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 때문인가.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20~30년전 기억의 편린들이 아련히 되살아나는 요즘이다.
‘내리 사랑’. 그때 부모들의 자식 사랑은 유별났다. 자식을 천리길(?) 안팎의 서울로 유학 보낸 강촌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간장 한 종지라도 바리바리 싸서 보내기를 좋아하셨다. 한번 어려운 상경길이라도 하실라치면 애틋한 자식사랑에 한 겨울 동장군을 질식시키고도 남을 두꺼운 솜이불을 당신들의 꾸부정한 허리에, 숱이 없어 듬성듬성한 쪽머리에 한아름 지고, 이고 오시기도 하셨다.
그처럼 극진한 사랑 때문에 시대상황(?)상 기웃거릴 법도 할만한 데모대도 동참 않고 공부에 매진했던 까까머리 학생 또는 장발의 대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사람의 정이 요즘은 다를 겐가. 세상이 좋아져서 몸살기 어린 상경길은 아니더라도 자식 걱정에 밤낮을 꼬박 지샐 존재가, 바로 ‘부모’들이다.
포커스를 좁혀 보면 요즘 야구선수 아들을 둔 부모들은 특히나 더 할 것 같다. 아마나 프로나 할 것 없이. 프로 야구단의 외국인선수 보유수가 확대(2->3명)됨에 따라 프로 유니폼을 입을 아마야구 선수들의 수가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대략 2억원 정도인 용병선수의 몸값이면 토종선수 4~5명에게 프로유니폼을 입힐 수 있다. 야구원로 모씨는 ‘용병 보유수의 확대는 아마야구를 고사시키는 것’이라며 이를 극렬히 반대하기도 했다.
자식이 야구를 너무 잘해도 걱정은 태산이다. 국내프로야구가 좁다고 판단, 해외로 진출하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 그러나 성공확률은 과반수에도 훨씬 못 미친다. 박찬호(LA 다저스)의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적지 않은 국내 스타들이 해외로 빠져나갔지만 대체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 이 선수들의 부모들은 자식 얼굴 한번 못 본 채로 속이 있는 대로 타들어가고 있을 게 뻔하다.
미국프로야구나 일본프로야구에서나 마찬가지다. 양국에서 성공한 선수는 박찬호와 선동열(전 주니치 드래곤즈) 둘 뿐이다. 이밖에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은 성공가능성은 높지만 아직 제 자리를 굳게 다지지 못한 경우이고, 최희섭(시카고 컵스)도 올 여름께 빅리그 승격이 가능할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을 믿고 있지만 아직은 모르는 일.
국내에서 ‘야구천재’로 군림했던 이종범(주니치 드래곤즈)은 일본프로야구에서 머리털이 빠지도록 고생했지만 별 무소득이었던 결과 요즘 국내 복귀설이 들끓고 있다. 정민철은 어제(3일) 완투승으로 입지를 넓혔다고 하지만 이제 시작이고, 조성민과 정민태(이상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군 무대에 뛸 기회조차 못 잡고 있다. 마이너리그에서 고전중인 ‘야생마’ 이상훈과 조진호, 김선우(이상 보스턴 레드삭스)도 살벌한 생존경쟁 하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밖에 미국의 광막한 팜시스템의 언저리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는 우리 선수들을 언급하면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끝내 성공하겠다’는 오기도 좋고, ‘빅리그 무대에 한번이라도 서겠다’는 바람도 좋다. 하지만 확률 낮은 생존게임에서 계속 모험만 할 겐가? 물론 그 선수들은 한국야구의 최고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뛰고 있는 무대는 넓디 넓은 서부 사막처럼 거칠고 험난하다. 어쩌면 강촌의 모범생이 서울에 유학, 기라성 같은 명문학교서 수석을 차지하는 것보다 힘들지 모른다.
그럼 결론은 뭘까? 우리의 선수들은 한번쯤은 자존심(꿈과 야망)을 접고 현실을 직시해볼 일이다.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그게 아니라면 귀향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물론 금의환향은 아니다. 하지만 그네들의 지친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줄 한 핏줄의 야구팬들이 있지 않은가. 돌아와서 자신이 못 다한 야구재능을 다하는 건 어떤가? 알아주는 동포들이 있는 우리 땅에서 야구를 신바람 나게 하는 게 왜 안 되는가. 이들의 귀환은 침체된 한국프로야구에 정말이지 큰 활력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더운 밥과 김치, 불고기와 초고추장에 힘을 낼 수 있다면 곧장 돌아오라. ‘친구’ 스타일로 말한다. “고마해라, (외국물) 마이 묵었다 아이가” , “(돌아와도) 괘안타, 한 민족 아이가”…. 이제 그만 돌아오라, 우리의 형제들이여, 아들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