뒤 아들은 원산근처 철도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그를 찾아온 아버지를 만난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탐정처럼 아들을 찾은 아버지였다. 같은 공사장에서 일하던 어느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노자 도움을 받으려고 아버지를 찾아 아들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비가 와서 공치는 날이면 공사판에서 일하던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고향 얘기하며 신세타령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덜미가 잡힌 것이다.
서울에서 춘천거리인 1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아버지와 아들은 걸어서 집으로 되돌아갔다. 집으로 가는 길. 과수원을 지나치던 아버지가 과수원에 들러 할머니에게 드린다며 사과를 몇 개 샀다. 가난한 아버지는 싱싱하고 모양 좋은 사과를 사지 못하고 상하고 썩어서 사과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진 사과를 샀다. 아들은 짠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아들은 아버지와 가난한 농촌을 벗어나려 번번이 가출을 했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를 끝내 벗어났고 가난에서도 벗어났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정주영이다.
하지만 정주영은 아버지의 습관과 스타일, 생각하는 방식은 벗어나지 못했다. 벗어나지 못한 것은 되레 정주영의 장점이 됐다.
정주영은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그 옛날에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눈을 비비고 동트기 전 새벽길을 걸었던 정주영은 아버지를 그대로 쏙 빼닮아 갔다.
정주영은 그 누구보다 부지런했다. 집에서 가출한 뒤 얻은 직장인 쌀가게 시절 때는 그는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문을 열고 점포를 정리했다.
현대그룹 회장 시절에도 정주영은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해가 빨리 뜨지 않는다고 농담 같은 진담을 자주 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시간은 어김없는 아침 6시. 6시 반쯤에 계동 현대그룹 본사에 도착해 구내 이발소에서 단정하게 머리를 다듬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시간은 정확히 아침 7시. 이때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정주영의 말이다. “나는 젊었을 적부터 새벽 일찍 일어난다. 왜 일찍 일어나느냐 하면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의 기분은 초등 학교 때 소풍가는 날 아침, 가슴이 설레는 것과 꼭 같다. 또 밤에는 항상 숙면할 준비를 갖추고 잠자리에 든다. 날이 밝을 때 일을 즐겁고 힘차게 해치워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희망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부지런함은 정주영의 평생 자산이 되었다.
아버지는 정주영을 데리고 삶의 현장인 논밭으로 데리고 갔지만, 어른이 된 정주영은 스스로 현장을 휘젓고 다녔다. 그는 시간만 나면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그룹회장이 됐지만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는 CEO가 아니었다. 자동차와 조선소 공장을 헤치고 다니는 현장형 CEO이었다. 정주영은 현장 상황을 한눈에 꿰차고 있어야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여겼다.
어떤 공장은 하루에 한번이 아니라 하루에 두 번씩이나 갔다. 정주영은 ‘오늘은 회장님이 다녀갔으니 내일이나 오겠지’라고 생각하며 다소 느긋해하던 직원들과 임원들을 박살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현장에서 ‘호랑이 회장’으로 통했다.
정주영은 현장 직원들과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직원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았다. 밥을 먹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그들과 함께 씨름을 즐겨했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마이클 포터는 정주영의 이런 경영스타일을 서부 개척시대의 카우보이에 비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주영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은, 바로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이었다.
아버지는 높은 곳을 깎고 낮은 곳을 메우며 버려진 돌밭을 개간해 밭을 만들어 냈다. 둑을 쌓아 물을 끌어대어 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황무지를 개간해 토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바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낸 것이다.
정주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맨땅에서 조선소를 세우고 자동차 공장을 만들었다. 그 역시 자신의 아버지처럼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기업가정신 상징인물로 손꼽히는 이유다.
1000마리의 소떼와 함께 북한을 방문해 남북경협의 물꼬를 튼 것 역시 그의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의 발로였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쭈그렁 탱이 할아버지가 다 된 노년의 정주영에게서, 저린 허리를 펴려고 일어설 때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던 그의 아버지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유다.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책인줄 알고 찾아보았다는^^;;
관심이 없으면 이런 긴 글 보기 어려운데 , 좋으셨다니 저도 좋네요~~~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건강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