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인터넷이 바꾸는 새로운 세상 21세기를 사람들은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정보화 사회, 인터넷 사회, 지식기반 사회, 디지털 사회, 글로벌 사회 등등이 그 것이다. 어떻게 부르건 공통된 것은 21세기 새로운 사회는 인터넷이라는 전무후무한 강력한 글로벌 쌍방향성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에 의해 만들어 질 것이란 점이다. 인터넷은 21세기 하나의 지구촌을 만들어 가는 인프라이자 지구의 신경망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부의 원천인 지식이 중심이 되는 지식기반 사회, 무한 경쟁으로 돌입하는 글로벌 사회인 21세기 디지털 사회는 바로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되고 인터넷이 지식을 확산하고 만들어 내는 중추적인 네트워크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21세기에 우리가 앞서가는 초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선 인터넷의 정복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터넷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선 인터넷을 언제나 누구나 어디서나 모든 것에 연결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과 모든 콘텐츠, 서비스들을 디지털 데이터화하는 소프트웨어 파트의 구축이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국제 공용어인 영어의 정복이다.
인터넷 세계로 들어가는 전 세계 홈페이지의 78%가 영어로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전자상거래 사이트의 96%가 영어로 되어 있으며 전세계 홈페이지의 70%가 미국에서 만든 것이며 영어로 되어있다. 디지털 글로벌 사회, 인터넷의 세계는 당연히 영어가 공용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자명한 현실이다. 인터넷이 부의 원천인 지식기반 사회의 지식을 담고 있는 무진장한 보물이 묻혀있는 광산이라면 하드웨어 인프라와 소프트웨어는 광산으로 연결하는 갱도나 차량으로 비유될 수 있고, 영어는 바로 그 보물들을 캐낼 수 있는 주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 고지를 향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에만 눈을 돌리고 정작 가장 중요한 도구인 영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프라는 정부의 예산 배정과 의지로 단기간에 구축될 수도 있겠지만 전국민의 영어의 정복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교육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어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갑자기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도 교육효과는 단기간에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
영어를 정복하지 않고서는 인터넷의 세계를 정복할 수 없고 인터넷의 세계를 정복하지 못하고서는 21세기 디지털 세기를 앞서 갈 수 없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뒤처짐은 경제 예속을 의미하고 경제 예속은 우리 반만년 정체성의 위기로까지 발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렇듯 중요한 영어에 관한한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선 인터넷 세계를 연결해주는 창인 한국홈페이지들을 살펴보자. (숫적으로는 세계 10위안에 든다는 자료도 있었지만) 대기업의 경우는 한글과 영문이 병기된 홈페이지를 올리고는 있지만, 그 외 대부분의 홈페이지들은 한글로만 작성되어 있는 현실이다. 일부 무역이나 수출 관련 업종이 아니면 영문을 함께 제공하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또 대기업의 경우도 첫 페이지에 로고와 함께 한글/영문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든 페이지로 바뀌는 추세이긴 하나 아직까지 한글만 제공하거나, 한글페이지가 우선이고 영문 페이지 링크가 작거나 눈에 잘 띄지않게 되어있는 경우도 상당수 되고, 영문우선 또는 따로 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현실이다.
미국 야후에 등록되어 있는 한국정부 홈페이지의 경우 청와대, 정부전산정보관리소, 통계청, 대검찰청, 국방부, 외교통상부 등 모두 6개 사이트만 등록이 되어 있고 한국주재 대사관 홈페이지까지 합쳐도 30개밖에 되지 않는 반면에 싱가포르 정부를 쳐보면 무려 174건이나 등록되어 있다. 싱가포르 정부의 공식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속도가 다소 느린 점 말고는 완벽하게 종합적인 사이트를 구성, 서비스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의 공식 홈페이지는 없는 것인지 등록조차 되어있지 않다. 너무나 극명하게 대조를 보이고 있다.
우리의 아시아 경쟁국들은 어떠한가? 싱가포르는 전세계적으로 디지털화 선도국가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이미 그 경쟁력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영어의 공용화와 제대로 된 교육으로 디지털 세계에의 진입 장벽조차 없다. 홍콩의 경우도 영어의 장벽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말레이시아마저 정보화에서 앞서가고 있으며 영어의 상용화에서 우리를 한참 앞서가고 있다.
이들은 국제화의 의식면에서도 우리와는 비교도 안되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 홍콩의 경우는 디지털 시대에 유리한 작은 조직으로 유연하고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이점까지 가지고 있다. 미국 야후의 비즈니스 카테고리에 들어가보면 한국에서 등록한 홈페이지가 999개, 땅크기로는 상대도 안되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무려 2307개로 한국의 2배가 넘고 대만이 1671개, 말레이시아가 1281개로 우리가 뒤지고 있다. 지역 카테고리를 쳐보면 한국은 2700개에 불과하고 타이완이 38개,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파키스탄 등이 3782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각 4500개를 기록하고 있다. 국제화 의식의 결여와 영어의 장벽이 이미 우리를 경쟁국가와의 경쟁에서 밀리게 하며 디지털 세계에서의 영토 축소현상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인터넷은 21세기의 키워드이다. 영어는 그 키워드를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이제 영어를 정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지금 당장 번영으로 가는 유일한 도구인 영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과감하게 추진하여야만 한다. 영어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십년 반복되어온 아무런 효과 없는 영어 교육과 낡은 교육 시스템, 무책임과 무사안일로 그냥 낭비되고 있는 엄청난 아까운 자원들…. 21세기를 여는 오늘, 과연 이대로 갈 수 있는가? 영어에 대한 인식의 전환 없이 우리의 미래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아시아서도 영어 못하면 죽는다]
영어 열풍이 아시아 전역을 강타하고 있다. 필리핀, 중국,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국가 차원은 물론 기업에서도 영어 실력을 출세의 잣대로 자리매김하는 추세가 급증함에 따라 학생부터 시작해 공무원, 군인들까지도 영어 실력 높이기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란도 메르카도 필리핀 국방장관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총기 손질 잘하고 군화 잘 닦고 성실하다고 해서 진급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 다”며 “앞으로는 영어 못하면 별 따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고 군 인들에게 영어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시아의 어떤 나라에서처 럼 ‘무식한 군바리’가 장군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는 말이다.
메르카도 장관은 한 켠에서 제기되는 영어 무용론에 대해 단호한 입 장을 가지고 있다. 현대전은 정보전이니만큼 군인들도 정보 수집에 총 력을 기울여야 적과의 전투에서 승산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바로 이 핵심 정보들이 거의 영어로 돼 있다는 점이 메르카도 장관의 논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실상 세계어로 자리를 잡고 있는 영어는 이제 ‘유용한 도구’에서 최고의 직장과 최고의 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필수 도구로 위상 변화 를 하고 있다. 나지브 툰 라작 말레이시아 교육부 장관은 “공학, 비즈 니스, 외교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유창한 영어 구사는 기본”이라고 말 한다.
그 동안 아시아 국가는 영국과 미국이 재편해 놓은 국제 사회에서 살 아 남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해 왔다. 최 근 들어 이들 나라에서 더 나은 영어 실력의 중요성이 부쩍 강조되고 는 있지만 실제로 기업체나 개인이 그만큼의 영어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의문시되고 있다. 나지브 장관은 “정부 내에서도 국민들의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전반적인 교육 과정 개편을 단행해야 한 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은 말레이시아뿐만 아 니라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영어 실력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분야는 정보공학 부문이다. 이제 인터넷 세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공유가 보 편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계 웹 페이지의 80%가 영어로 돼 있다는 사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어 실력 강화의 모티브로 작용한다.
홍콩 교육·인력 담당 장관인 조지프 웡윙핑은 “대학생들이 영어를 먼저 마스터하지 않는 한 정보공학 분야에서 국가의 미래는 없는 것 이나 마찬가지”라고 착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실제로 데이터베이스, 스프레드시트, 워드프로세서 등 거의 모든 컴퓨 터 프로그램은 먼저 영어판이 나온다. 비영어권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 국판 소프트웨어가 출시되길 기다려야 하고 지금처럼 정보업데이트가 급속하게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이 시간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 는 것도 사실이다.
정보공학 분야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영어는 비즈니스의 지구촌화에 따라 이 분야의 필수도구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주력 산업 분야가 제조에서 서비스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점을 감 안하면 영어 실력의 중요성은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시아에서 영어의 중요성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현실은 아직도 암담 하기만 하다. 물론 최고의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도 있다. 주로 공학 분야에서 일하는 톱 엔지니어들로 이들의 영어 실력은 영어권 사람도 놀랄 정도의 수준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 이 형편없는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인터내셔널 환경 매니지먼트사의 찰스 존슨 부장은 “이전에 영국 식 민지였던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사정이 아무래도 좀 낫다”며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도 식민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노령화되면서 급속한 수준 저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국제 도시인 홍콩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영 어 실력 부족으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있으며 이 비율은 점점 더 높아 지고 있다. 홍콩 자유당 제임스 티엔 페이춘 의장은 “상하이(上海)에 서 현재 일하고 있는 홍콩인들이 영어 실력을 높이지 않는 한 이런 현실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자유당은 해결책의 하나로 최근 길거리에 “영어를 씁시다. 홍콩을 국 제적인 도시로 계속 남깁시다(Use English. Keep Hong Kong International)”라는 포스터를 곳곳에 붙이기도 했다.
아시아인들이 왜 이렇게 영어 공부에 강박증을 보이는가. 중국 베이징 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왕 샤올린군(14)은 지난 주말을 잘 지냈냐 는 영어 질문에 멍하니 허공만 응시할 뿐이었다. 베이징(北京)에서 14 세면 평균 5년 동안을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받은 상태다. 왕은 대답 대신 중국어로 “학교에서 안 배웠다”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전문가 들은 학생들이 영어를 오랫동안 교과 과정의 하나로 배우면서도 제대 로 구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원인이 있다 고 보고 있다.
아시아 학생들이 영어를 학교에서 배우고도 유창하게 구사를 하지 못 하는 데는 문화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몇몇 아시아 문화권에서 학생들 이 바보처럼 보이는 데 대한 수치심이 너무 강해 “문법적으로 틀린 영어를 하게 될까봐” 아예 영어로 말하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다.
도쿄(東京)대생인 다케이 타카시는 “영어 공부의 가장 큰 장애는 이 러한 학생들의 심리 상태”라고 털어놨다. 영어에 있어서 ‘세계적 후 진국’인 일본에서는 일부 자질 없는 강사들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일 부 강사들은 ‘th’발음이 안 돼 ‘the’를 ‘타히’라고 발음하기도 한다는 게 일본의 영어 교육 현주소다.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 데는 국정 영어 교과서도 크게 한몫을 한다. 아직까지도 일부 아시아권에서는 문법과 규칙만을 강조하는 영어가 실린 교과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일본 교육부 공무원인 후쿠다 히로시는 “일본의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현재 쓰이고 있는 영어에 얼 마나 시대적으로 뒤진 표현들이 있는지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 라고 털어놨다.
일본에서는 현재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정부가 해결하는데 늑장을 부리자 아예 도쿄 주재 외국인들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추세가 점점 늘고 있다.
물론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같은 비교적 영어 수준이 높은 나라도 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이들 국가에서 쓰이는 영어가 과연 진 정한 영어인가 하는 점이다. 일례로 비교적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쓰는 영어는 ‘싱글리시’라고 불린다. 세계 어디 를 가도 이들 싱글리시를 쓰는 사람은 쉽게 드러날 정도로 독특한 억 양과 발음법을 가지고 있다.
영어 실력은 과연 회사의 사운과 국운을 결정할 정도의 커다란 요소 가 되는가. 어떻게 보면 영어는 사업이나 경영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 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해도 일본의 몇몇 기업은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별 어려움을 겪 지 않았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 더 넓히면 문제는 다르다. 영어는 세계 최대의 단 일 시장에서 주언어로 통용되고 있으며 지구 어느 곳에 사는 사람과 의사 소통을 하는데도 제 1의 언어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 초대 교육장관인 아리노리 모리는 거의 100년 전 “일본 열도 안에서밖에 사용되지 않는 일본어는 결국 영어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 게 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후 일본이 약진을 거듭하고 경제력으로 서방 국가들을 앞섰을 때는 아무도 아리노리 장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 일본인들도 조금씩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컴퓨터 기술이 발달한다면 멀지 않아 모든 영어 정보가 자국어로 거 의 동시에 바뀌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는 아직 도 실현되지 않은 미래일 뿐이다. 문제는 바로 현재다.
영어 잘해야 '몸값'오른다 …연봉 최고 2배차
영어가 몸값을 정한다. 영어 잘하는 것 하나로 연봉이 두 배 이상 뛴다. 말이 두 배지, 5000만원이 1억원 되고, 1억원이 2억원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증권업계 경력 5년 안팎 국내파 애널리스트 연봉은 1억2000만~1억5000만원 정도. 영어가 자유자재인 경우, 2억~2억3000만원으로 연봉이 훌쩍 뛴다. 지난해 10월 현대증권으로 스카우트된 애널리스트 K씨. 미국 최고 수준 경영학 대학원을 나온 학력과, 현지인에 가까운 영어 실력으로 무장한 그는 이적하면서 과장에서 차장으로 전격 승급하는 데 더해 연봉 2억3000만원을 보장받았다.
"영어를 하면 취업 선택 폭이 넓어진다고요? 그건 옛날 옛날 이야기죠. 영어가 안되면 취업자체가 안되는 게 요즘 잘나가는 동네 현실입니다. 이력서도 낼 수 없어요." 일반에는 '헤드 헌팅'이라고 흔히 알려진 인력 알선업체에서야 말로 영어가 몸값인 걸 실감한다. '리 앤 파트너즈' 조철현 과장은 "3~4년 전 까지만 해도 영어 잘하면 직종이나 회사 선택 폭이 넓어지는 정도였지만 이제 금융, 첨단 산업 등에선 영어가 생사를 가르는 열쇠"라고 말한다. 연봉 3000만원 안팎인 국내 대기업 5년차 대졸 사원이 영어 실력을 무기로 외국계 동종 회사로 옮기면 비슷한 업무 수행에서 1000만원 정도 더 받는 상황이다.
공인회계사, 변호사 같은 '고소득' 직종 역시 영어 실력으로 크게 영향 받는다. S회계법인 서른다섯 살 5년차 공인회계사(CPA) 연봉은 5000만원. 그러나 동갑에 미국 MBA, 미국 공인회계사(AACPA) 자격증을 함께 가진 1년차 연봉은 6000만원으로, 경력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높다. "물론 영어 실력만 가지고 연봉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미국 자격증도 결국 영어가 가능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셈"이라며 영어의 '결정력'을 확신한다.
영어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아주 잘해야 하는 곳이 요즘 외국계 기업과 국내 언론을 연결하는 PR업계. 액서스 커뮤니케이션스 윤혜미 사장은 "지금 한국과 세계 시장에서 필요한 인력은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거침없이, 뉘앙스까지 알아차릴 정도로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2개국어가 능통한 35세 직원 연봉은 4000만원. 영어로 대화하고 편지, 서류를 쓸 수 있지만, 미묘한 의미 차이까지 읽어내는 게 약한 경우 3000만원으로, 무려 25%나 뚝 떨어진다.
외국계 기업도 아니고, 외국 상대 비즈니스가 많은 것도 아닌 일반 회사들도 영어 실력을 이제 인력 운용에서 최우선으로 친다. 짭짤한 베스트셀러를 잇달아 내고 있는 K사. 입사 1년반 밖에 안된 김희진(29ㆍ여)씨가 해외업무팀장을 맡은 것은 영어 실력을 겸비한 업무 능력 덕택. 지난해 연봉은 어림잡아 3500만원 안팎으로, 비슷한 경력의 다른 사람보다 500만~800만원을 더 받는다. 이화여대 가정대를 나온 김씨는 "어차피 전공 쪽으로 안 나갈 것 같으니 영어라도 완벽하게 하겠다"고 붙들고 늘어졌고, 지금은 국제 북 페어에 나가 업무 진행을 척척 할 수준이 됐다.
이렇게 '영어' 바람이 거세다 보니 비영어파 설움은 갈수록 커진다. S증권의 30대 초반 애널리스트는 "영어로 된 자료를 순식간에 읽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동료와 경쟁하려니 두배 세배 노력해야 한다"며 "이른 새벽부터 일하는 증권업계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잠을 줄여가며 영어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출판사 K사는 전 직원에게 영어 강습비를 지원할 정도로 영어 경쟁력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영어의 달인/송창근] "영어공부는 어떻게?"
삼성 라이온스 송창근씨는 야구단의 입이다. 미주 전지 훈련을 가면 그의 존재가치는 절대적이다. 현지인 코치와의 의사 소통은 그 없이는 안된다. 고된 하루 훈련이 끝나고 잠깐 나들이 나가는 선수들은 저마다 송씨를 붙들기 바쁘다. 98년 외국인 선수가 구단에 들어오면서 그는 더 바빠졌다.
송창근씨(36)에겐 영어가 종교다. 그가 '영어 신도'가 된 것은 대구 대성중 1학년 때 외국인을 집으로 초대해 같이 생활하는 특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송씨 집에 머물었던 외국인 선생님은 그에게 '렉스(rex)' 라는 영어 이름을 지어줬다. 지금도 그는 이 이름을 사용한다. 삼성 구단 외국 선수들은 그를 '렉스!'라고 부른다.
"사춘기 내내 영어랑 사랑에 빠져 지냈습니다. 영어 웅변 대회 출전, 교내 영어회화반 활동은 기본이었고 대학(계명대 영문과)시절엔 헤르메스 (hermes)라는 영어 통역 서클도 만들었습니다." 해외 유학은 커녕 연수도 가본 적 없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잠잘 때 까지 한국말을 단 한마디도 않은 적도 많았다. 한마디로 영어에 대해 미쳤던 시절이었다.
군대도 카투사(KATUSA)로 자원 입대했다. 하필 한국군 연락사무소에 배치돼 기대했던 미군들과의 접촉 기회가 사라지자 선임 병장에서 통사정, 결국 숙소 만큼은 미군 1명과 같이 쓰는 기회를 얻어냈다. 카투사 영어연극대회, 영어웅변대회 등을 휩쓸었고, '올해의 카투사'로 뽑혀 미국 국방부(펜타곤)를 견학하는 기회까지 잡았을 정도로 영어엔 극성이다.
송씨는 지금도 영어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인터넷 활용은 기본. 초등학교 2학년, 여섯살짜리 두 아이와 영어로 대화한다. "당장은 잘 알아듣지 못해도 일단 영어에 친근감을 가질 수 있다"는 뜻에서다.
[영어의 달인] 김명식 교수 "친구 사귀는 것이 영어공부 지름길
차차세대 컴퓨터 연구가 김명식(38) 서강대 교수는 이제 영어로 '먹고 살게' 됐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퀸즈대학 교수로 가게 된 것.
84년 영국 런던대학 임페리얼 칼리지에 유학, 3년 반 만에 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90년 서울로 돌아와 서강대 교수로 일해온 그는 꼭 10년 만에 영국 대학으로 '역 취업'하게 됐다.
이론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요즘 컴퓨터 정보 처리 속도를 지금보다 100만배 이상 빠르게 하는 양자 전산 전문가다. "영어는 경쟁력을 높이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세계 무대에서 의사 소통을 하는 강력한 장치입니다. 세계 최일선 현장에서 영어로 내 이론을 팔고 싶습니다." 김 교수는 "내가 활동하는 영역에는 4가지 언어가 있다. 컴퓨터 언어와 수학 언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이중에서 세상과 교통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언어는 영어"라고 말한다. 첨단 과학 분야에서도 그만큼 영어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99년 1학기, 서강대에서 이론 물리학을 영어로 강의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스물세살 나이로 유학 갈 때 아버지가 딱 두 가지만 하고 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영어를 잘하게 될 것, 친구를 많이 사귈 것이었습니다." 유학할 수 있을 정도로 토플 점수는 받았지만, 실제 상황에선 차 한잔도 제대로 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학교 식당에서 '어 커바브 티, 플리즈' 했는데, 도대체 못 알아듣는 거예요. 제 뒤에 서있던 이가 보다가 안되겠던지, '너 차 한잔 마시자는 거냐' 그래요." 그렇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통역'을 해줬다. "어 카파티"였다. "컵(cup)을 저는 한국식으로 ㅂ으로 연음했는데 영어로는 p잖아요?"
영어 공부는 어쩌면 무식하다고 할 방법으로 했다. "전 궁금한 게 많았거든요. 동료들과 교수, 누구든지 붙들고 물었죠. 책읽고, 토론하고, 같이 놀고, 여행다니고." 그렇게 3년 반을 영국인, 이탈리아인, 폴란드인과 어울리면서 실전 영어를 굳혔다. "유학가든 연수가든 공부는 당연한 것이고, 영어와 친구 사귀기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돌아와서도 편지하고 전화할 현지인 친구 서넛은 되어야지요." 21세기는 무한 경쟁 시대지만 그걸 뒤집으면 무한 협동 시대라고 말하는 김 교수는 "컴퓨터나 인공 위성, 전화로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게 바로 그 예"라며 '협동을 위한 영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영어가 경쟁력이다] 일본 ‘영어 인프라’ 구축 나서
「세계 7대 불가사의」. 일본인의 형편없는 영어실력을 스즈키 아키타 현립대학장은 피라미드에 필적할 수수께끼로 비유한다. 일본인의 토익(TOEIC) 평균점은 말레이시아의 65% 수준(96년). 2년 전 토플(TOEFL) 성적은 세계 221개국 중 북한과 같은 205위를 기록했다. 10명 중 4명이 대학에 진학한다는 경제대국의 성적표치고는 창피할 정도다.
일본의 「영어음치 망국론」은 98년봄 최고조에 달했다. 금융이 위기에 몰리고 엔화가 폭락하던 시기였다. 「금융패전」을 둘러싼 수많은 분석과 복잡한 처방이 쏟아지는 가운데 재계 리더인 우시오 지로 경제동우회 대표간사(당시)는 간단한 설명법으로 누구도 말하기 꺼려하던 핵심을 찔렀다. 『일본의 금융불안은 정치인-관료가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일본인은 영어에 자신이 없는 탓에 국제회의만 나가면 몸을 사린다. 엔 약세도 정부 당국자가 국제사회에 일본의 실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탓이다.』 그의 지적은 엔약세 저지작전과 금융재생의 국제협상을 담당하는 정-관계 라인이 하나같이 「영어음치」인 점을 겨냥하고 있었다.
하시모토 총리가 그랬고, G7(선진7개국) 회의에 나가 집중포화를 받곤 하던 오부치 외상이며 마쓰나가 대장상(이상 당시)도 벙어리에 가까웠다. 관료들은 반박했으나 일본내 여론은 우시오 간사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의 설명법은 세계 2위 경제력인 일본의 신용도가 남미 수준까지 추락한 이유의 상당 부분을 설명해준다고 언론은 해설했다.
98년7월 독일 본에서 열린 G8 (선진7개국+러시아) 외무장관회담. 코소보 문제의 긴급성명을 채택한 뒤 각국 외무장관이 일렬로 늘어섰다. 현안을 타결지은 홀가분함 때문인지 장관들은 웃어가며 옆사람과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일한 예외가 오부치 일본 외상이었다. 입을 다문채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모습은 「G7 선진국클럽」 안에서 소외되는 일본의 실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G7서밋(정상회담)에서 정작 중요한 부분은 정상들이 통역없이 주고받는 잡담과 개인적 친분을 다지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총리들은 말을 걸어오는 상대방을 피하기 바쁘다.』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낸 데라사와 요시오 참의원은 「영어음치가 나라를 망친다」는 충격적 제목의 책을 펴냈다. 그에 따르면 역대 일본 총리와 외상 중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이다.
미국생활이 22년에 달하는 데라사와 의원은 일본 정치권의 대표적 국제통이다. 그럼에도 불구, 『나도 평생 영어 컴플렉스에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국제회의에서 토론 내용을 알아듣지 못해 『눈앞이 노래졌던』 경험들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영어실력에서 「일본쇠락론」의 실마리를 풀어나간 이 책은 정치인 저서 치고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의 영어 실력은 종종 외국인의 걱정거리로도 등장한다. 리콴유(리광요) 전 싱가포르 총리는 작년 도쿄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21세기에 우려되는 일본의 최대 결점으로 영어 문제를 들었다. 일본의 강점을 한참 나열한 뒤 『다만 인터넷 시대에서 일본의 영어실력은 큰 약점』이라고 말했다. 슈미트 전 독일총리 역시 『일본은 리더급 인사의 국제적 커넥션(인맥)이 없다는 점이 걱정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립 명문 게이오대학 경제학부는 몇해 전부터 세미나 수업(소그룹 연구토론식 수업)에서 영어원서 교재 사용을 중단했다.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학생들의 하소연 때문이었다. 이 대학 도세 노부유키 교수는 『학생의 영어 어휘력-독해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 원서의 영문해석에 급급하다 보면 경제학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일본에서 「맥도널드」 햄버거를 찾다가는 굶을 가능성이 크다. 『마구도나루도』라고 「화제발음」을 하기 전엔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노구치 도쿄대학 교수는 도쿄에 국제 금융시장이 형성되지 못하는 이유로 『빈약하기 그지없는 영어 인프라』를 꼽는다. 「맥도널드」가 통용되지 않는 풍토에선 외국 금융기관도, 돈도 몰려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 일본의 한 TV채널에선 일본인의 영어 컴플렉스를 이용한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된다. 미국인 사회자가 거리에서 행인들에 마이크를 들이밀어 쩔쩔매게 만든다. 영어음치를 놀림거리로 삼아 이지메(집단괴롭힘)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일본혼을 해친다』는 식의 국수적 비판론은 나오지 않는다. 적어도 영어 못하는 게 큰 흠이라는 공감대는 일본사회 전역에 형성돼있다.
영어 후진국이 된 원인은 역시 잘못된 교육 탓이다. 입시 목적의 암기 위주 영어교육은 대부분의 대졸자를 「영어 벙어리」로 만들고 있다. 중학교부터 영어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너무 늦다는 결론도 내려졌다. 이성에 눈뜰 시절인 중학생은 어학에 필요한 집중력과 뇌기능이 떨어지는 최악의 타이밍이란 분석이다.
반성 끝에 영어 교육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재계단체인 경제동우회는 공공건설에 수십조엔을 쏟아붓지 말고 영어라는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것을 제안했다. 5000명의 미국인 영어 교사를 초빙해 각급 학교에 배치하자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기업들도 사원의 영어실력 기르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마쓰시타전기는 올 봄부터 주임 승격(평균 28세)의 조건으로 TOEIC 성적을 요구키로 했다. 승진하려면 450점(해외업무 담당자는 65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후지쓰는 사내 영어 붐을 일으키기 위해 회장 이하 전직원 3만명이 동시에 TOEIC 시험에 응시, 화제를 모았다. 입사 2년째 600점을 취득한다는 게 후지쓰의 내부 목표다.
프랑스 르노 계열로 넘어간 닛산(일산)자동차는 사내 공용어를 영어로 정했다. 임원회의나 르노측 관계자가 참석하는 회의는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덕분에 영어와는 담을 쌓고 지내왔던 닛산 직원들은 퇴근후 영어학원에 다니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가 하면 입사시험때 TOEIC 점수를 반영하는 기업 비율이 60%까지 올라갔다는 통계도 나와있다.
영어교육 개시 시기는 2002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으로 앞당겨진다. 문부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설학원에 초등학교 어린이의 주말 영어교육을 위탁하는 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우선 올해 중 100개 시범지역에서 4∼6학년 5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뒤 점차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영어의 달인] 강연선 재경부 외신대변인
정부과천청사 재정경제부 8층 외신대변인실. 강연선(37) 재경부 외신대변인의 하루는 산더미처럼 쌓인 외국 신문들을 들춰보고, 인터넷에서 한국관련 외신 뉴스들을 점검하는 일로 시작된다.
강씨는 재경부에서 입안하고 집행하는 각종 경제 정책을 전 세계 외신들에 알리는 일을 한다. 작년 한해 동안 강씨는 18개국 59개 신문-방송-통신사에서 요청 온 재경부 장-차관과 간부들의 인터뷰를 주선했다. 그 외에 강씨가 직접 인터뷰에 응하거나 문의에 답변한 경우는 330여 건에 달한다.
재경부 외신대변인이 되기 전에는 영자신문인 코리아데일리(90~91년) 기자, 미국의 경제전문 통신사인 나이트 리더(94~95년)의 서울특파원, 코리아헤럴드 (91~94년, 95~98년) 기자로 일했다.
강씨가 영어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인 지난 77년. 교환 교수로 미국에 가게 된 아버지(강명규·강명규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를 따라 온 가족이 미국 생활을 시작한 때부터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 강씨는 「나만의 사전」을 만드는 등의 비법으로 영어를 익혔다.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글로 쓰는 숙제가 많았습니다. 그 숙제를 해내느라 공책 반쪽에는 영어를, 또 다른 반쪽에는 한국어를 써 넣은 사전을 만들었지요.』 시트콤 등 짧지만 재미있는 TV 오락프로그램을 즐겨본 것도 영어공부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가족들이 전부 귀국한 뒤에도 강씨는 혼자 남아 대학(밀즈 칼리지 신문방송학과)과 대학원(노스웨스턴대 신문방송학 석사)을 마치고 미국 정유회사인 셰브론사에서 홍보사원으로 일하다 90년 귀국했다.
영어로 생활하는 데 전혀 벽을 느끼지 않는다는 강씨도 한국만의 독특한 경제체제를 외국 기자들에게 설명할 때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쌓는 노력이 영어실력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장인들이 잘 쓰이지도 않는 어려운 영어 단어를 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요즘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면서 새 단어도 속속 생겨납니다. 자기 분야에서 일어나는 세계적인 변화를 주시하면서, 영어로 된 전문용어들을 확실히 꿰뚫고 있는 것이 필수입니다.』
강씨는 또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어 문장을 구사하지 못 한다고 주눅 들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쉬운 단어, 간결한 문장을 쓰더라도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가 영어 구사에서는 훨씬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로 통하는 길] 대학 국제경쟁력도 영어 실력과 직결
복사생성자, 정적변수, 재귀호출함수.... 일반인들은 도저히 알아듣기 힘든 단어가 나열되어 있다. 얼마전 한 대학교수가 시스템이론을 한국어로 출판한 책에서 나열해본 단어이다. Copy constructor,Static variable, Recursive function 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통신 이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래쪽 측대역(lower sideband), 전이중통신(full duplex), 과금(charging)...영어권에서 발생한 단어를 한국어로 억지로 번역하려니 이런 무리가 따르게 된다. 아직도 영어 원서로 공부할 수 없는 대학생이 많은 현실에서 이러한 원서번역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러한 대학 교재로 공부하여 번역된 단어에 익숙한 학생들은 대학원에 와서 다시 영어로 재 번역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왜냐하면, 국제무대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단어를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석사, 박사과정학생들은 많은 경우 국제학회에 나가야 하고,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내야 한다. 모든 것이 영어로 이루어지므로 영어에 약하면, 자연히 경쟁에서 뒤지게 된다.
내가 대학다니던 70년대는 영어 원서 끼고 다니는 것이 멋이었다. 영어 책으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 과시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국제화시대, 글로벌시대에서에서는 영어로 학문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되었다. 이제는 원서로 공부한다는 것이 더 이상 자랑일수가 없다. 인문학 쪽 사정은 차치하고라도, 공학, 경영학 등 대부분의 현대 경제를 이끌어 가는 첨단 실용-이론 학문은 영어권에서 그 이론이 발달하였고, 모든 용어는 영어로 되어있다. 모든 국제학회는 영어로 발표되고 진행된다. 유명 국제학술지는 모두 영어로 출간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어로 번역하여 이러한 학문을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축소되었다.
나는 대학원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유명 국제학술지에 논문 2-3개를 졸업 전에 낼 수 있으면 미국 대학 교수로 취직시켜 줄 수 있다. 단, 영어를 잘한다면..." 실제 이 상황은 일어났다. 포항공대에 부임한 뒤 첫 박사 과정 지도학생이었던 서창교 교수(현 경북대 교수)는 대학원 6년간 영어회화와 쓰기에 전공 공부 외의 나머지 시간을 거의 다 바쳤다. 어학실습실에서 밤새 씨름하는 그를 발견하는 일은 빈번하였다.
그의 노력은 결과로 나타났다. 박사과정이 끝난 후 그는 미국 텍사스 대학에 박사후 과정(Post-Doc)에 들어갔고, 유창한 영어 실력이 뒷받침된 덕에 그 대학 교수로 일하게 되었다. 한국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 대학에 교수로 취직한 최초의 예가 아닐까 한다.
대학의 국제화를 위한 일환으로 몇몇 대학이 대학원과정에서 영어 강의를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까지 10년이상 영어를 배운 한국 학생들의 영어실력은 형편없는 것이 사실이다. 영어 강의가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한국 대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영어와 모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네델란드, 스웨덴 과 같은 나라의 대학생 수준으로 올라와야 한다. 국제 경쟁력은 학계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국제 학회지에 논문을 싣고, 학회에서 싸움 (논쟁0을 하려면 영어가 기본이다. 지난해 '두뇌 한국21' (BK21) 선정기준에서 국제학회지 논문게재 교수를 우대하면서 각 대학에 비상이 걸렸다. 대학 평가에서도 SCI논문게재를 주요 잣대로 하고 있다. 한국 교수들이 국제학회지에 논문을 내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의 하나가 교수본인은 물론 대학원생들의 영어 실력이다. 사실상 한국 대학의 국제경쟁력은 교수,학생의 영어 실력 향상과 맞물려 있다. 교수와 학생의 영어 실력 향상은 국제 사회에서 한국 학계의 생사와 직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가 경쟁력이다] 서툰 비즈니스 영어로 상담 망치기 일쑤
기업인에게 영어는 엄청난 무기다. 영어에 서투른 최고경영자와 재벌 총수는 세계 시장에서 따돌림 당한다. 실무자가 영어를 못하면 당장 일이 안된다.
국내 어떤 그룹 총수는 영어에 능통하지 못해 항상 외국 기업인을 만나는 데 자신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없으니 외국 기업인을 만나는 것을 자꾸 피한다. 지난해 봄, 이 그룹은 업무 제휴에 필요한 독일 10대 그룹에 드는 B그룹 회장과 그룹 총수간 회담을 주선하고 면담 약속을 잡았다.
재벌 총수끼리 만남인 만큼 적어도 두 달 전부터 만남을 위한 각종 준비작업에 들어갔고, 회담에 참석할 양측 임원도 이 면담에 맞추어 일정을 조정했다.
그러나 그룹 총수가 면담 하루 전에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바람에 면담은 불발로 끝났다. 업무상 제휴도 역시 물건너갔다. 대외적인 면담 취소 이유는 일정이 맞지 않아서 였지만, 실제로는 영어로 진행될 면담에 회장이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일방적인 면담 취소에 화가 난 독일 B사 회장은 국내 기업에 정식으로 항의서한을 보냈으며, 그 뒤 이 그룹 총수는 독일 최고경영자들 사이에서 예의없는 기업인 리스트에 올랐다.
산업용 기계를 수출하는 A기업 사장은 서투른 영어로 수출 상담을 하다 완전히 깨진 아픈 상처를 갖고 있다. 그는 미국인 바이어와 첫 상담에서 「기계만 좋으면 수출이 잘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오산이었다. 미국인 바이어의 질문을 못 알아듣고는 「아니오」 라고 대답해야 할 때에 「예」라고 하고,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대답했다가, 바이어가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것. 그런 뒤에는 아예 출장갈 때마다 통역을 대동한다.
㈜대우 모 대리(30). 지난해 11월 중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미국인 바이어와 전화 통화하다 단어 하나 잘못 선택한 탓에 낭패를 톡톡히 겪었다. 예정대로 선적이 잘 될 것이라는 말을 한다는 게 그만, 『I am concerned that I am going to ship your order on schedule (내가 예정대로 물건을 선적할 것인지 걱정된다)』고 잘못 말했다. 순간 미국측 바이어는 『선편으로 안되면 항공기로 보내라. 항공기로 보내는 데 따른 추가비용도 당신네가 부담하라』고 흥분했다. 「Concern」이란 단어를 「생각한다(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쓴 이 대리는 한동안 고생했다.
한국식 영어와 엉뚱한 단어 때문에 오해를 사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다. 대우 연수원 진상열 이사는 『예전보다는 훨씬 영어실력이 좋아졌다지만, 미국인들이 비즈니스세계에서 사용하는 표현에 익숙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B사 모 과장(34). 지난해 4월 미국인 바이어와 수출상담 도중에 『According to our engineer (우리회사 엔지니어에 따르면 )』라고 한 한마디 영어 때문에 두고두고 고생을 했다. 윤 과장은 바이어에게 신뢰감을 주기위해 「According to our engineer」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바이어는 오히려 윤 과장에 대한 깊은 불신을 표시했다. 제품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이들은 대뜸 그 엔지니어의 연락처부터 알려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수출상담은 결론 없이 끝났다. 이 경우에 정답은 뭘까. 『「제3자에 따르면」 같은 표현을 절대 쓰지 말고, '우리는(We)' 이라고 시작해야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대한무역진흥공사 취리히무역관 왕동원 과장은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대표가 공항에서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고 전한다. 택시도 못 탈 정도로 한마디도 영어를 못했다는 것이다. 왕 과장은 『그 회사는 워낙 기술이 좋았지만 당시에는 하나도 수출계약을 못맺었다』며, 『나중에 5개 회사와 수출계약을 맺었지만 사장이나 직원이 영어를 조금만 잘 했더라면 훨씬 많은 수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S기업의 한 미국 주재원은 『미국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빠르게 이야기하는 현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햄버거만 30달러어치 산 기억이 생생하다』며 『만약 수출계약이나 구매계약 때 영어를 잘 몰라 바가지를 썼다면 큰일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의 한 여사원(27)은 외국인들과 전화 통화할 때 「한국식 언어습관」때문에 자주 실수한다. 이들은 전화를 끊을 때 「생큐」라고 보통 말하는데 그때마다 습관적으로 「예스」라고 말한다는 것. 「고맙습니다」라고 하면 「예」라고 하는 「한국식 언어 습관」이 입에 익은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영어 발음 때문에 생기는 에피소드는 수도 없다. 전혀 엉뚱하게 듣는 사례도 있고, 미국식 발음과 한국식 발음이 달라 못 알아듣기도 한다. D사 모 과장은 롯데호텔과 관련된 일화도 가지고 있다. 미국인의「Lotte」 (라디) 발음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것. 결국 철자를 종이에 써주고 문제가 해결됐다. 현대 연수원 영어강사는 『토익 점수가 900점이 넘어도 비즈니스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비즈니스 관용어를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언어뿐 아니라 현지 관습까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