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해대사의 말에 좌중에는 언뜻 실망감이 번져갔다
"어떤 논의를 말함 인지요 대사?"
하북팽가의 팽도영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우리 구파일방의 장로들은 혈영이란 집단의 무서움을 온 몸으
로 체험한 바 그들을 막으려면 지옥마도란 그 젊은이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결론을 내렸소!"
"그렇겠지요! 그 공자가 도와준다면 우리 백도의 무수한 젊은이
들이 허망하게 스러지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겠지요!"
백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되었소!"
주해대사의 눈에 결연한 빛이 흘렀다. 고승의 그런 결연한 모습
에 모든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우리는 이번 대전에 장천호 공자에게서 칼을 배운 열 네명의
제자를 선두에 세우고 장 공자를 무림맹 총군수장(總軍首將)에
추대할까 하오!"
"대사!"
"그건 너무....!"
"말도 안됩니다 대사!"
여기 저기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무림맹의 총군수장이라면 결전에 있어서 모든 병력을 통솔하고
생사 여탈권을 가지는 자리이다. 맹이 조직된 이상 그리고 무림
맹의 일원으로 출정한 전투장에서는 자파의 장문인 명령보다 무
림맹주와 총군수장의 명령이 우선한다.
맹주나 군사의 명령이 전체적이고 포괄적이라면 총군수장의 명
령은 결전에 있어서 훨씬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맹주가 공격명령을 내린다면 그 명령을 받아 어느 문파의 병력
을 전방에, 또 어느 문파의 병력을 측면, 후면... 등의 결정은 전
적으로 총군수장의 권한이다. 그것은 곧 생사여탈권이나 마찬가
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림맹주자리 다음으로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총군
수장의 자리인데 그것을 사문이나 출신내력 그 어느 것도 제대
로 알려지지 않은 새파란 청년에게 준다는 말은 너무 뜻밖이었
기에 반대의 목소리들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들은 주로 구파일방을 제외한 다른 방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고 구파일방과 사대세가의 명숙들은 무거운 표
정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한참동안 소란스럽던 분
위기도 평정을 되찾았다
"말이 안되기로 따진다면 채 피어보지도 못한 아까운 청춘들이
붉은 피를 흩뿌리며 차가운 들판에 속절없이 쓰러지는 것이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아무리 대의명분을 위하고 신념을 위하
여 한 목숨 던지는 일일 지라도 그 젊은이의 부모들에게는 가슴
을 갈기갈지 찢는 일이지요. 허망하게 죽은 젊은 자식의 시신을
안고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일이야말로 정녕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닐까 하오. 아미타불.....!"
"아미타불....!"
"무량수불....!"
주해대사의 말과 함께 곳곳에서 불호와 도호가 울려 나왔다. 그
들의 눈앞에는 방금 주해대사가 설명한 가슴아픈 장면들이 생생
히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소승은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할 사람들의 피를 한 방울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누가 무림맹주가 되고 누가 총군수장이 되든 아
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오! 지옥마도 장천호공자를 총군수장
으로 정식으로 추대하는 바이오!"
이제껏 어던 상황에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던 주해대사의 입에
서 처음으로 단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허어-"
"이런 경우가...!"
몇몇 작은 음성들이 울렸지만 점차 잦아들고 다시 숨소리마저
죽인 고요가 내려앉았다. 그리고 주해대사의 다음 말들을 기다렸
다
"모두들 다른 의견이 없으신가요?"
주해대사가 경내를 주욱 둘러보았다. 시선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아까와는 다른 표정으로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누군들 자파의
젊은이들이 아깝지 않으랴! 명분과 공명심 보다는 제자들의 목
숨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주해대사를 통해 절실히 느낀 것이
다
"반대합니다!"
정적의 한 가운데서 파문이 일며 한 줄기 외침이 일어났다
모든 시선이 그 파문의 근원지를 향했다
"우리 두령이 무슨 칼 든 무림인들 방패막인줄 아시오?"
너무 뜻밖의 외침에 일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누구신가 젊은 시주는?"
주해대사가 침울한 음성으로 그 젊은이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
다
"풍림방의 자제 영호성이라 합니다!"
"영호성이라면 열 네명의 후기지수 중..."
"그래 맞아!"
작은 속삭임들이 일어났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시주가 반대하는 연유를 들어봄세!"
뜻밖의 사태에 풍월방의 가주 영조윤과 형제들인 영조충, 영조찬
등이 놀란 몸짓으로 만류했지만 영호성이 자리에서 우뚝 일어섰
다
"대사님의 높은 불력과 고매한 인품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
다. 그리고 저 역시 이번 대전에 선두에 서는 것은 조금도 반대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말린다 하더라도 선두에 서서 중원을 짓
밟으려는 무리들을 막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두령은, 우리 두령은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칼 든 사람들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또 우리들 때문에 지금껏 휩쓸려 다닌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영호성의 말에 주해대사나 다른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시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구료! 두령이라니? 그리고
칼 든 사람들이라니?"
"그렇군요! 흥분이 되어서 제 생각만 했군요!"
영호성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여러분들께서 지옥마도, 혹은 암흑마제라 부르는 장천호
공자를 두령이라 부르지요! 이 년 동안 지옥보다 더 힘든 수련
을 시킨 데 대한 앙갚음으로 그런 악의적인 별명을 붙이 것이기
도 하고 정파무림의 후기지수라고 으시대던 우리들이 제왕성 척
마단 무리들에게 속절없이 쫓겨서 아무도 모르는 산 속에 도둑
놈처럼 숨어있는 꼴이 너무 비참해서 우리 스스로를 도둑놈으로
자조하는 마음에서 부른 명칭이기도 하지요! 어쨌든 우리는 그
를 두령이라고 부릅니다!"
영호성이 탁한 한숨을 길게 토했다
"그리고 두령은 우리 무림인들처럼 날 때부터 칼을 들고 칼이
좋아 미친듯이 칼춤을 추든 사람이 아니지요!"
영호성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알고있는 두령의 내력과
제왕성주에 얽힌 얘기들을 지금 밝힐 것인지 아닐 것이지를 결
정하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두령의 최종 목표는 제왕성주이다! 그리고 그와 대면하
기 위하여 우리가 녹림을 점령했고 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영호성이 입술을 지그시 깨문 후 모인 사람들에게 두령에 대한
얘기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허어 그런 일이..."
"그 허허롭던 눈빛이 그런 사연이 담긴 때문이었구려...!"
영호성의 얘기를 다 듣고 난 구파일방 명숙들은 저마다 한 마디
씩 탄식을 토했다
"전 우리두령을 이번 대전에 끌어들이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들
을 살려두고 지금까지 지켜준 것만으로도 영원히 씻지 못할 은
혜를 입은 것이지요. 이젠 제왕성주에 대한 복수도 부질없는 것
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태어났던 깊은 산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돌려보내야지요. 저희들은 절대로
두령을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칼춤은 칼을 좋아하는 사람들 끼
리나 추어야지요!"
영호성이 굳게 입을 다물었다
너무 뜻밖이고 너무 가슴 한 복판을 찌르는 얘기에 경내의 모든
사람들이 한참 동안이나 할말을 잃었다
"이놈 정휴야! 네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주해대사가 소림사내 어느 한쪽 구석에서 술을 마시다 영호성의
고함소리를 듣고 슬그머니 회의장으로 고개를 들이민 정휴에게
눈길을 던졌다
"그렇습니다 사숙조님!"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정휴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칼춤은 칼잡이들이나 추어야지요! 왜 애꿎은 산속 초동까지 끌
어들입니까? 세상이 무림인들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말의 기대감까지 부셔버리며 정휴의 입에서는 더 지독한 독설
이 쏟아져 나왔다
"칼춤이 굳이 싫으시다면야 봉절현 백제성터에 가서 큰 술항아
리를 몇 백 개 준비해 놓고 혈영인지 뭔지 하는 놈들에게 한 잔
씩 권하면 깨끗이 해결될 일들이지요! 세상천지에 내 땅이 어디
있고 네 땅이 어디 있습니까! 죽고 나면 한줌 부토로 흩어져버
릴 것을. 쯧쯧....! 나백상 그 놈은 또 왜 발광인가? 살면 얼마나
더 살 것이라고! 끄윽"
정휴가 트림을 하며 천장을 쳐다보았다
"어허 저놈의 거미는 어디다 함부로 집을 짓는고! 야 이놈아! 네
놈은 마도편 거미더냐 아니면 백도편 거미더냐? 여기는 백도의
땅이니 마도편 거미이면 썩 물러나거라"
정휴가 비틀거리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업보로다!'
주해대사의 심중에 언뜻 한 사람의 얼굴이 떠 올랐다
광승!
소림삼금(小林三禁)의 제 일금(一禁)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의 사
형 광해! 지금 저놈 정휴에게서 사형의 모습이 생생히 살아났다.
누구나 그때 사형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간
의 권위와 전통이 무너질 것을 염려해 서둘러 참회동에 가두고
오십 년 면벽을 명하지 않았던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이
다. 지금 본 저놈은 광해사형조차 혀를 내두를 놈이다. 그때 소
멸시키지 못한 업이 지금 다시 윤회하고있는 것이다
"아미타불!"
주해대사의 고뇌에 찬 얼굴에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대사!"
화산의 장문인 성회수가 얼른 주해대사를 부축하고 회의를 중단
시켰다
"크윽 세상에서 이 술 보다 더 정직한 놈이 어디 있을까?"
비틀거리며 정휴가 걸어나왔고 백중호가 하얗게 마비된 모습으
로 정휴를 쳐다보았다
"야 이놈아! 넌 왜 또 여기까지 따라 온 거냐?"
정휴의 말에도 백중호는 대답이 없었다
"이 자식이 술 먹다 귀까지 같이 먹어버렸나?"
정휴가 툴툴거렸다
"칼춤을 추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한참동안 말없이 정휴를 따라 걷던 백중호가 들고있던 술 한병
을 다 마시고 털썩 바닥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어쭈 이놈 보게! 악마도를 가르쳐 달라고 발광을 할 때는 언제
고 이제 또 딴 소린가? 그렇게 평화롭게 해결되어 버리면 네놈
칼이 억울해서 어쩐단 말이냐? 수많은 사람의 생피를 마시고자
그렇게 시퍼렇게 갈아놓은 것이 아니더냐?"
정휴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술을 털어 넣었다
"미친 짓이야!"
백중호가 맥빠진 소리로 답하며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어허 저놈의 참새는 마도인가 백도인가? 마도라면 소림사에 숨
어든 죄로 능지처참을 시켜야지! 어서 붙잡지 않고 뭘 하고 있
는 것이냐 이 중놈아!"
그 말을 끝으로 백중호의 머리가 옆으로 꺽이며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후후 이놈아! 백도 마도가 따로 있다더냐? 모두 우리 핏줄 속
에 같이 녹아 있는 것이다! 자고 나면 기력이 떨어졌던 마(魔)의
기운이 고개를 들고 칼춤을 추자고 안달을 할 것이야! 네놈이나
나나 백제성터에서 칼춤을 출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것은 칼
을 든 순간부터 이미 정해진 일이지!"
정휴도 백중호의 배를 베개삼아 털썩 드러누우며 이내 코를 골
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ㄳ
즐독입니다
고맙습니다
즐독 ㄳ
고맙습니다
즐~~감!
ㅎㅎㅎ 오늘도 즐독 감사해요
즐감합니다.
감사^^*
근묵자흑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독.감사합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보고 있습니다~~~
즐독 ㄳ
즐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