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태평로
[태평로] 강인덕·송민순 前 장관의 ‘북핵’ 후회
조선일보
이하원 국제부장
입력 2023.03.27. 03:00
https://www.chosun.com/opinion/taepyeongro/2023/03/27/5XTVZX6FQBEXDBWGDU7RAYKC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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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 “김일성의 핵개발 과소평가” 宋 “美 과대평가해 대응 미숙”
‘한일 정상화’ 후 한미회담 임하는 尹 대통령이 미래 교훈 삼기를
강인덕(康仁德) 전 통일부 장관이 1977년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에서 북한 담당 국장으로 근무할 때다. 귀순한 거물 간첩 김용규를 심문하면서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들었다. 김일성이 1968년 11월 함흥의 과학원 분원 현지 지도 시 ‘미국 본토 타격용 핵무기와 로켓’ 개발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에 여러 핵심 정보를 알려줬던 그가 전한 김일성의 교시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전날 서부지구 화성포병부대를 찾아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현지 지도했다고 10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북한은 어제 총 6발의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총비서의 딸 김주애도 발사 현장에 동행했다. 김 총비서는 "군대는 언제든지 싸울 수 있게 준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노동신문 연합뉴스
“미국 본토에는 아직까지 포탄 한 발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미국 본토가 포탄 세례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 내에서 반전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중략) 미국은 남조선에서 손을 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하루속히 원자탄(핵무기)과 장거리 로켓을 자체 생산하여 우리가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에 힘쓰라.”
하지만 당시 중정과 과학기술자들은 북한이 핵탄두를 실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것이 요원하다고 보고 이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북핵 문제가 우리 정부의 최대 관심사가 되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인 80년대 후반이었다. 그는 최근 출간한 회고록에서 “북한 정보 분석 책임자인 나 자신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첩보 수집 우선순위를 최고 수준으로 높이지 않았다”고 후회했다. 이어서 “(정보) 분석관들의 안이한 정보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재난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의 ‘과소평가’가 분명한 오판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로 활동했던 송민순(宋旻淳) 전 외교부 장관도 올해 초 대담집을 통해 북핵 문제와 관련한 회한(悔恨)을 토로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1989년 프랑스 상업 위성에 의해 북한의 비밀 핵 시설이 공개되자 우리 정부 내에서 두 가지 주장이 제기됐다. 이스라엘이 이라크 핵 시설을 파괴했듯이 영변 핵 시설을 폭격하거나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부 장관이 최호중 장관에게 친서를 보냈다. 베이커 장관은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할 것이다. 그러니 한국은 결코 독자적인 행동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조지 H W 부시 미 행정부의 요구를 따랐지만, 그 이후 역사는 우리가 목도한 대로다. 한국에 배치됐던 미국의 전술핵무기는 오히려 모두 철수하고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안보과장으로 당시 실무를 담당한 송 전 장관은 “지금 돌이켜 보면 북한 핵 개발 저지에 대한 미국의 의지와 능력을 우리가 과대평가한 것 같다”며 “미국을 과도하게 믿었다”고 했다. “당시 우리가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책무를 더 분명하게 요구하고, 일정한 시기 내에 해결에 실패할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를 확보했어야 했다. 그런 과감한 외교를 하지 못했다.”
강인덕, 송민순 두 전직 장관은 각각 북한, 외교 분야에서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받은 고위급 공직자들이다. 이들의 회한 섞인 반성은 북한이 ICBM에 이어 24일 수중 핵무기로 불리는 ‘핵 무인 수중 공격정’의 최종 개발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히면서 더 메아리쳐 들린다. 그동안 북한은 과소평가하고, 미국은 과대평가했다는 부분에 특히 주목하게 된다.
결국, 북에 대한 정확한 판단하에 동맹을 튼튼히 하면서도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끌고 간다”는 핵심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두 베테랑 장관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한일 관계 정상화’ 라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한미 정상 회담과 한·미·일 3국 정상 회의에 잇달아 임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퇴임 후 회고록에 북한과 관련한 후회를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