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간장의 역사 키코만의 경영주 모기 케이자부로
https://youtu.be/XSlDtJ1Subk?si=QhTxVVaeWtz8deSd
| 70 | 60 | 50 | 40 | 30 | 20 | 10 |
| 甲 | 乙 | 丙 | 丁 | 戊 | 己 | 庚 |
| 子 | 丑 | 寅 | 卯 | 辰 | 巳 | 午 |
1 인물에 대한 평가
모기 케이자부로(茂木啓三郎)는 일본의 실업가로, 양조 간장을 대표하는 키코만의 중흥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지바현(千葉県) 출신으로 선대(先代) 모기 케이자부로의 양자(養子)로 들어가 가업을 이은 경영자이지만 입양 전의 본명은 이이다 가쓰지(飯田勝次)이다. 에도 시대(江戸時代)부터 지바현 노다(野田) 지역은 에도(현재의 도쿄)로 향하는 물길이 좋아 간장 양조업이 발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의 양조업자들은 에도 시민들에게 에도의 맛을 공급하며 명성을 쌓았다. 1917년 흩어져 있던 노다의 양조 가문들이 경쟁을 멈추고 노다(野田) 간장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기업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제2대 모기 케이자부로는 이 가문의 양자가 되어 경영을 맡는다. 그는 노다 지역의 전통적인 간장 양조 기술을 기반으로 기업을 현대화한 주역이다. 기업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표의 통합이었다. 각 가문이 쓰던 여러 상표 중, 가장 인지도가 높고 상서로운 의미를 지닌 키코만(龜甲萬)를 전체의 대표 상표로 결정했다. 키코만은 거북이 등껍질 모양 안에 숫자 일 만(萬)자를 넣은 형태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장수와 번영을 상징한다. 이후 이 브랜드 키코만이 소비자들에게 워낙 압도적인 사랑을 받게 되자 1964년 회사는 지역 이름을 딴 노다 간장이라는 옛 사명을 버리고 아예 브랜드 이름을 딴 키코만으로 사명을 변경하게 된다. 결국 키코만 간장은 노다 지역의 양조 전통을 이어받은 노다 간장이 현대적인 경영 체제를 확립하고 세계 시장에 진출하여 성공한 결과물이다. 이것이 노다간장이 키코만이 된 배경이다.
그는 1926년 도쿄상과대학을 졸업하고 노다 간장에 입사하였다. 1926년 노다 간장에 입사할 당시에 공장은 사기가 저하되어 화재 시에도 소방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을 만큼 노사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상태였다. 1927년 발생한 218일간의 대규모 노동 분쟁 속에서 분쟁은 분쟁, 판매는 판매라는 원칙을 적용하여 사태를 수습하고 경영진의 신뢰를 얻었다. 결국 그는 노사 분규를 원만하게 해결한 능력을 인정받아 선대(先代) 모기 케이자부로의 양자(養子)가 되어 1935년에 가업을 상속받았다. 1962년부터 1974년까지 키코만의 사장을 역임하며 개인 양조업자들의 집합체였던 회사를 근대화하고 업계 1위로 성장시켰다. 간장을 세계의 조밀료로 만든다는 신념으로 1972년 미국 위스콘신주에 현지 공장을 건설하며 키코만을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사랑받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사단법인 조수회(如水会) 이사장, 지바현 경영자협회 명예회장, 지바현 교육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아사히시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다. 1993년 뇌출혈로 별세하였으며 향년 95세였다
2 명조 분석
이 명조는 을목(乙木) 일간이 미월(未月)에 출생하였는데 월지의 본기인 기토(己土)가 천간에 투출하였으니 재격(財格)에 해당한다. 그러나 월간에 신금(辛金) 칠살(七殺)이 자리하여 편재가 칠살을 생하는 재생살(財生殺)의 구조를 이루므로 자칫 일간을 압박하는 험한 명조가 될 수 있다. 다행히 시주의 병화(丙火) 상관(傷官)이 병신합(丙辛合)으로 칠살을 합살하여 제어한다. 이러한 합살(合殺)은 칠살의 흉성을 누그러뜨려 정관(正官)과 같은 역할을 하게 하므로 혁혁한 권위(權威)로 나타나는데 결과적으로 이 명조는 재대칠살식제(財帶七殺食制)의 귀한 사주가 된다.
재격(財格)에서 칠살을 만났을 때 합살(合殺)이나 제살(制殺)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사업가에게 있어 최고의 명식 구조 중 하나이다. 이는 곤경 속에서 오히려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하여 큰 성과를 거두는 인생을 의미한다. 특히 년간의 기토(己土) 편재와 월지의 미토(未土) 편재가 재성의 기반을 이루고 있어 현실 감각과 경제적 판단력이 매우 뛰어나다. 이러한 편재의 기질은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자금 운용과 사업 전략을 세우는 능력을 뒷받침한다.
일반적으로 상관생재(傷官生財)의 구조는 현실적인 작은 이익에 치중하다가 큰 기회를 놓칠 우려가 있으나 이와 같이 칠살이 합살하는 구조가 되면 책임감 있는 통솔력을 보유하게 된다. 이러한 권세는 외유내강(外柔內剛)형 인물의 기질로 발현되며 단순히 장사에 머물지 않고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는 사람을 포용하면서도 조직을 효과적으로 장악하는 지도자의 자질로 이어진다.
성격적으로는 을목(乙木)과 병화(丙火)의 영향으로 겉모습은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그러나 내면에는 신금(辛金) 칠살의 엄격한 원칙과 자수(子水) 편인의 냉철한 판단력이 자리하고 있어 중요한 순간에는 원칙을 지키며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강한 통솔력을 발휘한다.
운의 흐름에 있어서 이 명조는 상관을 희신으로 사용하는 명조이므로 인성(印星)이 들어와 상관을 극(剋)하는 운은 주의해야 한다. 다만, 사주 내의 병신합(丙辛合) 구조가 안정되어 있을 때 수(水)운이 들어오면 관살을 설기(泄氣)하고 일간을 생조하는 조화가 일어날 수 있다.
3 모기 케이자부로(茂木啓三郎) 주요 연혁
1899년 (己亥) 1세: 지바현 가이조군 토미우라촌의 이이다 가문에서 이이다 가쓰지(飯田勝次)로 출생한다.
1926년 (丙寅) 28세: 도쿄상과대학을 졸업한 뒤 노다간장주식회사에 입사한다.
1927년 (丁卯) 29세: 금융공황 속에서 발생한 장기 노사분규를 수습하는 데 기여한다.
1928년 (戊辰) 30세: 상공혼(商工魂) 경영 이념을 제창한다.
1929년 (己巳) 31세: 결혼과 함께 초대 모기 케이자부로 가문에 양자로 입적한다.
1935년 (乙亥) 37세: 초대 모기 케이자부로의 서거 후 가독을 계승하여 제2대 모기 케이자부로를 습명한다.
1962년 (壬寅) 64세: 키코만 사장에 취임하여 국제화와 현대적 경영체제 확립을 추진한다.
1964년 (甲辰) 66세: 회사명을 키코만간장주식회사로 변경한다.
1972년 (壬子) 74세: 미국 위스콘신주에 현지 간장 공장을 건설하여 해외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세계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
1974년 (甲寅) 76세: 키코만 사장에서 퇴임한다.
1993년 (癸酉) 95세: 8월 16일, 뇌출혈로 별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