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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ing the Holy Spirit
성령을 받는 것
By David Wilkerson
“According as his divine power hath given unto us all things that pertain unto life and godliness, through the knowledge of him that hath called us to glory and virtue” (2 Peter 1:3).
그의 신성의 능력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심에 따라 그에 관한 지식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영광과 덕에 이르도록 부르셨으니 (베드로후서1:3)
For years I’ve claimed to be filled with the Spirit. I have testified that I’ve been baptized in the Spirit. I’ve preached that the Holy Spirit empowers me to witness, and that he sanctifies me. I’ve prayed in the Spirit, talked to the Spirit, walked in the Spirit and heard his voice. I truly believe the Holy Spirit is the power of God.
수년간, 저는 제가 성령으로 채워졌음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저는 제가 성령으로 세례 받았음을 고백해 왔습니다. 저는 성령께서 제가 증언하도록 권능을 주시고 나를 거룩하게 하신다고 설교해 왔습니다. 저는 성령 안에서 기도해왔고 성령님과 이야기해 왔으며, 성령 안에서 걸었고 그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저는 진실로 성령님이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I can take you to the place where I was filled with the Spirit, at eight years of age. I still remember my tears and my heart’s cry to the Lord. I recall the incredible vision of Christ I received. And I remember the passion for Jesus that resulted from that experience. The Holy Spirit has been my friend and close comfort ever since.
저는 여러분께 8살 때, 제가 성령으로 채워졌던 장소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나의 눈물과 주님을 향한 내 마음의 울부짖음을 기억합니다. 저는 제가 받았던 놀라운 그리스도의 환상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저는 그 경험으로 인한 예수님을 향한 열정을 기억합니다. 그 이후로 성령님은 나의 친구가 되셨으며 가까운 위안이 되어 주셨습니다.
I’ve read everything that Scripture says about the Holy Spirit, from Genesis to Revelation. I’ve preached on Pentecost, on the need to be filled with the Spirit, on our bodies being temples of the Spirit. And I trust that the Spirit has spoken through me to his church.
저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이 성령에 대하여 말하는 모든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오순절에 대해, 성령으로 채워 져야 할 필요에 대해,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는 것에 대해 설교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령께서 나를 통해 그의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셨음을 믿습니다.
Yet, lately, I’ve found myself praying, “Lord, have I truly received your Holy Spirit? Do I really know this incredible power that lives in me? Or is the Spirit just a doctrine to me? Am I somehow ignoring him? Am I not asking him to do for me what he came to do? Am I still carrying things, still doing things on my own, that he came to do for me?”
그러나 최근, 저는 제 자신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진실로 당신의 성령을 받은 것입니까? 저는 내 안에 사시는 놀라운 권능을 정말로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은 저에게 있어서 단지 교리일 뿐입니까? 아무래도 제가 그분을 묵살하고 있는 것인가요? 그분이 하시기 위해 오신 것을 저에게 행하시도록 제가 부탁하지 않고 있습니까? 여전히 그분께서 저에게 하려고 오신 것을 제가 감당하며 아직도 나 스스로 일을 하고 있습니까?”
The fact is, you can have something very valuable and not know it. And you can’t enjoy what it is you have, because you don’t understand how valuable it is.
사실, 여러분은 무엇인가 매우 가치 있는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것을 즐길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르니까요
There’s a story about a farmer who worked his small farm his whole life. For decades he tilled the rocky soil, living poor and finally dying in discontent. At his death, the farm was passed down to his son. One day, while plowing, the son found a gold-streaked nugget. He had it appraised and was told it was pure gold. The young man soon discovered that the farm was full of gold. Instantly, he became a wealthy man. Yet that wealth was lost on his father, even though it was on the land his whole life.
작은 농장에서 전 생애를 일한 어느 농부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 십 년 동안 그는 자갈밭을 경작하며 가난하게 살았고 결국 불만족 가운데 죽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그 농장은 아들에게 상속되었습니다. 어느 날 밭을 갈면서 그 아들은 마치 금처럼 보이는 어떤 금속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감정하였고 그것은 순금이라고 판정되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곧 그 농장이 금으로 가득 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시, 그는 부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는 그의 아버지에게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전 생애 동안 그의 땅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So it is with the Holy Spirit. Many of us live in ignorance of what we have, of the power that resides in us. Some Christians live their entire lives thinking they have the Holy Spirit, yet they haven’t truly received him in fullness and power. He isn’t accomplishing in them the eternal work he was sent to do.
성령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우리 안에 거하시는 권능을 모르는 채로 살아갑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평생 그들이 성령을 지녔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러나 그들은 충만함과 권능으로 그분을 진정으로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 안에서 그분께서 하시기 위해 보냄 받은 그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하신 것입니다.
Now, I’m not talking about manifestations. Often, some believers seek the Spirit only when they’re in trouble and want him to manifest himself. They hope he’ll come down and sweep away their problems. But Peter says that’s not the truth about the Spirit. According to him, we have the treasure within us: “His divine power hath given unto us all things that pertain unto life and godliness” (2 Peter 1:3, italics mine).
지금 저는 징후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어떤 신자들은 오직 그들이 문제에 빠졌을 때에만 성령을 찾으며 그분께서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시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그분이 내려와 그들의 문제를 쓸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은 성령에 관하여 진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 안에 보물을 지닌 것입니다. “그의 신성의 능력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심에”(베드로후서1:3)
At the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은 바리세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물로 침례를 주지만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분이 너희 가운데 서 계시는데”(요한복음1:26) 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그분의 육신으로 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권능과 영광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Likewise, Jesus asked his own disciple, Philip, “Have I been so long time with you, and yet hast thou not known me, Philip?” (14:9). I want to ask you a similar question: how long have you testified that you’ve been filled with the Holy Spirit? Could the Spirit possibly say to you, as the Lord did to Philip, “Have I been with you all these years, yet you really don’t know me”?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그의 제자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그처럼 오랜 시간을 있었는데 네가 나를 모르겠느냐”(14:9) 저도 여러분에게 비슷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오랫동안 여러분이 성령으로 채워졌음을 증거해 왔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빌립에게 말씀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너와 이 모든 세월을 함께 있었는데, 정말 네가 나를 모르느냐?”
I sometimes wonder if Christians
today aren’t measuring up to the
believers of Paul’s day.
저는 가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
바울 시대의 신자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가 의아합니다.
Something seems to be missing in the church today. We all know that Christians in the first century faced great afflictions. They endured severe testings, hard times, persecutions that were life-and-death. But they didn’t break down under the stress.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무엇인가가 빠진 듯이 보입니다. 우리 모두는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큰 고통에 맞닥트렸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가혹한 시험과 힘든 시간들, 삶과 죽음이 달린 핍박들을 견뎠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압박에 울며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Paul says the church in Thessalonica endured the loss of their homes and possessions, everything they owned. Yet these believers weren’t rocked by the experience. He attributes their strength to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Our gospel came not unto you in word only, but also in power, and in the Holy Ghost, and in much assurance…and ye became followers of us, and of the Lord, having received the word in much affliction, with joy of the Holy Ghost” (1 Thessalonians 1:5-6).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교회에게 그들의 소유한 모든 집과 재산을 잃는 것을 인내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신자들은 그 경험으로 인하여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힘이 성령의 능력덕분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대단한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했다는 것을 너희도 아는 바라. 또 너희가 성령의 기쁨으로 많은 환난 가운데서 그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와 주를 따르는 자들이 되었으므로”(데살로니가전서1:5~6)
Paul then describes the testimony that came from their joyful endurance: “Ye were ensamples to all that believe in
그리고 바울은 그들의 기쁨의 인내로부터 온 간증을 말해 줍니다. “마케도니아와 아카야에서 믿는 모든 자들에게 본이 되었느니라. 이는 주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카야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의 믿음이 퍼져 있는 모든 곳에도 전해졌으므로”(1:7~8)
These believers had been “much afflicted,” yet they possessed true joy. They faced hardships and sufferings like no other body of that time. They lived with pressures you and I can’t possibly fathom. Surely their marriages were tested during those hard times. The devil must have come against those families at their weakest, stirring up problems of all kinds.
이 신자들은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참된 기쁨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압제에 직면하였고, 그 시대의 다른 누구보다도 더욱 고난 받았습니다. 그들은 여러분과 제가 가늠할 수도 없는 압박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분명 그들의 결혼생활은 그 어려운 시기 동안 시험 받았을 것입니다. 악마는 분명히 그 가정들의 가장 약한 것들에 대적하여 온갖 문제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But the pastors and saints in that church wouldn’t quit. They didn’t complain about their circumstances. And they didn’t question God’s testings. Instead, there was rejoicing among that body of believers. And Paul told them, “You’re the talk of the nations! Your joy during your hard times has amazed and touched others, near and far.”
그렇지만 그 교회의 목사와 성도들은 중단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환경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험에 의문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에 신자들의 지체 가운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나라의 화젯거리입니다. 여러분의 기쁨은 멀리 또 가까이에 있는 다른 사람들로 기이하게 여기며 감동토록 하였습니다.”
These Christians had truly received the Holy Ghost. I wonder: what did they know about the power of the Spirit that so few Christians today seem to know? What is missing? Where is the joy of the Holy Ghost in our times of trial and affliction?
이 그리스도인들은 진정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에 대해 무엇을 알았을까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무엇이 빠진 것입니까? 우리의 시험과 고통의 시간에 성령의 기쁨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Never in church history have so many
believers been so discouraged.
교회 역사상 이토록 많은 신자들이
낙심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In all my years of ministry, I’ve never seen so many believers under such affliction. There has never been a time like this, with families facing financial crises, enduring marital struggles, despairing over children in rebellion.
제 모든 사역의 시절에, 저는 이렇게 많은 신자들이 그러한 고통 아래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때는 결코 없었습니다. 가정들이 재정적 위기에 처하며 결혼생활의 고투를 견딥니다, 자녀들의 반항에 절망하기도 합니다.
Right now, pastors all over the world are becoming disillusioned. They’re exhausted by their labors and heavyhearted because they see so little fruit. And their wives and families are being overwhelmed. These men are quitting by the hundreds in every nation. The leader of a large Pentecostal denomination recently told me, “Pastors are leaving left and right, and churches are closing by the dozens.”
지금 바로 세계의 도처의 목사님들은 환멸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사역에 지쳤고 거의 열매를 보지 못하고 있기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또 사모들과 가족들도 어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에 이런 자들이 수 백 명씩 그만두고 있습니다. 어느 큰 오순절 교파의 지도자 최근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좌우로 목사님들이 떠나고 수십의 교회가 문 닫고 있습니다.
Here is a typical letter we receive from ministers: “I pastor a good-size church. But my labors are so unfulfilling, so discouraging. I’m growing desperate to see something happen, some kind of breakthrough. I don’t know why I’m so anxious, or even what I want to see. But there has to be more than this. What am I missing?”
여기 우리가 선교사님들로부터 받는 전형적인 편지가 있습니다: “저는 괜찮은 크기의 교회의 목사입니다. 그러나 저의 사역들은 너무나도 이루어 지는 것 없이, 실망스럽습니다. 저는 어떤 돌파구가 될 무엇인가 일어나기를 보기 갈망하며 양육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왜 이렇게 불안한 건지 심지어 제가 무엇을 보길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무엇인가 빠뜨리고 있는 걸까요?”
My son Gary and I travel the world conducting gatherings of pastors and their wives. Yet everywhere we go, we see pandemic despair. Most pastors in poor countries have to work secular jobs to support themselves. There is little or no money for their families or even their ministries. And their poverty is worsening.
내 아들 Gary와 나는 세계의 목사님과 사모들의 지도 모임에 다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그 모든 곳에서 만연한 절망을 봅니다.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의 목사님들은 그들 자신을 부양하기 위해 세상의 직업을 갖고 일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가족들 심지어 목회를 위한 돈마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빈곤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Over the past few months, our advance team has met with pastors in very poor nations. At one meeting, ministers came from various denominations. Within minutes after our videotaped presentation began, those men started to weep. The sight brought tears to our team’s eyes. The broken pastors explained, “We’re so discouraged. We work so hard, yet we see so little results. And we have no finances. Even if Brother Dave were to come to our country and speak, we couldn’t afford to travel to the meetings. We can’t even pay for our families’ necessities. And our work is so hard, so trying. We’re seeing many suicides, especially among young people. We feel so abandoned.”
지난 몇 달 동안, 우리의 선발팀은 매우 가난한 나라의 목사님들과 만났습니다. 한 모임에 여러 교파의 목사님들께서 오셨습니다. 우리의 비디오 테이프 프레젠테이션이 시작한지 몇 분도 안되어 그들은 흐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광경은 우리 팀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게 하였습니다. 그 낙담한 목사님들은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낙담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거의 성과를 보지 못합니다. 또 우리는 재정도 없습니다. 데이빗 형제가 우리 나라에 와서 설교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집회에 다닐 형편도 못됩니다. 심지어 우리는 가족의 필수품조차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역은 힘들고 괴롭습니다. 우리는 자살을 많이 목격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가운데서 말입니다. 우리는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Our ministry rents buses so these ministers can travel to our gatherings. But many are so poor, they can’t afford lodging, so they camp outside in tents. Last year, in
우리 선교회는 이 사역자들이 우리집회에 다닐 수 있도록 버스를 빌렸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너무 가난해서 숙박할 처지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밖의 텐트 속에서 야영하였습니다. 작년에 한 남 아메리카 사람이 우리의 집회에 오기 위하여 10시간을 여행하였습니다. 그는 되돌아갈 길의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은 기도하였고 그에게 1000달러를 주도록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그 목사가 이것을 들었을 때, 그는 흐느꼈습니다. “그것은 1년치의 보수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말하였습니다.
In
미국에서 가장 커다란 문제는 스트레스입니다. 미래, 직업의 안정성에 관한 불안이 만연합니다. 어떤 가정들은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는 직장과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사람들은 절망에 쓰러집니다.
As a pastor, it’s absolutely heartbreaking to see the many troubles facing Christians. Fathers and husbands are demoralized because they don’t have jobs or are underpaid. They can’t possibly support their family, and they’re falling deep into debt. Multitudes of elderly people are in excruciating pain because they can’t pay for their medications. The government can’t solve these problems. Politicians hold only empty promises.
목사로써,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곤란거리에 직면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아버지들과 남편들은 실업이나 박봉으로 사기가 꺾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족을 부양할 수가 없어 빚에 빠집니다. 다수의 노인들은 약값을 댈 수 없기 때문에 극심한 고통 속에 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공허한 약속만 할 뿐입니다.
As we survey all these needs, all these pressing trials, we’re driven to our knees. Day after day, we cry out to God, “Lord, what message can we offer? What can we preach to bring healing and encouragement to afflicted believers?” We feel the awful pain, yet we know we can’t simply offer platitudes. We refuse to bring a shallow message of human sympathy, saying, “Don’t be down. The sun will rise soon.”
우리가 이 모든 필요를, 이 모든 옥죄는 고통을 바라볼 때,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매일 우리는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주님,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고통 받는 신자들을 격려하고 치유하기 위하여 무엇을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몹시 고통을 느끼지만 단지 상투적인 말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낙담하지 말아요, 곧 해가 떠오를 거에요” 라고 말하는 인간적인 동정심의 얄팍한 메시지를 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No, more is needed than mere pity or a pep talk. The Word of God must come forth, giving power to withstand every onslaught of trials.
아뇨, 단순한 동정이나 격려의 말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맹습과 고난을 견디는 자들에게 반드시 힘을 주며 다가 오십니다.
This is not the message
I started out to deliver.
이것은 제가 착수하였다는
메시지는 아닙니다
As I pondered the afflictions, despair and suffering, I thought, “This is all because of satanic attack.” Immediately, I began working on a message called, “War on the Saints.”
그 고통, 절망 그리고 고난들을 숙고할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사탄의 공격 때문이야.” 곧, 저는 “성도들에 대한 전쟁”이라는 메시지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In Revelation, we find Satan giving power to something called “the beast.” “It was given unto him to make war with the saints, and to overcome them: and power was given him over all kindreds, and tongues, and nations” (Revelation 13:7).
요한 계시록에서, 우리는 사탄이 ‘짐승’이라 불리는 무엇인가에 권세를 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가 성도들과 싸워 그들을 이기는 권세를 받았으며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더라.”(요한계시록13:7)
As I put the words together — “Power to make war…against the saints…to overcome them” — I began to reason: “That’s it. This is why God’s people are being so afflicted right now. It’s the power of the beast. That’s who is behind all the poverty, all the problems in families and marriages. A mad dragon is empowering a wicked government. Our leaders are being manipulated by wicked coalitions and special interest groups. The devil is forcing his agenda on our society.
제가 그 단어들을 종합하여 판단함에 – 전쟁을 일으킬 권세 … 성도들을 대적하여…그들을 이기는”- 추론해 내었습니다. “그거야,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 고통 받는 이유야, 그것은 짐승의 권세 때문이야, 그것이 온갖 빈곤, 그리고 모든 가정과 결혼생활의 문제 뒤에 있는 거야. 또 광폭한 용이 사악한 정부에게 권한을 부여해주었어, 우리 지도자들은 사악한 연합과 특정이익단체에 의해 조정되고 있는 거야. 악마는 그의 의지를 우리 사회에 강요하고 있어.”
“This is outright war against God’s elect. It’s about a mad enemy overcoming the faith of the saints, causing them to lose all trust in God. Multitudes of believers have become stagnant in their faith. And others have already been overcome. Their faith is shipwrecked. They became so discouraged, they finally gave up.
“이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전격적으로 대적하는 전쟁입니다. 그것은 광폭한 적이 성도들이 하나님 안의 신뢰를 잃도록 만들며 그들의 믿음을 압도하려 하는 것입니다. 다수의 신자들의 믿음이 침체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자들은 벌써 정복당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난파한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 낙담하였고 끝내 포기하였습니다.
“As I look around at what’s happening in our country, it can’t be denied. The devil has spewed out of his mouth a flood of iniquity. He has brought forth a flood of afflictions against God’s people. And many are being carried away in that flood.”
제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둘러볼 때 이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악마는 그의 입에서 부정의 홍수를 토해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해 고통의 범람을 초래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자들이 그 홍수에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Jesus spoke of an “hour of power” that would take place for the rulers of darkness. When he was led from the garden, he told his captors, “This is your hour, and the power of darkness” (Luke
예수님께서는 흑암의 지배자들이 대신할 ‘권세의 때’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뜰에 끌려 나왔을 때, 그는 그를 사로잡은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너희의 때요, 또 흑암의 권세니라."(누가복음22:53) 희랍적 의미로 여기의 ‘때’란 짧은 시기를 뜻합니다. 그 흑암의 때에 짐승은 베드로를 잠시 압도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사탄이 너를 흔들고 시험하기 위해 대적해올 것이다.”
Yet here is the question Jesus really was asking: “Yes, an hour of darkness will come, not just upon
그러나 여기 예수님께서 진실로 물으신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 흑암의 때는 올 것이다, 단지 이스라엘에게 뿐만이 아니라 온 세계 위에 말이다, 나는 그 때에 여기에 있지 않을 것이나, 나의 영은 여기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고난 동안에 너희를 붙들기 위해 그를 보내는 것이다. 그는 나를 믿는 모든 신자들의 심령 안에 거할 것이다. 그렇다면, 흑암의 때가 왔을 때에도, 너는 믿겠느냐.”
We are now seeing the beginning
of Satan’s last hour of power.
우리는 지금 사탄의 마지막 권세의 때의 서막을 보고 있습니다.
Both in Daniel and Revelation, we’re warned about this last hour of gross darkness, which will cover the whole earth. And for a short season, it will look as if Satan is winning on all fronts.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전 지구를 덮을 마지막 짙은 어둠의 때에 관해 경고 받습니다. 그리고 짧은 시기 동안은, 마치 사탄이 모든 전선에서 승리하는 듯이 보일 것입니다.
Even now, there are ominous signs of such darkness. Our nation seems to be spinning into chaos. Television and the Internet spew filth into homes. Institutions that have undergirded our society appear to be crumbling and falling. Think about the recent controversy over the institution of marriage between a man and a woman. It seems hell has gained victory on this battlefront, casting aside all moral restraints.
지금도, 그러한 어둠의 불길한 징조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듯이 보입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은 가정에 음란물들을 쏟아놓습니다. 우리 사회를 뒷받침해 주던 제도들은 부숴지고 무너지는 듯합니다. 최근에 남성과 여성의 결혼제도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이는 이 전선에서 모든 도덕적 구속을 내동댕이치면서 마치 지옥이 승리를 얻은 것처럼 보입니다.
Most tragic of all, Satan seems to have brought down the church in defeat. He has cast a spirit of death over God’s house, so that multitudes cry, “I can’t find a church where the Spirit is at work. Everywhere I look, there’s no fire, no conviction. It’s dead.”
그 무엇보다도 가장 비극적인 것은 사탄이 교회를 패배로 떨어뜨린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성전에 죽음의 영을 던졌고, 수많은 사람들은 울부짖습니다. “저는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보는 모든 곳은, 불도 없고, 회개도 없으며 죽어있습니다.”
You may say, “Brother Dave, you make it sound so bleak. It all seems so discouraging.” But the truth is, Satan has been given only a short time. That’s why he’s bringing forth everything of hell he possibly can.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이빗, 형제님, 너무 암울하게 말씀하시네요, 모든 것이 절망스러워 보이는 군요” 그렇지만 사실 사탄은 단지 짧은 때만을 부여 받았을 뿐입니다. 그것이 그가 지옥으로부터 가능한 모든 것을 끌어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Yet God foresaw it all. He wasn’t taken by surprise by any of the wickedness we’re seeing. No, he’s had a plan in place for his people all along. He formed this plan before Creation. And it’s a plan not just for our survival, but for us to overcome.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예견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보고 있는 어떠한 사악한 것도 놀랍게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아뇨, 그분께서는 처음부터 그의 모든 백성을 위한 적재적소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이 계획을 창조 전에 구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구원의 계획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한 승리의 계획이기도 합니다.
Only one thing conquers and dispels darkness, and that is light. Isaiah declared, “The people that walked in darkness have seen a great light” (Isaiah 9:2). Likewise, John stated, “The light shineth in darkness; and the darkness comprehended it not” (John 1:5).
어둠을 정복하고 몰아 내는 오직 한가지, 그것은 빛 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흑암에서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으며’(이사야9;2) 마찬가지로 요한도 선언하였습니다. ‘그 빛이 어두움 속에 비치어도 어두움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요한복음1:5)
Light represents understanding. When we say, “I see the light,” we’re saying, “Now I understand.” Do you see what Scripture is saying? The Lord is about to open our eyes, not to see a victorious devil but to receive new revelation. Our God has sent us his Holy Ghost, whose power is greater than all the powers of hell: “Greater is he that is in you, than he that is in the world” (1 John 4:4).
빛은 이해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빛이 보인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이제 알겠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보십니까? 주님은 우리의 눈을 열려고 하십니다. 의기양양한 악마를 보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계시를 받기 위해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의 힘은 모든 지옥의 귄세보다도 더욱 크십니다. “너희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더 크심이라’(요한일서4:4)
Now, in Revelation we read of hell spewing forth locusts and scorpions that have great power. We read of a dragon, beasts, horned creatures, as well as a coming Antichrist. Yet, we don’t know the meaning of all these creatures. The fact is, we don’t have to. We don’t need to worry about the Antichrist or the mark of the beast.
이제 요한 계시록에서 우리는 지옥이 엄청난 권세를 지닌 전갈과 지네들을 내뿜는 것에 대해 읽습니다. 우리는 용, 짐승, 뿔난 생물, 그리고 다가오는 적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피조물들의 의미를 알지는 못합니다. 사실 우리가 알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적그리스도나 짐승의 표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You see, there is living in us the Spirit of Almighty God and his Christ. Paul declares that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is working in us. In other words, the Holy Ghost is alive in us at this very moment.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 계십니다. 바울은 우리 안에서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고 있다고 선포합니다. 즉, 성령님은 바로 이순간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것 입니다.
So, how does the Spirit work in us in the midst of our hard times? His power is released only as we receive him as our burden bearer. The Holy Spirit was given to us for this very reason, to bear our cares and worries. So, how can we say we’ve received him if we haven’t turned over our burdens to him?
그럼, 우리의 힘겨운 시간의 한 가운데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일하실까요? 그분의 힘은 우리가 그를 우리의 짐을 부담하시는 자로써 받아들일 때에야 발휘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근심과 걱정을 품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짐을 그분께 내어 드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Think about it: the Holy Ghost isn’t shut up in glory, but here, abiding in us. And he’s waiting anxiously to take control of every situation in our lives, including our afflictions. So, if we continue in fear — despairing, questioning, going deeper into anxiety — then we haven’t received him as our comforter, helper, guide, rescuer and strength.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님은 영광 속에 잠겨있으신 것이 아니라, 여기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삶의 모든 상황, 또 고난까지도 맡아 다스리시기를 열망하며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우리가 계속 두려워한다면-자포자기하거나 의심하며 더욱 근심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면-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위로자, 돕는 자, 인도자, 구원자 또 힘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You may object, “The Holy Spirit was sent to empower us to be Christ’s witnesses.” That’s true, but what comprises our witness? Is it merely telling people about Jesus? Is it simply quoting the Bible? Is it just praying for people? These things are all a part of our witness, to be sure — but they don’t comprise all of it.
여러분은 이렇게 반박하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할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보냄 받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증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단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단순히 성경을 인용하는 것입니까? 단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일까요?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증거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하자면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No, the witness to the world is the Christian who has cast his every burden on the Holy Spirit. Like the Thessalon-ians, this believer sees overwhelming problems all around, and yet he has the joy of the Lord. He trusts God’s Spirit for his comfort, and for guidance out of his affliction. And he has a powerful testimony to a lost world, because he embodies joy despite being surrounded by darkness. His life tells the world, “This person has seen the light.”
아뇨, 세상을 향한 증인은 그의 모든 짐을 성령님께 던져드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데살로니가인들처럼, 이 신자는 주변에 압도하는 모든 문제들을 보지만 주님의 기쁨을 지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을 그의 위로자, 그를 고난 밖으로 인도하시는 분으로써 신뢰합니다. 그리고 그는 잃어버린 세계를 향한 강력한 증거를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둠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이 세상에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빛을 보았어”
Such a Christian has truly “received” the Holy Spirit, because he allows the Spirit to provide everything he needs to overcome. A downcast believer simply isn’t a testimony.
그런 그리스도인이 진정 성령을 지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성령으로 그가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풀이 죽은 신자는 증거가 아닌 것입니다.
Consider the example of Paul’s life. This great apostle spoke of having the “sentence of death” upon him: “We had the sentence of death in ourselves, that we should not trust in ourselves, but in God which raiseth the dead” (2 Corinthians 1:9). He explains, “We were pressed down, burdened, beyond strength. We even despaired of life. We were utterly at a loss, with no way of escape.”
바울의 삶을 예로 들어 봅시다. 이 위대한 사도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 사형 선고를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1:9) 그는 설명합니다. “우리는 힘에 지나도록 압박 받았고, 괴로움 받았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삶을 포기하기 까지 했습니다. 빠져나갈 길 없어서 완전히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As Paul looked at his dire situation — afflictions, troubles, hunger, persecution, cold, nakedness, imprisonment, a thorn in his flesh, cares and anxieties over churches, plots and attempts on his life — his response was, “This is the end. There’s no way out. Humanly speaking, there’s only one response I can see, and that’s death. The only way out of this trial is to die and be with Jesus.”
바울이 그의 긴박한 상황을 바라 봤을 때 –고통, 문제, 배고픔, 핍박, 추위, 헐벗음, 투옥, 육체의 가시, 걱정, 교회에 대한 근심, 그의 삶에 음모와 공격- 그의 반응은 “이것이 끝이야, 빠져나갈 길은 없어.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내가 볼 수 있는 단 한가지 답은 죽음이야. 이 시험의 유일한 탈출구는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거야.”
Beloved, God allowed every one of Paul’s trials. And it forced the apostle not to rely on himself, but to fully trust the Holy Spirit to deliver him. Scripture says, “And having done all, to stand” (Ephesians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모든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도로 그 자신을 의지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단지 성령이 그를 구하기를 완전히 신뢰하도록 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일을 다 이루기까지 서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예베소서6:13). 본질적으로 이런 말입니다. “너는 네 모든 인간적 노력을 다하였다. 너는 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제는 네 자신의 한계에 와 닿았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하게 하라. 그분께서 너의 구원을 이루시리라. 네 안에 사시는 성령으로”
Paul is talking about more than a passive sigh of, “Oh, I’ll trust God with this.” No, he’s speaking of being so helpless, so resigned, that you have to rely on a “God which raiseth the dead” (2 Corinthians 1:9). His conclusion was, “God alone is able to deliver me from this hopeless ‘death’ situation. Only his Spirit can resurrect an entirely new way of deliverance.”
바울은 “아, 나는 이것에 하나님을 신뢰하겠어” 라는 소극적인 탄식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뇨, 그는 너무나도 무력하고, 가망이 없어서, 여러분이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의 결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이 가망 없는 죽음의 상황에서 나를 구하실 수 있어. 오직 그의 영이 완전히 새로운 구원의 길을 소생시킬 수 있는 거야.”
Paul trusted the power of the
Spirit, and God delivered.
바울은 성령의 권능을 신뢰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셨습니다.
“Who delivered us from so great a death, and doth deliver: in whom we trust that he will yet deliver us” (2 Corinthians
“그 분께서 우리를 그처럼 극심한 사망에서 구해 내셨으며 또 구해 내고 계시니, 그 분께서 여전히 우리를 구해 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그 분 안에 가지고 있노라.”(고린도후서1:10) 이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나를 가망 없는 상황에서 구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지금도 나를 구하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모든 내 고통에서 나를 계속 구해주실 것입니다.”
Let me sum it all up: receiving the Holy Spirit isn’t evidenced by some emotional manifestation. (Yet I do believe there are manifestations of the Spirit.) What I’m talking about is receiving the Spirit through a quiet, ever-growing knowledge. Receiving him means having an ever-increasing light about his delivering power, his burden bearing, his provision.
제가 요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어떠한 감정적인 징후로써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성령의 감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히 믿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잠잠히 계속 자라나는 지식을 통하여 성령을 받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을 받는 것이란, 그분의 구원의 권능, 그분의 짐 지심과, 그분의 예비하심에 관한 계속해서 늘어가는 빛(이해)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I repeat Peter’s words: “According as his divine power hath given unto us all things that pertain unto life and godliness, through the knowledge of him that hath called us to glory and virtue” (2 Peter 1:3). According to Peter, the divine power of the Spirit doesn’t come as a manifestation. He comes first “through the knowledge of him that hath called us.”
베드로의 말을 다시 말씀 드립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베드로후서1:3) 베드로에 의하면, 성령의 신령한 권능은 감동으로써 오지 않습니다. 먼저 그분은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써” 오시는 것입니다.
“And of his fullness have all we received” (John
우리 모두가 그의 충만한 데서 받았으니 (요한1:16) 더구나, 그분께 완전히 위탁하기 전에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완전한 통치권을 드리지 않았다면 단지 우리는 그분을 받은 게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보살핌 속으로 우리 자신을 완전히 내던져야만 합니다.
Let me give a final example, to illustrate this. In Genesis 19, we find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창세기19장에서, 우리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 롯과 그의 가족을 발견합니다. 그들의 도시, 소돔에 심판이 떨어지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기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보내셨습니다. 롯은 이 주님의 메신저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문을 열었고, 그들은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온 가족을 구할 하늘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천사들을 받아들여지지는 않은 것입니다.
You see,
아시다시피, 롯의 아내는 그녀의 삶에 변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사들이 그녀의 남편에게 소돔을 떠나야 한다고 강권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녀는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내 멋진 집을 떠나기 싫은데, 내 가구들, 내 친구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일 리가 없어, 나는 주님이 심판을 늦추시도록 기도 할거야, 그분은 나를 위해 기적을 베푸셔야만 해.”
In the end, the angels had to force their will on
결국, 천사들은 롯과 그의 가족들을 강제로 소돔 밖으로 끌고 나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처음부터 도망하는 동안 그들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보살피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보는 것처럼, 롯의 부인은 되돌아 보다가 죽어 소금기둥으로 변하였습니다.
The angels’ message was clear: “If you want God to be in control, then you have to give up the reigns. If you look to him for deliverance, you’ve got to let go of your plans and be willing to go his way.” In short, the Holy Spirit doesn’t use his power to deliver doubters. Unbelief aborts his work. We have to be willing to let him make changes in our lives, if that is God’s chosen way of delivering us.
천사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를 원한다면, 그 주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당신이 그분의 구원을 구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그분의 뜻을 기꺼이 따라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성령님은 그분의 권능을 의심꾼들을 구하기 위해서 쓰시지는 않으십니다. 불신은 그분의 사역을 망칩니다. 우리는 기꺼이 그분께서 우리의 삶을 변화를 만들어 내시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택하신 길이라면 말입니다.
In my opinion, many believers today haven’t experienced deliverance because they’re holding onto their own plans. I ask you: are you willing to let the Holy Spirit lead and guide you? You haven’t received him unless you’ve gone to him with every burden you have. I urge you, go to prayer and name every crisis you’re facing: “Here it is, Holy Spirit. I turn this situation over to you. And I trust that your power abides in me. I’m not going to lose sleep over this matter. I give it to you.” Then trust!
제 생각에, 오늘날의 많은 신자들은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그들 자신의 계획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기꺼이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이끌고 인도하시도록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진 모든 짐을 갖고 그분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그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께 강권합니다. 기도하러 가서, 여러분이 직면한 모든 위기를 대십시오.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님, 저는 이 상황을 당신께 돌려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의 권능이 제 안에 거하심을 신뢰합니다. 나는 이 문제 때문에 잠을 잃거나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그리고는 믿으십시오!
You simply have to take your eyes off your condition. Yes, there is darkness all around. But you have seen the light. Are you willing to trust the Lord to carry you through? Believe the Word he has given you: “Who delivered us from so great a death, and doth deliver: in whom we trust that he will yet deliver us” (2 Corinthians
단지 여러분의 상황에서 눈을 떼십시오. 네, 도처에 어둠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빛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으로 이겨내도록 하실 것을 기꺼이 신뢰하시겠습니까? 여러분께 주어진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 분께서 우리를 그처럼 극심한 사망에서 구해 내셨으며 또 구해 내고 계시니, 그 분께서 여전히 우리를 구해 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그 분 안에 가지고 있노라. “(고린도후서1:10)
첫댓글 할렐루야 하나님의 성령님의 음성을 통하여 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며 십자가 사건에 감사를 드립니다
너무나 귀한 글 감사합니다. 데이빗윌커슨 목사님은 신앙안에서 그 고민의 여정이 너무나 진실되시기에 공감하며 아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찬찬히 묵상하며 내 삶에 적용하겠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이란, 그분의 구원의 권능, 그분의 짐 지심과, 그분의 예비하심에 관한 계속해서 늘어가는 빛(이해)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말 귀한 말씀입니다. 감정적인 어떤 느낌이 아니라 주님을 계속해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네 , 아멘 !! 분명한 빛을 보았고 주님께서 우리를 이겨내게 하실 것을 신뢰합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