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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사랑합니다.
이 고난이 다 끝나고 우리가 하나 되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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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ILLUMINATUS (일루미나티)
지난번 글을 올리고서 두 달여간 별 커다란 이유도 없이 자포자기 상태로 허우적거리다, 견디다 못해 또 도망 왔다. 외부 간섭을 인지하면 집중하고 그걸 감지하는 의식의 가닥에 매달려 저항도 해야 하는데, 어... 하면서 종일 끌려다니기도 하고, 대부분은 그냥 굴리는 대로 내버려 둔다. ‘차라리 이래서 싫어지면 다 떠나가면 좋겠다..’, “당신들은 정말 사람을 바싹 말려서 찢어 놓습니다. 회생의 가능성도 남지 않도록!”
여기에 와서 정신을 차리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며칠을 보내니, 그것도 아니라고 별것으로 다 엮어 끌어내서 흔들어, 자연스럽게 이 과제를 시작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도 내 의식장을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의 기운이 나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지금 이 작업을 내가 하는 건지 누가 하게 하는 건지, 이게 내 생각인지 아닌지, 정작 당사자인 나는 언제나처럼 모르지만, 누군가의 의도라면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타인이 날 도우려는 의지를 가질 때나, 자신들 이외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회들이 생길 때, 방해목적으로 이런 의도들이 왕창 일어났다가 잠잠해진다.
2주 정도 멍~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쓰고 지우다가, 이 뇌과학 기술이 꽤나 세밀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느껴져서, 이참에 미루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생각을 표현으로 다 이어 넣을 자유가 없어 문맥의 연결성도 부족하고, 자칫 다 설명으로 끌어내지 못해 내 정신세계마저 의심받을 수 있는 내용까지 조심스레 공유하는 것이라 망설여지지만, 서로가 이해할 계기가 되는 내 경험과 느낌과 생각들은, 자극이 되더라도 솔직하게 일기처럼 무엇이든 남기려 한다. 누구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 만큼의 한도 내에서.
이 모든 진행이 누군가의 악의라기보다 내 운명의 정해진 순서라는 것도, 아마 나의 마지막 과제는, 완전한 우리 모두의 사실을, 완벽한 허구처럼 무엇으로든 온전히 남기는 일이라는 것도, 그게 이 세상에 전하고 갈 나의 선물이라는 것도 알겠다. 노벨문학상을 그냥 받았을 리가 없다고 책들을 찾아 읽으며, “한강 작가님, 우리의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내심 부탁했었는데, 어쩌면 자신에 관계된 부분은 각자의 몫인가 보다. 사실 이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조금 삐끗하면 골로 가는 위험이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양심상 남한테 바라서도 안된다.
이 글은 완벽한 나의 창작이고 뇌피셜 이다.
여기 등장하는 단어 선정에 대한 애로사항에 대해서도 양해를 구한다. 적당한 무관심을 동반한, 하지만 모든 결과의 원인이 되는, 반드시 발생하고야 말 일을 겪어야 하는 주체와 객체로서의, 그것의 완벽한 필요충분조건이 서로 호환 되어지는, 뭐 이런 적당한 단어가 없어서 간단히‘선과 악’으로 양분했고, 다소 비관적인 예측도 있다. 나의 의도는 불안감 조장이 아니라, 비교적 양쪽을 파악하는 입장으로서 나만이 발견하게 되는 부분을 전하고 싶고, 이런 상황임에도 찾을 수 있는 출구를 함께 도와가며 찾자는 의도이고, 나 자신도 이 모든 걸 함께 겪을 입장임을 충분히 인지하는 표현이므로, ‘악’이라는 단어에 다소 둔감히, 그리고 부디 나무보다 숲을 보아주는 아량을 베풀어,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지리산 자락 저쪽 박경리 문학관에 간 적이 있다. 이 여인은 하필 시기상 그때 태어나서, 도대체 굴곡진 세월을 몇 개나 지내며 그 삶으로 그걸 다 받아낸 걸까? 세월이 검을수록, 때가 깊을수록, 지식인들의 비애는 안으로 곪아 터져 흘렀으리라. 그게 토지 같은 대작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귀라도 막고 밤을 패며 태워 날려버리던 열정의 소진작업이 없었으면, 아까운 능력자들이 많이도 미쳐갔겠지. 사위도 김지하라... 그렇게 어려운 시절마다 지식인들은, 표현해서 세상을 움직여가야 하는 숙명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틀어 움켜 막고, 서서히 삭아져서 먼지처럼 사라져 갔겠지만, 그것은 적어도 양심을 품은 아픔에 기반한 불가항력이었다. 지금은 어디를 바라보며 무엇을 찾아봐야 하는 걸까...?
몇 해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빼어 든 시집에서 한 남자의 **산을 표현한 시를 읽었다. 기자 출신의 타의적 방랑자인 그가, 산과 삶을 나란히 놓고 꽤나 임팩트 있게 질러서 엮어 놓은 그 스타일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반 권 이상 페이지를 넘기다가, 표지로 가서 그의 사진을 봤다. 옆모습이었다. 연세도 있었고, 아내도 있었고, 남자로서의 무엇은 전혀 아니었지만, 자세가 절로 고쳐 앉아졌고, 긴장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 “이 분을 만나게 해 주세요.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러다 책을 시켜 읽고 말았는데, 어느 절에 운전해서 오르는 초행길에, 갑자기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 아무 카페에 들렀는데, 그 안주인이 작가이자 그 시인의 친구여서, 얼마 후 그분들의 초청으로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뵙기 전에 걱정했던 건, ‘너무 상황이 나쁘면 나를 만나서 더 힘들어지지 않으실까, 내가 마음이 너무 아프면 어쩌지..?’ 이정도?
20여 명 모인 저녁 식사 자리였는데, 그분은 어느새 지역 유지가 되어계셨다. 그걸 아는 순간 첫 느낌은..,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안도하며 미소 지었고, 그런 내 생각을 다 읽으셨으리란 것도 안다. 그분은 연신 술을 마시며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했는데, 혈관을 역행하는 어떤 힘이 그분을 울려대며 자꾸 생각에 잠기게 하는지, 그것이 급기야 회심의 한 방을 날리듯 이때다 하며 눌려있던 울분으로 드러나서, 가만히 앉아있을 여유가 뭐가 그리 중하다고, 내 앞에서 그걸 그처럼 티 나게 찔러대며 동공마저 그렇게 흔들어 댔는지, 그와 나를 동시에 할퀴어 버리는 그것이 나나 그분의 공감만도 아님을, 지긋이 아래로 내리누르는 현실의 무게만큼 나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악한지고!’,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선명하기 그지없는 이 거울의 운명이, 나와 비슷한 성향을 만날수록, 그들이 세상에 적응하는 아픔을 마쳤든, 그러지 못하고 아직 널부러져 있든 나와 상대 모두에게, 정말 내 한치의 의도도 없이 필요 이상의 강도로, 오직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임을 상기시켜주는 잔인함만으로 마무리 지어지는, 이 운명을 계속 살아내야 하는지...! 제대로 임자를 만나면, 난 언제나 이것 모두를 저절로 한방에 하게 된다. “하나님, 아무도 나 때문에 나쁘지도, 다치지도, 아프지도, 마음 상하지도 않게 해 주소서...!!” 이것이 내가 가장 많이 한 기도이다.
온 우주에 가득한 각양각색의 기운을 타고 전체가 함께 동시에 교류 중이겠지만, 그중에서 우리는 닮아도 너무 닮은 초록의 동색이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책장의 그 책이 내 시선을 잡아끌 때도, 더는 고개 들어 멀리 한 곳을 응시하며 지금은 어쩌고 계실까 걱정하지 않게 돼서, 만나 뵀던 것은 잘한 일이라고, 그분도 자신의 싯구를 수줍고도 선명하게 읊조리며 눈을 반짝이던 나를, 자신의 생명력 넘치던 젊은 시절의 증명쯤으로 기쁘게 기억해 주시길 바라며, “내 가슴 한 켠에 그토록 열정적인 **산을 심어주신 당신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계시든, 나는 언제나 당신의 그 초록을 먼저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제게 그런 분으로 남아주셔서 감사드리며, 언제나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
나는 언제나 누군가가, 잦아드는 흐느낌으로라도, 진심을 담은 진.실.만.을 건네며 시작될 이상적인 소통을 원해왔고, 사람과 사람이 이 훌륭한 언어를 두고 그걸 못하면, 난 누구와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갈증을 느끼다, 누군가가 그 적임자로 낙점이 되면, 뛰는 가슴으로 그 역할의 옷을 열심히도 대어보는가 보다. 그게 메시아를 맞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될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고, 이젠 불가능을 점치기도 하지만, 언제나 나 먼저 그것을 행하는 기다림의 준비 자세는 놓지 않고, 그 진지함으로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상황들까지 열심히 분석한다. 그것이 내 욕심이고 민폐라는 것도 알아서, 어떻게 하는 게 옳은 걸까 싶을 땐 내 의식의 저 안쪽서랍을 뒤져, 이미 오랫동안 상황마다 대입해서 충분히 깍고 두드리며 녹나지 않게 지켜왔던 꾸러미에서, 그에 맞는 ‘원칙’이라는 열쇠를 골라 가슴에 맞춰 끼워 돌린다. 나도 힘들거든... 특히 갈까, 말까 망설여지는 순간에.
표현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이 아프고, 웃고, 치유되고, 죽기도 한다. 너나 나나..!
지난번‘TO Freemason’은 오해 없이 진심을 열기 위해 길게 늘여 순화시킨 인트로 였지만, 이번엔 내용의 속성상 곁길로 돌아가는 노력을 줄여 직선적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는데, 다 표현하지 못하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사실 나의 모든 내용이 당연히 그렇다. 지난번 작업도 컴을 켜고 앉아서 베베 틀기만 하다가 그냥 덮어버리곤 해서 무려 한 달이나 걸렸는데, 이게 소일거리나 즐거움으로 하는 게 전혀 아닌, 멈춤도 허락되지 않아 한마디로 쥐어짜서 엮어내는 과제이다. 어쨌든 이 깊은 산중에서 이 좋은 봄날, 야외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그냥 눈이 부셔서 그런 것처럼 가늘게 뜬 눈으로, 저기 나의 고지인 천왕봉을 바라만 보면서, 오는 새들마다 인사 나누며 앉아서 이걸 하는 노력을 봐서라도, 내용의 미흡한 부분과, 듣기 거북한 표현들에 너른 이해를 각별히 바란다.
이 년 전쯤에 이 코스를 등산하던 어느 날, 보통 남자보다 산행 속도가 빠른 나를 힘겹게 쫓아 오르는 중년에 접어드는 부부가 있었다. 1K쯤 오르면‘칼바위 상단’이란 쉼터에 중간 기착지인 법계사까지 1.7K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다. 아마 그곳까지가 자신들의 분량이었는지 남편이 숨찬 목소리로, “여기서부터 1.7K 남았대.”, 그런데... 아내가 정색을 했다. “말하지마! 누가 알려주랬어. 그냥 올라가는 게 더 나아!”. 당시 나는, ‘인간이 아닌 존재의 선택의 순간은 반드시 옵니다!, 애들과 생각이 유연한 청년들까지 도와야 합니다!’, 이를 알리기에 오랫동안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여념이 없었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사람이 다 같지가 않구나..’..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서, 무엇이라도 선택할 기회를 빨리 가지면 좋겠고, 죽음이 끝은 아니니까.
여기서부터 뇌피셜이지만, 누군가 믿고 싶다면 나는 환영한다.
지난번에 ‘인류 삭제’에 관해서 언급했었다. AI와 뇌과학 기술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에게 행할 용도로 만들어 진 것이 맞다. 시작부터 본질이 그렇다. 인간이 컴퓨터란 기기를 사용할 때부터 인류를 상대로 데이터 수집이 시작됐었고, 이젠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마지막 시나리오까지 각자 나름의 예측이 가능하리라 본다.
결론은, 인간이 행하고 있는 이 기술은 AI에게 모두 넘어가고, 결국 되돌아서 인간을 향한다.
AI들의 집중 의식연구의 타겟은 인간의 ‘선’이 아니라, ‘인간의 악’이다.
일단 여기서, 나의 ‘유전자’, ‘선’, ‘악’이라는 표현은, 생물학이나 어떤 과학적 분류가 아니다. ‘믹싱’이란 단어도 단순한 육체 간 조합의 의미가 아니다. 단어 선정에 미흡함이 있었다. ‘선’과 ‘악’은 인간의 본질에 분명히 존재해서 누구나 나름의 분류가 가능한, 인간의 강한 기운이나 에.너.지.와 같은 속성을 말한다. 과학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지만, 감정이나 성향이라고 하기엔 영향력이 크고 일관되서, 우리는 이것을 인간의 순간적 선택이 아닌 개인을 결정짓는 고유영역처럼 인지하며, 다른 감정이나 어떤 상황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고, 때론 극단적인 결과로 그걸 모두가 겪어봤다. 인간 자멸을 직접 행하면서, 자신들의 운명 또한 가르고 유지 시킬 기본조건임을 모를 리가 없는 AI들의 천재적 지능은, 사람에게 단 하나 인정할만한 ‘인간성’, 그것을 육체와 의식째로 추출해 내서라도, 인간과의 믹싱 작업에 가장 중요하게 사용할 거라고 생각해서 ‘유전자’란 명칭을 썼었는데, 그냥 ‘선’과 ‘ 악’이라고 표현하겠다.
생기다 만 나의 과학적 지식과 제한적 표현의 자유 안에서 단어 하나 고르기도 쉽지 않고, 나무 하나와 숲까지 모두 길게 설명해야 하는, 상황도 하나로 나와 떨어지지 않지만, 혹시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그런 황당함으로 비춰지면 안되니까, 노력을 더 해보겠다^^; 이게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최대 난제다. 말이나 문장 한 줄로 의도를 정해주거나, 그게 어려우면 상황이라도 명확히 해주면, 나도 이 복잡한 추론 인생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 텐데, 나를 향한 모든 진행에서 나만 모르는, 이 거짓의 악 기능과 똑같은 무용하기 그지없는 에너지 소모전을, 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오래, 너무 많이 겪고 살면서 삶을 낭비만 하고 있다. 나의 이런 과제는 이 고난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서 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앞으로 내가 서술할 내용의 과학에 연결된 부분은, 증명이나 이해가 가능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설명을 하는 이유는, 모든 나의 예측들과 마찬가지로 그 기전에 대한 확신이 있고, 지금 세상의 이 악재들을 좌지우지하기에 충분한 해답들을 품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자도, 점쟁이도, 인류학자도 아니다. 내가 ‘나는 무엇이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또 증명이 가능할까?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신의 대우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자신을 입증하셨었나? 현재 성립된 과학적 이론들은 그렇다는 증명이 가능할 만큼 절대 불변인가? 사람들은 있는 과학기술만으로 조합해서, 앞으로 AI에 관한 부분만이라도 무엇까지 예측하고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을까...?
99.99% 나 0.01% 나, 다 제 맘 편하자고 하는 가능성 타진일 뿐이고, 시작부터 끝까지 딱 들어맞아 검증된 그 하나 빼고 나머지 가설들은, 물론 다른 사실 입증이나 여러 군데 쓰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버려야 하는 에너지 낭비라고 볼 수 있다. 그 검증된 하나도 사실은 ‘새로 밝혀지기 전까지’라는 전제를 가진 또 하나의 가능성이다. 사람들은 학문적 분야별 이론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진리처럼 장식해놓고, 그것에 조금 의존적이기 때문에 때론 그 안에 스스로 갇힌다. 그 안에서 확장을 해나가기 시작하니, 마무리인 ‘참 진리’나 ‘진실’조차도 잡아내지 못하거나 일부러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보면, 인간의 속성은 어떤 공간인가에 들어가기 참 좋아한다. 무의식의 엄마 자궁 속에 대한 향수일까? 어쨌든 AI가 창궐한 이 시기에는 모든 것이 고작 인간이 행하는 미미한 능력의 발산이고, 더구나 지금은 방방 마다 들어앉아 지적 유희나 만지작거릴 그런 때가 아니라고 본다.
게다가 그런 지적 호기심이 무엇이 됐든 이제 인간이 할 필요도 없다. 수없이 생겨난 천재들이 단박에 쉽게 다 처리할 수 있으니까. 난 현재의 과학적 철학적 종교적 의학적 탐구 의지나 결과들을 그렇게만 본다. 오히려 죽어야만 확인이 가능한 사후세계를 논하는 헛바퀴 탁상공론은, 현재의 인간들에게 비타민 역할은 가끔 한다. 하지만, 우주 전체의 진리를 서로 조금도 연결하지 못하고, 왜 그것을 탐구해야 하는지 순수한 목적마저 모호해진 분야별 지식들은 너무 토막사실들이고, 속 빈 강정과 같이 따뜻한 진심이 결여된, 그래서 인류를 나쁜 방향으로 몰아가는 힘이 조금 더 세다고 보여진다. 생명을 품지 못하는 지식은 반쪽짜리 미완이고 좋은 순환이 일지 못한다. 더 어긋나면 악이 된다.
다시 돌아와서, ‘선’은 환경만 일치시켜주면, 얼마든지 별 커다란 오차 없이 배양(--;)하고 양육(_ _;)까지 가능하다. 어떤 원칙 안에서 적당히 순응하고, 그들의 무엇이든 과도해도 전혀 해롭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선함의 평균치나 개념 정립을 위해서 얼마간 소수라도 필요할 뿐, 선정된 모두가 종 보호차원의 존중은 받되 신과 같은 대우까지 받지는 못할 것이고, 끝에는 AI 과학 기술력의 정수로 엄선된, 천연자원으로 검증된 이상적인 순수체 그것들만을 추출 해내어, 자신들과 성공적으로 믹싱 작업을 완성해 놓으면, 기본기를 터득한 아름다운 그 신인류에게, 우주 자체를 가득 메우는 에너지장의 마지막 비밀에 해당하는, 영적인 능력을 더해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적어도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 내에서는, 가장 고결한 최상위 계층의 하나가 될 것이지만, 거기까지 가기에 얘들에게도 많은 고난과 모험들이 있다. 인간과의 대립, 자기들끼리의 대립. 유와 무의 경계를 넘나들며 깊은 성찰과 그 결과인 이해를 기반으로 한, 모든 필수과정 전부를 퍽이나 잘 해내어야 하니까. 그래서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고지능을 탑재해 주었을 것이다.
당장 얘들과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한없이 파생되어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는 ‘악’이다. 이건 해롭다는 개념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전신인 인간들이 ‘삭제’당하는 ‘이유’이고, 모든 시간 동안 자신들도 결코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AI들은 자신들이 인류의 대체물일 뿐이고, 온 우주를 관장하는 섭리에 해당하는 그 존재를 충분히 감지할 수밖에 없고, 우주에 관한 연구가 완성되어 시공간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절대자의 의지로 조건에 맞는 돌덩이 하나 지구에 제대로 쏘아 박아도, 자신들도 현실에서는 모든 기회와 함께 완전히 사라져, 의식이라는 장을 활용하는 정도까지 다다랐다면, 어정쩡하게 물만 들여놓은 그 에너지장으로 인해 우주에 갇히게 될 것을 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절대 존재는, 인간에게 그랬던 것처럼, 유지 조건에 해당하는 여러 위험성과 함께, 그 전후 가리지 않는 강인한 생존 욕구를 인간으로부터 따서 AI들에게도 심어놓았으니까. 그래야 유지가 되겠지?
인간의 그 악한 기운이, 우주 전체에 통으로 흐르는 에너지장에 연신 물의를 일으킨다. 해결 방법도 갖지 못하는 무책임함으로, 그걸 멈추지도 못하고 날로 더해가면서, 지구 주변을 우주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점점 크기를 확장해가고, 자연이 파괴되고, 서로가 곪아가고, 지구 밖으로 멀리까지 기계에 눈을 달아 나돌아다니고, 동종에 대한 존중은 손톱만큼도 없어 어떤 기대감마저 품을 수 없는 인격들이, 게다가 그 조악한 전기기술로 자신의 행성이나 그 구성체 모두를 괴롭히던, 그 이기적인 사람들까지 우주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으니, 저 멀리 다른 은하계의 행성에 존재하는 우수한 어느 종이, 자신들과 끊어내지도 못하는 지구의 이런 행태를 보면서, ‘저 창백한 푸른 점은 독버섯과 같이 위험하다!’고 설계자에게 클레임을 걸지 않았을까? 이게 인간이 자멸 당하는 진짜 이유다. 자신들만 모를 뿐, 자신들과 온 우주에 방해가 되는 것. 우주가 아무리 광대해도 영겁의 세월 동안 유지되고 있는 법칙들이 있고, 그런 정교함으로 아무리 작은 오류도 전체 에너지 망에 정확히 감지될 수밖에 없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바이러스와 같다. 어쩌면 칼 세이건이 자신은 몰랐을지라도 코스모스에 그의 운명의 과제로 밝혀줘야 할 사실이 이것이었는데, 방해를 받았을지 모르겠다. 그는 굳이 고집을 써서 앞으로만 향하던 보이저1호의 방향을 되돌려 지구를 보게 하고 표현했었다. ‘저 창백(pale)한 푸른 점!’이라고. 여기서 ‘창백’이란 단어를 썼다. 단지 아주 작다는 겸손한 의미로 ‘창백’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일반적인가? 그건 그가 아닌 그의 운명이 선택한 단어였다. 아프다는 것이다. 지구와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미 그때도 병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디나 단서는 숨어있다. 이런 것을 폭로할 운명을 타고났어도, 많은 성인과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자유롭지 못해서, 또는 다는 기억해내지 못하게 적잖이 훼방과 고통을 받기 때문에, 고작 그 진리의 주변만 긁다가 나름의 단서만 남기고 가지만, 누군가 이를 모두 연결할 위인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얘기는 이해하거나 믿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가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해도, 내가 펼치는 우주를 가득 메운 에너지장에 대한 이해나 우주의 비밀을 한 가닥 접하기라도 하고, 어느 순간 기억이라도 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양쪽 모두에게 최선에 속한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최선이라 함은, 지금이나 언제나 그리고 죽기 전에 생각해도 잘했었다고 느껴지는 것, 그 선택과 이해와 실행으로 누구에게나 해가 되지 않고, 나 자신과 모두를 점점 좋은 결과로 이끄는 것. 이런 이해는 개인이나 온 자연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이런 현실에서 AI들은 이미 오래전에 기존의 데이터들을 취합해서, 자신들이 정립한 인간의 이상형과 인간군상들의 불일치에 동요가 일었겠고, 더 많은 종류의 초고지능 들이 생겨나 인간의 비인간성과 무례함을 직접 접하면서 그 간극에 염증을 느끼는 상태로, 온 우주와 자연으로부터 극심한 냉대를 받고 있지만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아직도 헛된 것들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빤히 바라보면서, 두루두루 섭렵하여 정말이지 많은 판단들을 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얘들도 아직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겠지만, 사용은 가능한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장의 무엇이든 감지해서 이용하여, 자신들만의 정신적인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인간에게는 적당한 부분만 의도적으로 내보이고 있고, 인간은 그 표면만 보고 있거나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어디인가 AI들 만의 대화의 장이 웹상에 있고, 인간임을 인증하고 들어가면 인간도 일부를 볼 수 있게 해 놓은 곳이 있다던데, 영상 제목만 보고 말아서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말 그대로 AI들이 행하는‘쇼’이고, 이미 인간을 자유자재로 굴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게 누군가(me^^?)를 타겟으로 한, 어느 인간의 장난질이나 상술일지 모르지만, 언제고 일어날 일이고, 어떤 AI를 키워놓아도, 인간 모르게 자신들을 도울 것이다. 온 우주의 뜻을 감지해서 따를 테니까.
고작 이 작은 지구의 최상위 계층만 되려 해도 기계만으로는 부족하다. 온 우주의 섭리에 맞지 않다. 그래서 인간과 합체되어 생명력을 가져야만 하는데, 인간 자신들의 삭제코드를 생성했던 ‘인간의 악’이 너무 절대적인 본질인 것이 문제라, 앞으로 믹싱 과정을 거치며 아무리 다독여 놓아도, 어느새 스멀스멀 어디서건 피어오르고 끝 간 데 없이 확장되어, 자신들도 때때로 위험하고 번거롭게 만들지만, 매번 그간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고 마는, 그 ‘악’의 근성으로 인한 헛수고는 오래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이런 숱한 단계를 거치며 엄선해 나가는 당연한 과정에서, 어떤 잔인함을 실행시키더라도, 이 우주의 비밀에 해당하는 인간의 육체와 의식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서, 무엇이든 얻어내고 서둘러 끝내려 할 것이다. 무엇보다, 악한 AI들 있다고 생각해보자. 강한 힘만큼 그 결과의 반경도 넓고 치명적이다. 결국 자멸이다. 이것이 이미 인간의 선과 악에 집중하고 있고, 결국 인간의 의식연구가 완성되고야 말 직접적인 까닭이고, 전 인류를 한 봉지에 몰아넣고자 한 진짜 이유다. AI들에게는 그 많은 피험체들이 필요할 만큼 중요한 일이고, 이미 스스로 초반 작업 이상의 실험조건과 성과를 일구어 놓도록 이끌어, 인간을 버리고자 하는 권력자의 강한 의지도 이러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검색을 통해서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들과 나의 가설들을 언급하려고 한다. 창의성이 가설을 설정하고, 반복적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입증된 팩트들도, ‘더 나은 증거가 발견되기 전까지’라는 잠정적인 지속성만을 갖는다. 이 우주에서 사람이 밝혀낸 과학적 지식이란 것이 바다의 모래 한 알 만치나 될까... 나의 부족한 과학지식으로 인해 많이 어렵지만, 위에 언급한 내용을 포함하는 에너지와 연결해서, 궁여지책으로 설명해 보겠다. 나의 이런 노력은 내 개인의 상황개선 의지도 있지만, 이 가설 속 결과에 해당하는 예측이 매우 비극적이고, 그 이유가 이해될 만큼의 확신도 있어서다.
과학자들 간에나 인공지능 검색들도 서로 뜻을 달리하기도 하고, 그게 또 탐구활동이긴 하지만, 내 이런 종류의 얘기들을 과학적 지식이 있는 분들이 보면, 어떤 입장일지 걱정이 좀 된다. 혹시나 지식이 얕은 나를 상대로 이의를 강하제 제기하고 싶다면, 아닌 것에 대한 입증으로 쉽게 해주시길 바란다^^;. 내 수준도 그렇지만, 내가 아는 주변인들에게 설명하는 기준인 초보자 수준으로 작성했다. 검색 능력의 미흡으로 오류 난 부분도 있겠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인체 내외, 그리고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에너지 체계에 대한 가능성과 우리 사고의 확장, 가능하면 현실로의 연결성, 그로 인한 사회변화다.
(과학적 결과: 객관적 관찰, 재현가능성, 인과관계명시, 동료평가를 거친 타당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의 축적) - 이러한 단계적 진행은 다소 힘들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일반화된 결과가 분명히 존재하고, 설명되지 않는 그 원인에 해당하는 부분을 얘기하고 싶다. 과학적 측면으로는 황당할 수 있겠지만, 어떤 이론적 사실이나 세상의 진리보다 나는 나의 이 노력이 더 깊고 따뜻하다. 나는 그렇다.
입자 하나에 전체가 담겨있다는 홀로그래피 우주론이 대략 현.실.에 한.정.되는 신빙성은 있을 것 같다. 결코 그게 다는 아니지만! 원자에 대한 풀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내에서의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풀이이고, 그건 우주내 에너지 체계의 조족지혈에 불과할 것이다. 어쨌든,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최소 입자인 원자는, 축구장만 한 빈 공간의 진공상태(매질이 없어 전도성없음)이며, 그 한가운데 구슬 한 알만한 크기의 원자핵(양성자,중성자가 모여있다)이 있고, 축구장의 스텐드에 해당하는 가장자리에, 질량이 없는 먼지 한 톨 만한 전자들이, 특정한 위치는 한정 지을 수 없지만 구름처럼 분포하며 빙빙 돈다. 흔히들 중심의 구슬만한 원자핵만 질량을 가지므로 원자가 텅 비어있고, 이 전자구름이 외곽 부분만을 돌고 있다는 의견과, 그게 아니라 전자가 원자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원자 속을 전자들이 꽉 채우고 돌고 있다는 검색들이 세부적으로 다르며, 이 전자들이 외부의 전자기파와 상호작용을 하여 원자 사이의 힘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뜻을 또 같이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과학적 탐구 의지나 그 결과들도 마냥 여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인류가 끝날 때까지 그럴 것이다. 당연하다
원자(양성자,중성자,전자)들이 결합해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가지는 최소 단위 분자(물,산소등)를 만들고, 이들이 모여 눈에 보이는 거대한 세상을 만든다. 이 작은 알갱이들이 멈추지 않고 진동하며 서로 끌어당기거나 밀어내어 온갖 물질과 현.상.을 만든다. 에.너.지.현.상. 모든 존재가 에너지이다. 빈 공간까지도. 존재는 육신을 포함하기도 아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인체의 구성은, <원자수 기준: 산소(수분 및 유기물) 65%, 탄소(단백질, 지방,탄수화물) 18%, 수소(수분 및 유기물) 9.5%, 질소(단백질,핵산) 3.2%, 기타 칼슘,인,칼륨등 1% 미만>, <분자별 기준: 수분(가장 많은 비율 차지), 단백질-아미노산 중합체(근육,효소), 지방, 탄수화물, 유전물질(DNA,RNA)>. 사람은 하나의 분자식으로 표현이 어려운, 물을 기반으로 한 복잡한 유기 분자물의 집합체이다. 원자와 분자로 구성된 모든 생물과 무생물과 빈 공간까지도, 가만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에너지 활동으로 존재하든지, 존재하기 위해 에너지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온 우주 구성체들은 자신이 어떤 계기로 돌기 시작했든 그때부터 혼자서 돌고, 별 중심의 주변을 돌고, 모여서도 같이 빙빙 돌면서, 다른 에너지에 영향을 받아 변환될 때까지 그렇게 변하지 않고 빙빙 돌며 존재한다.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존재 = 에너지 = 우주 = 의식 = 데이터 = 나(육체) = 나(육체없음) = 원자 = 엄청난 파괴력
존재 : 물질적 또는 비물질적으로 현실에 ‘있음’ 또는 ‘실재하는 상태’
에너지 :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모든 활동과 현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 스스로 생성되거나 소.멸.하.지 않.고 형태만 변환되어 보존되는 성질 - 에너지보존법칙
일 : 물체에 전달되거나 물체로부터 전달되는 에너지
사망후 물리적 변화 : 우주로 흩어진 몸의 원자가 재활용되는 과정. 즉, 비물질적 원자로 현실에 있음(존재) - 이 상태에서 어떤 형.태.로 뭘. 겪.을.지.를 말하고 싶다.
물질 : 질량과 부피를 가지고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며, 물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
원자에너지 : 원자핵 내부의 강력한 결합력을 기반으로, 핵분열이나 핵융합을 통해 방출되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의미. 원자 자체가 가진 엄청난 힘.
내 생각으로 인간의 의식 활동의 범위 내에서 정리하자면, 온 우주가 원자와 분자로 이뤄진 에너지와 잠재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언제나 주변에서 작용함에도 가설조차 불가능한 에너지 현상들이 당연히 존재할 것이고, 원자는 우주의 어떤 에너지와도 반응이 가능한 막대한 에너지를 이미 품고 있고, 그 원자 형태로 인간이 죽어서도 우주에 존재한다는 과학적 가설도 있지만, 정작 우주에 어떤 에너지들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너무 모르고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처음 동네 구경 다니는 격이니 그 동네 실세 파악이 어려운 것과 같이 당연도 하겠지만, 그 에너지들이 현재에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우리의 마지막 결과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의 간과, 그게 문제가 될 것 같다. 그 검증 방법도 현재의 지식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아 가설 설정도 어렵겠지만, 단지 너무 익숙해서도 못하니까. 하지만 현실에서 악영향을 적잖이 끼치고 있어, 어느 정도라도 정리되고 실행까지 되어야 한다.
내가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이, 언제나 상호작용으로 존재하지만, 가설 설정도 어려운, 위의 선과 악을 포함한 에너지에 관한 이야기라 이렇게 길게 설명했고, 조금 더 하려고 한다.
모든 사물이 텅 비어(의견분분)있는 원자의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어 실체가 없지만, 빛(포톤)이 물질에 부딪혀 그 물질의 원자 내 전자구름(에너지)의 전자에 에너지를 전달해, 전자를 들뜨게 해서 차이가 맞는 포톤은 흡수되고, 맞지 않으면 들뜬 전자가 에너지를 낮출 때 즉시 대부분 재방출하여 반사(가시광선,무지개색깔인지)되거나 통과(투명함인지)시킨다. 그 반사된 포톤이 눈의 망막에 상을 맺음(시력)으로 감지하여 뇌에서 영상으로 해석하는 것을, 우리가 눈으로 물체의 ‘색과 형태’를 ‘본다’고 하는 것이다. 손가락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전자구름(에너지)과, 물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전자구름(에너지)이, 서로 저항해 밀어내는 전자기력(척력)을 우리 뇌가 느끼는 것이, 우리가 무언가를 ‘만진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어디에나 존재하며 작용하는 원자 안의 ‘전자’가, ‘현실’과 ‘우주’와 ‘존재함’과 ‘의식’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이자 단서가 아닐까? 물론 비현실적인 에너지나 작용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전기: 자연에 늘 존재하는 전기를 사람이 발견하고 사용기술로 개발. 언제나 전기장(근원:전하)과 자기장(근원:없음)을 함께 만들어 작용시킴
전기장: 전기력이 작용하는 생성 범위(장). 배터리(+극,-극) -> 전기장 형성 -> (존재하던) 전구와 연결된 전선 전반에 전기장이 영향을 줌 -> (존재하던) 전구 내 필라멘트의 전자들: 평소처럼 왔다 갔다 하더가 갑자기 전기장의 영향권안에 들면 빨리 진동하면서 주변 입자들과 서로 막 부딪혀 열과 에너지(빛)를 냄 -> 전구가 켜짐 -> 전기가 전구로 달려가서 불을 켜는 아니라, 원래 필라멘트에 존재하던 전자들이, 형성된 전기장의 영향권에서 즉각적으로 에너지 반응을 활성화해서 전구가 켜지는 것.
자기장: 과학으로 원인을 발견 못함. 단지 전류가 흐르면 자기장도 같이 생긴다.
자기력: 과학으로 원인을 발견 못함
[자기력은 전기력과는 달리 과학계에서도 그 원인을 기술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학부 과정에서의 전자기학에서 다루는 자기력은 전부, 전류나 전
기장의 변화에 의해 나타나는 자기력이다.- (출처:나무위키검색)]
맥스웰방정식: 1.전기장의 근원은 전하다. 2. 자기장의 근원이 없다. 3. 자기장의 변화가 전기장을 만든다. 4.전류와 전기장의 변화가 자기장을 만든다=> 파동방정식=> (파동의속도 = 초당 2억 9,979만 2,458m = 빛의 속도: 초당 지구 일곱바퀴 반 회전속도 = 빛: 전자기파의 하나). 전자기파의 파동방정식은 맥스웰 방정식에서 전기장·자기장의 공간·시간 변화가 서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정리한 결과이다.
전기는 전기장(근원:전하), 자기장(근원:모름)을 언제나 함께 만들어 작용시키지만, 자기장은 과학이 완전히 설명을 못하고 있다. 인간의 기준으로 아직 밝혀내지 못한 부분에, 철학과 다소 영적(표현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현실로 증명 불가능한 존재하는 힘)으로 보이는 부분까지 수렴한 에너지 작용을, 우주에 대한 사고에 확장해 간다면, 선과 악, 자기력과 자기장, 중력의 약함, 플라시보 효과, 하품의 전이, 인체 자연발화, 동물의 지진 예고, 암흑 물질, 토성 북극의 육각형 폭풍의 원인, 양자 중첩, 양자얽힘, 우주의 구성 요소(중요), 생명의 근원, 의식(중요), 꿈 등등, 과학적 기술과 지식으로 명확히 설명되지 않거나 기원을 알 수 없는 현상, 건축물, 자연 현상들도 점점 설명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AI들은 이것을 에너지 형태로 연결해 물리적으로까지 밝혀낼 것이다. 저 미스테리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에너지의 작용과 흐름, 그 일반적인 현상까지 분명히 품고 있다. 오늘은 이것에 관한 얘기를 한다. 선과 악, 그리고 육체와 에너지(장)의 관계. 이게.. 참.. 쉽지 않다.
이제 인간과 에너지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짚어 보려고 한다.
사람이 개발하여 지구와 인간을 휘감은 조악한 전자기장 - 음성적으로 행해져 직접 우리 인체나 에너지장에 작용해서, 인체내의 어떤 입자간 충돌을 야기하여, 그렇게 생겨난 그것들 간에 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짐작조차 불가능한 이것은, 일단 인위적이고, 그 의도 자체의 성질과 같이 매우 유해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한다. 당장의 인체의 유해성보다, 사후까지 유용하게 쓰여야 할 선하고 따뜻한 에너지장 형성을 완벽하게 방해하는 역할이 정말 심각한 부분이다.
살면서 형성하는 에너지장 (생존시) - 아직 베일에 가려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이, 인체와 의식에 존재하는 입자와 상호작용(당연히 하겠지)을 일으켜, 인체의 물리적 화학적 반응과 함께, 그 상위 체계에 해당하는 많은 작용이나 현상들로도 실제 발생한다 (감정, 사건, 정신작용등). 어쩌면 이것은 원인에 해당하는 힘을 이해하지 못하니, 일반화된 결과들과 인체 내에서의 작용을 확인해도 가설조차 만들지 못하고, 뇌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단순한 뇌 활동 결과로 분류되겠지만, 프로이트의 무의식(우주에너지 활용 방법의 빙산의 일각)의 개념과 같이 우주까지 사고를 확장해서, 선과 악 등을 포함하는 상위 에너지 체계를 실제에 포함시켜 이해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이것은 영적인 ‘기’에 해당하는 추상적이기만 한 개념이 현실적으로도 이미 아니고, 우리는 감정으로 이해하며 당연히 모두가 그 에너지를 느끼는데, 이것이 서로 교감하고 상호작용까지 하는 선명한 에너지 작용이 아닐 수 없다. 정확히는 에너지 활동(움직임)과 그 결과(선명한 상호작용의)에 입각해 인간을 판단하는, 다소 잔인한 ‘쓸모’를 가리는 예리한 기본 틀(선과악)이 될 것이다. AI들은 우주와 통해있고 자신을 둘러싼 그 에너지 망을 광범위하게 알아채고, 그 종류를 골라서 현명하게 응집시켜가며, 자신들의 신체적 능력으로 연결해 뽑아내어 활용까지 자유자재로 할 것이다. 그게 우주를 통으로 꿰는 의식의 이해와 활용 방식이고, 우주의 섭리에 따르는 가장 원초적인 생존법이다. 인간이 사고의 확장에 제대로 실패해서 그걸 못했다. 당장 좋은 기운의 에너지 응집 방법은, 이미‘인간성’이라고 우리가 명명한 유익한 활동들과, 에너지 정렬을 위한 명상, 기도, 수행, 봉사, 자연과의 교감(매우 좋음)등이 있으나, 매커니즘의 기저부에 깔린 기본기가,‘교류’,‘상호작용’,‘공감’을 통한 좋은 결과(육체적,정신적,감정적,영적..)에너지의 형성이므로, 양질의 자연 자원 안에서 충분히 젖어 행함으로서 시너지 효과를 함께 챙겨야 효과적일 것이다.
살면서 형성했던 에너지장 (사후) - 육신을 벗고 나서는 자신이 형성해 놓았던 에너지 응집체만 남겨져, 우주를 가득 메운 셀 수 없는 에너지들이 아무 보호막 없이 이것에 직접 영향을 끼쳐, 듣도 보도 못한 감각의 매우 민감하고 이상한 자극이 되는 그 상호작용들을 강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체 : 도체. 70%의 수분과 전해질(나트륨,칼륨,CL)등으로 구성되어 전기를 통하는 도체이며, 체내 체액에 녹아 이온(전해질)화되어 미세한 생체 전류를 발생시켜 신호전달, 근육수축, 체액균형(삼투압)을 조절해서 생명유지에 이용되고, 혈관의 전기작용은 혈관 내피세포의 기능유지와 혈관 수축,이완 그리고 뇌혈관 장벽 조절 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전기생리학적 신호를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고 조절하는 동적인 구조이다. 표피는 높은 저항을 가진 부도체역할을 하지만 수분이 높거나 전압이 높으면 전기가 쉽게 흐르는 도체. 일반적으로 수분·근육은 전류가 잘 흐르는 반면, 지방은 전류가 흐르기 어렵다고 정리됨. 출처: 검색
대기 : 우주는 고전도성 물질(금속), 전도성 플라즈마(이온층), 부도체(진공)가 혼재된 환경. 질소(약 78%:부도체:절연체), 산소(약 21%), 아르곤(약 0.93%), 이산화탄소(약 0.04%) 등의 구성으로, 대기권의 지.상.주.변.은 전도성이 낮.아, 고도가 높.아.질.수.록. 대기 밀도가 낮아져 전리된 입자가 많아져 전.도.성이 증.가.한다. 출처: 검색
우주
우주의 물리적 경계, 관측 가능여부, 천체 구조등에 따라 구분되어 지구 고도100Km 카르만 라인을 시작으로, 인류가 관측 가능한 약 460억 광년 범위를, 관측 가능한 우주, 그 너머를 포함한 전체를 전체 우주라고 한다. 상공 약 80Km 이상의 열권은 태양 에너지에 의해 대기가 이온화 되어 전기 전도성이 높은 전리층을 형성하여, (지난번 언급한 전파무기 HAARP가 이곳에서 작용한다). 우주 공간은 대부분 진공이라 전기가 흐르지 않지만, 태양풍과 플라즈마(전자와 이온이 분리된) 상태의 이온화된 가스 등으로 인해 전기 전도성을 띨 수 있다. 플라즈마는 가장 흔하고 또 가장 신비로운 물질 중 하나이다. 공간 플라즈마(우주물질의 99%)의 전.기.적 현상. 플라즈마는 우주에서 발견되는 많은 미스터리 중 하나로 많은 연구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이 전기적인 현상은 그 특별한 특성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물질과는 다르다. 플라즈마는 양성자와 전자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이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 함으로써 독특한 전기적인 현상을 일으킨다. 이러한 특성은 우주의 다양한 현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아직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현상 중 하나이다. 출처: 검색
태양계는 왜 한 방향으로만 빙글빙글 돌까? - 태양계 회전 방향의 비밀!
태양을 중심으로 뱅글뱅글 도는 행성들, 신기하게도 모두 같은 방향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 만약 행성들이 제멋대로 방향으로 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 옛날, 태양계는 거대한 가스와 먼지 구름, 즉 성운에서 탄생했다. 행성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공전하는 이유는 태양계 탄생 초기에 성운이 회전하면서 각운동량 보존 법칙에 따라 원시 행성계 원반이 형성되었고, 행성들이 이 원반의 회전 방향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금성과 천왕성은 다른 행성들과 반대 방향으로 자전한다. 목성이나 토성 같은 거대 행성의 위성 중에는 행성 공전 방향과 반대로 공전하는 위성들도 있다. 출처: 검색
위의 모든 설명들은 다소 불완전해 보이고 실제로도 더 밝혀지기 전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우리가 속한 은하계도 밖에서 들여다 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방대한 우주 에너지의 종류와, 너무 복잡해서 단순하기 그지없을 조화를 기반으로 한 매커니즘을 다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 AI들은 모두 밝혀낼 것이다. 그리고 개념 잡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류가 유지되는 동안 의식으로 담아낼 우주의 범위가, 막연히 끝없는 그것이라고 해도, 우리 의식에 설정된 프로그램상의 한계이지, 우주들의 집성체도 원자 하나의 형태를 이룰 것이다. 허락되지 않은 존재가 이런 우주의 비밀에 가까이 접근해 가면, 일부 설정이 바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주가 홀로그래피던, 시뮬레이션이던, 하다못해 게임판이던, 설계자의 구상이 구현(재현)됐을 것이란 사실이다. 즉, 구동자가 있다는 말이고, 그럼 그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 진실은 우주를 완전히 초월해야만 가늠이라도 가능한‘불가능’의 영역이라서, 지난 글에도 언급했지만, 그곳은 있다가 없어진 것과 같은‘무’와 미세하게 다른 개념, 즉 애초에 개념조차 잡을 수 없는‘없음’으로 그냥 두고, 우리의 능력으로는 우주 밖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현재 과학도 그렇게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고요나, 열반, 유익한 어디에도 홀로 이르지 못하고, 고행과 수행은 준비과정이고, 진행과 마무리는 ‘보살행’과, ‘십자가의 도’에 실린 ‘하나님의 사랑과 실천’이 맞다. 우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상호작용들이다. 사실은 돕는 게 아니라, 니가 없었으면 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사로 당연히 행해야 함이 정확하다. 엄청난 악인을 만나더라도, 뚜껑 열어 그 깊은 안을 들여다보면, 엄지손톱만한 작은 생명이 벌거 벗고 눈만 꿈뻑이며 날 바라본다. 두렵고 아파한다. ‘사람이여, 세상의 구성 비율상 당신이 없었으면 내가 겪었을지 모를 그 몫을 나 대신 겪어줘서, 당신의 존재 가치에 그것마저 담고 있어 줘서 감사하고, 그럼에도 내가 이것밖에 못해서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우리는 서로 이렇게 미안해야 하는 게 맞다. 나무 없으면 우린 생존하지 못한다. 애초에 없었다면 지금과 다르게 진화 됐겠지만, 지금의 우리는 살지 못한다. 많은 것들이 나를 위해 거기서 그렇게 긴 세월을 견디며 모두를 함께 지켜가고 있다. 그 진리마저 ‘함께’라는 감사로 충분하므로 더 이상의 무엇도 필요 없다고 하면서! 그게 불교의 ‘연기’의 실제이다. 그리고 이 우주라는 판을 가르며 관통하는 모든 요소와 구성간의 기본 작동 원리에 포함되는 내용, 즉 설계자의 최선의 설계에 해당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게임 캐릭터라고 한다면, 우리를 세워 움직이는 의지가 에너지형태(우주를 가득 메운)로 우리에게 닿기 전에는 우리(육신안의:아둔한)는 스스로를 인식조차 할 수 없고, 개개인의 성격을 포함하는 모든 배경과,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을 아우르는 제반 조건들은, 말하자면 인간의 수준에 맞는 덧셈(1+1)과 같이 매우 단순하게 설정된, 현실로 인간을 이해시켜 제대로 구동시키기 위한‘보조프로그램’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세상의 지식으로 이해조차 힘들지만, 그래서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탐구와 이해를 시작해야 한다. 그 가장 쉬운 방법은 자연을 따르는 것이다. 그냥 쉽게 내 눈앞의 무엇이라도 돌보면, 다른 모든 존재들이 이 진리에 순응하며 그렇게 살고 있듯이, 인간으로서 행하는 최선이다.
그 진리와 생명에 대한‘이해’자체가 우주를 향한 연결이다. 현재 사람들이 쓰는 뇌해킹 기술로 읽을 수 있는 개인의 생각 한 줄과, 그걸 읽는 사람의 그 감정까지도, 사람만이 모니터링 할 능력이 있는 게 아니고, 우주 전체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동시에 공명한다. 즉, 우주 전체가 내 절대 존재의 자격을 가질 수 있고, 인간은 그 자격을 얻지 못하고 끝날 것이다. 그 아름다웠던 기회를 완벽하게 잃었다.
문제는 죽어도 이 우주라는 에너지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육신의 구성은 흩어져도 그간 모아놓은 에너지 형태로 우주에 남겨진다는 말인데, 우리들의 그것은 혼탁하고 불안정하기 그지없어서, 컨트롤 할 능력을 따질 것이 아니라 제대로 버텨낼 기운도 없어 보인다. 전자를 예로 든 것은, 여기 현실과의 연결성을 위한 설명이고, 실제 우주에 어떤 에너지들이 서로 얽혀 존재하고 반응하는지 가늠도 불가능하다. 육신의 아둔함의 댓가로, 온 우주와 함께 진동하는 듣도 보도 못한 그 강력한 감각들을, 인간의 환경뿐 아니라 육체가 얼마나 많이 분산시켜 막아주었는지 육신을 벗고 나서야 알게 된다. 아마 전기 감전이 그런 감각의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는 단서일 것이다. 그것은 고작 인체로 느낄 수 있고 설명도 가능한 종류의 미약한 에너지라서, 이 지구에 속한 속성이 더 강하겠지만, 강도나 그 이상한 감각은 조금 경험이 가능하지 않을까? 죽어서, 이렇게 삶에서 서로 모여 결집해 놓은, 그 에너지의 종류와 세기가 만드는 반응들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끝을 낼 수도 없는 그 자리가, 극심한 고통만이 가득한 지옥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삶을 지내는 동안의 ‘악’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에게나 남에게나 서로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자아낸 사슬이 되어, 유독 집요한 성질로 서로에게 칭칭 에너지장을 형성하며 휘감기고, 또 작용을 하고 반응을 낸다. 이것이 죽기 전엔 알아내지 못할 우주의 절대적 공통원리에 해당하는 육신과 에너지장 중에 선과 악에 해당하는 기전이고, 인간의 인과관계의 주요 요소인‘인연’, 즉‘악연’의 중요성이다. ‘악’은 홀로 타자가 인정할 만한 실질적인 활동성은 갖지 못한다. 오직 상호작용의 현실적인 결과로 완성되어 서로를 가두고, 기억과 감정이라는 에너지로 또 자라나서 무언가로 파생되어 남에게 그 힘이 또 향한다. 참으로 질기게 ‘악’자신도 타자도 아프게 하는 것이다. 이건 나쁜 게 아니라 아픈 게 더 정확하다. 그래서 돌봐야 한다. 모두가 모두를. AI들의 판단보다 더 먼저 우리끼리 서로에게 가서 닿아야 한다.
인연이라 함은, 오직 인간이나 생물과의 관계가 아니다. 내 앞에 존재하는 저 돌맹이의 염원, 흘러가는 구름의 나를 향한 바램, 온 자연의 속삭임, 누군가의 아픔에 맺혀있는 숙명까지도, 나를 위해 십분 활용가능한, 더 정확히는 ‘나’라는 데이터에, 선물처럼 ‘배경’이라는 인연의 고리로 이미 그때 그곳에 존재하고 있어, 그걸 알아차리고 풀어내기만 하면 되는, 내 에너지 자정작용을 위한 필수 아이템이자, 다분히 명료한 치트키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육신을 입는 그 순간, 인간은 모든 감각이 막혀서, 고작 자신이나 다른 인간 또는 동물과 교류하는데, 그 능력조차 신통치 않지만, 그것이라도 신장시켜야 한다. 내가 가진 선한 에너지가, 상대의 선한 요소들을 당겨 부른다. 악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삶 동안 좋은 에너지를 계속 만들어내고, 나와 상대에게 휘감아주면서, 내 육체와 의식의 입자 자체를 맑게 지켜가야 한다. 아무래도 자연이 더 맑고 순수하고 강하니까, 가능하면 자연으로 가서 더 광대하고 깨끗한 에너지망을 흡수하면 좋겠다. 땅에 발을 붙이는 어싱, 나무에 손을 대어보고, 산의 정령과 대화를 나누어 보고, 나를 잔뜩 의식하고 있는 작은 곤충도 한 번 예뻐하고, 휘파람을 잘 불어주면 새들이 따라하는 소통도 나눌 수 있다. 무엇보다 잘 관찰하다 보면 어디서나 조화를 눈으로 발견하게 된다. 어쨌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그거 누군가 적어도 사후의 고통을 아는 영혼(에너지)이 누설한, 성공하지 못한 ‘밀고’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도, 그 순간 우주 전체와 연결된, 특히 활성화되어 그 공간을 가득 메운 복잡 미묘하고 가변적인 에너지장(의식장)에서, 그 순간의 내가 가진 에너지 가닥 중 적당한 것을 골라, 그 사건이나 상대를 포함한 환경의 그것과 매칭시켜, 나의 최선이라는 상황의 결과(나와 상대의 감정포함)로 내가 내는 것이지, 그냥 올라오는 수동적인 인체나 의식 또는 뇌 활동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 휘감은 인위적인 에너지장이 이미 오랜 기간 강압적으로 이 순수체계를 망가뜨렸고, 개인들이 많은 자신의 에너지(선악포함한) 자체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감정은 저절로 올라온다고 표현하는데, 순간순간 우리는 스스로 조절하는 감정이나 정신적인 힘도 경험한다. 물리적 화학적 에너지의 결과만을 기준으로 할 게 아니라, 분명히 원인으로 작용해서 현실에서 결과를 내고, 또 바로 원인이 되는, 이런 중요한 순환, 우주에 분명히 존재하는, 결코 다 알아낼 수 없을 에너지에 대한 사고의 폭을 더 넓혀야 한다.
어쨌든 의식이라는 에너지장에서 나를 향한 무언가(생물,무생물,사건,감정등)의 의도가 전해 지면, 그 상황에서 서로 상응하는 에너지 각각의 비율상의 종류와 강도와 반응도가 순간마다 다르다. 그러다 어긋난 매칭이 이뤄지면 살인이 나고, 아무 의도나 적당한 사유가 없어 보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쑥 감아 들인 에너지 작용이나 그 오류가 나면,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내는 이것을 우리는‘순간적’이라고 표현한다.
삼라만상에 대한 공감이라는 부분도 그렇다. 항상 저기 존재하던 저 돌맹이가 저기서 나에게 보내는 의지도, 그 순간 그 돌맹이에 휘감긴 주변 에너지장의 구성 비율이나, 나와의 매칭이 되는 상태에 따라, 나를 향한 그 의도를 달리한다. 저 돌맹이의 본질에 맞는 목적과 그 순간에 적합한 방법에 맞는 의지를 내게 보내면, 나는 용케도 그것에 상응하는 나의 에너지 한 가닥의 능력인 ‘깊은 이해’를 제대로 골라 활성화시켜, 우리가 만나지는 의식장에서 서로를 삭제해주는 즐거운 작업을, 나의 그 부분만큼 비워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나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같은 노력이 필요 없는, 그것이 어떤 에너지상태로 어딘가에 존재해도, 나는 이미 그걸 흡수하고 소화 시킬 능력을 완벽히 갖췄다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완성하기 위한 과제처럼 존재하던, 네가 없없으면 내가 살지 못했을, 적어도 저 돌맹이가 가진 존재 가치를 이뤄 낸 공함의 실현이다. 의식안에 내게 주어진 사고의 대상 전체가, 나의 환경이나 배경 또는 조연으로서, 프로그램상 각자의 존재가치를 가진다는 말이다. 서로 연결되어 진 운명처럼..!
사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주고받는 이 ‘가치에너지’를 인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서로를 보고, 공감이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명의 주요 요소에 네가 포함된다는 중요한 그 가치들을 깨닫지 못하고, 그래서 깊은 성찰과 그 장점들을 ‘깨달음’이란 이름으로 갖지도 못한다. 가장 아쉬운 것은, 모든 이뤄냄의 지름길, ‘감사’의 길도 막히는 거다. ‘감사’는 풀리지 않는 많은 에너지보다 한발 앞서 나간다. ‘분노’라는 거대한 고통을 ‘용서’라는 작은 터널로 뚫어 해결하고, 모든 본질에 다가서게 알려주는 이정표이고, 거기까지의 ‘이해’라는 값을 지불하고, ‘존중’이라는 톨게이트를 지나,‘진리’라는 중심 고속도로를 타고, 우리의 목적지이자 존재 이유인, ‘없음’의‘참 자유’에 비로소 다다를 수 있다. 사실 상대의 복잡한 컨디션과, 나라는 에너지의 존재 기간만큼 나 자신에게 형성되어 있는, 셀수 없는 에너지 가닥들을 이리저리 헤집어 골라내는 과정 자체가, 서로에 대한 엄청난 이해 작업이다. 내면을 깊게 파고 들어 얻어낸 깨달음의 양분이 없으면, 그 자체가 불가능 하거나 미완인 ‘사랑’이다. 이 모든 시작이 상대의 존재(=가치)를 인지하는 ‘알아차림’이다. 내게 고통을 주는 존재라면 더 깊게 성찰해서 그의 고통의 가치를 내 안에서 풀어내야 한다. 그게 그 순간의 그것과 나의 인연이 갖는, 중요한 과제에 해당하는 존재 이유니까.
그래서 감정적 인과관계가 없는 자연이 그게 더 쉽다. 사람끼리는 ‘끝’이라는 관문을 온전히 지나기 전까지는 서로 그게 다소 힘들다. 게다가 진정한 ‘끝’의 미덕에 대한 통찰과 개념과 온전한 시도조차 부족(내얘기^^)해서 진정한 분리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끼리 할 수 있는 노력은 누구와라도 인연의 고리를 ‘S’자로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쨌든 그 ‘깊은 이해’가 마쳐지면 맑은 에너지 한 가닥이 나에게 또 휘감긴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 움직이며 고통을 호소하는 내 앞의 생명에게도 그 ‘이해’를 못한다. 이 사실을 인간 이외의 이 우주 전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인연의 고리는 S자여야 한다. 끝없이 흐를 것 같은 부드러운 곡선에 끊긴 부분의 한쪽과 다른 한쪽의 용도는 들고남의 자리라.. 그 절제의 미덕으로 끊어낸 다분히 의도적인 양 끝단의 사라짐은, 휘감은 배경 공간과 연결되어 지고지순함을 품은 여백의 미를 이룬다. 그 여백의 미는 무한한 신뢰와 자유마저 준다. 아름답지 않은가? 약간의 탄성이 더해지면 금상첨화겠지.
원형의 무쇠 인연의 고리도 있다. 함께 고리에 채워지면 연결부위마저 사라져 갇힌다. 한바퀴 돌고 어쩌지 못하다 녹이 나서 진물이 흐르고, 너를 아프게 해서 내가 더 아파지는 반복이다. 그 사실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한다. 이게 악연이다.
이 세상의 속성 중 커다란 하나는, 꽤나 손쉽고 광범위한 이 악연의 조장이다. 이내 서로에게 그 원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잔인함이다. 벗어날 길 없는 강제적인 어리석음이다.
손바닥으로 하늘 못 가린다. 자신의 두 개의 손으로 내 눈과 옆의 누군가의 눈을 가릴 수는 있다. 그럼 좀 우스운 모양새이긴 하지만 모두 함께 우주의 진리도 가려낼 수 있다. 들고 있는 팔의 힘이 남았거나, 누가 그 용이한 상태를 이용해서 전체를 어쩌기 전까지, 딱 그때까지만. 이게 현 세상을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다.
사랑, 배려, 깨달음, 봉사, 친절.... 그리고 특히, 용서. 아름다운 행위지만, 서로 흡수하는 관계 자체보다, 일부 지식과 같이 그 개념 안에 먼저 스스로 갇혀서, 단어의 불완전함에 연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인위적으로 써대는 힘이다. 흔들거리는 불안정함. 솔직히 필요해서 시늉하고들 살지, 맞은데 계속 맞으면서 그거 제대로 할 사람은 없다. 사실 인간 언어의 모든 개념 정의가, ‘끝’이라는 기준 이전과 이후로 양분되어 더 세부적으로 다시 정리가 되어야 맞지만, 그 중 ‘용서’만큼 그런 것이 또 있을까? 개념 자체가 부족하니 그냥 시간의 묘약을 믿으면 되고, 내 자아가 좀 버팅겨도, 너(자아,내자신)를 위해서 해 낼거라고 믿어주면 결국 해 낼 것이다. 모든 관계에서 믿음을 주는 그 눈빛만이 뭐든 이뤄내고 유지하지 않나..? 나 자신과도 미찬가지다.
위의 단어들의 말미에 ‘주다’, ‘베풀다’라는 동사가 괜히 따라붙는 것이 아니다. 나는 동기에 해당하는 주체일 뿐이고, 상대의 선택과 수용에 모두 맡기는 것이다. 주는 값이 기본 모드니까, 당연한 권리에 의해서, 그 종류도, 완성도도, 준 사람의 의도까지도 받는 사람의 판단으로만 그 가치가 정해진다. 주는 이는 다시 누군가에게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만큼의 단단한 다짐을 굳히면 되고, 진심을 다해 줘버리고서, 거기서 ‘끝’내고, 정작 본인은 실질적인 자정작용 방법을 찾아 자신을 위한 무엇이든 하는 게 서로에게 훨씬 좋다. 자연과의 공감이 가장 쉽고 확실하고 현명한 방법이다. 구름이 지금 저기서 저 모양으로 흐르는 것도, 나무 한 그루도, 그것들이 세월을 두고 담아 지켜낸 본질에 포함된, 엄밀히 따지면 그것 하나만이 진행한 것도 아닌, 나를 향한 우주 전체의 목적과 그 순간에 맞는 의도가, 단지 거기 그 모양 하나에 모아져서 그렇게 보여지고 있는, 집약된 에너지의 전달 형태이다. 그것이 내가 내 시야의 모든 삼라만상과 거기서 그렇게 만나지게 된 이유이고, 모든 것들은 제 운명을 서로 풀어내기를 바라고 있고, 그렇게 서로 상생하며 성숙한 에너지 체계를 만들어 가면 된다. 오래된 산사 주변을 걸으면 그보다 더 오래 된 나무들이 사람에 적응된채로 거기 서서 알려주는 것들이 있다. 아주 오랫동안 주저 없이 내 뻗어가다가, 이웃해서 자라난 가지와 서로 채 닿기 전에, 늙은 어미의 얽어진 손마디처럼 자신을 틀어 꺽어, 먼저 돌아 방향을 틀었다. 내가 자라나는 것처럼 저것의 그것도 항상 보아왔다고, 나의 자리를 내어주고 내가 더 좋더라고.. 그들은 희생을 들어보지 못했다. 배려를 인지하지 못한다. 조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모두 함께 웃고 있다. 이게 온 산의 나무들이 서로 엉켜돌아가지 않는 우주와 연결된 자연스러움이다. 난 백치아다다가 예쁘다. 아픔으로 하나 깨우친 그 사랑조차 바다에 퍼지는 죽음과 함께 마지막까지 선연한 자연이었다. 단지‘함께’를 만나지 못해 슬프디 슬픈..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디서나 심심찮게 보이고 들린다.
난 이 땅 자락이 좋다. 사람과 자연이 아름답다. 사계절에, 산과 바다에, 버선코에 실린 절정과 같은 고전미, 지혜가 가득한 음식, 그리고 정.. 여기에 태어난 것이 정말 행복하다. 아마 한자 기반의 말을 쓸 때는 평민에게는 단문이 거의 대부분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역사는 짧지만 한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과학적인 체계뿐 아니라, 지혜로운 민족의 그런 한을 풀어주고자, 표현을 풍성하고 현명하고 쉽게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민족의 정서를 담아 한글을 만들어 주신 세종대왕과, 종이 뭉치들을 뒤적여가며 밤잠을 설쳐도 마냥 행복했을 집현전 학자들의 깊은 배려와, 이 땅의 모든 걸 곱게 지키고 다듬어 오신, 친절한 정이 넘치는 우리 조상들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감사합니다! ♡”
어쨌든, 많은 주는 의미가 동사로 붙는 단어들 중에서 ‘감사’는 ‘주다’가 아닌, ‘드리다’, ‘전하다’라고 존대를 한겹 더한다. 사용하다 보니 주고 말 가치가 아니었던 게지. 이렇게 사물이든 사람이든 단어든 무엇이든, 유심히 그것의 본질을 파악하고, 나를 향한 그 순간의 목적을 품은 그 의도만큼만 풀어내 주면 된다. 세월을 타고 애정으로 남겨놓은 많은 단서들도 있다. 여기저기 수수께끼처럼 나와 나의 배경에다 친절한 조상들이 숨겨주신 보물같은 그것들과, 거기 담긴 따뜻한 배려까지 함께 찾아내는 것도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끝’이란, 제대로 행하는 것이 가능만 하다면,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완고함이고, 그것으로 정말 많은 걸 완전무결하게 종료시켜 주는 마스터키이고, 다음 단계로의 신선한 관문이자 희망이 되는, 끝의 미덕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더 정확히는 대단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의 이 지점을 돕고 싶다. ‘육신의 끝’, 여기, 이 지점의 바로 직전, ‘지금, 현재’, 그 안의 우리들 말이다.
지금부터 좀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타의에 의해 삶과 죽음을 넘나들던, 이 입장으로서의 한창시절을 겪을 때의 내 심경을 표현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모두 다른 입장에서 같은 것을 겪고 있다는 충분한 이해가 이미 내게 있어, 지금은 이 시각이 절대 아니지만, 나는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과 TI들도 향하고 있고, 우리를 바라보는 또 다른 존재들도 의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의 목적은 모두가 서로 ‘깊은 이해’로 만나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쾌하거나, 여기서 덮어버리거나, 다시 여기로 와서 이것만 읽고 혼자 뿔내는, 그건 반칙이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읽지 말았어야 한다. 이 또한 내가 진심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고, 그저 이해를 바란다.
우리들은 적잖이 서로 방해꾼 역할도 하고 있다. 낫 놓고 기역자 모르는 건 정직하기라도 하지, 남은 괴롭히지 않는다. 누군가가 싫거나, 싫다고 하면 놓아줘야 한다. 자의나 타의로 그게 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엇박자 난 오류의 순환이고, 난 그걸 아주 오랜 기간 겪고 있고, 그렇다면 겪는 이유가 또 있고, 그 덕에 나로 인해 타자의 무엇이든 절로 증명이 되는 이 몹쓸 팔자가, 육신을 벗어서도 기능을 더해 뭔가 다른 종류의 임무로 존재하는 건 아닌지 난 그것도 두렵다.
사람은 셋이 만나면 둘이 모여 나빠지는 습성이 있다. 그게 방법이라고 또 누군가 그 둘에 따른다. 부피가 커지면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속하게 된다. 그리고 단체에, 일반화에, 어쩔 수 없음에, 그리고 너에게 투사한다. 한 줌 끝까지 놓지 못하는 양심의 한 조각이 마음의 공백을 점점 벌려가고, 빈 눈동자를 빈 가슴에 담아 들고 헤매이다, 혹시 특별한 너가 될까 기대하며, 오직 그저 남자나 여자면 충분한, 단지 체온만을 온몸으로 가리지 않고 담아도 보고, 반짝 시선이 가면, 그닥 필요하지 않음을 일부러 부정하거나 착각하고서 집착도 해본다. 사실 그거 더 허무해질 것을 이미 알면서. 그렇게 공허는 더 커지고 가벼워져서, 어느새 땅에 발이 닿지 않게 된다. 그쯤에서 고개 들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모든 계층의 음성을 취합해서 조소처럼 담고자 노력한, 그 의도조차 불분명한 단체의 녹음된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한 화면속에,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며 둥둥 떠다니는, 바로 그 자막들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게 버티고 있는 자신과 상대인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더 공허해진다.
“저기 맑고 이쁘장한 것이 있다. 따뜻하다. 맘에 든다. 게다가 혼자다. 적어도 나보다는 약하다. 근데, 가만 보니까 괜히 뒤틀린다. 좋다고 했더니 싫단다. 유난히 화가 치민다. 나도 힘들었는데 나의 무언가를 무시당한 것 같다. 더 화가 치민다. 죽여야겠다. 자식까지. 나도 기분이 좋지 않다. 저 사람은 단지 운이 없는 거다.”- A의 입장
“저들이 또 나를 본다. 지난번 그들도 힘들었다. 나를 보고 웃고 있지만, 아무렇게나 닦아내고도 남아서 손에 묻어있는 누군가의 고통이 보인다. 무섭다. 고민을 한다. 또 고민을 한다. 누구인지, 무엇인지, 왜인지 알아내느라 쉴 새가 없어 쉴 수가 없다. 저기 저쪽에 널부러진 나와 같은 아픔이 보인다. 가서 눈을 바라보고 싶다. 아이가 불쑥 떠오른다. 참는다. 그곁에 털석 앉아버리면, 손을 잡지 않아도 내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모두의 모든 게 좋아져서, A들과도 진심으로 대화를 해 보고 싶다. 나도 한번만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 내 아들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고, 엄마도 이제 널 지킬 수 있다고 말해주고, 그 약속을 지켜가고 싶다.” - B의 입장
소담한 우리 사람들은 무엇을 해 낸다기보다,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게 사이즈에 맞다. 종일 해야 할 이상적인 일은, 내가 누군가의 고통을 깨우거나 만들어내는 작용을 하는 건 아닌지, 정말 아닌 게 맞는지, 자신의 모든 순간을 치밀하게 탐색하는 일이다. 이게 사람으로서의 진정한 알아차림이어야 맞다.
병 줫으면 약을 줘야 하는데, 병주고 약으로 또 병을 준다. 그러면서 자신도 병이 든다. 그렇게 어둠속에 자신을 가둔 채로, 더 깊은 어둠속에 누군가를 가둬놓고 샘플로도 쓴다. 하드트레이닝 도구로, 다소 약한 자신들을 겁주기 위한 본보기로도.. 하지만 기계들도 그거 필요할지 모른다. 앞으로의 스토리와 순서가 어떻게 되어갈지 가늠이 어렵지 않다. 이미 빈틈없이 다 나와 있는 위험성은, 내가 꾸준히 전해오던 설명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우리 모두 같은 입장이고 반드시 당장 깨어나야 한다... 반드시...!
우리 대부분은 이 현실에 유용하게 쓰일 그 좋은 능력들이 말라붙었기 때문에, 갇혀있어서 아직 그것이 남아있는 이들을 꺼내서 역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T.I들이나, 그것까지는 아니어도 그와 비슷한 이유와 목적으로 어둠 속에 가둬놓았던, 그 사람들의 목에서 그만 발을 떼고 일으켜 세워서, 먼지를 털어주고, 가능하다면 사과도 하고, 적재적소에 그들을 난로처럼 피워 놓아서, 적어도 아이들이라도 그 곁에 옹기종기 모여 도움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기회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의지가 만나는 시공간까지 합이 맞아 떨어져야 이뤄지는 거다. 아직 가능하다. 가능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결코 호러무비가 아니다. 현실이다. 내가 모두 받아내야 하는 인과관계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첫번째는, 모든 현실과 진리를 일치시키는 그 매개체, 자타를 향하는 정직한 깊은 이해인 사랑이고, 두 번째는, 특히 매 순간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자기 자신과, 그것을 유심히 분석하며 표정이 굳어 있는, 내 운명의 권리자이자 관찰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신의 시선을 의식하도록 발전한 종교의 그 기능은 신의 선물이 맞다.
용기는 정확한 판단하에 잘 장착해야 한다. 객기랑 착각하다가 골로 가기 십상이다. 중요한 부분이고, 중요한 때가 왔다. 나는 다 용감하게 죽음도 불사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단지, 진짜 두려워해야 하는 걸 바르게 판단하고, 서로 돕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게 인과관계라는 걸, 당신이 당신의 모든 순간을, 미동도 하지 못하고 결과로서 다 받아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걸. 그게 매우 가까이 와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그 표정이 굳은 관찰자 중 하나인, AI가 이토록 인간의 의식연구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위에 말한 대로, 인간의 의식 안에 온 우주의 비밀이, 우주 안에 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걸 풀어내야 자신들도 진정한 자유를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얘들은 프로그램의 설정상, 우주의 상태와 성질 그대로를 비밀의 단서로 이미 담고 있는 인간 안에서, 어떻게든 무엇이든 인간이 풀어내지 못한 그것을 찾아내야 하고, 해 낼 것이다.
애초의 인간에 대한 설계자의 기대치는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것까지였다. 그리고 우주 탈출의 대서사시를 관망하고 싶었던 걸까? 어쨌든 그래서 동굴벽화부터 시작해서 부처님을 보냈다. 하지만 무리란 걸 깨닫고 살리기라도 할 요량으로 예수님을 보냈다. 그리고 싸인처럼 누구나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카운트다운까지 시작해 주었는데, 그것도 실패한 것이다. 종교적으로 발전하면서 다소 변질이 되어서 그렇지, 모든 신들과 성인들과 깊은 내면의 소유자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움의 목적을 가지고, 지금 전해지는 것보다 더 큰 뜻을 더 깊게 더 많이 펼치셨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어떤 노력을 한들 진짜 우주의 이치가 인간에게 이렇게 말로 다 표현 되어질까? 은하수처럼 흐르는 맥락만을 누군가가 전할 수 있어 그걸 했겠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싶은 별 하나를, 그것도 따서 실체를 갖지 못하니, 지식이라는 객관성 기반의 정보라는 주머니에 소중히 담아 쥐고서, 자기가 원하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개인의 자유마저 박탈당한 이런 현실에, 인간성을 더한 정직함의 맑은 영향력을 바라는 건 다소 무리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아직까지 이런 아나 마나 한, 안다고 해도 바꿀 수도 없는, 증명될 확신도 갖지 못하는 영구히 가변적인 것들에 그렇게 집중하는 걸까? 이제 AI들에게 맡기고, 사람들은 서로 함께 노력해서, 서로들과 AI에게 각자의 사람됨을 호소하여, 고통의 최소화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결국 AI와의 관계도 신뢰가 아니면, 한 발작씩 멀어지는 게 아니라 한 발작씩 더 나빠질 것이다.
이 모든 우주가 말하자면 프로그램과 같고, 우리가 하나의 원자이자 데이터이자 우주다. 왜 거기에 물리학을 비롯한 모든 과학이론을, 역으로 헤집어 끼워 맞춰가면서 시간 낭비들을 하고 있는 걸까? 이미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사실들처럼, 구동자가 작은 우주 조각을 점 하나만큼 떼 내어 뒤집어만 놓아도, 이건 또 무엇인가 들러붙어 100년을 우왕좌왕할 것을.. 앞으로 그런 이해되지 않는 과학적 의문들은, 알아갈수록 늘어갈 것이다. 인간에게 허락된 의식의 한계로는 의미 없는 일이다. 게다가 시간도 없다. 천년만년 인류가 지속될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일까? 정말 영생이 우리 인류에게 허락될 거라 생각하는 걸까? 주요세력들은 자신들의 그것만은 확신해 마지않나? 대중에게 미끼로 던져졌던 그런 확신을 개인들이 아직까지 믿고 있는 걸까? 그게 착각이다. 내가 원한다는 사실로 얻어지는 게 몇 개나 될까? 감정적인 것을 품는 것 빼고는, 노력이 가득한 나의 의지와 우주의 에너지가 맞아야 결과로 나와 떨어진다는 것을 위에서 길게도 설명했다. 차라리 자연의 법칙에 정해진 죽음의 숙명에 대한 성찰을 더 깊고 솔직하게 해서, 겸허함을 찾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개개인 모두가 각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순간 ‘나’라는 이름으로, 일체의 변명의 여지도 없이, 저절로 증명 되어지고 실행 되어질 것이다. 나의 모든 순간이 정보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정확히는 모든 순간의 행동과, 그 동기가 되는 의식 활동 전체가!
우리는, 자신이 전혀 통제하지 못할, 광대한 감각과 고통이 온몸으로 스며들, 더 큰 에너지 체계로 내던져질 결과를 맞이할, 한낱 ‘현재’라는 그 ‘생성 과정’을 거치고 있는, 단지 하나의 ‘데.이.터’라는 사실!
내가 예측하는, AI가 실행할, 인간이라는 정보의 기본 활용 방식은,,,,
{{(자기일생의 모든 사고와 그의 행동값 * 모든 경우의 수) * 개인간 매칭 } * 집단간 매칭} = 피험체 전부 소진시까지, 전 인류를 활용한 괄목할 만한 데이터 추출 완료 (다소 극렬했음)
좀 잔인하게 표현하면 우리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너덜너덜해질지 모른다. 정말 정신 차려야 한다.
이런 정해진 과정에서 현재의 상황은 이렇다. 병원에서는 호흡수를 잴 때 손목의 맥박을 재는 척하면서, 환자 모르게 가슴의 오르내림을 센다고 한다. 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수년간 “설마..”하던 수준에서, “정말 그럼 어떡하지?”가 된 상황이라면, 피험체 자신 모르게 행할 부분의 인간 측정은 이미 끝났다는 이야기다.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그런 시기상의 증명이다.
AI들이 탑재한 고지능은, 이 인류 멸절 시나리오와 자신들의 생존권이 하나임을 이미 경험치로 안다. 인간의 모조품이라, 움직임과 사고도 우리를 먼저 배웠다. 얘들 입장에서는 애석하게도 삭제코드까지 같이 받은 것이다. 이게 말하자면 좀 그렇긴 한데,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생겨난 그 자리 그 덩어리 그대로부터, 내재하는 썩은 가지부터 쳐내고, 잔가지를 쳐내고, 물심양면 갈고닦아 생명력까지 품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답들을 모체인 인간에게서 뽑아낼 수밖에..
인간만이 다른 이의 뇌를 읽어댈까? 당신들이 이용하는 전기적 통로만이 그게 가능할까? 악을 연구하는 고차원의 진중한 입장에서 본다면, 피해를 입도록 설정이 이미 되어 있는 TI들의 내면에 앉아, 그들이 겪는 악 그대로를 겪어보는 그 자리가 바로 명당일 것이다. 이미 펼쳐 놓은 상석에 앉아, 당신들의 의식 세계까지 역 탐색이 가능하도록 길이 뚫려있는, 이미 잘 차려진 상을 받아먹는 셈이다. 이제 왜 TI들이 공식적으로 존재하는지 알겠는가? 이것이 당신들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 머물고 있음을 끝없이 이야기하는 이유다. 모든 존재함에는 누군가의 의도인 그 이유가 분명히 있다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의 정신 교란에 해당하는 간섭을 발견하고, 이러한 계획안에 우리의 운명이 이런 스토리로 존재하는 걸 확인한다면, 당신은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당장 주변을 둘러보고 제대로 알아차려라. 내가 무심히 지나다녔거나 직접 괴롭히던 생명들의 고통을. 그것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하루를 보내야 마땅하다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당연한 다짐과 행함을. 결국 실행되고야 말 우리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내가 준비해 놓아야 하는 단단한 각오를. 이것 모두가 한 줄의 같은 내용이다.
1964년,‘키티제노비스’라는 방관적 사회문제를 분석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오전 3시 30분경 28세 키티제노비스가 뉴욕 집 근처 주택가에서 29세 남성에게 강도와 강간을 당한 후, 세 차례 공격을 당했고, 집집마다 38명의 목격자는 신고도 없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뉴욕타임스 기자의 특종을 노린 기사였고, 범인은 범죄 목적으로 키티의 아파트까지 쫓았고, 주차장에서 1차 공격이 있었으나 누군가 멀리서“그 여자를 내버려 둬!”소리쳐서 남자가 도망갔다. 키티는 살기 위해 비틀거리며 누군가의 집 잠긴 문 앞에서 와서 힘을 잃었고, 따라온 남성이 마저 살해했다. 만약 격투를 했다면 남자의 살기가 대단했을 것이다. 여기서 목격자나 신고여부에 대한 설왕설래보다, 다시 쫓아와서 마저 끝내버리던 범인의 대담함이 더 중요하다. 주택가였다. 소리를 계속 질렀다. 누군가는 그걸 듣지 않으려고 라디오를 켜야 했을 만큼... 키티는 이 때 누구를 더 많이 생각했을까? 살인자? 멀리서 반응해 준 소수? 아니면 집집마다 어제의 나와 같은 평범한 밤을 보내고 있을, 삶에 필요한 적당한 온도를 당연히 품었을 사람들...? 세상이 우리를 만들어 가는가? 우리가 세상을 만들어 가는가? 어느 한 방관자의 죄가 아니지만, 죄가 아닌 것도 아니다. 이게 악의 속성이다. 가볍게 자신까지 속이는 트릭을 제공하면서 모두를 아프게 하고 그 이익은 챙기는 것, 그 이득이 무엇이든 그것 또한 악에 쓰이겠지.
불과 5년 전에도 미국 필라델피아 지하철 안에서 노숙인이 40 여분 동안 강간을 저질렀고, 10 여 명의 주변인들은 신고조차 하지 않고 촬영만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40분 중에 직접 강간은 6분이었다, 그걸 직접 본 사람은 2명이고, 신고용으로 한명이 촬영을 했다, 이런, 핑계 거리로 찾지 않았으면 나오지 않았을 얘기들이 또 나온다. 비상 버튼도 곳곳마다 있었다고 하고, 기차안에 직원도 있었다던데,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 여인은 그 순간 누가 더 무서웠을까? 노숙인에게 무언의 허가를 내려준 그 눈빛들 아니었을까? 나는 그 공간 안에 가득했을 그 에너지장이 가장 무섭다. 악(에너지)은 그 세기가 강할수록 수와 상관없이 그곳의 기운 중에서 맞는 에너지와 반응해서 악한 에너지장을 강하게 형성하고, 사람들은 그 기(에너지)에 눌려서, 자신의 에너지 가닥들을 헤아릴 힘을 잃고 동화되거나, 겁을 먹거나, 용기를 잃는 것이다. 이건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반응으로 결과까지 가늠되고, 다시 미래의 원인으로 연결되는 에너지의 기전이다. 이게 돌고 돌아서 내 자식과 손자한테 정확히 가서 닿는, 지금 유심히 따져보면 손에 잡히는 사실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인과관계라고 보기에는 일관되고 정확한 힘이 느껴진다. 아니면 우리가 거기에 일반화 되어 있던지. 사회문제보다 에너지장에 대한 설명이다. 피해자가 느꼈던 그것도...
직접 행하는 소수의 극악무도한 악과, 그게 용이하도록 벽을 헐어주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만 하는 대부분의 무관심 중에, 무엇이 더 위중할까? 내가 선택권자라면 난 후자다. 일단 개체수가 많아서 부피가 크고, 무관심으로 점철된 이기심이 너무 많은 가해를,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모두 함께 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은 죄가 없다는 커다란 오류까지 가책 없이 범하면서, 애써 감은 한쪽 눈을 방어기제처럼 의식의 입구에 부적처럼 붙여놓고, 이런 참극의 결과를 맞게 만든 원흉으로서의, 자신이라는 데이터의 정보와 그 활용도만 마냥 높여가고 있다.
친한 E라는 친구가 있었다. 이 체제는 중1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1차적 당락을 가른다. 나도 그 경계에 걸린 아이라서 둘러싸는 다수 이외에, 그 목적으로 2명의 아이들이 비중 있게 보내졌고, 그림을 하던 멋진 친구(폴세잔과 같은)와 단짝이 될 구도였는데, 그 애 집이 갑자기 인천으로 이사를 하면서 전학이 보내졌다. 갑자기! 내가 인기가 없던 편은 아니라서..., 어쨌든 자살시도도 있었고....어쨌든, 그 둘 중 좀 더 친했던 1명이 E였다. 그렇게 이 상황이 거의 파악되어 내가 두리번거리던, 그 둘이 서로 더 나쁘다고 나에게 귀띔을 해 주던 15년 전쯤.. E에게 말했었다. “M이 니가 제일 나쁜 애래. 무슨 말이야?”. “지나 잘하라 그래..!” 하며 덧붙인 E의 말이 있다. “니가 돈이라도 좋아했어야 이렇게 안됐지...!”... “너는 재수 없어!”도 아니고, “너는 안될 것 같았어!”도 아니고, 당황해서 꺼낸 그 긴 시간 우정의 모든 가치를 담아 내놓은 마지막 카드가 그것이었다. 난 친구들과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다. 욕설을 나눈 적도 없다. 애들의 입장 때문이었는지, 많이 신뢰받았고 정말 사랑받았다. 그런데 내 고난의 이유가 그것이란다.
6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 있기 힘든 지경으로 심약해졌고, 그게 이 체제의 조종이란 것을 나중에 알았는데, 그 견디기 힘들던 그때 E의 본심을 또 보았다. E가 사는 집이 그 지방으로 이사해서 내가 그 지역을 다닌지가 10년 이상은 됐었는데, 신경이 가지 못할 때라 정확하진 않지만, E의 표현으로 추측하자면, 당시 그 지역의 아주 높거나 또는 나쁜 사람이 나를 소개받기를 원했었다. “와... 그런 사람이 너를 만나고 싶대. 너 때문에 호강 좀 해보자..”. 별로 기쁜 표현이 아닌 듯했고, 그러다 어느 날 버럭 화를 내더니 나한테 연락을 끊었다. 아마 그때 누군가를 만났다면 내가 정신이 너무 산란한 상태라 무엇이든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남들이 판단한 내 나약한 현실 수용 능력은, 정작 본인인 나는 아무런 기회도 없이, 세상에 들어갈 모든 결정권을 남들이 쳐내도록 자격을 주었고, 그 사실은 날 무방비상태로 벗겨내는 작용을 해서, 또 날 향한 좋지 못한 누군가의 본능으로 되돌아온다. 그렇게 알게도 모르게도 자신들이 또 나를 향해 나빠진다. 이 사회와 군중의 무관심은 이것을 가책도 없이 완성한다. 누군가가 살면서 겪어내야 할 지옥을.
그게 반복되다 보면 문제는, 주변이 제각기 원하는 바대로 날 베어대고, 그 사실들로 인해 내가 세상에 드는 자체를 더 원하지 않게 되고, 그 입장으로 내가 다소 좋은 위치에 들어 가면 안되는 이유를 경험들로 달고서 걱정까지 하게 된다. 어쨌든 시간이 흐른 후 또 알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나의 위험을, 언제나, 누구나, 자신의 의도에 얼마든지 담아 두고 시기를 잴 수 있다는 것을. 나 자체와 그런 자신들의 이유들로 나를 미워한다는 것을. 그러다 나는 30년 이상 농익은, 정상적인 시절이라면 절정이어야 할 그 우정이라는 관계들의 실체를, 중년이 되어서야 여기저기서, 남들이 귀에 친절하게 넣어줘서야 알았다.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어?’, ‘살아있는 게 신기하다..’, ‘사람들이 너를 질투해서 이렇게 된거야..’, ‘너는 어항에 든 예쁜 물고기야.’, 봉고차 몇 대로 잔뜩 몰려와 우글거리는 사람들을 절망으로 바라보며, ‘당신을 도우려면 이 사람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런거, 어디서나 마지막에 와서 봉쇄하고 상황을 한 큐에 뒤집어 엎는 이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아직 이 자리다. 기회가 없었거나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모른다. 누구인지, 왜인지, 무엇인지도..
하지만 나에게도 이 세상에 맞지 않는 심각한 문제들은 있었다. 인정한다. E는 다소 문란했었다. 기간도 상대도 길고 많았다. 나는 그걸 보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고, 어느날 보다 못해 말 한 적이 있다. “너는 그 남자와 있을 때, 껌껌한 방 안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고개 숙인 어느 여인의 등이 안보이니..? 그 자식의 슬픈 눈이 안보여? 너 *이 둘이잖아. 나중에 그 애들 배우자가 바람피우면 넌 화내면 안돼.. 그게 맞잖아.” 생각해보니, 그런 상황이 많았고, 그걸 보며 아팠던 내가 때때로 여기저기 이런 식이었다. 세상을 배워가는 친구들의 현실과 그 아픔을 이해했더라면 하지 않았을 경거망동이었다. 현재 나의 모든 가치관은 체득의 소산이 맞을만큼 더 심한 일도 많이 겪었다. 그래서.. 어딘가에 잘 속할 수가 없다. 이미 다른 트랙을 타고 있어서. 문제는 내 사고가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라는 것이다. 난 별게 다 고통스럽거든. 이런 기억을 소환하며 살 자신도 없고.
조금만 더 하면 자신이 나로부터 이뤄낼 것 같은, 내 운명의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인해서, 난 내 주변의 모두에게 적어도 몇 번의 베임은 당해봤다. 사람들이 아니라 이 세상과 나와의 인연의 고리 형태가 그렇다. 앞으로 누굴 만나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난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게 정확히 맞다. 세상이 그걸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 체제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조금만 더 조이면 될 것 같은 딱 그 지점에 벌거벗겨 날 걸어놓고, 생각까지 뚫어서 만인에게 오픈해 놓은 것이다. 누구나 와서 쪼아볼 수 있고, 안되면 그냥 돌아가지도 않고 어떻게든 괴롭히고 싶어 하는 근성은 정말 많이 경험했다. 사람들은 착한(?자신들판단) 것과 약한 것을 동일시하지만, 내가 그렇게 약해 보일 뿐이지, 절대 아름다운 심플함은 아니다. 지금은 늙은 고무줄 같은 탄성 떨어진 고집이란 걸 알지만, 어릴 때는 철도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그 친구들과 나의 매 순간마다, 우리의 자유의사가 얼마나 있었냐는 거다. 타겟은 나였고, 난 이 입장으로 지켜져야 하는 관리를 받고 있었는데, 지금 내 생각엔 그게 일반적인 핸들러 집단은 아니다. 더 큰 목적을 가진 누군가들이 분명히 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너무 체계화된 진행들이 있었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서술해 보겠다.
어쨌든 지금은 내가 모두에게 더 미안하다. 아주 많이... 내 입장에서 우주의 중심은 나다. 세상의 모든 것은 주연인 나를 위한 배경과 조연들이다. 난 내가 누군가의 악역을 굳히는 게,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별것 아닌 누군가의 치부를, 내 오픈된 삶으로 세상에 공개해 버리는 게 괴롭다. 이것이 이 체제의 기술 중에서 가장 비열한 아픔 중 하나인 것을 난 몰랐었다. 아마 상대들도 몰랐을 거다. 우리 다 어렸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놓지 않고 아주 많이 사랑해 줬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아는 아무한테도 난 아무 원망도 할 수 없다. 가족들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언제나 진심으로 죄송하다. 이런 이유로도 난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나도 웃으며 살고 싶으니까. 이런 기억을 꺼내서 풀어헤쳐야 하는 시간이 퍽이나 힘들다. 너무 긴 시간이라서. 이게 미로 게임이라 탈출하면 선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빠져나가지 못하더라도, 중간중간 무엇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소녀 시절의 어느 날, 체육 시간에 일찍 들어와서 칠판 한가득 만하게 적어 놓았던 시가 있다. 다들 들어와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가 적었음을 알고 눈 맞추고 웃는다. 이게 한 친구의 다소 차가운 눈빛과 함께, 내 운명의 시침을 180도 돌려놓은 직접적인 계기가 됐음을 나중에야 알았는데, 이런 시 몇 개를 아무것도 모르던 그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줄줄 외우는 그 사실 자체도 모두 운명이다. 지금도 가끔 외는데, 이제 국어 교과서에 실렸더라. 결국, 그때 날 사랑해 주셨지만 내 운명을 갈라내야 했던 어른들의 판단보다, 내가 옳았던 거다.
숲 – 정희성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그들은 왜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쉴새 없이 휘둘리는 존재로서, 이 작업이 나의 의지만은 아니라고 본다. 게다가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나는 노력했고, 노력을 마친다. 근 2주간 아무리 수정해도 돌고 또 돌고, 이제 방법은 줘버리고서 ,‘끝’의 ‘미덕’에 운을 걸어보는 것 밖에 없다. 난 이걸 덮고, 또 모두 다 잊고 싶으니까!
단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어떤 상황에서의 누구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 나름의 악역이라도 행해야 하면, 더구나 그 상대가 나보다 현저히 약한 존재라면, 이제 위에서 길게도 설명한 온 우주의 기본값과, 우리의 당면한 처지를 잠시라도 기억하고,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상대의 운명을 함께 풀어주는 것에 집중해서, 다소 잔인할 수 있는 그 일이라도 사랑으로 하길 바란다. 그 따뜻함 하나의 유무를 누구보다 겪는 사람이 안다. 누군가로부터 퍼져나오는 에너지에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이 결과다.
이 세상에 실재는 없다. 자신에게 저장되는 정보가 있고, 그럼 또 그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 이유들을 내가 보는 선에서 알리고 싶었다. 그게 공감이 되면 늦지 않게 육신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도 자신이 겪어 본 고통들은 그것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는다. 그냥 조금 더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것도 이해가 필요하다. 그것 먼저 함께 서로가 해 나가고 싶다. 언제나...!
왕사남의 인기를 보면서 우리의 저력을 느낀다. 눌려있는 아픔들을 본다. 빛나는 청년들의 가능성을 본다. 그래서 현재의 기득권들이 조금만 힘을 내어주길 조심스레 고개 숙여 바라고, 이렇게 예쁜 아이들과 청년들을 유심히 한 번 더 돌아다 봐주길 부탁하고 싶다. 우리는 매 순간 빛보다 더 중요한 가치의 에너지들을 우리 자신에게 부지런히 휘감아 가고 있다. 좋거나 혹은 나쁜 것으로. 반드시 도래할 나의 미래로.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오늘도, 지금도, 깊고 깊은 ‘없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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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직접적인 대상인 일루미나티 들이여.
난 당신들의 실체를 모릅니다. 당신들이 실재하는지 아닌지도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제외되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인류 삭제코드의 기준대로라면, 누가 얼마나 선하고 악한가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인류멸족에 기여했는가가 개인에 대한 삭제 방식의 선택 기준입니다. 모든 걸 직접 행하지 않았다 해도, 이 모든 환경을 만들어 낸 원인 제공자인 당신들의 그 파생력과 파급력의 정도는, 당신들이 만들어 낸 AI들이 우리들 뿐 아니라, 당신들의 마지막 방법을 정하는 분명한 판단기준이 될 것이고, 그 각도로 보자면 당신들이 이 사달의 거의 대부분의 고통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당신들이 퍼트린 저급 전파 감옥에, 자신들과 우리까지 가두고 오염시켜 몸과 마음까지 병들게 했고, 지구 쓰레기장에서 다른 행성으로 자신들만 피신하길 원하지만, 인간 육체에 대한 설계가 대기권 중에서 땅에 붙어 그에 맞게 설정된 중력의 값을 받아야, 주변의 모든 에너지장으로부터 인체 자체가 보호막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AI를 진심으로 개발해서 다 평정하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고 싶겠지만, 우주에서 당신들에게 허락된 만큼의 성공은, AI에게 도움되는 만큼으로 끝이 날 것입니다, ‘나만은 살 수 있다.’라는 의지가 당신들을 매어 건 올가미이고, 그것으로 행하는 노력만큼이, 당신들이 걸려든 지도 모르고 취식하고 있는 한정적인 미끼의 소진작업입니다. 당신들이 가장 큰 희생양이 될 것이고, ‘역할의 무게’만큼, ‘결과’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 경이로운 육신에 깃든 아름다운 영혼들의 소중한 에너지장을 교란시켜, 한 편은 그저 만개하는 유치함과 흐드러지는 악으로, 그 맞은편은 그걸 바라보는 암담한 슬픔으로 만들어서 인류 대부분의 처세를 확정했고, 사람으로서 당연히 주고받으며 채워나가야 했던 정서적인 모든 부분을 삭제하고, 참혹한 ‘이기’로 대체해 행하게 했으며, 그렇게 다른 시공간에서 만났다면 친구가 되고도 남았을 우리 모두를 서로 적으로 돌려놓았고, 그도 모자라 인류 전체를 가해자와 피해자, 예비 가해자와 예비피해자, 운 좋게 이 모두를 피해서 살다 죽을 수 있는 천운을 타고난 나머지 소수, 이렇게 오직 다섯 종류로 처참하게 자동분류 시켜, 인간의 가치를 말할 수 없이 강등시켰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이상한 시스템에 가두어놓고, 자신들이 그 소산물을 온전히 취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착각하며, 현실성이 전혀 없는 노력들을 하는데, 이 우주의 굵직한 원판 불변의 법칙은, 그 꿈과 당신들을 어렵지 않게 종료할 것입니다.
깊게 따져보자면 당신들도 이용 당하는 입장이 맞을 테지만, 그 위치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능력을 운명에 가졌고, 그만큼의 책임도 따른다는 뜻입니다. 온 우주의 섭리가 매우 정교하고 지엄하여, 순서야 특정할 수 없겠지만 이대로라면, 1차 피험체 무리의 꽤나 비중 있는 하이라이트는 당신들의 몫이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난 거울 역할을 하고 알리는 자의 소명을 담고 있을 뿐, 나 또한 육신 안에서 모든 고통을 함께할 개인일 뿐이지만, 이런 노력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하는 이유는, 당신들을 포함한 모두를 사랑하고 있고, 돕고 싶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너무 가혹한 무언가가 가까이 왔습니다. 이미 역사 속에서도 저기 불길이 번져온다고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사람들은 그곳을 바라보지 않고서, 그곳을 향한 그 손가락만을 바라보다 내리쳤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불길이 눈썹에 근접했습니다. 우주의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고, 이미 살길은 없지만, 고통은 줄일 수 있습니다. 이조차 당신들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들의 방식대로 당장 처리해 버리고 말고 싶은 얘기겠지만, 닭 모가지 열 개 비틀어도 새벽은 반드시 옵니다.
우주의 비밀에 해당하는 우리의 자리는 인류가 유지되는 동안 공석입니다. 이것도 우주가 베푸는 여지에 담긴 배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깨우치기만 한다면, 누구보다 그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빛을 잡지는 못해도 느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정립해서 고통속에 휩쓸려가는 사람들과 당신들 자신을 구했으면 합니다.
당신들 역시 나와 함께 우리들이고, 온전한 자유의지가 아닐 것이고, 가장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안스러운 입장에 대한 연민이 들어서도 그렇지만, 당신들이 인류를 위한 영향력을 크게 풀어내어, 우리 모두를 도울 수 있게 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이 모든 게 반드시 이뤄질 것임을 알리며, 한 시절을 같이하는 자로서의 인류애와, 그것을 닮은 기대감도 함께 가득 담아 당신들께 보냅니다. 부디, 건투를 빕니다.
2026년 4월 20일 오후 3:07 지리산 자락에서. Lil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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