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은 우띠...이 말을 플러스로 안겨 비수를 던져가면서 여신의 속도로 재빠르게
일을 처리하고는 있지만, 부산역은 시간 맞추어서 가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인 곳에
있었다. 여신이 아직은 부스스하지만 그 사이 다 했나 싶게 집을 나왔을때는.
"기차표...훔냐."
다시 들어갔다가 어쨌거나 나오고 한참을 정신없이 내려가서 문을 나선 그 순간.
"하이? 하우 아 유? 니가 여신이라고?"
"아니면 우짤래."
...그대로 정면 돌파.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녀의 옆에 이상한 복장이 보였다.
우락부락한 초록색의 몸집. 붉은색 토마토같은 머리. 옥수수 모양의 입과 눈.
그들은 강낭콩 콩깍지 같은 무기인듯한 것을 겨누고 있었다.
-웃기네....
여신이는 후클켓...어쩌구 외치며 이상하게 노는 그들을 치우려고 손을 뻗었지만.
여신의 손에 명중한 무엇인가로부터 붉은 게 터져나왔다. 토마토.
-저것들이...
그들이 포위망을 좁히지 않은곳으로 한참을 내달리고 나서야 여신은 그만 부산역과
반대의 방향으로 뛰고 있다는것을 알아채버렸다. 이 난처한 처지에 한동안 가만히
있는 여신이의 얼굴이 상당히 불안해 보인다. ...한 순간 눈이 반짝였다.
"무협에서의 경공이 이때 필요한데...여신님 절 도와주세요."
여신이 여신에게 구원 요청을 하다.
...되든 안되든간에 일단 크게 할! 소리지르며 여신은 아무렇게나 이어붙였다.
"나비무한급경상무공발공이판랜지존도법!" <羅飛無限急輕上武公攻發共耳版蘭至尊道法>
저 한자가 틀렸는지 맞았는지는 세기말도 모르며 오로지 추측에 의한것이므로 따라
해서는 절대 그대로의 재현 될거라 절대 장담하지 못한다. 어쨌거나 삼국시대때부터
내려오는 무림 최고의 비법이겠거니 그렇게 알고 넘어가자, 이 글줄을 더 따져보는건
저스트 포 펀을 기치로 내건 이 발랄 납량물에서는 절대 무의미하다.
감격...도 잠깐이고 그 곡물인간들 중 일부는 서로 뭉치더니 초록색 벼 잎파리 같이
생긴 얇은 몸으로 비행편대를 이루어 하늘에 떠서 여신과 비슷한 속도로 따라갔다.
그 비행체들은 후카노,후카노하면서 여신이 가는 방향쪽으로 조금의 시차를 두고서
이리저리 마치 유도탄처럼 날아가고 있다.
"으악...감독님...저....저 아이."
"응? 와이어도 없이 저렇게 날아? 이것은 특종...아니, 그야말로 꿈에서 나오는...
뭐해, 잡아! 대본 치워!"
여신은 저 영화감독과 그 수하의 사람의 말을 들었을까, 안들었을까. 아주 가볍게
4~5층의 단층 건물들을 한 두 배쯤 위에 포개어야 할 만큼의 그런 높은 곳에 있는
여신은 그들끼리의 대화를 또렷이 들었다. 도법 이름 중의 귀 이(耳)자가 핑계다.
시를 풀면은,
'칠흑같은 어둠에 쌓이는 비 슬픈 조각에 검게 쌓이네. 그렇게 쏟아져 내린다'
이 쯤 되겠다.
근데. 한시나 풀 정도로 상황이 그저 가만히 지나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여신은 그만 익룡처럼 날라오는 저 하늘을 뒤 덮은 곡물인간들을 그것도 뒤돌아서서
보고서 내 뱉고 감정에 복 받혀 다급하게 읊은 말이 저 말이다. 여신은 저개 주문이
되어버렸다는것은 조금 뒤늦게야 알았다.
이때 아래에 괜히(?) 여신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애쓰는 영화 감독 이하 스태프들은
아주 죽을맛이었다. 검은 콩이 그야말로 무더기로 그들을 향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삐졌는지 주인공으로 캐스팅이 된 배우나 엑스트라들은 감독을 따라가지 않았다.
여하튼간에 저렇게 얻어 맞으면서도 끈질기게 하늘을 보는 그들은 프로페셔널이다.
"혹시...아...에이. 순 설야." <혹시...아애이 순설야 或時...我哀已 純雪也>
시를 풀면은,
'한 때는...내 슬픔은 이미 새 하얀 첫눈이었다.'
...이쯤 되기는 될것일 텐데. 그럼 하늘에서 우박이나 눈이 쏟아질까. 맞다.
여름이 안 더웁다면은 글을 이따위로 쓰고 있는 세기말의 키보드를 저주하라.
"감독님..."
"다른 말 하지말고 어서 찍어! 이미 조연은 된다고. 뭐해?"
...이미. 여신을 따라가는 제대로 사람은 카메라를 집적 들고 뛰어가는 감독뿐이었다.
눈과 우박의 콜드 계열 공격이 제법 적중하였는지 땅에 있던 곡물인간들은 비틀거리다
맥 없이 아스러져갔고, 그 비행하는것들도 오르락 내리락 제자리 걸음을 할 뿐이다.
여신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채로 자신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개 봉에 매달은 태극기를 들며 뛰어갔지만은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또 두 팔을
치켜들며 일본 왜곡 교과서를 규탄한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사람이 교각 저 편에서
뛰어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서 죽 이어진 펄럭이는 태극기를 옆으로 통과하며
힘찬 표정으로 어딘가로 내 닫고 있었다. 방송사 차량이 그들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제헌절이지...애국심 마라톤이구나.
-...아차.
어느덧 공중에 떠서 조금 시간을 허비한 동안에 낙오되었던 사람들도 감독 주위로
몰려들었다. 조금 숨 돌릴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곡물인간들과의 거리들도 매우
짧아지고 말았다.
-시계가...? 그나저나 부산역이 북쪽이던가 남쪽이던가.
교각 중간까지 아무런 반응 없이 머리속에 지도를 그려가면서 가늠해보다가 강인지
바다인지 여하튼 물을 가로질러 북으로 향했다. 곡물인간 아니랄까봐 우수수 떨어져
더 이상 여신을 따라오지 않았다. 아까 뒤를 돌아보다 괜한 걱정 먹은것이 기억나서
인지 좀처럼 뒤를 보려하지 않아 조금 늦게 알았다.
2001년 7월 17일 아침 8시 15분 부산역 역전. 시간이야 정확하게 들어왔지만,문제는
요번엔 아주 칼날 같이 15분 0초 정각에 기차가 떠나가주느라 미쳐 타지 못했다.
여름보다 차가운 그녀가 있었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얼음보다 따뜻한 그녀가 있었다]
"나가봐야 된단..."
"늙은 부모 놨두고 그게 무슨소리가? 그렇게 힘든일이가?"
국경일 중 하나인 제헌절에는 국기를 달아야 한다. 아린은 애써 옷에 신경 쓰고
나가려는 참에, 집 한켠 구석진곳 그곳까지 가서 태극기를 달고,아니 걸고와야만
하는 자신의 미션이 싫었지만, 오로지 아침밥을 위하여! 참았다. 그나마 돈마저도
제대로 안 주는데 밥이라도 일단 먹고 봐야지, 그런 아린의 불평 불만을 눈치를
챘을가 안 챘을까.
"우켈켈켈켈..."
무슨 시건방진 괴상한 소리야,하고 고개를 돌린 아린이 눈에 이상한게 보였다.
우락부락한 초록색의 몸집. 노란색 호박같은 머리. 옥수수 모양의 입과 눈.
그들은 완두콩 콩깍지 같은 무기인듯한 것을 겨누고 있었다.
-할로윈 축제는 아닌데.
"후클켈후아릿."
후클켓후아릿...이 말을 계속 외치며 으싸으싸 힘을 내는 그들이 보기 싫어서인지
신경질을 버럭 내면서 아린은 그 국기가 걸린 봉을 들고 하나의 선택을 드디어,
행동에 옮기고 말았다.
"휠 윈드..."
...이게 도대체 무슨 추태란 말인가. 아린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역시 레벨이
떨어지는바바리안은 고깃덩어리야...하는 그런 자기 한탄도 그저 사치스러웁게
느껴지게, 지금 그 곡물인간들은 자기를 죄여와 겨누고 있었다.
"내참..."
"지금 내가 하는 말 그대로 따라해. 일본 왜곡교과서 반대, 유전자 조작 식품 수입
반대, 김우중 체포, 독도 수호, 한국 만세. 어서 달려."
아린은 그 곡물인간들의 괴상한 말과는 달리 얼핏 자연스러운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아보았지만 그저 흘끗 그 말을 한 자의, 여자 얼굴처럼 보이는 얼굴만을
봤을뿐이었다. 점점 더 포위망은 조여들어오고 있었다.
"일본 왜곡교과서를 규탄한다~~~~~~. 규탄한다!"
-어흐흑...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야. 지금 내가 곡물들에게 둘러싸인것이
안 보이는 걸까?
지나가는 행인들 중에서는 규탄한다,규탄한다하며 코러스를 맞추는 사람도 있었고
태극기를 걸러 집 앞으로 나온 사람들은 아린에게 용기를 붇돋아줄 생각이었는지
태극기를 흔들어주기도 했다. 어느덧 주택가를 빠져나와 학교 앞으로 향했다.
"저기요...여기 학교 앞인데. 쉬어도..."
"시꺼. 계속해."
포위하고 있는 곡물인간이 쏜 애호박이 아린의 등에 몇십발이 한꺼번에 우두두둑
명중했다. 그 따끔한 맛에, 아린은 일단 알아서 기기로 했다. 어떻게 되겠지하며.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왜곡교과서를 규우타안한다아~~~~~~."
마침 아린의 표정은 일그러지는 속 마음과는 다르게 한결 굳건한 표정이어서 경건함
마저 느끼게 했는지 지나가는 학생들도 제,뭐야 이런 표정보다는 웃으면서 코러스를
넣어주는 학생이 많았다.
"유전자 조작 식푸움 수입 반대한다!"
"일본 정부는 사과하라! 왜곡교과서를 규우탄한다아아~~~~~~."
부산역과는 어째 반대 방향으로만 달리고 있었다. 삐뚤빼뚤 가는곳을 되 짚어 생각
하건데 어째 항구쪽인 듯 싶다. 아차, 이런 아린의 행동에 행인 중 물론 박수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것을 빠뜨려서는 아니되겠다.
"다른것도 해야지...김우중 추징금 26조."
"네에..."
지금 아린의 상황이 웃기기 그지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4방 8면 16쪽 32각 64선으로
겹겹히 둘러싸 조준하는 총 앞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 수 있다는 말이더냐.
「어떡하겠니...살 놈은 살아야지...」
래영의 말버릇 중 가장 유명한 그 싯귀가 사무치게 아린의 마음에 두고두고 메아리
처럼 되돌아온다. 래영이 누나 어떻게 해서든 저 구해줘요...헬 형 어떻게든 꼬셔서
같이 갈거를 하면서... 이렇게 뒤죽박죽한 마음의 피 눈물을 흘리는 마음과는 여전히
달리 아린의 표정은 지극히 경건하여 보인다.
"경제 망친 김우중을 체포하라! 체포하라! 추징금 26조~!"
추징금 규모에 확 뒤집혔는지 김우중을 체포하라 이 소리가 여기저기서 응원하듯이
터져나왔다. 부산항 이곳저곳을 태극기를 들고 달리는 아린을 위하여서 물병을 주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부산항을 마치 트랙 돌듯이 한 번 더 돌고나가서 빠져나가서는 포위한 그들의 요구에
따라서 축구장을 건설하고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라고 했다. 그들은 아주 친절하게도
비교적 직선거리를 달리게 했다.
"일본은 붕괴하라! 우왜고옥 교오과서 화형시키자~~~~~."
아...도대체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또 두 팔을 치켜들고, 아니면은 표준형으로 봉에
매달은 태극기를 들고 비슷한 구호 외치며 아린을 따라오는 저 청년들은 또 어디의
피 끓는 사람이더냐.
"일본 왜곡교과서를 규탄한다~~~~~~."
그들은 도로를 따라서 죽 이어진 펄럭이는 태극기를 옆으로 통과하면서 힘찬 표정으로
(역시 아린의 속 마음은 무시하고 얼굴 표정만 끄적거려서) 어딘가로 내닫고 있다.
반대편 차선의 도로에서는 형형색색의 옷을 한 사람이 무더기로 쫓아가고 있었는데..
흘끔 그곳을 바라본 아린은 카메라 차량이 따라가는것으로 보아 영화 찍고있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일본은 사과하라~~~."
어느덧 아린의 뒤에도 아마 방송국에서 온 듯한 차량이 뒤 따라가고 있었다. 아린은
이 광경이 부모님이나 친구에게도 보여지게된다면 쪽을 무더기로 팔아야 할것 같아서
목숨을 건다는 마음을 가지고 오로지 방송국 차량을 따돌리기 위해서 시내 번화가로
들어 갔다. 자애스럽게도 여전히 총부리는 겨누었지만은 아린의 행동을 용서했다.
"일본 왜곡교과서를 규탄,규탄,규탄한다~~~~~~."
아침 밥도 안 먹고 연 두 시간째 이러고 있다니...이런 신세 한탄을 내뱉으면서
아린은 자신의 한계가 오고 있음을 느꼈지만은 여전히 얼굴 표정은 아린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골목골목마다 끈질게가 따라붙는 방송국 차도 참 지독하다.
"독도는 우리땅...대한민국...만세."
"하이? 하우 아 유?"
아린은 그녀가 '하이? 하우 아 유?'라고 내 뱉고 사라진 그들의 잔상때문인지 집에
돌아 가자마자 안철수 백신 트라이얼이라도 받아서 반드시 박멸을 하고 만다...이런
맞는지, 안 맞는지 도통 모를 생각을 하며 털썩 주저 않았다.
어느 사이에 흔들흔들 흐느적거리던 봉에서 떨어진 태극기가 툭 떨어져 내려 쓰러진
아린의 몸을 감싸 안았다.
자꾸 감겨지는 눈을 애써 뜨며 점점 숨소리에 묻혀가고는 있었지만 뒤 따라 오던 자
들의 목소리가 다급하다는것은 알 수 있었다. 발자국 소리가 작지만 요란하게 들렸다.
그 내뱉은 말 중에서 아린은 '순국선열'되지 말라는 말을 듣고서 가장 어이가 없어서
뚜렷히 되세기며 눈을 떴다.
"네, 부산방송의 ** ****리포터입니다. 국경일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요즘,제헌절에
일본 왜곡교과서 반대를 외치면서 거리를 활보한 애국심에 불타는 청년이 있기에..."
어느사이 열혈청년이 된 아린은 마침 뒤에 있던 ****** 시조 갈비 집 아줌마가 건네준
얼음물과 물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목마른것을 해갈했다. 이곳저곳 카메라를 메고 온
사람이 자기 앞에 닥치자, 처음에는 당황하고 난감한 기색이었으나 조금 안정을 찾은
후에는 완전히 자기 의지로 이겨 내었다는 으스대는 마음도 들고 여하간 으쓱거리며
들떠 있었는데.
낯 익은 인기척이 느껴져서 아린이 고개를 돌린 그곳에,
얼음보다 따뜻한 그녀가 있었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그 때에,그 곳에 그녀가 있었다]
"이것들...쫌 늦네."
"언니...화 내지 말아요.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조금 빨리 온 거 아니에요?"
7월 17일 오전 8시 8분. 부산에서 비행기 타고 서울로 갈 돈은 그들에게는 애초에
없었으니까 지금 래영이 아주 심각하게 투덜거리는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실라야. 여신이 오면 좀 괴롭혀라."
"여신 언니가 보복하면 어쩔려구요."
"설마 그렇게 하겠니. 만약 그럼 일러."
네라고 말하며 눈꺼풀을 내리고 한숨을 내쉬는게 이모티콘으로 끄적거리면 -_-;이다.
"핀 오빠도 온다고 알고 있는데요."
"서울에 비 와서 안 간데."
"예...?"
그날 쯤해서 센트럴 씨티에 비가 온 것은 맞은데 부산에서 기차로 가는거이야 해당이
덜 되고 무엇보다,일단 셔틀버스라도 운행하겠다는 지하철 공사를 일단 믿기로했다.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무참하게도 그런 실라에게 래영이 쏘아 붙인 말은.
"늦겠다, 어쩌겠어...우리라도 가야지."
위의 말을 래영의 평소 말투대로 하면 아래와 같이 된다. 그 역사를 익히 알고 있는
실라인지라 괜히 기지개 펴는 소리가 유난히 크다.
「어떡하겠니...살 놈은 살아야지...」
"표가..."
이미 멀찍멀찍 떠난 래영을 겨우 따라잡은 실라가 저 말을 뱉자마자 여전히 화가
안 풀린 얼굴로 다음과 같이 폭주로 쏘아붙여서야 래영은 아주 조금은 풀어졌는지
뾰루퉁한 표정으로 다시 멀리 실라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실라 너거는 3-9, 여신이거가 3-10. 내것은 3-13이고. 아린이거가 3-14. 핀은
울산에서 갈 수도 부산에서 갈 수도 있다고 해서 안 끊었었고 돈도 안 받았고.
여신이 안 오면 니가 내 옆에 앉아."
"하아..."
그야말로 말문이 막힌 실라는 자칫 이러다가 자신마저도 기차 놓칠것 같다는 생각에
멍하니 서 있다가 부리나케 뛰어서 기차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늦지 않았다.
"미안하구요."
"웅...사과했으니 되겠고. 미안, 선물 받을래?"
실라의 입에서 대뜸 나온말은 무언가가 처지가 뒤 바뀐 말이기는 하였지만 실라의
사과를 마치 정말로 자신이 하나라도 전혀 잘못한게 없다는듯이 받아들이는 래영의
지금 태도를 래영의 평소 말투대로 하면 다시 이렇게 된다.
「어떡하겠니...살 놈은 살아야지...」
"한 반 남았나? 내가 쓰던 화이트닝 있는데. 몇일전에 핀이 하나 줘서."
"네, 받을께요. 그나저나...핀 오빠가요?"
실라는 그게 뭐 선물이야...이런 말을 하고는 싶었지만 얼굴 표정에라도 비추어져
그게 래영에게 뜨인다면 그 후로 차마 어떻게 될 지를 몰랐기에 드러내지는 못했다.
지금 실라의 체념한듯한 태도를 래영이 즐겨 쓰는 말투대로 하면 또 이렇게 된다.
「어떡하겠니...살 놈은 살아야지...」
"움. 여신이에게도 이건 말하면 안 돼. 괘씸해."
"무언데요."
아직까지 래영의 화가 덜 풀렸는지 그것도 가늠하기 힘들은 판에... 뜨끔했다.
지금까지의 말 봐서는 핀에 대한 말일거는 같은데 실라는 래영이 다음에 할말이
핀의 이야기인지, 여신의 이야기인지 자신의 이야기인지 아니면은 다른 누구의
이야기인지 종 잡을 수가 없었다. 괴씸한것은 또 누구를 가리키는거고.
"핀 지금 색조 화장품 연구중이야."
"에엑?"
조금 어느 구석은 이상한 핀이라고는 들었지만...수 놓는거야, 뭐...글타쳐도그래,
색조 화장품 연구? 실라는 저 말을 내뱉고서 아무런 동요 없이 그저 고개를 갸웃
거리며가만히 있는 래영에게 왠지 모를 야속함마저 느꼈다.
"기존 화장품 성분 분석 중이고. 티로..뭐랬던가. 어쨌거나 인체 실험 중이라고해.
오죽하면 핀리수라고 하겠어."
"...괘씸은 누구..."
"언니야. 언냐...우리 호도과자 사먹어요. 저 쫄쫄 굶었단 말에요."
"그래? 난 아침 먹었는데...더치페이다."
네라고 말하며 애써 눈웃음 치며 밝으스레한 볼을 이모티콘으로 끄적거리면 ^_^;이다.
"호도 이야기 나와서 말인데."
"네."
"무서운 이야기 해 줄까?"
"무슨 이야기인데요."
래영의 화는 다 풀어졌나보다, 이렇게 판단해서인지 두려움에 흐릿했던 실라의 안색이
갑작스레 밝아졌다.
"지금은 부산...조금 오래 전에는 경남 양산에 속했지만. 언니는 거기서 살았었거든.
농부의 딸이 있었어. 광역시에서 농사 짓는다하면 조금은 웃기기는 하지만 그때에는
어쨌거나 읍,군이거든. 반 친구 였는데...몇년전 제헌절에 죽었어."
"네..."
몇 시간을 불안에 떨어서인지 허겁지겁 집어넣어서인지 슬슬 설사를 재촉하는 배에
그저 식은땀만 흘리는 실라이기는 하였지만, 어쨌거나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래영을 다시 긁어놓고 싶지 않았다.
"WTO. UR...우루과이라운드 쌀 개방 이야기 들었었지? ...끝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방되었거든. 농가부채에 시달리다가 부모님은 농약 그대로 마셔서 죽고, 자식들
은 농약을 탄 물에 죽고. 그냥 물이었다면 죽을지 안 죽을지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었을텐데...그때 아마 다시 한번 페놀 유출이 있었다고 했나."
"저..."
실라의 안색이 심각하게 꾸겨져 있는것을 보고 래영과 실라는 말 없이 그저 서로
고개를끄덕였다. 불안하면 같이 가 줄께...라고 래영이 말을 할때쯤에는 이미 문을
열고 앞으로 간 후 였다.
"...작년에는 나 한테 왔었어."
래영은 나직히 이 말을 내 뱉으면서 일어섰다.
아직, 화장실에는 사람이 없다고 불이 꺼져 있었다. 실라는 그렇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인기척을 느꼈다.
"하이? 하우 아 유?"
그 때에,그 곳에 그녀가 있었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Fin de Siecle] Cause I am always thinking about you.
글 다쓰고나서 실라님 추가시켜달란거 기억났어요.(아린님.미안하구요.증인되실레요)
글애서. 애초 있었던 글을죄다 고치고 덧칠하다보니 이렇게 커지게 될지 몰랐네요.
세기말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을까 고심하며..지금까지 발랄 납량특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