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화면에 초록색 징그러운 얼굴이라니, 소름이 온몸을 더듬고 지나간다.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느낌에 돌기를 움직여 화면을 끄려 하는데 영상속의 얼굴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탐사대 42호 대장 샤 르덴이 남긴다. 루센트 력 1042년. 이미 아루베나 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로 인해 포화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루베나와 같은 환경을 지닌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를 떠돌았다. 200년, 우리는 200년 만에 겨우 아루베나의 환경과 가장 근접한 환경을 지닌 별을 찾았고 그제 서야 우린 어둡고 외로운 항해를 마칠 수 있었다. 예상한대로 지식을 지닌 몇몇 생명체들이 이미 별을 장악하고 있지만 곧 그들을 처리할 본대가 이곳으로 전송되어 올 것이다. 이제 우주선의 에너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안전한 장소에 착륙한 후 본국에 연락을 하여 에너지의 전송을 기다릴 것이다. 아무 곳에나 착륙했다간 이곳에 서식하는 열등한 지식을 지닌 생명체들이 우리의 선체에 흠집을 낼지도 모르기에 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은밀한 곳에 선체를 착륙시킬 예정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임무는 이곳의 좌표를 본국에 전송한 후 좌표로 전송되어 올 부대에 이곳에 대해 연구해온 자료를 넘기는 일 뿐이다. 일단 안전한 곳에 착륙한 뒤 좌표를 전송할........."
처리? 그러니까 죽여버려 와 동일한?
-팟!-
"음?"
갑자기 화면의 영상이 꺼지며 우주선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충격으로 인해 정보가 유실되었습니다. 선체의 충격과 함께 비상저장시스템을 발동, 선체 내부의 상황을 저장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역시 우주를 날아온 물건이라 그런지 성능이 아~주 뛰어난 것 같다.
난 우주선의 성능에 감탄하며 돌기를 움직여갔다.
-삑!-
-파앗!-
순간 전면의 공간에 둥근 스크린이 떠오르며 우주선 내부를 비추는 영상이 떠올랐다.
영상 속엔 괴상하게 생긴 생물체들이 넷 있었는데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온몸은 초록색이고 귀는 날카롭게 곤두선, 그리
고 비정상 적으로 큰 머리와 두 눈.
눈동자뿐인 두 눈, 노랗게 번뜩이는 눈을 보니 소름이 쫘 악! 돋는다.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고 한 놈은 나와 같이 돌기 앞에 서서 간간이 돌기를 움직여 간다.
아까 입체 영상으로 본 그 탐색대 대장이란 놈 같았다.
"대장님. 이런 지루한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아~ 빨리 가족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대장의 좌측에 서서 벽면에 나타난 레이더 화면 같은걸 보고있던 놈이 대장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하자 대장은 그에게 시선을 던지며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부 샤케. 기분이 좋은가보군. 하지만 마지막까지 방심하지마. 이곳은 아루베나가 아니다. 에너지가 얼마 없는 지금 우리가 위협을 받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큰일을 당하게 될 꺼야."
하지만 부 샤케는 대장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대장님. 너무 민감하신 것 아닙니까? 이곳에 사는 미개한 생물들이 우리에게 위협을 주면 얼마나 주겠습니까? 선체에 에너지만 넉넉하다면 본 대를 기다릴 필요 없이 우리가 그냥 쓸어버리는 건데, 아쉽지 않습니까? 하하하."
"흠..."
부 샤케의 말에 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먼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게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가기 시작했다.
귀기울여 들을만한 가치가 없는 그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계속 듣다보니 지루해졌다. 그래서 그냥 영상을 꺼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우주선이 만석곡에 추락하게 된 정확한 이유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아~~함~~"
난 두 팔을 들어올리며 크게 하품한 뒤 졸린 눈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 속의 그들은 갑자기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이건!!!! 거대한 크기의 미확인 생명체가 빠른 속도로 선체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장님! 빨리 조처를!"
부 샤케의 경악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대장이 열심히 돌기를 두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삑! 삑! 삑!-
부 샤케의 외침에 긴장한 대장은 열심히 돌기를 두들기기 시작했고 잠시 후 우주선의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확인 생명체의 접근속도가 선체의 회피속도보다 빠릅니다. 충돌이 예상됩니다. 100냔(m), 60냔(m)...........}
거대하고 빠르게 날아다니면서 충돌한 것이면.. 천붕이겠군.
지구의 생명체가 멸망할 위기를 구해준 영웅 천붕이 되는 건가?
어쨌든 우주선이 말하는 천붕과의 거리가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그들은 절망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대장에게 소리쳤다.
"대, 대장님. 어떻게 조처를.. 어서!!"
"이래서 방심하지 말라고 했잖아! 처음부터 레이더에 집중하고 있었으면 미리 조처를 할 수 있었을 것을.... 어쩔 수 없군. 하나라도 살아남는 수밖에. 너희들도 알다시피 본국에서 지급 받은 장갑체는 하나뿐이다. 난 이곳의 좌표와 지금껏 연구해온 자료를 건네야 하는 사명이 있으니 그건 내가 장착하도록 하겠다."
대장은 긴장해서 땀을 흘리는 부 샤케를 노려보며 말했다.
{50냔(m), 40냔(m).....}
그의 부 샤케에게 뭔가 더 말하려 하다가 우주선의 경고음을 듣곤 서둘러 중앙의 돌기를 눌러갔다.
-삑! 삑! 삑! 삑!-
-위~~잉~ 철컹!-
순간 돌기가 솟아있는 부분이 뒤로 물러나며 은색구슬이 담긴 둥근 모양의 투명한 상자가 작은 기둥에 받쳐져 올라왔다.
대장은 기둥이 완전히 올라오기도 전에 상자를 집어들고는 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살아남는다면 대원들이 본국을 위해 희생한 정신을 높이사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상을 내리겠다."
대장은 상자를 열기 위해 신경을 쓰느라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뒤에선 부 샤케가 어느새 이상하게 생긴 총을 꺼내들고 대장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이거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는데?
-지 잉!-
-털컥!-
부 샤케의 총구에서 튀어나온 푸른 광선은 대장의 가슴을 관통해버렸고 대장은 갑작스러운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트리며 손에 들고있던 상자를 바닥에 떨구었다.
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쏜 부 샤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커억!!! 부, 부 샤케. 무, 무슨 짓을.."
대장이 부여잡은 가슴에선 연신 초록빛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 샤케는 그런 대장에게 여전히 총구를 겨누며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집어갔다.
-지 잉!-
"크 악!"
-지 잉!-
"크 악!"
부 샤케는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주워 들곤 대장에게 겨누고 있었던 총구를 나머지 대원 둘에게 빠르게 돌려 예의 그 빛을 날렸고 그 들은 머리에 구멍이 뚫려 쓰러졌다.
부 샤케는 상자를 열어 은빛구슬을 꺼내들며 쓰러진 두 대원을 바라보며 웃었다.
"크크크 미안하네. 친구들."
"친구였나? 그런데 왜 갑자기 친구를 죽인 거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고 다시금 화면을 지켜보았다.
한쪽 무릎을 꿇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대장이 그의 행동을 보곤 놀라 소리질렀다.
"부 샤케!!! 어, 어떻게 이런 짓을. 그들은 커 억!! 너의 동료다!!"
부 샤케는 그런 대장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동료였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생각해봐. 늙은 당신과 멍청한 저놈들보단 젊고 총명한 내가 살아남는 것이 본국에 더 이득이 되는 일 아니겠어? 이들과 당신의 가족들에 대해선 내가 본국에 잘 말해주도록 하지. 시나리오는 이미 준비해 뒀어. 설마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당신은 다른 부하들을 쏘아 죽인 후 장갑체를 당신이 가장 아끼던 부하에게 넘겨주고 우주선과 같이 산화한 거야. 어때? 그럴 듯 하지 않아? 하하하."
"저런~ 개새끼! 세상에 지 살자고 친구를 죽여? 와! 열 받네~. 넌 아직까지 살아있었으면 내 손에 죽었어. 자식아."
분노에 떨며 나도 모르게 부 샤케라는 놈을 잡으려 공중에 떠있는 화면을 손으로 휘저었다.
역시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장은 태연하게 그렇게 지껄이는 부 샤케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부 샤케!!!!!!! 어떻게...."
-지잉!-
대장이 하려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 샤케가 쏜 광선은 대장의 이마를 관통해 버렸다.
그리고 부 샤케는 쓰러진 대장의 시체를 한 차례 밟아주며 말했다.
"늙은 놈이 말이 많군."
{5냔(m), 4냔(m)........}
우주선이 여전히 감정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젠장! 이 자식이 시간을 끄는 바람에."
화풀이로 대장의 시체를 마구 밟아가던 부 샤케는 다급히 상자를 열고 은빛 공을 집어들며 말했다.
"장갑체 넘버 1024. 융합을 크아악!!!!!"
-쿠아앙~~~~~~~-
-팟!-
부 샤케의 비명소리와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고 허공에 자리했던 스크린은 꺼지듯 사라졌다.
"죽었군. 잘~ 죽었다. 개자식아. 거기서 안 뒤졌으면 내 손에 죽었어!"
분노에 떨며 소리칠 때 우주선의 음성이 들려왔다.
{선체 이상에 대한 더 이상의 정보가 없습니다. 직접 검색하시겠습니까?}
-삑! 삑!-
{검색을 중단합니다. 전체 에너지 잔량 8%. 조속한 공급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억양 없는 기계 음을 뒤로하고 우주선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금호(金湖)가 자리한 분지로 나가 아무렇게나 주저앉고 생각에 잠겼다.
우주선과 충돌한 건 천붕임에 틀림없고 우주선 바닥을 장식한 질퍽한 녹색 액체들은 그들의 피와 살일 것이다.
그나저나 아까 본 영상이 잊혀지질 않는다.
자신이 살기 위해 하극상은 물론이고 동료까지 죽이던 부 샤케의 잔인한 모습.
난 그의 모습을 보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본 것 같아 꺼림직 했다.
아마 나라해도 이렇게 환경의 변화가 없었더라면 나를 위해 나의 이익을 위해 주위의 모든 것을 희생했을 것이다.
과연 이런 내가 나와 같이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인간들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냥 이곳에서 평생을 지내면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역시 머리가 좋으니 생각이 많다.
"음... 일단 세상을 보고 말을 하자. 꼭 나 같은 인간만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 아 잣!!"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둥근 구는 흐물 거리는 은빛 액체가 되어 순식간에 몸을 뒤덮었다.
우주선에서 융합했을 때는 정신이 없어 변화한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겨를이 없었기에 노인이 기거하던 동굴에 들어와 장갑체와 융합했다.
그리고 노인의 유품중 하나인 거울을 들고 변해버린 내 모습을 세세히 비춰보았다.
거울을 멀리 이동시켜 본 전체적인 나의 모습은 마치 은으로 만든 피부를 뒤집어쓴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난 손을 들어 변해버린 몸을 살며시 만져갔다.
너무나 매끄럽고 부드럽다. 변하지 않았을 때의 몸을 만지는 것 같다.
피부 위에 또 다른 피부를 덮어씌운 것 같지만 전혀 어색하거나 이질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울을 얼굴가까이로 가져갔다.
"음... 이건 너무 심플한 거 아닌가?"
이렇게 중얼거렸을 정도로 거울에 비친 얼굴엔 타원형의 노란 유리 같은 것이 눈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에 박혀있을 뿐이다.
코와 입이 있어야 할 자리는 아무것도 없이 밋밋한 모양이었지만 숨쉬기가 곤란하기는커녕 오히려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
난 거울을 이용해 얼굴 이곳 저곳을 비춰보며 중얼거렸다.
"후~. 완전 괴물이군. 되도록 이 모습은 자제를 하는 게 좋겠다. 해제 코드 1024."
-슈르르륵~-
코드를 중얼거리자마자 예전처럼 액체는 손의 중앙으로 보여 반구를 이루었다.
왼손에 박힌 반구를 바라보니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말 그대로 괴물 같은 모습이었다.
예전엔 장난삼아 이거 완전히 괴물 된 것 아닌가 했었는데 이젠 정말 괴물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코, 입, 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노란색으로 빛나는 눈만이 우울하게 자리한 은빛 괴물.
다시는 보고싶지 않았다.
만약 그러고 돌아다닌다면 인간으로서의 이성이 사라질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난 눈을 돌려 상반신만 남은 채 잠든 듯이 누워있는 노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마치 고심하고 있는 나를 걱정하는 듯 표정을 찡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난 애써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 아~. 하 아~. 하 아~. 제엔~~~~~~~~~~~장할!!!! 벌써 2년이다 망할! 후.. 저걸 어떻게 빠져나가지? 그렇다고 포기하고 이대로 평생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꺼야. 흠...."
벌써 2년이다. 그 2년 동안 이 벽 뒤에 존재하는 빛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쓰디쓴 만년석균 죽을 만들어 마시며 석 문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 익숙해지려고 수도 없이 시도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일까? 난 여기서 늙어.. 아니 혼자 살긴 싫은데. 난 아직 젊고 튼튼한 20대 청년이라고!!! 겉모습은.
부끄러운 절규를 하다 번뜩거린 하나의 아이디어.
"그래! 장갑체!"
"융합!"
-슈르르륵~-
순간 자신을 부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은색 액체는 순식간에 온몸을 뒤덮었다.
그 후로 단 한번도 융합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첫째는 보기가 싫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어디다가 서야할지 몰라서이다.
그들의 지식이 머릿속에 유입되긴 했지만 그들의 일상적인 지식 일뿐 이 장갑체에 대한 설명은 융합과 해제 코드말고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장갑체가 언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쨌든 일단 융합을 하고 나니 든든한 아군이 생긴 것 같아 기분 좋았다.
"흣. 흣. 흣. 오늘은 반드시 이곳을 빠져나가고야 만다."
왠지 모를 자신감. 어쩐지 오늘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두 손에 힘을 주고 힘껏 문을 열었다.
-끼익~-
"우 웃!!"
장갑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지 눈이 부심과 동시에 터질 듯한 고통을 받았다.
한동안 버티다가 이제는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이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광선이 본체의 동공에 극심한 충격을 주고있습니다. 자체방어에 들어가겠습니다. 망막 진화(retinal evolution).]
외부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 직접 머릿속을 울리는 기계 음에 놀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장갑체는 변화하고 있었다. 망막위로 얇은 막을 씌우는 듯한 느낌이 들며 잠깐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잠시 후엔 놀랍게도 눈을 터트릴 듯 눈부시던 빛이 씻은 듯이 사라진 것처럼 내부가 훤히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절로 한가지 지식이 떠올랐다.
망막 진화(retinal evolution).
피 융합체의 시신경이 적응하지 못할 정도의 빛이나 충격을 받으면 장갑체가 피 융합체의 시신경에 자극을 주어 진화시킴으로써 강제로 빛과 충격에 적응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라고 머릿속에서 글자가 뒹굴 거리네.
아마도 이 장갑체는 하나의 기술을 발견하면 그것에 대한 지식이 절로 머릿속으로 유입되는 것 같다. 너무 많으면 머릿속에 담기 곤란한데....
어쨌든 진작에 이런 방법을 쓸걸. 그동안 시간을 헛되게 보낸 것에 대한 후회가, 그 쓰디쓴 만년석균을 뜯어먹어야 했던 기억이! 아악!! 그래, 내가 자초한 거니까 누굴 원망하리 오.
한참을 어리석었던 나를 탓하다 석 문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곳엔 하나의 석실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석실은 조금 작은 편이었고 정면의 벽엔 방금 열었던 문과 똑같은 석 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엔 돌로 만들어진 작은 탁자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위엔 주먹만한 유리 구슬이 놓여있었는데 아무래도 저것이 날 2년 동안 괴롭힌 장본인인 것 같았다.
난 한달음에 탁자 곁으로 다가가 유리구슬을 집어들고 얼굴 앞에 가져가며 말했다.
"자식아. 오늘 같은 날이 올지 몰랐을 것이다. 푸핫핫! 감히 이 몸의 진행을 막아? 저 세상에 가서 반성해라. 자식아."
그리고 유리구슬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쨍강~~~-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것에 대한 원망의 무게도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
유리가 깨어지자 다시금 머릿속을 울리는 기계 음이 들려왔다.
[본체에 가해지던 위협이 사라졌습니다. 자체방어모드 해제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망막에 가해졌던 작은 갑갑함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해제 코드 1024."
-슈르르륵~-
장갑체를 해제시킨 후 다시 만년석균이 서식하던 자리로 돌아가 이곳을 빠져나가면 쓰려고 미리 준비해둔 몸뚱이만큼 큰 보퉁이를 들고 석실로 들어와 앉았다.
보퉁이 안에는 노인에게 배운 의술을 바탕으로 만든 300알의 단약(丹藥)과 되는 대로 긁어모은 만년석균, 작은 거울, 천붕의 깃털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주선 내부에서 가져온 물통이 들어있다.
단약은 만년석균과 양기(陽氣)를 적당히 감소시킨 금광속단석유를 혼합해 만들었는데 내상과 외상의 치료에 탁월한 효능을 보일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써본 적이 없는지라 단지 확신만 할 뿐이다.
그리고 천붕의 깃털.
보퉁이 속에든 천붕의 깃털은 엄청난 양을 자랑하고 있다.
우주선 주위에 수없이 흩어져 있던 천붕의 깃털을 모두 주워서 보퉁이에 넣은 이유는 귀해 보였기 때문이다. 깃털 하나 하나의 길이가 어른 팔뚝만하고 날개의 이음새 부분은 칼날처럼 날카로우며 털빛은 아름다운 오색(五色)을 자랑하고 있으니 나중에 밖에 나가서 팔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뇌리를 파 팍! 스칠 수밖에.
아마 천붕의 깃털만으로도 보퉁이 부피의 5/3을 차지하고도 남을 것이다. 원래 내가 좀 욕심이 많아야지..
그리고 우주선 내부에서 들고 나온 물통.
그것은 정말 신기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에 은빛의 길쭉한 타원형 모양이었는데 놀랍게도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5000리터나 되었다. 5000리터를 담는다고 해도 무게나 크기가 변함이 없으니 무척 간편한 도구라고 생각되었다.
욕심이 많은 내가 왜 물통 하나만 챙겼을까? 물통 외에도 신기한 물품들이 많았지만 충돌과 추락으로 인해 대부분 부서져 챙길 것이 물통말고는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엔 물이 없기 때문에 물대신 금광속단석유를 담았다.
그런 물통만 세 개, 합이 15000리터. 무게로 따지면 15톤. 드럼으로는 에... 75드럼. 아무튼 엄청난 양이다. 그렇게 많은 양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금호(金湖)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정말 불가사의다.
재산 공개는 여기까지, 보퉁이를 석실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돌 탁자를 살펴봤다.
황당했다. 아니 당황했다.
탁자에 쌓였던 먼지를 걷어내자 탁자의 윗면엔 짐작대로 글이 남겨져 있었다.
짐작은 들어맞았지만 문제는 나는 전혀 모르는 생전 처음 보는 글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새 발자국 같고 어떻게 보면 그냥 작대기로 아무렇게나 끄적거린 것 같은 이상한 글이다. 이런걸 어떻게 읽으라고 이렇게 남겨놓은 것일까? 도대체 정신이 있는 인간이었을까?
"뭐 별 것 아니겠지. 제 정신이면 이렇게 이상한 글 남길 리가 없으니까."
난 글을 남긴 인간을 간단하게 미친놈 만들고 닫혀있는 문으로 다가가 힘을 주고 밀었다.
"우웃~~짜아~~!! 음? 왜 안 열리지?"
밀어서 안 열려서 당겼다.
"아 자 자 잣!!!!!"
온힘을 다했건만 석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설마 저 낙서 같은 글을 읽어야 이 석 문을 열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정말 환장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이 운명이라는 놈은 왜 이런 시련을 나에게 주는 것일까? 운명이 나를 가지고 노는구나.
"병신 xxxx. 미친 xxxx. xxxxxxxxx............."
욕 나왔다. 정말 있는 욕, 없는 욕, 만든 욕, 들은 욕 다 퍼부었다.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허탈한 이 심정을 풀 길이 없을 것 같았다.
그 빛만 피해나가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또다시 문 그리고 글.
"끙... 간만에 머리를 써야겠다. 아~ 골 아파. 음.....이건...."
난 운명의 장난에 두 손들고야 말았다.
문이 열리지 않으니 탁자 위에 새겨져 있는 새 발자국을 해석해서 읽는 수밖에.
석실 안에 있어서 해가 뜨고 지는걸 알 순 없었지만 꽤 많은 날이 흐른 것 같다.
열성적으로 잠잘 시간까지 아끼며 연구를 해서 지금은 대략 80% 정도 해석을 마쳤다.
처음 이 석실의 문을 열었을 때는 거뭇거뭇 머리를 내밀던 수염이 이렇게 키만큼 자라 버린 걸로 봐선 제법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허비한 것 같다.
마지막 몇 줄만을 남기고 잠깐 휴식에 들어갔다.
"으 자 자 잣!"
-두두두둑!! 우두두둑!!!-
몸의 관절을 조금씩 펼때마다 관절이 지르는 비명을 들을수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안 움직인 거야?
"후우..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아~ 지겨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거야?"
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투정을 하며 해석한 글이 앞뒤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탁자에 새겨진 글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요광주(妖光珠)의 빛을 뚫고 이 글을 보는 자. 그대에게 가문의 모든 걸 맡긴다. 위대한 가문의 이름은 천수신가(天手神家). 우린 혈통(血統)을 타고 내려온 정밀한 손재주로 아름다운 세공품들을 만들어 세상에 내 놓았고 그 덕분에 천하제일 장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하왕조(夏王朝)와 함께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흥(興)하면 망(亡)하기 마련인가? 17번째 한왕 걸(桀)에 의해 23대에 걸쳐 쌓아 왔던 천수신가의 명성은 막을 내리고야 말았다. 당시에는 꿈도 못 꿨을 철기 재련기술을 천수신가가 비밀리에 전승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재련 기술을 내놓지 않으면 천수신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을 해왔다. 우린 그의 눈을 피해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지하에 만들어 놓았던 대전(大殿)으로 몸을 숨겼다. 우린 하(夏)가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라며 지하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다. 이런 때를 대비해 미리 저장해두었던 식량은 예상외로 많은 식솔들로 인해 오래 못 가서 바닥을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악몽 같은 그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식량을 쌓아두었던 곳에 구멍이 생겨 그곳으로 황금색 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금광속단석유..... 하(夏)하면 음.... 역사하고는 안 친해서 전혀 모르겠다.
노인이 만석곡에 떨어졌을 때는 만년속단석유가 호수를 이룰 정도였다고 했으니까 하(夏)라는 나라는 노인이 살던 시대보다 한참 이전에 생성된 나라라는 건가?
와~ 똑똑타. 역시 원판이...
잠깐 쓸 때 없는 생각에 빠졌기에 서둘러 머릿속 잡념을 털어 내고 글을 읽어갔다.
<황금색 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우린 하늘이 우리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내린 물이라 생각하고 앞 다투어 마셔갔다. 하지만 그것은 악몽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물을 마신 사람들은 하나둘 피가 마르고 내장이 타들어 가 죽어버렸다. 그때까지 황금색 물을 마시지 않은 몇몇 청년들과 나 그리고 배신자를 제외한 네 명의 장노(長老)는 힘을 모아 남아있던 식량을 대전(大殿)으로 옮겨놓고 이곳에 기관을 만들어 실수로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음.. 처참했겠군.
<남아있는 인원은 나까지 포함해 모두 아홉. 우리는 지상으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지상으로 나가는 문은 열리지 않았다. 우리가 들어오면서 막아놓은 문을 다시 무언가로 막아놓은 것 같았다. 우리를 이 꼴로 만들어 버린 하(夏)의 걸(桀)을 생각하며 절망했고 분노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힘을 합쳐 하(夏)에 대항할만한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하 대전엔 조상 대에서부터 보관해온 여러 광물들이 있었기에 재료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무기를 재련하고 담금질을 할 물이 문제였다. 마실 물도 모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기관을 풀고 황금색 물을 퍼담아 무기를 재련하는데 썼기 때문이다. 무기를 만들고 시험하기를 몇 백 번. 대전(大殿)의 내부엔 무기들로 가득 찼다. 우리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가솔들을 죽게 만들고 우리를 어두운 지하로 내몬 하(夏)를 잔인하게 멸하기 위해선 더더욱 강한 무기를 만들어야 했다. 대대로 내려온 단 하나의 무기에 아홉 명의 피와 땀이 뭉쳐지길 40년. 이젠 나 하나만이 남아 그들의 염원이 담긴 무기를 재련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5년. 나도 늙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그래서 후일을 대비하기 위해 황금색 물이 솟아오르는 곳으로 통하는 석 문에 기관을 설치하고 이젠 마지막 힘을 다해 석 탁에 글을 새긴다. 글을 다 쓴 후엔 가문의 기보(奇寶)인 요광주(妖光珠)를 올려놓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그 동안 해석한 글이다.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이곳은 천수신가의 지하 대전과 이어져있는 곳이라는 것과 천수신가의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에 죽어 먼지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저 석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나오질 않았다.
차라리 뒤에서부터 해석할 걸.
아직 해석을 하지 않은 몇 줄의 글에 희망을 걸고 남은 글의 해석에 박차를 더해갔다.
--------------------------------------------------------------------
"빌! 어! 먹! 을~~~! 에라~ 이~ 망할 것. 석 문을 여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염원을 풀어주던 말던 할 것 아냐!!! 진짜 짜증나네."
몇 줄의 글에 희망을 걸고 열심히 해석을 했는데 그 몇 줄은 부탁조의 말일 뿐 여기서 나가는 방법이나 석 문을 여는 방법 같은 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곳에 들어오는 이가 강한 인간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강한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힘. 그 모든 것을 갖춘 자 만이 요광주의 요광(妖光)에서 벗어나 우리의 염원을 씻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기에. 부탁하건데 우리 가문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은 하(夏)를 멸망으로 인도주길. 그리고 우리 천수신가 가 오랜 세월 힘을 모았지만 완성하지 못한 무기를 완성해 주길 바란다. 천수신가 가주(家主) 위황.>
없다. 하(夏)라는 나라도 없고 희망도 없고 나갈 방법도 없다.
확인 사살이라고 할까? 이미 해석하면서 봤던 글을 다시 보면서 진정한 절망해 빠진다.
정말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는 것인가..
의욕이 없어 늘어진 고개를 힘겹게 덜렁이며 휘청 이는 걸음으로 닫혀있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쾅!-
주먹을 들어 굳게 닫혀있는 석 문을 강하게 내리쳤다.
괜한 화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주먹은 터지고 뼈가 드러났지만 금방 아물어 갔다.
-푸스스스스스~-
뼈가 드러날 정도로 강하게 쳐서인지 석 문이 진동하며 붙어있던 먼지들이 뿌옇게 떨어졌다.
고생고생해서 이곳까지 왔는데 얻은 하나 없이 예전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제까지 헛고생했다는 생각에 기가 막혀왔다.
미련을 남기며 금방이라도 열릴 것 같은 석 문을 손으로 쓸었다.
"음.. 음? 으 음?!! 이, 이건?"
석 문에서 느껴지는 움푹한 감촉에 서둘러 석 문에 가득했던 먼지를 털어 내었다.
-푸스스스스~-
먼지가 눈, 코, 입으로 들어와 고통스러웠지만 개의치 않고 미친 듯이 석 문의 먼지를 털어 갔다.
드디어 희망이라는 화살이 절망이라는 공간을 꾀 뚫었다.
"새 발자국?! 새 발자국 글자다! 하하하!"
먼지를 털어 낸 석 문엔 예의 그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즉시 손으로 한자, 한자 짚어가며 해석에 몰두했다.
탁자에 쓰인 글을 해석하면서 쌓은 지식이 있었기에 오래지 않아 해석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해석을 하고 보니 웃음만 나왔다. 정말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하하. 이런... 이런.. 멍청한...하하하."
-드르르륵!!-
난 구석에 놔두었던 보퉁이들 둘러맨 후 굳게 닫혔던 석 문을 열고 안으로 발길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석 문을 열고 들어서니 거기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이제까지 본적이 없었던 넓은 분지와 함께 거대한 석조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석실의 문을 열면 또 다른 석실이 나타날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혹시 모를 위협을 견제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넓은 분지 여기저기에는 먼지 쌓인 옷가지들과 식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보이는 거대한 석조건물의 문 위에는 음각으로 새겨진 글이 있었다.
"망할 것들. 아무리 원한이 깊어도 그렇지 귀신으로 나타날 필요는 없잖아. 아~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네."
석조건물에서 빠져 나온 뒤 멀쩡한 몸 상태를 살펴보며 투덜거렸다.
부끄럽게도 그동안 알몸을 가려주던 긴 머리카락과 수염이 중간, 중간 잘려있었다.
난 안타까운 눈길로 그것들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왕이면 이 거추장스러운 수염은 깔끔하게 깎아 줬으면 좋았을 텐데. 귀신에게 그런걸 바라다니.. 내가 언제부터 그런 바보가 됐지? 어쨌든 요즘 같이 첨단 과학이 난무하는 시대에 귀신이라니.. 믿을 수 없어. 아니 뭐 수 천년을 살아온 노인이나 금광속단석유 같은걸 보면 귀신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건 없겠군.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하지? 저 건물 안에 여기서 나갈 수 있는 힌트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상한 것들 때문에 겁은 나고.. 그냥 다시 한번 들어 가봐?"
건물의 입구 부근에서 왔다갔다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서는 빠져나가야 되겠고 석조건물 내부로 들어가긴 무섭고... 아아~ 싫다.
-스으으윽~-
석조건물 입구 부근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보퉁이를 발 앞으로 끌어와 보퉁이를 열어 만년석균을 한줌 집은 다음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 쓴 맛 덕분에 잠깐동안 나가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적우적! 크~. 여전히 쓰군. 음....어떻게 하지?"
"..................."
"..................."
한참을 생각하고 나온 결론은...
"에라이~. 한번죽지 두 번 죽나? 일단 들어가고 보자."
굳은 의지를 드러내며 풀어놓은 보퉁이를 꽉 조여 놓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서 석조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은근히 다리가 떨려온다.
왠지 아무런 방비 없이 들어간다는 게 꺼림 직하게 느껴졌다.
"아! 안전을 생각해서 장갑체를 장착해야겠다. 융합."
탁월한~ 선택.
-스르르르륵~-
장갑체와 융합한 후 한 걸음에 건물내부로 들어섰다.
-피싯! 피싯! 피싯!-
-찌익~ 찌익~-
석조건물 내부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장갑의 외피에 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요광주(妖光珠) 때처럼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이 있었다.
[장갑의 외부에 위협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자체방어에 들어가겠습니다. 공기 갑옷(air armor)]
-위잉~~~-
순간 주변의 공기가 진동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몸 주변에 공기의 일렁임이 생겨났다.
-피싯! 피싯!-
-퉁~!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몸 주위에 펼쳐진 공기 막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갑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더 이상 피해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머릿속으로 한가지 지식이 유입되었다.
공기 갑옷(air armor)
피 융합체가 외부로부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중력장이나 압력을 받았을 때 장갑체는 외부에 존재하는 기체를 받아들여 내부에서 순환, 진동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일정량 빠른 압력으로 꾸준히 내뿜어 주변에 공기의 막을 형성한다... 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 어쨌든 좋은 거겠지.
아무튼 다시 한번 장갑체의 능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제 위협에 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편안한 마음으로 석조건물 내부를 둘러보았다.
-퉁~!퉁~!-
공기 막에 무언가가 부딪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는다.
두려움이 사라져 넓어진 시야는 건물의 내부를 완전히 담을 수 있게되었다.
바닥을 따라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파란 융단과 그 주변으로 무수히 널려있는 각양각색의 무기들이 보였다. 무기들은 종류와 모양 그리고 빛깔이 아주 다양해 보였다.
화려한 황금색에서부터 빛나는 은색, 반투명한 진홍색에 차가운 느낌의 파란색,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의 검은색에 순백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하얀색까지..
모든 무기는 색깔에서부터 모양까지 모두 틀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모두 단 하나의 이음새 없이 하나의 광석만으로 다듬어져있었다. 붉은 검(劍)은 붉은 광석으로, 파란 도(刀)는 파란 광석으로..
그 각양각색의 무기들이 내뿜는 광채에 난 넋을 잃고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퉁~!퉁~!-
그런 나를 깨우는 공기 막의 진동소리.
아쉬움을 뒤로 한 체 바닥을 따라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파란융단 위를 걸어 정면에 솟아 있는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 위에는 원형의 넓은 공간이 있었고 그 중앙엔 돌로 만들어진 길쭉한 관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관 주변엔 대장간에서나 볼 수 있는 쇠망치, 집게와 같은 장비들이 널 부러져 있었다. 무심코 바닥에 널려있는 물건들을 지나치려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것이 있었다.
무색 투명하며 길다란 유리 막대.
난 관을 향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유리막대를 집어갔다.
유리 막대는 생각보다 아주 무거웠다.
"호오~. 의외로 무거운데? 신기하군."
난 가볍게만 보이던 유리막대가 무거운 것이 신기해서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우우우우웅~~~~-
순간 유리 막대에서는 괴이한 울림이 일었다.
"우 왓! 또 뭐야?"
-땡그랑~~!-
-때구르르르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우주선에서의 경험 때문에 또 다시 그런 일이 벌어 질까봐 진동음이 일자마자 빠르게 유리 막대를 손에서 떨구어 버렸다.
바닥에 떨어지면 깨어질 것이다 는 예상과는 달리 유리 막대는 청아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구른다.
"유리가 아닌가? 생긴 건 꼭 유리 같은데?"
난 바닥에서 구르는 유리 막대에서 시선을 때고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예에~. 역시 여기 있군. 어디 보자...에..."
역시 누군가 남긴 글이 관 뚜껑 위에 새겨져 있었다.
--------------------------------------------------------------------
아.. 몇일만에... 아따. 힘드네.
수정을 하는데 양이 넘많어.ㅠㅠ
힘들었슘다.
그래도 많이 보자람다.
큰일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