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우리 아버지 (4)
순야 이선자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할매, 할배, 아재, 아지매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낯선 사람들로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오빠만 일본에서 태어나고, 우리 형제들 모두가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 하능(下能)이란 동네가 우리들의 고향인 것을…
소문은 날개가 달려서 우리 집에 까지도 날아왔다.
상능(上能)에 사는 ‘또한’이 아재(우리집에 머슴으로 살았던 ’삼한’이 아재의
둘째 형님)가 새 방아기계를 사러 갔다고 한다.
오씨들은 우리 집 정미소를 사지도 타협도 안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네 들이 새 정미소를 차린다고 했다.
우리 식구들을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완전히 알몸으로 내쫓겠다는
심보였다.
그당시 필자는 보건소에 근무하고 있었고, 오빠도 진양군 지수면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바로 내 아래의 남동생은 부산대학 공과대 금속과 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여 부산에서 수학(受學)하고 있었다.
물론 작은 동네지만, 하능과 상능, 이 두 동네를 다 합해도 오씨 문중
그 누구도 부산대학 공대에 다니는 사람은 전무후무 (前無後無)했다.
또 필자의 오빠가 진주시청에서 5급(그당시)공무원 공개채용 시험에
치열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합격했는데, 그것도 제3위로 당선되어
감사실장이 따로 불러 원하는 지역이 있느냐고 물었다한다.
시청의 유래에 1-3위 까지는 본인이 원하는 지역에 발령을 내린다고.
그 감사실장님(김한배)은 훗날 울산시장님이 되신 분이었다.
오빠는 그 당시 너무도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사람이라,
부탁한다는 뜻으로 들릴 것 같아서,
“그냥 아무 곳이라도 보내주시는 곳에 가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지수면에 발령이 났다고 한다.
나머지 동생들도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우수하고 모범생들이라,
누구네 아들 딸 하면, 이 아무개가 참으로 자녀들을 잘 두었다고
다들 부러워했다.
그런데 화목한 우리 집을 시기하는 귀신이 붙었는지?
하루아침에 우리 집은 근심과 걱정으로 암울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밤에도 잠 못 이루고 계속 한숨만 쉬시는 엄마와 아버지의 마른기침소리,
어느 누구와도 의논할 상대가 없었던 이 막막한 상황을 생각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우리가 이 동네를 떠나더라도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한 후에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불일 듯 일었다.
오 씨들과의 냉전이 거의 2주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정종(막걸리보다 한 수 높은 술)한 병을 사서 들고 도전아재(오계준)를
찾아갔다.
도전아재는 농악대의 단장이고,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분이라,
동네어른들도 그를 두려워했다.
술 한잔을 따라 드리며, “아재, 아재도 우리 아버지 성품을 잘 아시지만,
해방 이후 이 동네에서 정착하며, 리장으로서 얼마나 많은 봉사를
했는지 잘 아시지요? 그뿐입니까? 보리고개 때마다 밀가루 풀어 굶는
사람들 도와준 것과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첫 수확의 세를 받지 않은 것과
심지어 알루미늄 냄비꼭지까지도 땜질해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서
동네어른들의 칭찬이 자자했는데, 이제 와서 은혜를 원수로 갚는 셈
아닌가요? “
“니 아버지에 대한 일, 나도 정말 미안하기 짝이 없지만,
내가 무엇을 해 주길 바라니? “
“아재, 이 술 한 잔 드시고 개박골 바위 위에 올라가서 한 번 외쳐 주이소!
이 양심도 없는 동네사람들아! 이서방한테 그 어느 누구도 도움 받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한 번 큰 소리로 외쳐보세요!
그리고 우리 동네사람들 만이라도 아버지와 타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첫째, 언제든 우리 아버지가 이 동네를 떠나고 싶어 하실 때, 본인 자유의지로
떠나게 해 주세요.
둘째, 동네 사람들이 새 정미소를 세우지 말고, 우리 정미소를 합당한
가격으로 사주시면 대신 방아기계가 고장이 났을 때 언제든 아버지가
고쳐주신다는 전제하에서.
셋째, 우리 외삼촌이 우리에게 도지로 판 논과 밭이 많으니,
이제 농사나 지으며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해도 순응할 것.
나의 간곡한 설득력에 공감이 갔는지, 도전아재는 그날 저녁,
어둠이 내리고 하나 둘 호롱불을 켜는 집들이 늘어갈 때에
개박골 바위 위로 올라가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로 외쳤다.
이 개박골 바위라는 곳은 동네가 한눈에 들어오는 한복판인 데다
그곳 바위 위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외치면 마을의 스피커 역할을 했다.
앞산이 바로 코앞이고 산 밑을 돌아 개천이 흐르는데, 이 바위 아래까지
와서는 작은 폭포수를 이루며 폭포수 아래는 늘 물이 고여있어,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이 깊은 곳이었다.
그날 저녁 도전아재의 우레 같은 목소리가 동네를 뒤흔들자, 당장
그다음 날부터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다음 호에 계속)
아래는 Niederwald의 언덕에 올라가서 내려다 본 라인강
아래는 Niederwald 언덕에 프랑스와의 전쟁이 승리로 종결된 후 이를 기념하는 탑인데, 어머어마하게 장대함
아래는 루데스하임의 언덕에 세워진 수도원,힐데가르드 폰 빙겐(Hildegard von Bingen)수녀님을 기리기 위한 수도원
1098년에 태어났고, 수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조언자, 약초로서 온갖 병들을 치료하는 의사, 교황님들과의 390번의 서신 왕래와
그 외에도 주교님,세계의 지도자, 왕족들과 그리고 서민들 까지도 수녀님에게 조언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1098년 출생, 1179년 사망하기 까지 수녀님은 수많은 교회음악 작곡과 설교자, 예언자,
1227년에 처음으로 성녀로 추앙되었음.
Niederwald 언덕아래있는 파빌용, 날씨가 좋아 사람들이 주위의 경관을 즐기는 모습들
첫댓글 장녀로서 장남의 역활까지 다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슭기롭게 대처하여 명예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는 머리가 숙여집니다.
당시 애쓰고 마음 고생한 수냐님의글 우리가문의 기록으로 영원히 남을것입니다.
소설같은 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이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상흔으로 남겠지요.
포도주 만드는 키 작은 포도나무도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