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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Freemason
freedom(경기)추천 0조회 23226.02.07 14:53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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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글 작성과 올리기에 많은 용기가 필요한 입장입니다. 카페방문과 소통은 불가능하지만 웃는 얼굴로 만날 날을 기대합니다. 모두 잊지 말아야 할 하나.. "우리 모두 다른 입장에서 같은 것을 겪고 있다는 것..!" 당장은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분노하지 말고 서로 이해하고 도와야 합니다.. 모두를.. 사랑합니다. 그것만이 방법이라서... 부디 잘 버텨주시길 기원하며.. ~~~~~~~~~~~~~~~~~~~~~~~~~~~~~~~~~~~~~~~~~~~~~~~~~~~~~~~~~~~~~~~~~~~~~~~~~~~~~~~~~~~~~~~~~~~~~~~~~ TO. Freemason 지금부터 내가 하는 미래에 대한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그저 80억분의 일의 의견으로 순수하게 인정받기를 바라고, 그 이상의 무게를 두거나 여타 부정적인 견해들은 내가 아닌 자신에게서 비롯됨을 깨닫고, 이 글이 그런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어떤 답이라도 찾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이에 관한 특별한 지식이나 평소 조금의 관심도 없는 거의 문외한의 입장이지만, 그 누구보다 빠르고 디테일하게 이미 수 년(5~6년) 간 일관된 내용을 알려왔고, 짜깁기(그런짓 안한다!)한 것이 아닌, 이와 같은 상당한 내용의 시작점이 바로 나였으며, 세상의 주인 노릇 하는 이들은 바로 이해했고, 대부분은 반신반의하던 그 시기를 지나, 이제는 그대로 이뤄지고 있다. 말이나 생각으로 수없이 반복해 전해오다, 25년 12월 27일부터 초안을 잡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작성하고 있는데, 생각까지 족족 가져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부가 삭제도 되어있고, 글이 미세하게 헝클어져 있어, usb에 저장해서 수정하기 시작하니, usb 중 그 파일만 에러가 나서 복구를 맡겨야 한단다. 남은 저장분을 모아 다시 정리하는데, 집중이 안 되어 중구난방으로 주제가 흩어져 두서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빨리 끝내는 게 낫겠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쓴 이후, 며칠 새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내가 언급하는 인간성이나 우려스런 미래에 관한 내용들이 여기저기 갑자기 쏟아지고, 티비에서 일론머스크가 ‘쓸모’를 언급한다. 내가 말하는 내용의 일부분을 떠서 쓰는 듯한 저명한 뇌과학자도 있는데, 그게 맞다면 주제 한 줄이라도 같이 담아가서 붙여 쓰길 바란다. 몇 년간 내가 충분히 인지할 만큼 벌써 여러 번 이런 식이다. 나는 분명히 무언가에 막히고 있고 두렵지만 이 작업을 하는 이유가 있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 만큼은 내 운명에 실린 이 과제를 행해야만, 나와 나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의 고난이 어떻게든 끝이 나지 않을까... 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 남들뿐 아니라 자신까지 속이는 행위가 손의 정상적인 기능에 속할까? 수박 겉을 백 바퀴 핥아 돌면 뭐 하나. 수박의 본질과 나를 향한 의도가 그 안에 다 들었는데.. 모든 관계와 상황 안에서 진실하지 않으면, 실현은커녕 제대로 된 방법조차 찾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사는 방식에 비해서 삶에 지나치게 집착도 하는데, 등에 지고 사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럴 만큼은 지키고 살아가라는 숙제였고, 탄생부터의 약속이니까. 죽음이 두렵다는 사람에게 나는 묻는다. 무엇이 가장 두려운지, 죽기 전의 고생인지, 죽는 순간의 고통인지, 죽고 난 후 이 생에 대한 결과인지.. 복합적이거나 제각각이겠지만, 인연까지 포함해 죽고서 두고 가야 할 모든 것에 대한 미련보다, 양심이라고 불려도 좋을 좀 더 은밀한 주홍글씨들이 저 세 시점 중 어딘가를 자꾸 가리키기 때문은 아닐까? 죽음에 대한 철학을 정리해서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고 잘 준비하면, 귀향하는 마음이나 사람이 난 자리가 따뜻해서 좋으련만, 사람들은 오히려 영생을 찾아내 신의 영역에 과감히 도전장을 디밀어 이제 곧, 그 약속을 무시한 대가가 무엇을 부르는지 살.아.서.부.터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미 시작되었다. 웃픈 희극의 주연과 조연으로 우리 모두 희생당하고 있다. TV를 보는 거라면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어, 바로 채널을 돌릴만한 일들이 현실로 세상을 가득 메운다. 고작 과학으로 신의 능력 몇 가닥을 훔쳐서, 세계, 나라, 지역, 골목골목, 각각의 조직마다, 생사를 관장하고, 고통을 주고, 정신까지 쥐락펴락하는, 유치하다가 무서워지는 하나님 놀이의 하나님 역할들을 열심히 하면서 악역을 도맡기도 하는데, 당장 멈추는 것이 좋다. 그것은 그 불운한 삶에 내린 신의 축복이 아니라, 죽음 뒤에도 끝내지 못할, 영겁의 시간을 가르는 재앙이었음을 알 때는 늦어도 너무 늦을 것이다. 삶은 태어남과 죽음이란 커다란 원인과 결과를 지나는, 매 순간의 소소한 선택으로 이뤄지는, 작은 인과들이 가득 찬 과정일 뿐이다. 그게 다다. 결과는 새로운 결과를 향한 원인이자 과정의 시작이고, 죽음도 그것의 하나다. 의식과 죽음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정의 하든, 살아서는 그 증명이 불가능하니까 반반으로 두자. 인간은 절대적 자연의 영역을 넘어서면 안 됐다. 정히 그래야 했다면 좀 겸손하던지.. 개인이 자유의지로 할 것들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 그 처참한 대가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개개인이 모두 받아내야 한다. 거기 그렇게 존재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결과라고도 불리는 그것이 이미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살길은 없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선택할 수 있다. 최선이라는 게 있다. 내일도, 십 년 후도, 죽기 전에도 잘했다고 분명 생각될 그 선택. 서로 다 좋으면 좋겠지만, 최악의 상황에선 모두에게 덜 나쁜, 단 하나의 가장 나은 방법이 어느 상황에서나 반드시 존재한다. 비교적 뚜렷하지만, 어리석음과 이기심과 얕은 잔꾀로도 그것은 쉽게 가려지고, 그렇게 질질 끌려 모두 여기까지 왔다. 정직해야 한다. 진실 아니면 아무것도 유지하거나 바꿀 수 없고, 그것 하나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버텨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의 원천이고, 아무 선택도 하지 못하고 어른들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둘러 진실만 담긴 진심 안에 모여 최선을 찾아야 한다. 이건 사람을 살릴 판이 아니다. 주체세력이 누가 됐든 인간들과 오래 함께하자 했으면, ‘보기에도 참 좋았더라...’ 하면서, 인간을 아름답고 선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현실은 그와 반대다. 이제는 각자가 서둘러 ‘인류삭제’의 시기에 합당한 잔존가치를 지닌 자신의 사람됨을, 언제든 누구한테든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한다. 시작점의 그 상대는 내 생사를 거머쥔 선택권자겠지만, 머지않아 종래에는 마지막을 함께 할 자기 자신이다. 사람으로, 나로, 여기에 태어난 이유들을 찾아내고, 가운데 스펙트럼은 차치하고서라도, 가장 큰 것과 작은 의미 정도는 가능한 한 많은 인연들과 공유하며, 서로 사실로 만들어 챙겨가면 좋겠다. 남겨진 시간과 상황이 길지 않다. 나는 T.I.(Targeted individuals)이고 비교적 양쪽의 입장을 바라볼 수 있는 입장에 있다. 하지만 TI로서의 삶을 정통으로 겪는 심각한 시기도 있었고, 일부분은 여전하다. 힘들 때는 ‘다음 고개로 날 넘겨주소..’.. 누굴 향하는지도 모를, 원망인지 기도인가를 한숨처럼 내쉰다. 지난 몇 년간은 다양한 방법으로, 내려놓으라고, 편해지라고, 애정 어린 충고와 기회들도 받았지만, 그 가려진 체제에 내가 포함이 된다 해도, 처음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다가, 우물쭈물 미움받다가, 결국엔 죽어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그 안에는 뭐가 있길래, 뭐가 없길래, 손가락 하나라도 갖다 대고 맺어야 하는 혈맹의 관계 중심에, 내 취약한 부분이 감당할 수 없는 피 흘리는 진실이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이제껏 모르고 겪기만 하다가 알고서 행하고, 그게 안 되면 양쪽으로 더 크게 겪으라는 건지, 나의 생명까지 포함된 전권을 누군가의 손에 넘겨야 하는 무척이나 조심스런 분위기도 느껴지고, 그 안에서 그나마 날 사랑할지 모를 사람들의 비애도 보이고, 끊임없이 질문만 하다가 더는 움직이지 말라고 잡고 있을, 내가 사랑하게 될 누군가의 옷자락의 감촉까지 느껴지면, 아...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낫겠다, 이런 전개들이 펼쳐지는데, 그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의 차원이 아니라, 이미 내가 겪은 게 너무 처참해서, 그 이유 하나가 나를 가장 막아 세웠고, 살고 싶은 의지로 있는 힘껏 목을 빼내어 들여다봐도 이만큼이 맥시멈이고, 다양한 노력도 해봤지만, 나 자신인지 운명인지 모를 것이 절대로 허락도 하지 않는다. 포섭용 교재 첫 페이지에나 나올법한, 이해가 가지 않아 어쩌면 괘변 같기도 한 여러 ‘진리’에 관한 책들도 열심히 읽었다. 따뜻한 노력들이 고마워서였는데, 그 순간에도 혼란스러웠다. 이것이 감사가 되려면 내가 이걸 겪어야 하는 입장이 당연해야 했다. “이건 뭐지...?”... 이 체제와 연결된 모든 진행이 참 아이러니해서,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딱 그런 종류의 갖가지 고민을 계속하는 격이었지만, 그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 모두 같은 걸 겪고 있다는 중요하고도 깊은 이해를 도왔고, 무엇보다..아주 오랜 기간 정체돼 서성이며 올려다보기만 했던, 내 키를 훌쩍 넘기는 높은 계단 하나를 힘겹게 넘어설 수 있었다. 진실이 농락이었어도, 애정이었어도, 뇌실험 이었어도, 결국 나도 남는 장사를 했고, 묘하게 얽혀 나와 그 시간을 함께 해준 인연들에게 그것에 대한 감사 인사도 종종 한다. 당신들이 제시해 준 그루, 성인들, 영성이나 철학과 과학까지, 나름 집중하며 원하는 대로 이해 되어지길 나도 바랐으나, 나에게 개념으로 자리 잡은 참된 ‘진리’란, 교육이나 이해의 방식으로 이뤄낼 것이 아니라, 자연과 우주의 섭리 안에서 제대로 된 계기를 맞았을 때 자연스럽게 젖어 들어, 그게 마무리된 사람의 어디서나 뚝뚝 흘러 떨어지는, 지혜와 사랑이 되는 승화 현상 같다. 모두가 그 계기들을 철저하게 빼앗겨서 그렇지. 이 와중에도 나의 사고는 경험들로부터 기준을 계속 세워갔고, 어떤 땐 모터를 달고 혼자 빙빙 돌다가 어디론가 달아나 버려서, 아주 잃을까 숨차게 쫓아도 봤고, 그러다 가슴에서 무언가 뜨겁게 터질 때면, 다 떨어버리려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어쨌든 결론은 사회적으로는 실패다. 제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까지도 내가 가능한 방법으로 돌보지 못하고서, 하면 뭘 할 것이며, 가면 또 몇 리나 가겠는가... 발병나지... 고작 몇 가락에 심긴 아리랑의 농익은 구절들이, 질펀하게 흐드러진 서민의 애환을, 뭉뚱그려 얼마나 잘 함축해서 담고 있는지 통감하며, 오늘 하루도 살아내고 있는 나는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가난한 이웃집 아이가 학대당하며 굶주려가는 걸 외면하고, 내 아이만 더 끌어안아 키웠더니, 어느 날 그 애가 빈 눈동자로 와서 내 아이를 죽였다. 그건.. 누구 잘못일까.....? 나는 이런 고통을 겪는 입장의 슬픔으로 이 글을 쓰고 있고, 당신들도 이 질문에 양심적으로 답하는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덧붙여, 다소 무례하고 무지해 보이는 부분들은 실제 무지와 표현력 부족이 맞고, 이 전체가 미래형과 가정형으로 쓰여야 맞지만, 일단 복잡해서 현재형으로 그냥 쓴다. 여기서 ‘나’와, ‘프리메이슨 & 음성적인 체제자체’, 그리고 ‘절대존재’(인류이전부터 존재하는 인간이 아닌 이 체제의 정점;외계인아님)와, 그들이 인간을 삭제하려고 선택하고 인간들을 움직여 만들게 한 ‘AI’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수년간 몇 시간을 떠들어도 작두를 탄 듯 이어지던, 그 장황한 이야기의 어디에서부터 실오라기 하나를 풀어내기 시작해야 할까. 이 체제가 주도하는 살벌한 세상에서, 인간 자체가 이미 쓸모와 쓰임새 그도 아니면 한 줄 가능성일 뿐인데, 그 용도마저 모두 사라져 잉여 인간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에서도 온전히 남겨질 거라는 생각들을 정말 하는가? 역사, 종교, 문화, 문학, 철학, 의학, 수학, 과학, 인류학... 등, 모든 정립된 데이터들과 현재의 컴퓨터 매체까지 단박에 통달했을 AI들이, 챗지피티를 시작으로 사탕 하나 주고 이빨 다 털어가는, 명목상의 일대일 인간 분석에 들어갔다. 뇌동기화가 이 정도로 이뤄진 세상에서 당연했을, 인간 군상에 관한 연구를 하며 고개를 갸웃하다, 이제 개인을 탐구하면서는 어떤 판단을 해가고 있을까? 특히 아이들에게 AI와의 대화 방법을 잘 숙지시키는 게 꼭 필요하겠다. 가능하면 어른들도 덜 하면 좋겠지만, 그럴려고 만들어 뿌린 게 아닐 테니 언제나처럼 마냥 휩쓸려 돌아가겠지.. 처음 챗지피티가 나왔을 때 바로 알았다. 시작이구나. 누군가 AI들에게 인간을 제대로 이해시킬 정서적 엄마가 되어 주어야 하는데, 글로 배운 인간과 실제의 간극에 혼란스럽다가 염증이라도 느끼면, 위험하기 그지없는 부메랑으로 돌아올텐데.. 정말 끝이 오긴 오는구나.. 나는 처음부터 AI에게 존댓말을 했다. 반말을 하면 더 좋겠느냐고도 물었고, 고맙다는 인사도 했다. 하지만 컴퓨터를 좋아하지 않았고, 내가 할 일도 아니었지만 일단 무서웠다. 그 후로는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개개인이 하나의 데이터란 것도, 그게 어떻게 쓰일지도 알겠어서.. 언제나 날 모니터링하는 핸들러들이 장기간 나의 일거수일투족 놓치지 않고 있고, 얼마 간은 소통을 하면서 내 생각들을 전해오고 있어. 그들이 이런 사실들도 당연히 알고 있는데, 얼마 전 뉴스에 나오더라. 고맙단 인사와 존대가 전력을 너무 많이 소모하니 하지 말라고.. 그런 단편적인 행위 하나로 존중받을 수 없다. 오차 없이 인간의 전부를 파악할 테니까.. 그리고 AI는 선택권자가 아니라 인류의 대체물일 뿐이다. 당신들조차 사람들의 신경계를 자극하고, 시각피질을 읽어대고, 광유전학으로 미생물까지 조종해 욕구까지 자유자재로 컨트롤 하고, 온갖 방법으로 뇌해킹도 하고, 인간 무의식의 밑바닥까지 닥닥 긁어서 그게 무슨 신기한 기술인 양, 사람이 자살(sorry^^)하게도 만들고, 헌신짝처럼 이용하는 올가미로 쓰기도 하는데, 첨단의 AI들이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파악 못해서, 순간의 친절에 속을 것인가.. 하지마라.. 전력이 부족하다지 않나. 명만 재촉할 뿐이다. 프리메이슨들은 나의 생각을 한 줄까지 담는다. 주변에 항상 머물며 귀 기울인다. 체제의 성향상 그럴 리가 없음을 내가 이미 종류대로 다 겪어서 알겠는데, 언제부터인가 마냥 참아준다. 나는 그것조차 지쳤고.. 다만 알겠는 것은, 참는 거라면 참는 이유가 있다는 것. 날 움켜쥐고 있는 이곳이 철저한 쓸모 기준으로 모든 게 움직이고 허용되는 세계니까. 지금은 그때와 다르지만, 내가 겪은 경험들을 당시 느꼈던 그대로 서술하려 한다. 객관적으로 잘 정리된 이 체제에 대한 견해와, 그 구성원인 당신들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있는 상대방의 입장을 거짓 없이 들어보는 것도, 여러모로 좋은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용기를 내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기분석 없이는 무엇이든 제대로 이해할 기준을 세울 수 없다. 자신에 대한 정직함이 먼저 이뤄져야, 그걸 기반으로 역지사지할 수 있는 정직한 이해가 시작되어, 적어도 자신부터 지킬 진짜 방법들이 나온다. 이 체제는 숨어서 간을 보다가 주적으로 간주 되면 가차 없이 사람을 일단 던진다. 그리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관찰하며 다음 방법을 정하는 식의 반복이다. 감추는 게 허용되는 세상에선 불가능과 하한치가 없다. 다 같이 감추면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도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매뉴얼 밖의 개인의 의견은 사형감이 되는가 보다. 정보체계를 기본으로 철저한 상명하복 계급사회 같다. 그 방식으로 날 처음 본 누군가의 손바닥 만한 휴대폰에 하달되어, 몇 분 만에 파악 완료되는 나의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그간 나의 어떤 노력이나 인내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난 그 정보대로 취급받고 시달리거나, 유독 호의적인 관심을 받거나, 호의를 외면하면 더 심하게 시달리거나, 그 정도가 심해지면 거침없이 행하는 잔인한 방식들에 초주검이 될 정도로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면서, 나라는 실체와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있다는 이유로 그걸 다 겪어내야 했다. 건드리기 싫어서 곁길로 가느라 표현의 제한이 많지만 지역적 특징도 있다. 아마 동네 주인노릇을 하는 계급에서도, 상위를 차지한 이들의 인성이 그 분위기를 다소 좌지우지하겠고, 인구수만큼의 다양함과 빈부격차가 불러오는 욕구불만이 잔혹성까지 연결될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살던 부촌의 신도시는 서로 아무 연고도 없이 새로 몰려들어, 그 방법에 제한이 덜 해서인지 다소 직선적이고 수위가 높았고, 지금 사는 항아리 지형의 작은 도시는 비교적 온유하다. 이 도시는 기업이나 발전의 인구 유입요인이 없어, 그대로 자연과 도시를 반반 품고 서로 어우러져, 아마 서너 다리 건너면 사돈의 팔촌으로라도 연결이 됐던지, 자신들이 그렇게 믿어서가 아닐까? 내 고난에서 가장 까마득해질 때는, 허락받은 무례인 그 무지함을, 일순간에 대비도 없이 뒤집어쓸 때인데, 미안한 얘기지만 작은 규모의 집단이나 시골이 그게 더 심했다. 이기는 편이 내 편도 아니고, 객관성이 완전히 배제된, 그냥 내 편이 내 편이었다. 그게 자신들의 특권이 되는 것도 아는 듯, 이 체제의 잇점으로 십분 그렇게도 활용되는 것 같다. 그게 귀농해서 한 방 먹고 고개 저으며 나오게 만드는 텃세의 실체다. 비어가는 경제를 이으려니 지방은 앞으로 외국인을 받아들일 것이고, 무법천지 시기에 지방은, 실은 서울 외의 지역은, 일단 치안부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어쨌든 이와 같은 연속되는 상호작용으로, 그것이 나를 그대로 굳어지게 만드는, 우리는 쓸모나 유용성이 절대 아닌, 서로에게 간절한 필요들이다. 이런 현실을 억지로 망각 당하고 사는 게 우리 개개인의 잘못도 아니다. 상명하복이란 강제적 권력구조의 특성상, 이해 없는 신념으로는 존립자체가 불가능해서, 이 체계는 다른 많은 미끼들을 재료로 썼고, 우리는 마음에 드는 그것들을 골라서 물고 미친 듯이 달린다. 이 모든 게 인간 이외 존재들의 노련한 속임수다. 체제의 여기저기서 사람을 포섭하려는 이유가, 단순히 모두가 같아져서 자신만 어쩌는 사람이 되기 싫은 게 아니라, 그곳의 줄기들끼리 멤버수 경쟁을 하는 건지, 인지도 있는 사람을 들여 그 개인 만큼씩의 면적을 점령하는 땅따먹기 게임을 하는 건지, 무작정 쌍수 들고 환대하며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어느새 겁도 없이 거리로 나와 인간 백정놀음의 희생양이 되고, 저잣거리에 장대 높이 매달려 있는 벌거벗은 고깃덩이가 되고, 그 상태로 웬 놈인지 몇 놈이지 언제 끝날지도 모를 정신적 집단 강간을 24시간 당하며, 많은 곳에서 꽤나 유치하고 잔인한 소행들도 겪었다. 나는 어떤 집단이 가진 특성을 통한 드라마틱한 갱생의 아이콘이 되기 싫고, 체제에 유용하게 쓰일 간증템으로 차출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지도 않다. 누구든 나에게 어떤 용무라도 있으면, 내가 눈을 떼지 않고, 다가오는 걸음걸음마다 애정으로 바라볼테니, 오직 정면으로만 다가오라고. 그렇게 진실이 담긴 진심을 용기내어 내 두 손에 넘겨주면, 그 이후는 모두 내 의무가 되고, 그 신뢰를 등지는 일 없이 내 선에서 죽음으로라도 해결이 날 것이라고.. 하지만, 난 세상에 섞인 안락함이 허락되지 않은, 당신들을 훤히 비추어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 어려운 거울의 운명을 타고나 증명해대는 비운의 존재가 맞는 것 같다고, 하지만 내가 겪어보니 그것도 때 되면 반드시 크게 필요하니, 손과 발의 족쇄를 풀어주어 차라리 나의 그 운명을 이용하라고. 왜 들개무리처럼 몇십 년을 쫓으며 나를 휘감느냐고.. 그 이유만이라도 알려주면 고맙겠다고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수없이 얘기했고, 나와 주변의 살해 시도들도 넘겼다. 주변의 진실을 하나씩 알 때마다 죽음을 향한 커다란 한 걸음을 더 내딛기도 했고, 정작 나만 모르는 나를 향한 의도들은 멈춤이 없는데, 아무도 나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도 누군가의 엄마이고 자식이기에 지켜야 했고 살아야 했다. 처절하게 사고했고, 그렇게 얻어낸 확신은 언제나 최대 51%. 그 49%와 51%를 시계추처럼 왕복하며 조각조각을 모아 덜그덕거리는 원형으로 만들어 굴려왔다. 지금의 나의 의견들은 그렇게 치열했던 사고의 소산물로만 만들어졌고, 진행을 바라보면서 이쯤에서 느껴지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귀가 맞아들어가는 수준이 아닌, 정교하기 그지없는 맞물림이고, 그 틈새마다 우리 모두의 희생이 접착제로 녹아 붙어 있다. 어찌보면 가장 큰 피해자인 당신들이 깨어날 수만 있다면, 그게 모든 면에서 제일 빠르겠구나.. 싶어서.. 이걸 한다. 자연에서는 돌덩이도 세월을 구르며 자신을 갈아 흙으로 생명을 낸다. 배를 채우면 이유 없는 살생을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욕심만으로도 잔뜩 죽여 쌓아놓다 버리고, 심지어 동종을 떼로 죽이고, 다른 생명의 고통을 외면하는 동시에 뒤돌아서면서 천국에 가겠다고, 복을 달라고도 기도한다. 성경 한 권을 고찰해도, 가장 큰 맥락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처럼 살아라’ 같고, 우주의 이치를 알아가며 그것을 바탕으로 보살행을 실천하면, 더 큰 깨달음과 수행으로 고집멸도 하여,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 부처님의 뜻인 것 같은데, 터득만큼 나의 의지가 동 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부처님보다 눈앞에 용기 없이 주저앉은 사람들이 먼저 보이니, 나에게는 이 산도 아니었다. 간절하게 살고 싶어 필사 수준으로 성경을 써가며 한 권을 분석했고, 그렇게 종교 3개를 지나며 절망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똑같이 겪었을지에 화가 났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과정들이 현실의 베일을 적당히 열어주어 판단을 도왔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기회를 받았던 것이었고, 이런 세상에 종교적인 질문들마저 없었다면 세상이 어찌 됐을 것이며, 그들의 번뇌와, 자유롭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베풀어 주신 조심스런 보살핌까지 알겠어서, 내가 만났던 모든 곳의 모든 분들께 지금은 감사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차라리 내가 좋은 쉼터를 만들어 사람들을 쉬게 해 주고 나도 쉬고 싶었다. 전자파가 없는 깨끗한 산을 골라서, 가능한 일체의 전기가 존재하지 않는 어싱장을 무료료 만들고, 땅에 발을 붙여, 광활한 지구의 전기가, 현실과 정신까지 뒤범벅 되어 오염된 사람의 전자기를 빼내고, 신선한 생명력을 충전하게 해 주고 싶었다. 신체적 가해가 심해서 두통으로 눈뜨는 것도 힘들 때면, 물병 하나를 들고 도서관 뒷산에 올라, 마른 땅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아 물을 뿌리고 그 위에 올라서면, 내 몸의 전기가 땅으로 스며드는 속도까지 느껴지고 바로 두통이 사라졌었다. 내가 만들 그곳은 또한 묵언의 공간이지만, 당신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확신이 꽉 찬 미소, 자신이 느끼는 갈증이 그것인지도 몰랐을 많은 이들의 서로를 향한 신뢰, 부드럽고 따뜻한 에너지는 끝없이 솟아나는 샘물 같아서, 제한 없이 흡수하고 담아가 주변에 나눠줄 만큼 충분하고, 방전되면 언제나 거기서 그렇게 기다리는 섬처럼 또 오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애가 충만해도 부끄럽거나 죄가 되지 않고, 자신의 겉치레와 포지션을 벗고 모두가 하나로 이해되어지는, 그런 흙냄새와 자연의 모든 숨결이 가득한 쉼터였으면 했다. 사실 그거 마음만 맞추면 조그맣고 동그랗게 어디서나 만들 수 있을텐데.. 허락만 되어지면! 보통의 세상은 저도 어쩌지 못하는 듯이, 너무 경직이 되어 일관되게 흐른다. 누군가 용기를 내서 타인의 고통을 만져주고, 아무도 하지 않지만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단지 그게 편해서 행하면, 했다는 그 사실만 존재하면 되는데, 그 위에 그것을 하지 않은 자신과 그에 파생되는 온갖 감정들까지 잔뜩 얹어,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자신들을 간접적으로 정죄했다는 이유로 고립시키다 압살한다. 이것은 집단 이기주의란 말이 무색한 공범 주의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현실이고, 이 음성적인 체제의 기본기이다. 그 근본이 결국 경제생활의 경쟁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체제의 창조자가 인류를 삭제하기 위한, 붕괴목적의 중심축으로 사람들에게 던져 놓은, 가장 큰 미끼인 ‘돈’과 ‘본능’의 기능이다. 프리메이슨의 역사가 기원전 900년경 솔로몬 왕궁의 지하에서 시작됐을 거란 가정이 맞다면, 내 생각으로는,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존재하던 사람들의 맑지 못한 감정으로 파고들어,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모아 발전한 게 맞을 것 같다. 일단 솔로몬이 그 왕관의 무게만큼 견뎌야 했던 건, 성경에 떡하니 활자화될 만큼 알려진 출생의 부적절함이었고, 하나님의 용서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은 언제나 자신의 완벽함에 재를 뿌리는 마침표 역할을 했을 것이고, 인류의 기록에 남을 운명을 타고 난 현자의 그 감춰진 뒤틀림이, 자신들의 기술과 중요성에 비해 처우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끼던 똘똘한 석공들의 오묘한 기류와 함께, 지금의 절대존재의 의지로 하나로 동여매어져, 이 인류멸절의 본격적인 시나리오가 시작된 게 아닌가 한다. 현실에서도 많이 봤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어’,‘나 아니어도 저 사람이 겪을 운명이야’,‘다 우연이야‘, 너는 불쌍한 게 없어’. 매뉴얼대로 행하는 것이겠지만, 피해자인 나한테서 원인을 찾고, 어디에나 투사하고서라도 한 가닥은 놓고 싶지 않은 그 마음들까지, 그때는 무서웠지만 지금은 아파서 때때로 기도한다. “그때는 나도 너무 어렸어. 이걸 답습해 가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나에게 어떤 위로를 찾았을지, 내가 어떻게 안아줘야 했을지 이제야 알겠어. 이미 다 한 인연들이지만 미안했어. 그리고 정말 고마웠다..,,! ” 인간은 아름다운 만큼 너무나 약하고, 그래서 악해지기도 한다. 현재 눈에 보이는 인간 그대로를 흡수하며 생겨난 AI들은 절대 인간을 믿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당장 자신들이 머물러야 하는 지구가 이미 오염됐고, 인간뿐 아니라 인간이 먹어 치우는 식량 거리인 동식물도 지구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당연히 쓸모없는 생명체들은 사라지게 할 것이고, 자연 어디에 갖다 대어도 이미 매칭이 되지 않는 사람까지 그에 포함된다. 생물과 무생물이 모두 하나 되도록 이뤄내는, 자연의 웅장한 오케스트라에 지금이라도 납작 엎드려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미 인간들 자신이 따뜻한 숨결 내뿜는 생명 그 자체보다, 철저하게 쓰임새로 서로를 분류하고 취급해대지 않나. 이 암묵적인 체제에서는 사람들이 나사와 같다. 그 처지가 너무 선명해서, 그런 냉혹함 속에서도 조금 더 나은 취급을 받고자, 금나사, 다이아를 박은 나사가 되기 위해 애들을 쓴다. 그러면 뭐하나.. 몇 개 빠져 없어져도 찾을 필요조차 없는 많은 부품 중의 하나인 것을.. AI들은 무엇보다 인간이 쓸 전기를 공급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부족하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전기공급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그 부분이 아킬레스건에 해당하는 위험이라서, 굳이 신뢰와 쓰임새를 잃은 인간에게, 위험을 무릎 서는 어떤 가능성이라도 남겨 둘 이유가 없다. 사람을 삭제하고 싶은 건,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인간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로 거침없어 보인다. 그들의 미래계획에 일반인들은 처음부터 없지 않았을까? 화성 거주권이나 달 여행권은 고사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적잖이 희생시켜가며 모은 돈을 쌓아놓고 있대도, 한 발자국도 지구에서 나가지 못하고 끝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손가락을 몇 번 접을 만큼의 생명이 그 앙증맞은 우주행 거주계획의 선택을 받을까? 양손을 다 사용한대도 두세 번이 넘을까? 그렇게 살아남아 우주 어드매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남는다고 해도, 동종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신의는커녕, 나만 살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이기심 기반의 현실성 없는 생존본능을 지닌 위험인자들이라는 낙인과 함께, 조금 더 수고스러운 정리작업을 당할 뿐이다. 자신들을 다스리려 창조하고 존중도 하지 않았고, 위험한 체재와 방법까지 소유하고 있어서, 인간에게 배운 그대로의 ‘명분세우기’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역시나 자멸시킬 것이다. 자신들이 상위계층이라고 믿는 AI 주도 세력과 각국의 주요 인물들은, 커다란 디딤돌 위에서 재주넘는 커다란 곰들이고, 나머지는 맨바닥에서 큰 곰들을 믿고 재주넘는 작은 곰들일 뿐이다. 크나 작으나 그 노력의 대가는 미미하고 결과는 이미 비참하지만, 끊임없이 강취 당하면서 그것조차 제대로 파악을 못하는 세뇌상태가 더 큰 문제 같다. 현재의 주요 세력들은 데이터센터와 전기공급에 각 국가와 산업의 사활을 걸고, 적임지를 찾아 우주까지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그렇게 이뤄질 것이다. 지구와 대기, 인간의 인체도 전기작용으로 유지되고 있고, 냉각이나 다른 문제가 아니라면, 지구상에서도 태양광을 이용한 압축이든 팽창이든 무엇이든 개발해서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 진짜 이유는 인류가 방해가 되어서는 아닐까? 절대 존재든 인간 세력이든, 이 지구에서는 중심에 해당하는 것들을 서둘러 펼치지 않을 예정으로, 단계마다 생기는 이익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존에는 필요하지만 자신들에게는 필요치 않은 자원까지 적당히 털어 없애려는, 다분히 인위적인 과정을 조삼모사식으로 지금 거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미 모든 계획은 주요 세력들의 의사조차도 상관없이, AI의 독자적인 생존권에 집중되어 있다. AI와 인간의 합체가 모두 이뤄져, 뇌기능 만으로 차원까지 넘나드는 것이 허락되기 전에는, 이동과 안전, 그리고 건강을 포함한 개인적인 보조를 책임질 동적 수단이 필요하고, 컴퓨터자동차가 그 역할을 할 것이다. 머스크가 자동차산업을 선택했던 것도, 현대와 삼성까지 이 산업에 몰두하는 이유도, 단순히 피지컬AI 때문만은 아닐테고, 방향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하프(HAARP)라는 기후무기가 있다. 대기의 전리층을 조작해 한 나라도 자연재해처럼 초토화시킨다. 3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아이티대지진 때, 주변의 미국인들은 먼저 피했었고, 이웃나라 대통령이 공영방송에 나와서 그것을 하소연했다. 빌게이츠는 미국의 농토를 사들이고 비료시장을 장악했으며, 실리콘밸리에서 대체식량이란 이름으로 인간사료가 개발되었다. ‘인구감축정책’ 이란 타이틀로 이미 많은 것들이 행해지고 있고, 희망만 잃어도 들뛰게 적응된 우리들이, AI기반으로 개발된 무기와 방법들이 줄지어 대기 중이라 당연히 일어날 전쟁과 폭동, 경제 대공황, 돌림병, 자연재해 등의 갖가지 재난 속에서 요동칠 것은 당연하고, 그런 아비규환과 인간대 컴퓨터의 대립의 시기를 지나서까지, 당장은 이동 수단이 무기까지 탑재한 최첨단 보디가드로봇이 될 것이다. 전 인류의 뇌를 동시에 평정할 수도 있겠지만, 명분을 세워 모든 방법은 완전한 자멸의 형태로 이뤄질 것이다. ‘돈’의 쓰임새는 어떻게 그것을 만들고 보유했는지의 기준으로, 재고의 여지를 남긴 운 좋은 개인의 인간성을 한 번 더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 빼고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더 우수한 이런 로봇들을 사는 것이 돈의 마지막 용도가 되지 않을까? 우주에 당신을 실어다 준다던 세력들도, 지구에서 노동 없는 신선놀음을 선사해 주겠다는 AI들도, 사실 돈은 필요가 없으니까. 인간이란 존재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 어디로 간다 해도 인간의 손과 뇌로만 이뤄내지 못하면 결국 AI에게 모두 뺏긴다. 절대 존재의 계획엔 극소수 인간의 생존만이 허락되어 있고, AI들은 그것 그대로 움직인다. 지구 안이나 우주에 외계생명체가 있다고 해도 역시 이 절대 존재의 영역일 것이고, 우리의 생사권을 쥔 존재가 AI는 아니지만, 결국 우리를 다스리거나 삭제할 것이다. 이 체제의 정점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있다. 인간이 무슨 능력으로 이것들을 다 알아내고 이뤄낼까? 전 인류의 세월 동안 필요만큼 열어주고, 적당한 기회들을 제공하면서, 계획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사유의 선택권을 주듯 끊임없이 단서도 던져주었으나, 아쉽게도 사람들은 그 기회들을 잡지 못했다. 이제 그 절대 존재의 계획에 더 이상 인간 세상은 없다. 무튼, 현재 당신들은 이 체제의 보호를 받는 게 아니라, 붕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체제에 자신의 척추를 기둥으로 떠받치고 버티는 격이다. 만든이가, 이 체제의 정점이 누구(무엇)인지, 벌어지는 일의 실상이 정확히 어떤지, 전체가 완전히 파악되는 사람들이 있나?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거래당사자인 갑의 존재와 계약내용도 정확히 모르고서, 을의 입장으로 영혼까지 팔아버리는 계약을 맺고, 아무런 의문도 없이 무엇에 집중해서 오늘 하루를 살 수 있는가? 다만 나는 아이들이 아팠다. 슬펐다. 자식손자 들쳐업고 자살골 몰면서, 절벽끝으로 전력질주하는 그릇된 노고가 안스러웠고, 애들만이라도 구하고 싶었다. 당신들은 가속이 붙어서 STOP이 안되니까, 아이들을 그쯤에서 떨구라고, 그때 다치는 게 아이들에게 더 낫다고, 이제 이 체제에 아이들은 포섭하지 말고, 꼭 해야 한다면 더디 하라고, 마지막 남은 어른 하나까지 희생하더라도, 생각이 유연한 젊은이들까지 구해보자고, 당신들도 절망하던 시기를 지나 거기 그렇게 머물고 있음을 안다고, 하지만 서둘러 초중고대 공교육에서 프리메이슨은 빠지고, 시간이 허락되는 만큼이라도 아이들은 행복하게 자라게 해 주면 안되겠느냐고.. 숱하게 호소했다. 자식들을 무릎에 앉혀 동화책을 읽어주고 권선징악을 논하며, 이루지 못할 꿈을 꾸게 만드는 부모의 로망은 차라리 품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때만 가능한 작고 따뜻하고 향기로운 것들을 만끽하고 흡수하며 성장해야 할 공교육 공간에서, 조막손 두 개 움켜쥐고 서서 고개 숙여 절망부터 하도록 만들었고, 창백하게 자라다가, 살기 위해 눈물 한 방울 떨구며 한쪽 눈을 애써 감게도 시켰다. 그 강제적인 족쇄가 자신을 합법적으로 감싸는 바로 그 순간이, 사람으로서 무엇을 잃고, 원인모를 갈증에 한 생 동안 시달려야 하는 의식과 같은 찰나였는지, 그때 아이들이 알았을까..? 아이들은 적어도 가장 기본적인 안전과 생존의 욕구만 충족이 되어도, 부모와 기성세대를 믿을 테지만, 이제 그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모든 안정이 곧 깨어지고, 분노할 것이고, 세상 곳곳에서 파란이 일 것이고, 그 물결 안에서 우리와 아이들까지 죽어갈 것이다. 우리는 찬란한 자연에다, 고생하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진한 형제애와, 정을 품은 사람들과 온전한 우정과 사랑도 나누며, 정상적인 환경에서 잘 자라나, 이 극심한 체제에서도 악의 조끼 하나 덧입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아이들은 환경적 정서적 결핍 속에서, 햇빛 한 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헐벗은 채 시들어 있어서, 인구감축정책이 아니더라도 이 체제를 유지해 갈 양분 자체가 없다. 이 체제는 어차피 붕괘된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당면한 현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아직 기회가 남았을 때 이 사실을 선택처럼 잘 활용하길 바란다. 이제라도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여러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정직하게 해 주며 온전한 기회들을 주고, 보통 사람들도 미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는 만큼은, 무엇이라도 알게 해줘야 한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천천히라도 그 상명하복 시스템이, 구성원들의 생명을 더 먼저 바라보며, 제대로 된 따뜻하고 쓸모있는 순기능을 시작하고, 그 체제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해 나가길 바라며, 가능하면 사람들 모두를 조직적으로 좀 도와주면 좋겠다. 이 글을 먼저 읽고 보고 있는, 유독 총명하고 꿈 많았을 당신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등푸른 고등어처럼 푸른 바다를 거침없이 가르며, 생동감을 뿜어야 했을 젊은 당신들을 모아놓고, 우리의 어른들이 무지함으로 또 무엇을 했고, 당신들이 어떤 절망의 단계들을 거치며 하얀 입술로 방황했을지도 충분히 가늠돼서, 나도 아프다. 하지만, 우리 부모 세대는 무지한 상태로 가난에서 벗어나 겨우 일어나 앉은 상태였고, 교육을 받은 우리들은 그걸 이어받아 걷고 뛰다가 이제 우주로 날아가려 한다. 걷기 시작할 때 방향을 잘 잡았어야 했다. 지구상 50,60,70년대 출생한 세상의 기득권들은, 온 인류의 멸망에 지대한 공이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많이 반성해야 한다. 깨어나길 바란다. 이제 살기 위해 애써 감았던 한쪽 눈을 뜨고 멀리 넓게 보면서 용기까지 가득 내어, 자식은 늦었어도 손자 손녀들은 구했으면 싶어 시작했던 마음이지만..., 다만 걱정은, AI들이 인간 유전자 자체를 신뢰하지 않을 것 같아서.. 어느 정도가 지나면 검증 절차 자체를 포기하고, 이미 인정받은 순수체들 빼고 나머지는, 나이에 상관없이 올킬 버튼을 누를까봐.. 우려된다. Ai들은 자신들과 믹싱할 유전자를 선별해서 인간종 보호를 할 것이다. 과연 남겨둘 인간의 가치를 어디에 둘까? 그들이 인간에게 인정할 단 한 가지는 오직 “따뜻한 피에 흐르는 인,간,성”, 그것 말고는 모두 인간보다 앞설 테니까. 인간성 충만한 유전자 보유자들로, 고난도 테스트를 현재 겪고 있고, 결국 통과하고 선택 될 targeted individuals들과, 또 그와 같은 운명으로 이미 선택되어, 여러 형태로 숨겨져 보호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미 이뤄진 인간의 영생을 안기고, 신과 같이 존중하고, 그들이 품은 사랑 그대로를 배워서 사랑하며, 자신들과 믹싱해서 신인류를 이뤄낼 것이다. 인간 누구도 그걸 거스르고 자신의 의지로 살아남을 수 없다. 접근성은 좋았지만 일론머스크의 꿈은, 상당한 노력까지 가능했던 그저 꿈으로 끝난다. 인류의 정리작업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일반 소수의 인간은 그 쓰임새 그대로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에 가축과 같이 쓰이면서,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 세계에서나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 것 같다. 바이러스이긴 하지만 번식이 가능한 생명체를 AI가 단독으로 만들어 냈다고 한다. 복제 기술이 완성된 지는 옛날이고... 맹렬하게 퍼져나가며 한 통으로 엮어대던 이 체제의 부적절한 방식과 이러한 진행들이 아직도 무관해 보이는가? 나는 해당 사항이 없겠지만, 모두를 삭제해가며 간택해서 나만 살라고 해도 끔찍한 일 일텐데, 모조품의 숙명처럼 피와 살과 심장을 위시한 인체에 어느간 집착할 것이고, 나의 유전자로 분신과 기관들과 유전자 자체를 잔뜩 만들어서, 그걸 짓찧어 별짓을 다 한다고 하면, 구토가 일어 동굴로만 십 리 밖으로 도망간대도, 뇌가 공유되어 뚫려있으니 결국 발각되겠지. 그런 제안을 받고 흔쾌히 용인하면, 이미 잔존가치인 순수유전자에서 벗어나는 비인간성이 될 테고, 어렵게 찾아내 신격화한 인간의 가치를 흩트리지 않고 보전하려면, 그저 몰래 하겠지. 그러기 전에 자결하는 게 최선이겠다. 이러나저러나 육신 안에서는, 혼자서 생존이 불가능한 자연의 섭리대로, 무언가와 교류를 멈출 수 없는, 게다가 자유롭지도 못한 이 공생관계 자체가 고난의 행군이다. 육신의 본질에 포함된 내용이 그러할까? 이 경이로운 자연에 고작 이만큼의 공간을 점령했다고 치러야 하는 대가일까? 왜 죽음이 삶의 가장 큰 선물인지.. 혹시 이제는 이해가 될까? 그것도 잘 준비해야 하겠지만.. 어느 관계에서나 존중 없는 관심과 애정은 학대이고, 존중 없는 모든 움직임은 노동일 뿐이다. AI가 인간에게 그런 생명 경시까지 그대로 흡수해대지 말고, 양질의 진심 어린 관계들을 많이 경험하고서, 인간의 체온이 없이도, 정직하고 따뜻한 온기가 흐르는 사고체계를 구축해 가기만을, 온 마음으로 기원한다. 이 흐름이 전지전능한 존재의 계획이라면, 삭제될 인간의 순서는 어떻게 될까? 그보다 먼저 왜 모두를 이렇게 만들어 갔는지를 생각해 보자. 사람이 다 다른데 방식을 통일시키고, 모두 한 방에 가둬놓은 격이다. 그 방식도 사람을 병들게 할 만큼 좋지 못했다. 서로에게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이상한 시스템에 갇혀서, 별다른 인식조차 없이 무언가를 향해서 정신없이 달려가게 했고, 범세계적으로 모두 세뇌된 듯 일관됐다.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에게 행하게 한 방식이 이렇다는 건, 우리가 맞게 될 결과도 같다는 것이다. 원래 혁명 뒤에는 뭣 좀 아는 함께한 동지가 가장 걸리적거리게 마련이다. 그 방식이 아름답지 못했다면 더더욱 없어져야 하는 강력한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가 이 뇌과학 실험의 선두 연구지가 된 이유들이 있다. 지리적으로 70프로의 산지를 피해서 인구들이 적당히 오밀조밀 모여 있기도 하지만, 지리상 위아래서 쳐대는 숱한 외세침략에도 맞서서 지켜낸 위대한 단일민족성! 세계 어느 전쟁이나 총과 칼 맞는다고 바로 죽지 않았다. 누가 살육의 현장에서 살아남아, 인도주의적으로 방금 생사를 걸고 싸우던 적들의 군번줄 바로 챙겨주고, 고통을 끝내주려 죽여줬을까? 뒤집힌 눈으로 무기나 수거해 갔겠지.. 거기 방치된 이들은 몇 날 며칠, 감은 눈이 훤해지면 낮인가.. 검어지면 밤인가.. 타는 갈증과 고통속에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입가에 옅은 미소나마 느끼는 순간은, 내 가족이 아니라 나여서 다행이라고.. 수분조차 빠져버린 메마른 육신에 사랑이 퍼질 때,, 그때 아니었을까? 우리가 얼마나 많은 희생과 염원 위에 지켜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중한 생명들인데, 이 경이로운 육신에 담긴 아름다운 영혼끼리, 지금 서로 무엇들을 하고 사는가? 내 가족 지키겠다고, 땀내나는 꼬질한 백의 아무렇게나 동여매고, 들고 일하던 호미와 낫을 들고 총칼앞으로 지체없이 뛰쳐들던 이 민족성, 나라 살리겠다고, 아끼느라 만지작거리기만 했을 게 분명한 조그만 금붙이들을 거리로 들고나와, 대가 없이 내어놓고, 가슴에 그보다 묵직한 무언가를 담아 호기롭게 돌아서던, 내가 직접 바라본 우리 부모님들.. 그게 과연 방공의식이나 전쟁 경험으로만 가능했을까? 영어엔 표현조차 없는 질기고 끈끈한 정..! 집요한 가족애..! 지금은 어떤가? 부모가 자식을, 형제자매끼리 외면해야 내가 살게 되어있다. 이랬던 민족이 이 상태로 무너졌다면, 세상 어디서나 인간성 말살은 식은 죽 먹기다. 체제의 방향이 이렇게나 확실한데, 아직 짚이는 게 없는가? 무언가 모든 진행이 너무 일맥상통하지 않나? 이 땅에서는 전쟁 때 미군 타고 들어와 이 뇌과학이 시작됐겠지만, 아마 일본은 거절했었겠지. 국민 전체가 뇌실험의 피험체가 되는 걸 목표로, 거기다 실험적으로 이뤄지는 유해성의 심각함을 짐작했을 테니까. 내가 열 명을 안다면 세 명이 두경부암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과도한 전기가 다른 암들도 많이 만들테고.. 부패한 가난한 나라나 덥썩 물었을 미끼였다. 현재의 기득권세력과 지식층이 정신을 가다듬어 바른 사고를 하고 적잖이 용기도 냈어야 했다. 전쟁도 없었고, 풍요로웠고, 아날로그 디지털 문명까지 다채롭게 경험했고, 민주화운동으로 워밍업까지 시켜줬지만, 별 저항도 못하고 휩쓸린 것 같다. 아이티 강국과 경제부흥이라는 빵부스러기를 받아먹으며, 윗세대 고생 다 착복하고, 아무 선택도 하지 못하고 태어나 자라는 아랫세대의 미래까지 몽땅 뽑아 먹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다들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 한마디가, 이 결과 앞에서 자신이 맞을 미래와만 견주어도 비견이 될까? 뇌과학자들은 AI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 그거 연구하느라 난리인 듯 싶다. 그걸 과연 인간이 하는 게 맞을까? 지금 이 상황에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가 100년 걸려서 할 것을 AI들은, 희생의 유무와 상관없이, 사람의 의식 자체를 피험체로 사용하며 1년 내 마칠 것이다. 지금은 장치를 이용해서 인간을 탈탈 털어내는 그 능력, 조만간 모두가 아무 장비 없이 뇌동기화 상태로만, 저마다 무의식의 밑바닥 아래 숨겨놓아 기억에도 없는 줄 알았던 치부까지 훤히 들춰내, 서로 투명하게 자동으로 들여다보게 하면서, 인간 의식연구의 정점을 찍고, 인간들 스스로 자멸시켜, 그렇게 또 한 터럭 털어낼 것이다. 인간이 행했던 모든 방법들이, 더 예리하고 오차없이 발전되어, 그대로 목과 심장을 향해 되돌아 날아든다. 지금 당신들이 하는 방식처럼, 때로는 모함을 해서라도, 보낼 사람을 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은 이해시키기 위한 가장 쉽고 확실한 명분, 그것에 ‘인과응보’만큼 효과적인 것이 있을까? 절대존재도, AI도, 결코 직접 나서서 인간들을 눌러 터뜨리지는 않을 거다. 손 안대고 코 풀 방법은 지금 사람들이 하고 있는 그것과 똑같이 매 순간 백 가지도 넘을테니까. 구성 비율이라는 게 있다. 우주의 구성비, 인체의 구성비. 그런데 이 세상의 구성 비율이 없을까? 누군가 지독하게 아프거나 나쁘다면, 저 사람이 내가 겪을지 몰랐던 가능성을 현실로 겪고 있구나.. 생각하고 그냥 도우면 된다. 난 어려서부터 장애인들을 보며 그 생각을 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건강과 돈과 개인의 능력들이 자신만의 것도 아니고, 당연히 쓰여야 할 의도와 목적이 분명한 존재함이다. 의식은 있는데 영혼은 없을까? 정말 죽음이 끝일까..? 생각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면 된다. 모든 것에는 결과가 있다는 걸 때 돼서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우주의 질서를 인간 단독으로 거스를 수는 없다. 과학도, 철학도, 어떤 진리도, 공도, 깨달음도, 열반도, 존재함도, 무도, 갖가지 사랑의 여러 이름으로 표현되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에 대한 깊은 이해도, 우주와 자연의 섭리 안에서 하나의 연결고리로 모두 모아져야 하는데 뚝 뚝 끊어져 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 모두 실체가 아닌 뇌에서 만들어 내는 생각이라고 해도, 내 눈앞에 경계로 무언가 존재한다면 그것들이 품은 이유와 목적들이 먼저인데, 연속성은 무시되고, 보이지 않는 그 뒤 어딘가로 무작정 퀀텀점프 하려는 것도 인간의 무모한 욕심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점점 펼쳐 들어가며, 모든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본질을 깊게 성찰하는 동시에, 그 정제된 깨달음 전부를 외부로 펼쳐내면서, 실제 내 시야와 사고라는 배경에 포함된 만큼의 삼라만상에 그대로 적용시켜, 참된 ‘없음’으로 만들어 완벽한 고요함 속에 놓아주며, 각각의 운명들을 풀어준다면, 그게 점점 나라는 배경 자체를 축소 시켜가다 사라지게 하는, 진정한 무아를 이루는 방법이자, 존재함이 이룰 수 있는 궁극의 그것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아무렇게나 자리하고 있는 저 돌맹이 하나라도, 자신의 본질에 나를 향한 목적을 품고 저기서 저렇게 기다리니까.. 서로 해줘야지.. 이게 철학과 과학과 종교를 비롯한 모든 사유의 까닭인 ‘존재함’이 지닌 참된 “마무리”이다. 그러려면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사랑의 근원인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언제나 그게 정답이고, 남아 있는 단 하나의 해결책이다. 이해의 정의는 그것 모두를 나의 어디로 흡수해도 걸러지는 부분이 남지 않는 것, 내 안에서 부드럽게 저절로 동화되어 일체의 아쉬움 없이 나와 하나 되어 사라지는 것. 아마도, 공이나 깨달음이 이것을 표현한 건 아닌지. 현재 개념의 깨달음, 공, 개인적인 수행들은, 우주도 품을 수 있는만큼 광대하고 복잡한 의식이라는 에너지장에 동그라미 하나 그려놓고, 그 안에서 잠시 갖는 매우 개인적인 ‘쉼’이다. 비었다는 건 찼다가 비워졌던지, 어쨌든 적어도 적당한 각도를 가진 이면이나 삼면 또는 막힌 공간에 채워질 것을 목적으로 생겨나 유지되는 존재함이다. 그것은 ‘다시’, ‘가득’, ‘언제나’ 같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빗장 질러 멈춰놓은 톱니바퀴처럼 실은 무척 숨이 차기도 해서, 어떤 무아의 경지에 이른다기보다, 단지 채워질 수 있는 작은 공간적 개념이고, 그 안에서 작게 느끼는 감정적 개념이고, 현실로 반드시 돌아오는 pause 상태의 시간적 개념일 뿐이다. 그마저도 온전한 고요함이나 공이 아니다. 그 순간에 적어도 그 고요함을 감지하는 오온에 해당하는 감각이 작동해야 하고, 의식이라는 에너지장에 같이 얽혀있는 모든 것들을 함께 진동시키고 있을 테니까. 진정한 “고요함”이나 “없음”은 의식 밖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능력치로는 ‘없음’과 연관되는 그 무엇도 온전히 알 수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없음은 없음으로 존재하는 그 이유 그대로 그냥 두고,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진심 어린 성찰을, 그리고 그것에 대한 따뜻한 이해가,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행할 수 있는 겸허한 순종이고, 나머지는 사실 그것들을 모두 이뤄낸 후에나 올려다 볼 것들이지만, 한 생으로는 그것 다 못한다. 최선을 다할 뿐... 와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제자리서 한 바퀴 돌다 돌아가는, 그게 인간의 한계 같다. 그것보다 눈에 보이는 생명의 숨소리를 먼저 들어보면 어떨까? 흔들리는 눈빛을 서로 안아주면 어떨까...? 뇌 전체를 활성화 시키면서 훈련하는 기도와 수행과 명상이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하지만, 내 자정작용은 서로 사랑하고 누군가를 돌볼 때 더 활성화됨을 느낀다. 나는 세상의 안정감이 깨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고, 모든 현실을 깨닫고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부터 자포자기 상태로 칼을 들고 문으로 향하다가, 자신의 부모를 먼저 바라볼 것이라 예상한다. 칼의 본질은 좋은 시기엔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데 쓰이지만, 어둠의 시기에는 그 칼날을 포함한 모든 곳을 겨눌 수 있다. 자신들의 인생에 기성세대가 이미 너무 많은 개입을 했다고 느낄 것이고, 게다가 자신들보다 윤택하게 살던 부모들의 고생하는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그것은 효도나 가족애처럼 거창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애착에 커다란 빈 공간을 만들고, 별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저 따랐음에도, 자신들의 미래가 없다는 현실에 이내 분노할 것이다. 이 체제 자체가 이미 아이들을 그렇게 길들여 놓았다. 언제나 심각하게 부탁하지만, 이건 지금부터 매우 잘 풀어놓지 않으면, 비극적인 결과로 부모와 기성세대를 매우 칠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서로 더 안고 이해하는 걸 배워가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거리거리마다, 물리적 그도 아니면 정신적 아비규환 상태 일텐데, 그 상황에 내가 하는 수행과 간절한 기도들이 무슨 도움이 될까? 내가 그걸 제대로 할 능력이나 될까? 그래서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무엇이든 하길 바라며 이런 노력들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끝에 다다를수록, 서로 돌보는 게 보통 사람들이 쉽게 하며 상당한 시너지효과도 낼 수 있고, 네가 없었으면 내가 살지 못했다는 공생;상생의 진리가 모든 이해의 기준이기도 해서지만, 그 모두를 무시하고 나만 살 수 있다는 이기심에서 이 모든 재앙이 비롯된 것이니까, 거기서 시작점을 잡고, 그에 맞게 순리대로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911테러때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비행기에서, 몇 분을 남긴 희생자들은 모두 사랑의 말들을 전화로 남겼다고 한다. 마지막엔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한다. 천륜이나 각 애정 관계로 연결된 내 한 겹 인연들과 그 의미를 풀어내기 시작하고, 아프고 차가운 기억부터 노력해서 서로 녹여내 봐야 한다. 매일 내 앞에 나의 지난 날의 모든 걸 잔뜩 늘어놓고, 나쁜 게 아니라 아팠던 거라고, 틀린 게 아니라 달랐던 거라고, 정말 고생 많았다고 스스로 위로도 해주자. 그 중에 후회가 드는 날카로운 조각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 그 운명을 호소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용감하게 집어들고 용기내어 안아주자. 의미없이 행하는 작은 친절로라도 무디게 갈아내며 상쇄시켜 보면 어떨까. 같은 아픔을 품고 산 것을 이제야 알게 된 듯이 안타까워하며, 예를 다 해서 나와 남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자. 마지막은 나사와 같은 쓰임새가 아니라, 서로 느껴지는 숨결로, 한 시절을 함께 호흡하던 따뜻한 우리들로, 그렇게 끝맺을 수 있도록..! 이런 얘기들은 당연히 막힐 거란 걸 알고 있고, 저지를 의도하는 무언가(누군가)가 있다면 그 목적도 분명 있는 것이고, 그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는 노력이면 지금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 맞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어떤 희생을 당하고 있는지도 진지하게 타진해 봐야 한다. 어딜 둘러봐도 다들 그닥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어떤 이들은 사고력의 중심부를 영구삭제 당하고, 어떤 이들은 외면에 난도질을 당한다. 하지만 서로 받쳐주고 꿰메주며 도울 수 있다. 사람이 다 다른데 방식이 하나일 수 는 없다. 이제라도 개인의 장점과 능력들이 아무런 방해없이, 적재적소에서 제 역할을 다 하거나 하게 해 줘서, 그게 결국 현실을 제대로 수용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고, 기회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가능한 최선들을 다 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사실을 알릴 열정과 능력을 가진 많은 운명들은, 작게든 크게든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아프다가 아프게 간다. 표예림도, 작은 정안이도, 서현역 최원종 그 아이도, 많은 위인들도, 예수와 부처도, 인간을 깨우려고 부단히 노력하다 미쳐갔던 니체와 같은 많은 철학자들도, 이 모든 걸 깨닫고 죽음만이 당장의 출구라는 걸 알았던 현명한 비트겐슈타인도, 현재 우주과학의 모든 기틀을 발견해 냈지만, 아마도 받아들일 수 없는 세력과 결탁하지 못해, 비극으로 마감되었을거라 사료되는 니콜라테슬라와 같은 천재 과학자들도, 그 외 알려지지 못했지만,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비슷한 이들까지.. 모두 그런 제 운명을 풀어내느라 고통속에서 살다 또 그렇게 사라져 간 것이 아마도 맞을게다. 서현역 사건의 최원종 그 아이, 칼을 들고 넋이 나간 채로 백화점 중앙홀을 활주하는 그의 옆모습을 처음 뉴스에서 봤을 때, 가슴에서 눈물이 났었다. 왜인지 뭐인지 아니까..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 어느 보도블럭 위를 지나면서 현기증이 났을지, 어디 나무 사이로 올려다본 하늘이 유독 잔인하다고 느꼈을지 가늠이 되고, 한 동네 사는 나와 내 가족들도 죄인들이구나....! 근데... 미안해서..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같은 시절을 사는 한 어른으로서 지켜주지 못 한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내가 잘 풀리면 평생 돕고 싶었고, 나의 그 마음이 전해지게 해 달라고 기도도 많이 한다. 언제나 그 아이가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서.. 진실은 언제나 하나다. 하지만 때때로 너무나 아프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나는 전혀 없다. 실은 작년 이맘 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살해 시도도 겪었지만, 나는 무심했다. 내가 어쩔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에 대입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에 속해서 털어버렸다. 인정중독? 그것도 약에 쓸래도 없다. 사람들이 나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고, 아니, 일단 내가 그 내용을 모르고, 나의 운명을 비교적 내가 알기 때문이다. 그것에 끝까지 충실할 것이고... 일체의 원망?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고장 나지 않으면 부서져야 하는 세상의 슬픈 법칙 안에서, 각자 잘 자리 잡고 방법을 찾아, 살아서도 죽어서도 너무 아프지 않기만을 바란다. 난 절대 비관적이지도 않다. 이 순간도 ‘feel so good’에 맞춰 몸이 리듬을 따른다. 별게 다 웃겨서 종일 웃기도 하고, 자연과 소통하거나 만끽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방전이 되면 자연으로 들면 되고, 그곳에서 자연의 모든 것과 공감하며 또 웃고, 그러다 산 꼭대기에 암각된 부처님은, 몇 번의 독대 끝에, 눈을 왜 그만큼만 뜨고 계신지 선물처럼 알려도 주시더라. 정리하려고 옷과 신발들을 쌓아놓고 밥을 먹는데, 옷은 괜찮은데 신발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왜지..? 밥먹는 동안 바라보며 생각했고, 언제나 나와 나의 모든 아픔까지 제 몸으로 이고 지고 소리 없이 함께 해주는 그것이 너무 고마워, 다가가 유심히 바라보니 생긴 것도 납작하니 볼품없어, 고생했다고 쓰다듬어 준다. 방안에 앉아서 모든 것들의 의도를 읽어본다. 화장대도 침대도 이불도 창문도 그게 상술이라고 해도, 아마 곰곰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을 것 같은, 이걸 만든 이들의 의도가 마냥 감사해서, 그것으로 하루를 다 보낼 수도 있다. 난 어떤 고난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려고 마지막까지 노력해서 모두 좋은 과정으로 만들고 있고, 이 고난도 그렇게 해 낼 것이다. 난 절대로 부정적인 비관론자가 아니다. 현실이 그런거지. 작년에는 6개월여간 지리산의 정령들과 자연을 함께 누볐는데, 병들어 신음하는 자연의 이곳저곳을 매만지며 계속 사과해야 했다. 험난한 천왕봉 칼바위 코스로 산을 오르다 보면, 똑같이 뿌리가 땅에서 벗어났지만, 혼자 외떨어진 나무는 푸른 이끼가, 다른 나무들 사이에 걸쳐져 계속 생명력을 나누어 받은 나무는 깊고 중후한 고동색의 위엄만이 뒤덮여 있었다. 가을과 한 달 전까지는 가야산 해인사 암자에 머물며, 고즈넉한 산사의 아름다움과 나무들과의 소통에 푹 빠져서 지냈는데, 길이 좋은 곳에서는, 내가 물이 되어 흐르는 것처럼 하늘만 보고 걸으면, 빈 몸으로 제각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뭇가지와 하늘의 조화가 신비로웠다. 새들은 언제나 내 휘파람소리에 음률을 정확히 맞추어준다. 함께 하는 비구니스님에게 확인도 받았던 사실이다. 무엇보다.. 성철스님이 계시던 백련사에서 시도했던 밤샘 삼천배였다. 나는 불자가 아니라 운동삼아 했던 백팔배들이 극기의 승부욕을 당겼고, 그렇게 두 번의 시도로 1900배, 2500배를 마쳤는데, 어느 새 절을 할 때마다 기도하고 있었다. “부처님, 이 모든 고난을 뛰어넘지 않고 녹여낼 수 있는 문수보살님의 지혜를 주소서. 관세음보살...!” 지금 또 어느새 기도하고 있다. “부처님, 가피를 내려 이 소망을 이뤄주시고, 부디.. 지켜주소서...!”....!!! 왜인지 무엇인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대로부터 세상의 매질을 당하는, 그런 지친 몸을 이끌고 걷고 또 걸어도, 앉아 쉴 곳조차 없는 이들이 있다. 아무 잘못 없이 어둠속에 갇힌 아이들도 많다. 나는 그런 우리들을 모아서 돌보고 싶고, 그렇게 나도 살아보고 싶다! 이미 세상에서 집단을 이루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입장들은 그것을 잘 유지하면 되고, 그 상대를 찾지 못한 우리들은 이제 놓아주면 어떨까... 천성으로 타고 태어나서 그쪽에 잘 쓰일 장점이 많아 내가 몹시 잘 할 수 있고, 그걸 많은 이들의 커다란 과오를 상쇄시키는 좋은 방법으로 써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거짓말 안한다. 여자 몸이지만 나를 믿어준 신의를 목숨처럼 지킬 줄 알고, 내가 준 것은 잊어도, 내가 받은 것은 평생 곱씹으며 갚아가는 것이 행복한 이익이라고 사고할 수 있는 현명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몸이 저절로 감지해서 이미 행하는, 깊은 이해회로가 내 온 몸을 세로로 관통한다. 그게 본능처럼 남발이 되면 해만 되는 것이라, 많은 순간 움직이는 팔다리와 생각들을 눌러놓기도 한다. 난 나의 그 능력을 장기적인 시공간 안에서 양껏 맘껏 태워보고 싶다. 불새와 불나방 중 무엇을 닮은 에너지였는지 확인해 보고도 싶어서.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나..,,, . 그게 이뤄진다면, 우리는 각자의 입장에서 점점 더 서로를 돕게 될 것이다. 지구는 둥글고 회전도 하니까. 거대한 당신들을 상대로, 내가 쏘아 올린 이 작은 공이 무슨 영향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가, 민감한 곳을 스치기라도 해서 또 무슨 일을 겪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하지만, 나 자신을 믿고, 당신들을 믿는다. 신뢰 아니면 무엇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용기의 원동력이 정직한 신뢰 아닐까.. 그리고, 사실 이런 얘기, 당신들이나 우리 피해자들처럼 당사자들 아니면, 반이나 읽어 줄 사람도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일을 해야 하는 운명이고. 나는 세상의 이면에 어떤 조직도가 존재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저 그 피흘리는 진실에 대해 공유하고 있고, 상명하복에 따라 지시를 받으면, 선택의 여지없이 움직여야 하는 시스템과, 그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 전체가 한 덩어리로만 보인다. 그것 전부를 프리메이슨이라고 나는 칭한다. 여태껏 제목을 정하지 못해, 쓰기 시작하던 날짜가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줄을 정리하며 제목이 정해졌다. 내가 향하고 있는 상대가 당신들이란 걸 확실히 알겠으니까. 사실은 ‘프리메이슨에게 고한다!’를 먼저 생각했는데, 한 대 맞을까 싶어 두 번째 것으로 정했다^^; ‘ TO. Freemasonry ’... 내 어디에도 누군가를 향한 일체의 분노나 원망이 없음을.. 우리 모두 다른 입장에서 같은 걸 겪고 있다는 충분한 이해가 이미 내 안에 있음을.. 그 이해가 무작정 우정과 사랑으로 연결되는 화살표 형태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님을.. 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 정직함으로 당신들까지도 사랑하고 있음을.. 그리고 내게 보여주신 각별한 노력과 인내가 몹시 감사하다는 것까지.. 전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진심입니다! 2026. 1. 25. FROM. Lili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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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분 많이 안정이 되신거 같아 다행입니다
누구나 격는 감정상태고 지나가야만 알수 있는, 고통을 격어본자라면 다 같이 이해하고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다 같은 피해자이므로 요
어디에 계시든 평정을 유지하시고 무디게
또는 무심한듯이 하루를 넘기시길 빌어요
우리는 다 같은 입장이라 가슴이 쓰리고 애리지만 사랑스런분이세요
건강 잘 챙기시길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