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번째 편지 - 폭염
주말 이틀 내내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집 밖은 30도를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니 몇 장면이 생각납니다.
장면 1
1992년 7월 스페인 연수를 갔을 때입니다. 스페인의 여름은 40도까지 올라가는 난생처음 겪어 보는 폭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차에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모든 차가 창문을 열어놓고 다녔습니다. 너무 더워 에어컨이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늘로만 들어가면 시원했습니다. 그래서 집 창문마다 나무 가리개가 붙어 있어 더우면 그 가리개로 닫아버렸습니다.
장면 2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이 오면 돌아가신 어머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김일성이 죽던 해처럼 덥네. 그해 무던히도 더웠지." 우리 집에서 그 해를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여 여름 내내 에어컨을 틀지 못하고 지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1994년 10월 25일 태어났습니다. 그해 처음 제습기를 알았습니다. 그 당시 제습기는 딸딸딸 하는 소리를 크게 냈습니다. 그래도 그것만이 폭염과 싸우는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장면 3
2004년 대구에서 근무하였습니다. 대구는 분지라 덥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관사가 아파트 5층이었는데 여름날이면 지열이 5층까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대구에는 두 가지 사건이 TV에 보도되어야 진짜 더위가 온 것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텐트를 싸 들고 팔공산 계곡으로 가서 그곳에서 출퇴근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스팔트 지열로 계란 프라이를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해 두 가지 사건이 다 보도되었습니다.
폭염 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일들이 떠오르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저는 과거 우리 역사에서 폭염이 어땠는지 궁금해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기상청에서는 일일 체감온도가 33℃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주의보를, 35℃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경보를 발령한다고 합니다.
지난 7월 1일 10시에 여천, 여주, 양평, 홍천 평지, 춘천, 부여, 의성에 올해 최초로 폭염 경보가 발효되었고, 서울은 6월 30일 폭염 주의보가 발효되었습니다.
나무위키의 <폭염 사례>를 보니 재미난 것들이 있었습니다.
1405년, 1432년, 1443년, 1484년 여름, 조선에서는 죄수들이 더위로 죽을 것을 염려하여 죄질이 가벼운 죄수는 풀어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594년 여름, 난중일기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7월 28일(양력) 더위가 쇠라도 녹일 듯하다', '8월 8일 오늘 불꽃같은 삼복더위가 전보다 더하다. 큰 섬이 찌는 듯하여 사람이 견디기가 힘들다.' 이순신이 있던 한산섬도 이렇게 더웠던 모양입니다.
저는 1994년 여름이 어머님 기억대로 정말 더웠는지 궁금하여 찾아보았습니다. 나무위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994년 여름은 우리나라에서 경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꼽아주는 인생 최강의 폭염을 맛본 여름이다."
당시 MBC 보도 내용입니다.
"대구는 39.4도, 아스팔트는 무려 50도. 아스팔트의 계란이 프라이가 되었습니다. 서울도 38.4도로 역대 최고입니다. 대한제국 순종이 즉위한 1907년 이래 최고 더위입니다. 한강 수영장에는 사람 반 물 반입니다."
이 기록적이던 1994년 여름의 더위는 2018년 여름에 최고의 자리를 내줍니다. 아무튼 1994년 여름의 더위는 김일성의 사망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 기억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요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열대야>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한 것도 1994년이라고 합니다. <열대야>는 일본의 기상 수필가 '쿠라시마 아츠시(倉嶋厚)'가 1966년 출판한 '일본의 기후'에 처음 등장한 단어라고 합니다.
열대야는 전날 18시 0분부터 다음 날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C 이상인 밤을 말합니다. 서울도 6월 28일 올해 첫 열대야가 관측되어 2년 연속 6월 열대야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2018년 여름 폭염은 7월 12일부터 시작하여 8월 24일 끝이 났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보면 아직 폭염이 시작하지도 않은 상황입니다. 50일 이상 남은 2023년 폭염을 슬기롭게 대처해야겠습니다.
조선의 시인 이광의(李匡誼)는 <고열(苦熱)>이라는 시에서 "지리한 비 개고 나서 상쾌하더니/ 끓는 더위 비 생각 다시 나누나/ 시원하고 상쾌함 마음에 있고/ 비 내리고 날 갬에 상관 있으랴"라고 읊었습니다.
정말 장맛비가 생각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그러나 이광의처럼 '지리한 비'는 더위를 식혀줘서 좋고, '끓는 더위'는 장마를 그치게 해서 좋다고 생각해야겠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3.7.3.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