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박타박 타박녀야!
너 어디로 울며 가늬?
내 나이 어렸을 제,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혹은 '코쿨' 앞에 마주 앉아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말하면, 달 속의 계수나무와 옥토끼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은하수 가의 견우 직녀 이야기, 천태산(天台山) 마구[麻姑] 할멈 이야기, 구미호 이야기, 장사 이야기, 신선 이야기, 그리고 '유충렬전(劉忠烈傳)', '조웅전(趙雄傳)', '장화 홍련전', '심청전' 등 고담책(古談冊) 이야기며, 이 밖에도 이루 들 수 없도록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마는, 그 가운데서도 슬프기로는 타박녀의 이야기가 으뜸이었다.
영영 가 버린 어머니를 찾아,
슬피 울며 타박타박 걸어가는 타박녀!
어디선가, 타박녀의 흐느끼는 울음소리 귓가에 들리는 듯하면, 타박타박 걸어가는 타박녀의 뒷모습이 눈앞에 서언하여, 나는 이 슬픈 환상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아, 타박녀의 울음소리,
타박녀의 뒷모습!
이것은 바로 내 눈물의 옛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도 어느 사이에 어머니를 잃은 '타박녀'가 되었구나. 더욱이 나는 어머니와 함께 눈물도 동심도 다 잃어버린, 세상에도 가엾은 고아가 되고 말았구나!
2
내 나이 어렸을 제, 우리들이 타관에 나와 단칸방 셋방살이로 돌아다니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어떤 날 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내가 이다암에 커서 무엇이 되기를 바라나?"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반말을 썼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다소의 과대망상증을 가진 나는 자못 자신만만하다는 듯이, 어머니의 소원을 물었다. 순간 어머니의 눈은 빛나셨다. 내 신념에 움직이신 듯――그리고 은근하신 어조로,
"강릉 군수가 되어 주렴."
이것은 어머니의 향수. 고향으로 돌아가시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리라. 그러나 비단옷이 아니고는 돌아가시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슬픈 결심이기도 하다.
아아, 어머니는 드디어 고향길을 못 밟으시고 저 세상으로 돌아가신 지 오래니, 내 이제 강릉 군수를 한들 무엇하리.
3.
언젠가,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쓸쓸히 웃으시며,
"암만해도 너는 좀 못생겼어."
이것은 내 어머니의 무서운 야심이신가. 또한, 그 냉엄하신 비평 정신의 편린이시기도 하리라.
나는 수염을 깎고 새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설 때면, 가끔 어머니의 말씀을 회상하고 고미소(苦微笑)를 흘리는 버릇을 지금도 잊지 않는다.
4.
언젠가, 어머니는 방학 때에 돌아온 나를 보시고,
"너도 인젠 편지는 제법이더라. 말이 좀 까탈스러워 흠이지마는―그러나 아직도 병두(炳斗)만은 못해." (병두는 나보다 연장인 내 조카로, 문장에 다소 능하다.)
겨우 국문을 해독하시는 정도의 어머니로, 이 얼마나 '건방지신' 말씀이시뇨?
저 놀라운 긍지와 자부심의 한 끝은 여기에서도 엿보이는 듯―.
예수를 믿어 석 달 만이면, 전도(傳道) 부인이 될 수 있으리라던 어머니. 내게도 고질처럼 따라다니는, 대언 장담(大言壯談)을 즐기는 버릇이 있으니, 이것도 필경은 어머니께로부터 받은 슬픈 유산의 하나인가!
첫댓글 나도 어려서 아버지에게 많은 이야기를 었습니다. 또 책도 많이 읽어 주셨지요,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올때는 친구들에게 한번 들은 이야기지만 잊지않고 전달했답니다. 타박녀 이야기와 노래도 들었지요 그러나 슬피듣지않았는데 지금은 무척 슬프게 느껴지는것을 보면 이제 철드는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