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최석영- 2부 작 두 5회 낮 선 땅에서 도움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절망은 차라리 두려움이었다. 모든 사람이 임 형사의 눈과 귀였고 손과 발이라는 사실, 그래서 연이 자신은 해지는 어두움에 버려지고 고일령은 철창에 갇혀 인생을 망쳐야 할 것이다. 평생을 경찰서와는 연관 짓지 않고 사셨을 것 같은 노인에게 매달려 농사용 경운기에 매달려 호텔로 돌아온 연이는 샤워기 밑에 쪼그려 앉아 엉엉 울었다. 임 형사와 타협을 봐야 할까? 어떻게? 무슨 카드를 내밀지? 수많은 질문의 연속, 그런데도 뚜렷한 대답이 없다. 잡히지 않는 가닥의 나락은 희미한 의식을 잠재우고 술 취한 듯 몽롱한 의식은 현실에서 도망갈 궁리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연이는 고일령에게 진실을 가리거나 음모를 파헤칠 생각은 버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피해자와 합의를 보려고 하면 저쪽에서 어떤 반응이 보일 것이고 요구하는 조건을 들어 주고서 남원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일령도 연이의 자초지종을 듣고 수법의 악랄함과 한 낱 말단 지방 형사의 위력에 기가 질리고 말았다. 그리고 기자로서 한 번 붙어 보고 싶다는 욕구도 일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갇혀있는 몸, 더구나 상대에게 협상을 하자고 내밀 아무런 카드도 없는 상태이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연이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상황은 급반전 되었다. 고일령은 자신을 대신해 취재를 나온 김 기자에게 피해자의 행적에 대해 알아보게 한 바 피해자는 사고 당일 00당 사무처 직원으로 강원도 수해복구 인력봉사를 끝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현장을 마무리 하고 저녁을 먹던 중 전화를 받고 자리를 떴다는 것까지 파악 되었다. 그 시간이 저녁 8시 고일령과 연이가 연재에서 안개를 피해 주차해 있을 때였다. “없던 일로 돌릴 수 있을 거야.” “임 형사가 들어줄까?” “나도 그놈을 건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줘야지. 놈이 노리는 게 그걸 테니까. 아, 그리고 이리로 전화해서 백 형사를 만나 봐. 이번 사건을 조사하는데 네 도움이 필요하대.” 고일령의 눈이 작게 오므라들었다. 언젠가 꼭 네놈에게 이 치욕을 되돌려 주겠다는 다짐을 숱 덩이 같은 잉걸을 가슴속에 담았다. 지휘부가 양분된 채 피살자의 훼손된 사체를 찾으려는 남원서 형사 팀과 연쇄 살인으로 초점을 맞춰 범인을 추적 하려는 외부 차출 팀의 갈등은 수사본부가 도청 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당하면서도 이것을 터놓고 상의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누가 왜 수사본부를 도청하는 것인가? 처음 반장은 임 형사와 의심 남원서 수사팀을 의심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남원서 수사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원서 수사팀이 굳이 도청 장치를 설치할 만큼 수사 진행 상황을 감춘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범인을 비호하는 세력? 반장은 다시 장고에 들어갔다. 이미 썩어 없어진 유골은 제외하고서라도 연대측정이 가능한 유골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방법으로 사람의 목을 쳐 죽인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팀을 도청하며 수사 진행 상황을 체크하는 세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세력은 얼마나 방대하고 조직적인 살인 집단인가! 딩동- 홀로그램님이 입장 하셨습니다. -홀로그램? 누구야?- -반장님 저 오 형삽니다.- -아, 오 형사.- 오 형사는 피해자 은실 이와는 먼 친척뻘 되는 형사로 오 의원 집안과는 수인사나 하고 지낼 사이였지만 반장이 오랜 세월 데리고 일해 온 믿을 수 있는 형사였다. 수사팀을 꾸리면서 오 형사라는 인물을 노출 시키지 않은 것은 그 동안의 경험에 의해서다. 전통 문화가 강하고 씨족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서로 돕고 감추어 주는 의식과 풍습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뭐 좀 건졌어?- -오충일 의원 사생활을 좀 더 알아 봐야겠습니다.- -사생활?- -예, 경기와 천안 일대에 박성일 이라는 카사노바가 있는데 이 카사노바의 인적사항이 오충일 의원과 비슷하고 박성일 이라는 사람에게 가출 청소년을 알선해 주는 전문 업자까지 있답니다.- -오충일 의원이 확실해?- -피해 여학생에게 사진을 보여 줬더니 안경을 벗은 것과 가발을 써서 변장한 것을 감안 하면 동일 인물이 분명 하고 엉덩이에 흉터가 있는 것 까지 일치합니다.- -흉터?- -예, 집안 어른께 여쭈어 보니까 오충일 의원이 어렸을 때 학교 담장 넘어 땡땡이치다가 엉덩이가 찢어진 적이 있었답니다.- 김 형사와 백 형사가 접속하자 오 형사는 접속을 끊었다. 김 형사와는 안면이 있는 사이지만 오 형사가 이 사건에 관여하고 있다는 흔적을 남겨서 좋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반장 외에 누구도 알지 못했다. 백 형사는 고일령 기자와 임 형사와의 마찰에 대해보고 하고 고일령의 연인 이연이 라는 아가씨가 환상을 보며 그 환상의 주인공들이 모가지가 잘린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연이를 따라 다닌다고 하니 영매 현상인지 그래서 구체적인 접신이 가능한지까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경찰이 접신을 해서 귀신의 말을 들어 본다?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너무 큰 수사기법이다. 언론이나 임 형사 쪽에서 알게 되면 가만있지 않을 시비꺼리였다. 반장은 일단 정식 의뢰가 아닌 탐문 수사 선에서 알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동안 손대지 못했던 은실이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알아보도록 했다. 아무래도 가해자는 피해자 주변인물 그것도 아주 가까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띠리릭 띠리릭 띠리릭 수사본부에서 호출. 당직 근무자의 급박한 목소리… “예 반장님. 오충일 의원이 피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가 만복사지 주춧돌 위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사체의 머리는 만복사지 주춧돌 위에 있었다. 해질 녘 일본 사람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둘러 본 것을 제외 하고는 다른 사람이 만복사지 안으로 들어간 것을 본 목격자도 없었다. 재래시장이 있고 할인점이 지척인데다 순창으로 가는 구도로 가 지나는 곳이라 내왕하는 사람이 빈번 한 곳이다. 누군가 사체의 머리를 유기하기 위해 만복사지 안으로 들어 왔다면 목격자가 있을 것이다. 반장이 현장으로 달려갔을 때는 전경들이 사건 현장을 삥 둘러 서있고 감식반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었다. “누가 발견 했어?” “저 아래 갈재마을에 사는 유 씨라는 사람인데 아침부터 버려진 상자가 계속 있기에 열어 봤답니다.” “아침부터라면 일본인 관광객이 왔을 때도 있었다는 얘긴데. 그쪽 가이드하고는 연락됐어?” “그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관광 이라는 게 남원시에 신고를 하고 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경유지 중 한군데라서….” “알고 있어.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알아보고. 백 형사. 사체를 발견한 분 좀 모시고 와 봐!” 피살자의 머리를 발견산 사람은 인근 마을 유 씨였는데 김반장이 보기에도 유 씨는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어눌한 구석이 있었다. 뭔가를 감추고 얼버무리는 게 분명했다. 김반장이 유 씨를 다그치자 유 씨는 그만 대성통곡을 하며 사체의 머리와 함께 있었던 물품을 꺼내 놓았다. 현금 삼 십 만원, 백만 원짜리 수표 두 장 세 장의 현금 카드와 반지 시계 그리고 넥타이핀이었다. 그러나 그 물건들에게서 지문 재취는 불가능했다. 머리를 길거리에 버릴 만큼 대담하고 치밀한 놈이라면 지문을 남겼을 리 없겠지만 아쉬움은 컸다. 억수 같은 비가 온 뒤의 땡볕에 바싹 바른 잔디밭에 족적이 남을 리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냥 철수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감식 반은 어둠속에서 눈에다 불을 켰다. “김 반장, 감식 반 생활을 내 오래 했지만 이렇게 지독한 놈은 처음이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게 변사자의 머리를 쌌던 보자기야.” “뭐 이상 한거 없어?” “피가 묻지 않았군요.” “맞아......... 이걸 보라고.” 감식 반 황 반장이 변사자 오충일의 머리를 거꾸로 들어 보였다. 검게 그을린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 잘려진 목 부분. 김 반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직접 사인은 목 절단이고 목을 절단한 무기? 음!(황 반장은 적당한 용어가 떠오르지 않아 작은 기침을 하였다.) … 도구는 산소용접기 내지는 고성능 레이저인데 내 짐작으로는 산소 용접기가 맞을 거야.” “으-음.” 김 반장이 짧게 신음했다. 이를 악물었는지 입술도 달싹이지 않았고 주머니 속에 넣은 손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혼란에 빠진 머릿속을 헤집는 실타래들이 너풀거리며 어지럽혔다. “상처의 경직도로 봤을 때 사망할 때까지 피해자는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 어금니가 으스러진 것도 그렇고 …. 나쁜 자식, 모가지를 잘라도 죽여 놓고 자르지….” 쒜~~ 소리를 내며 쇠를 자르는 산소용접기. 섭씨3.000도의 온도를 집경 3cm 정도의 공간에 발생시켜 용접봉을 녹여 쇠를 붙이고 혹은 쇠를 절단하는데 쓰는 공업용 기구. 이것을 살아 있는 사람의 목을 대고 살을 태우며 서서히 죽여 나갔다니 경찰 밥으로 평생을 보낸 베테랑 수사반장이라도 온몸이 경직되고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연이는 잠을 잘 수 없다. 눈만 감으면 어떤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그 비명 소리에 놀라 다시 잠을 깨기 때문이다. 오늘 밤은 잠을 좀 자 둬야 내일은 고일령에게 면회도 가고 고일령이 부탁한 백 형사를 만나 자신이 본 환영에 대해 설명도 할 텐데 소름끼치는 비명 소리에 눈을 붙일 수가 없다. 퀭한 눈에 진한 다크서클이 드리운 얼굴은 병자의 모습이다. 두려움에 오돌, 오돌 떠는 연이, 이럴 때 고일령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면 훨씬 덜 무서울 텐데…. 가슴을 찢고 영혼을 발라 갈기갈기 뜯어 먹히는 고통을 당하는 것 같은 그 비명 소리, 공포 영화에 보면 문을 열면 무서운 것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꼭 문을 열고 마는 바보처럼 눈을 감으면 비명소리 같은 환청이 들리고 그 환청 소리에 놀라 다시 잠을 깨고 그 소리에 기가 질려 두려움에 떤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이는 또 눈을 감는다. 아니, 감기는 눈을 어쩌지 못해 고개를 숙여 잠에 빠진다. 더러운 냄새, 콩콩하고 매캐하고 메스껍다, 무슨 냄새지 이 냄새는 처음 맡아 보는데. 어디지? 누구지? 희한 불빛이 보이는데 손발이 움직이지 않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입안에 뭐가 있다. 누군가 연이의 입안에 뭔가를 꾸겨 넣어 입을 틀어막았다. 딸깍, 딸깍, 취~ 파~ 쉐~ 소리, 소리…붉고 파란 불꽃이 검은 막대기에서 쏟아지고 그것은 점점 연이에게로 다가왔다. 이건 꿈이야. 이건 환영이고 환상이야. 나는 지금 눈을 감고 자고 있을 뿐이야. 그래. 비명을 지르고 나는 그 비명 소리에 놀라 꿈을 깨면 그 뿐이야. 그 뿐이야. 그러나 틀어 막힌 입에선 조금의 소리도 질러지지 않았고 목 줄기로 다가서는 불줄기는 쉐~ 소리를 냈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어둠… 그 가운데 치켜든 산소 용접기 그리고 점점 뜨거운 열기가 목 줄기 가까이 다가오더니 훅- 뜨거운 이 닿는가 싶은데 비릿한 누린내. 파닥 거리는 전신, 꽉 묶인 손발의 가죽이 벗겨지고 내젓는 도리질은 잘려나가는 목 줄기를 비튼다. 드디어 목구멍 깊숙이 박았던 물건이 빠져 소리를 질렀다. 아-악- 덜렁 덜렁 흔들흔들 머리채를 잡은 사람이 연이의 머리를 들었다. 뚝 떨어져 버린 몸뚱아리, 도리질 치던 모가지는 시커멓게 타들어 밸 밸 꼬이고 발버둥 친 손모가지는 끈에 씻기어 허연 뼈가 드러나는데 놈은 또 머리를 보자기에 싼다. 띠리릭 띠리릭 띠리릭 띠리릭 악몽에서 깨어났다. 물에서 건진 것처럼 흠뻑 젖은 전신…. “내-.” “안녕하십니까? 내일 만나 뵙기로 했던 백동일 형사입니다.” “내 그런데요.” “시간 되시면 지금 좀 뵐 수 있을까요?” “지금요?” -> 계속 |
출처: 최석영이의 이야기 보따리 원문보기 글쓴이: 최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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