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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 원각경소초 중편침재서
大方廣圓覺經疏鈔 重編鋟梓序
대개 원각의 도는 일진법계(一眞法界)로서 이지(理智)가 나누어지지 않은 것이다. 공겁(空劫)의 이전에 은은하여 볼 수 없고 일용(日用)의 사이에 소소(昭昭)하나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이 영명(靈明)의 소식은 크게는 법계를 싸고 적게는 인허(隣虛)에 들어가는 것으로서 十방 여래의 머무는 정토(淨土)요 일체 중생의 갖춘 바 본심이어늘 문자의 전제(筌蹄)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러나 도는 글을 위지해 나타나고 글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전해지는 것이니 또 어찌 쓰고 출판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렇다면 먼지 앉은 거울을 갈아 二집(執)을 제거하고, 마니(摩尼)를 걸어 十방을 비춤으로써 부처 경계에 이르려는 자로서 어찌 감히 이것을 도외시하여 무궁한 세상에 전하지 아니 하겠는가.
아아, 판본(板本)이 오래 되어 자획이 이즈러졌으며, 또 경소(經疏)에 있어서는 그 글자가 너무 크고 초문에 있어서는 글자가 너무 작았다. 그래서 나는 미련함을 헤아리지 않고, 굳이 다시 엮고 고쳐 쓸 뜻을 내어 영남의 용천사(湧泉寺)에서 시작하니 갑술년 가을이었고, 관동의 건봉사(乾鳳寺)에서 마치니 기묘년 봄이었다. 그리하여 六년 동안을 부지런히 애쓰면서 一념이 한결같아 다행히 원을 이루게 된 것이다.
대개 옛 것을 상고하여 새 것을 이룰 때에는 글자 수의 더하고 덜함이 없을 수 없고, 과목을 따라 소(疏)를 모을 때에도 또한 문세(文勢)의 이합(離合)이 있는 것이니, 오직 통달한 사람이 시교(試校)할 때에 꾸지람이 없기 바랄 뿐이다.
청구(靑丘)의 사위(舍衛)에서 시주를 널리 모집하고는 글자를 베끼는 사람의 붓을 빌어 쓰고 글씨를 교정하는 사람의 칼을 빌어 새겨서 후세에 전하는 사람은 그 오직 완월 궤홍(玩月軌弘)법사 뿐인가. 만우 익붕 장로(萬愚翼鵬長老)와 영파(影波) 대사는 시주를 모집하고 재물을 모아 이 역사의 시종을 맡았으니 그 공도 또한 크다 할 것이다. 비록 거듭 엮은 공이 있으나 쓰고 새기는 힘이 아니면 어떻게 각도(覺道)의 바퀴가 돌아갈 수 있겠는가. 거의 겁석(劫石)과 함께 장구할 것이다.
내가 만일 그 공을 적어 책 머리에 붙이지 않는다면 후일의 참고 거리가 없겠기 때문에 감히 난잡한 말로 삼가 서문을 쓰는 것이다.
*隣虛 - 인허진(隣虛塵)을 말함. 원자(原子)를 말함. 극소(極小)의 물건(物件)을 나타내는데 사용함. 신역(新譯)으로는 극미(極微). 색법(色法)의 가장 작은 물질. 허공에 이웃한 색(色法)의 근본. 승론(勝論) 외도들은 이 허진(虛塵)이 삼재겁(三災劫)의 마지막 때에도 없어지지 않고, 허공에 흩어져 항상 존재한다고 하며, 불교 소승 유부종(有部宗)에서도 극미(極微)를 실유(實有)라 하다. 이것도 인연으로 된 것이므로 업력(業力)이 다하면 극미(極微)도 없어져서 무상생명(無常生滅)한다고 한다.
*筌蹄 - 법화현의(法華玄義)에 ‘설교의 강격(綱格)은 대화의 전제(筌蹄)이다.’ 하였다. 고기를 잡는 통발과 토끼를 잡는 제(蹄)는 목적을 위한 방편(方便)이며, 통발굽은 결국 고기와 토끼는 아니듯이, 언설(言說)은 진리를 말할 것이로되 끝내 진리가 아니므로 진리를 구하려면 언설을 잊어야 한다 한다. ‘통발은 고기를 잡는 것이나 고기를 얻고는 통발을 잊어야 하고, 제(蹄)는 토끼를 잡는 것이나 토끼를 얻고는 발굽을 잊어야 하며, 말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나 뜻을 얻고는 말을 잊어야 한다.’ 하였다. 장자(莊子) 외물편(外物).
*二執 - 인집(人執)과 법집(法執). 또는 증집(增執) - 모든 법은 실로 있는 것이라 하여 유(有)에 치우친 집정(執情). 감집(減執) - 모든 법은 공무(空無)한 것이라 하여 무(無)에 치우친 집정.
*湧泉寺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최정산에 있는 절. 670년(신라 문무왕10) 의상 초창. 옥천사라 함. 1261년(고려 원종2) 보각 중건. 용천사라 고침. 1631년(조선 인조9) 조영(祖英) 3창. 1805년(순조5) 의열(義烈) 화주가 중수.
*乾鳳寺 -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금강산에 있는 절. 520년(신라 법흥왕 7) 아도(阿道) 창건, 원각사(圓覺寺)라 이름. 758년(경덕왕 17) 발징(發徵) 중건,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베풀다. 우리나라 만일회의 시초. 937년 신라 말기 도선 국사 중수, 서봉사(西鳳寺)라 개칭. 1358년(공민왕 7) 나옹 중수, 건봉사라 개칭. 1878년(조선 고종 15) 산불로 사암(寺庵) 3,138간이 불타다. 그 이듬해에 벽오유총(碧梧侑聽) 중건. 조선 세조 10년 어실각(御室閣) {혹은 정원당(正願堂)}을 짓고 역대 임금의 원당으로 삼다. 6ㆍ25 동란으로 건물 대부분이 불타다. 사명(四溟)이 부처님 사리와 치아(齒牙)를 봉안. 9층탑을 비롯한 7기의 탑, 48기의 부도, 31기의 비석이 있음.
*矻矻 - 부지런히 일하는 모양.
蓋圓覺之道 一眞法界 理智不分者也 隱隱焉空劫之前而不能覩也 昭昭焉日用之間而不能收也 只這靈明之消息 大包法界 細入隣虛 而十方如來之所住淨土 一切衆生之所具本心 何關乎文字筌蹄耶
然道籍文顯 文由人傳 又何已乎免寫梓鏤耶 然則磨塵鏡而除二執 掛摩尼而照十方 以至佛境者 豈敢外是而傳於無窮之世也哉
噫 板本 久矣 字畫缺矣 且經疏則其字過大 而鈔文則極小也 余不揆耄昧 强發重編改寫之志 而濫觴於嶺南之湧泉寺 卽甲戌秋也 覆궤於關東之乾鳳寺 卽己卯春也 六載矻矻 一念滔滔 幸而畢願
蓋考舊成新之際 不無字數之增損 隨科會疏之處 亦有文勢之離合 惟通人試校而毋誚焉
靑丘舍衛中 廣募檀緣 而借寫字之 筆而書之 寄校書之 刀而刻之 流傳於後世者 其惟翫月軌泓法師歟 萬愚翼鵬長老 影波大師 募緣鳩財 而相斯役於始終 其功 亦大矣 雖有重編之功 倘非寫鏤之力 何以其於覺道之輪播 庶與劫石而偕存者哉
今若不記功 而冠之篇首 無以爲後日之照矣 敢將蕘辭 謹題序云 (삼태기궤=竹부/貴)
신편소 금강경 서
新篇疏金剛經序
경전에
‘모든 성현은 다 무위법(無爲法)으로 차별을 둔다’ 하였다.
무위이면 인과(因果)와 범성(凡聖)이 없고, 차별이면 인과와 염정(染淨)이 역연하다. 그리고 게송에는
‘일체의 위(位)를 성취하고 갖가지 의심을 끊는다’ 하였다.
무착(無着)은 일체의 위(位)에 의거하여 三지(地)와 五위(位)를 열었으니 즉 무위 가운데의 차별의 뜻이요, 천친(天親)은 갖가지 의심에 의거하여 二十七단(段)을 끊었으니 이것은 차별 가운데의 무위법을 나타낸 것이다. 이 두 보살은 각각 一변(邊)에 의거하여 중도(中道)를 나타내어 바로 여여(如如)하여 움직이지 않는 자리에 이른 것이니, 경전 가운데의 뜻으로서 여기서 벗어난 것이 없는 것이다.
또 오가해(五家解) 가운데 종경(宗鏡)은 석화 전광(石火電光)의 뜻을 펴고 은산 철벽(銀山鐵壁)의 기틀을 나타내어, 기용(機用)을 마음대로 나타내고 강요(綱要)를 끌어 칭송하였으며, 도천(道川)은 최초에 자리를 펴고 최후에 문을 잠가 경의 뜻을 반복하여 그 묘함을 찬송하였으며, 육조(六祖)는 용심(用心)을 잡아 해석하고, 쌍림(雙林)은 三성(性)을 잡아 송(頌)하였으니 이상 四가(家)의 성질은 실(實)을 칭송하고 드날려, 사람들로 하여금 붙음을 풀고 결박을 버리게만 하고 그 관맥(貫脈)과 대절(大節)은 논(論)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직 규산(圭山) 대사만은 논석(論釋)을 깊이 알고 경의 뜻을 관통하여 관조(觀照)의 지혜와 실상(實相)의 이치가 마음의 눈에 환히 나타나게 하였다.
그런데 지금 학자들은 五가해에 막히어, 기이한 말과 묘한 글귀로써 그 구학(口學)만을 익히면서 그 전부의 종지(宗旨)에는 어두어서 그 비밀한 뜻과 깊은 취지에서 심학(心學)을 빠뜨리니, 이것은 실로 큰 병폐이다.
그래서 임신년 봄에 나는 초당(草堂)의 소(疏)로 경문 밑에 주석을 붙쳤다. 소의 글은 지극히 간단하고 경의 뜻은 아주 알기 쉬우며, 주의(住義)의 계차(階差)와 단의(斷疑)의 혈맥이 마치 구슬이 밤을 비추는 것 같고 해를 하늘에 건 것 같았다.
또 말하고 들을 때에 그 주의(住義)를 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주명(住名)을 경문 사이에 표해 써 두고 출판하고 펴서 후배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지마는, 다만 모르는 자는 삼(麻)을 지고서 나를 반드시 비방할 것이다. 때에 독실하고 빈 터에 걸리는 이에게야 어찌 여름에 얼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 뒤에 오는 사람으로서 나를 알고 나를 꾸짖음이 다만 이 점에 있을 것이다.
*賢聖 - 또는 성현(聖賢). 현은 선(善)으로 화(和)한다는 뜻, 성은 정(正)으로 화하는 뜻. 선으로 화하여 악을 여의었지만 아직 무구청정(無垢淸淨)한 진지(眞智)를 발하여 진리를 증득해서 미혹한 마음을 끊지 못하고 범부의 자리에 있는 것을 현(賢), 이미 진지를 발하여 진리를 증득하고 미혹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끊어 범부의 성품을 버린 이를 성이라 함. 곧 견도(見道) 이전의 지위를 현, 견도 이상의 지위를 성이라 함.
*無爲法 - 무위의 품물(品物). 생멸 변화가 없는 것.
*差別 - 갖가지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만유의 현상. 이에 비해 만상(萬象)의 근본 원리나 진리의 본체를 평등이라 함.
*無爲 - 범) asaskta 모든 법의 진실체를 말함. 위(爲)는 위작(爲作), 조작(造作)의 뜻. 곧 인연인 위작, 조작을 여의고, 생, 주, 이, 멸 4상(相)의 변천이 없는 진리를 말한다. 열반, 법성, 실상 등은 무위의 다른 이름. 구사종(俱舍宗)에서는 3무위를 세우고, 유식종(唯識宗)에서는 6무위를 세웠다.
*凡聖 - 범부와 성인.
*染淨 - 염(染)은 더러운 번뇌. 정은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고 청정한 것.
*無着 - 범)Asanga 아승가(阿僧伽)라 음역. 법상종(法相宗)의 종조(宗祖). 불멸 후 1천년경 사람. 북인도 건타라국 부루사부라성의 바라문 출신. 아버지는 교시가(橋尸迦). 세친(世親)과 사자각(師子覺)은 그의 아우. 처음 소승화지부(小乘化地部)에 들어가 출가하여 빈두라(賓頭羅, )를 따라 소승의 공관(空觀)을 닦았다. 뒤에 중인도 아유차국의 강당에서 넉 달 동안 밤마다 미륵보살의 설법을 들었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등 5부의 대론(大論)은 이 때에 미륵보살이 설한 것이라 한다. 이리하여 무착은 아유차, 교상미에서 법상대승(法相大乘)의 교리를 선양하고, 또 여러 가지 많은 논소(論所)를 지어 여러 대승경을 해석하였다. 서장전(西藏傳)에 의하면 75세에 왕사성에서 입적하였다. 그의 아우 세친은 본디 소승의 학자였으나, 무착의 권유에 따라 대승에 귀의하여 크게 이름을 드날렸다. 저서는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20권,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7권, 섭대승론(攝大乘論) 3권, 미륵보살의 말을 적은 것으로 전해진 유가사지론 100권, 대승장엄론 13권이 있다.
*五位 - 유위, 무위의 일체 제법을 5종류로 나눈 것. 오사(五事), 오법(五法), 오품(五品)이라고도 한다. 1) 색법(色法:물질). 2) 심법(心法:정신) - 사물을 의식하는 마음. 3) 심소법(心所法) - 심법에 따라 일어나는 정신작용. 4) 불상응법(不相應法) - 심법에 따르지 않는 것. 물질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면서 법인 것. 5) 무위법(無爲法) - 인과 관계를 여의어 상주 불변하는 법.
*天親 - 세친(世親). 범) Vasubandhu 바수반두(婆藪槃豆), 벌소반도(伐蘇畔度)라 음역. 북인도 건타라국 부루사부라(지금의 폐사와, Peshawar) 사람. 4~5세기 경의 학승(學僧). 바라문족 출신. 아버지 교시가(嬌尸迦), 형 무착, 아우 사자각. 처음에 형과 함께 소승의 설일체유부에 출가. 형 무착은 일찍 소승을 버리고, 대승에 돌아갔으나, 이는 국금(國禁)을 범하고, 이름을 고쳐 가습미라국에 가서 설일체유부의 교의(敎義)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뒤에 고국에 돌아와서 대비바사론을 강의. 많은 저술을 내어 대승을 비방하다가 마침내 무착의 권유에 의하여 대승에 들어가 아유다에서 그 선전에 노력. 아유다국왕 초일(超日), 신일(新日)은 차례로 이를 외호하여 크게 교세(敎勢)를 확장. 80세를 일기로 아유다국에서 죽다. 예로부터 소승에서 5백부, 대승에서 5백부의 논을 지어 천부론사(千部論師)라 일컫다. 유저(遺著) 중에 현존한 것은 구사론, 십지경론, 유식론송, 섭대승론석, 승사유범천소문경론, 불성론, 금강반야바라밀론, 결정장론, 묘법연화경우바제사, 무량수경우바제사원생계 등.
*如如 - 5법(法)의 하나. 정지(正智)에 계합하는 이체(理體), 곧 진여. 만유제법(萬有諸法)의 이체는 동일 평등하므로 여(如). 한 여에 일법계만차(一法界萬差)의 제법을 갖추어 어느 것이든지 체(體)로 말하면 여(如), 여의 뜻이 하나만이 아니므로 여여(如如)라 함. 여하고 여하다는 뜻.
*宗鏡 - 예장 종경(豫章 宗鏡). 자세한 전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종경제강(宗鏡提網)은 표제에 '예장종경사제강(豫章鏡師提網)'이라 되어 있다. 속장경(續藏經) 제 七집 구십이투(九十二套) 소석(消釋) 금강경과의해요주해(金剛經科儀會要註解) 십권(十卷)이 수록되어 있는데 '도흥부(陶興府) 백복원(百福院) 종경선사술(宗鏡禪師述) 조동정종 사문(曹洞正宗 沙門) 각련중업(覺連重業)'이라고 쓰여 있다. 명나라 가정(嘉靖)30년(1551) 당연서(堂連序)에 의하면 종경선사는 나한(羅漢)의 한 분으로 자비와 지혜가 깊고 넓다고 한다. 양(梁)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의 삼십이분(三十二分)에 의하여 금강경을 연의(演義)하고 과의(科儀)를 세워 경의 지취(旨趣)를 밝혔는데 제강(提網), 요지(要旨), 장행(長行), 결류(結類), 송경(頌經), 경세(警世), 귀결정토(歸結淨土)의 칠종문제(七種文題)가 있다.
*銀山鐵壁 - 은과 철은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손도 대어 볼 수 없고, 이도 안 들어간다는 뜻.
*道川 - 야부 도천(冶父 道川, 1127~1130). 송(宋)나라 소주(蘇州) 출신으로 생몰연대가 확실치 않으며 속성은 추(秋)씨, 이름은 삼(三)이다. 군(軍)의 집방직(執方職)에 있다가 제동(齊東)의 도겸선사(道謙禪師)에게 법화되어 도천(道川)이라는 호를 받았고 정인게성(淨因繼成)의 인가를 얻어 임제(臨濟)의 六세 손이 되었다. 그리고 '야부'란 말은 사람의 이름일 경우 '야보'라고 발음해야 옳으나 일반적으로 야부라고 하기에 관습대로 모두 야부라고 한다. 특히 금강경을 통해 자기의 견해를 송으로 후학들에게 많이 알려졌는데, 간결하면서도 한번에 내리치는 듯한 그의 활구(活句)가 백미라고 한다.
*六祖 大監(638~713) - 당나라 남해 신흥 사람으로 속성은 노(盧)씨, 황매동산에서 참학하고 오조 홍인(五祖弘忍)으로부터 의발을 전해받고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부촉받은 선종 육조인 혜능대사(慧能大師).
*雙林 - 부대사(傅大士, 497~570). 쌍림대사(雙林大士). 선혜대사(善慧大士). 동양거사(東陽居士)라고도 한다. 양(梁)나라 사람으로 속성은 부(傅)씨, 이름은 흡(翕), 자는 현풍(玄風)이다. 십육세에 결혼하고 이십사세에 인도의 승려 숭두타(崇頭陀)를 만나 불교에 귀의하였다. 낮에는 품팔이하고 밤에는 그의 처 묘광(妙光)과 함께 정진하였다고 한다.
*三性 - 법상종에서 사, 이, 미, 오(事理迷悟)의 일체 모든 법을 그 성질상으로 보아 셋으로 나눈 것. 1)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 이리 저리 억측을 내어 집착하는 성(性)이란 뜻. 범부의 미망(迷妄)한 소견으로 실체가 있는 것처럼 잘못 아는 일체의 사물. 2) 의타기성(依他起性) - 다른 인연에 의하여 생긴 만유(萬有). 3) 원성실성(圓成實性) - 현상의 본체. 곧 원만, 성취, 진실한 진여를 말함.
*圭山 - 규봉 종밀(圭峰宗密, 780~841). 당(唐)나라 사람으로 속성은 하씨, 어려서 유학을 공부했으나 출가하여 이십칠세에 수주 도원(遂州道圓)에서 수선(修禪)하여 징관국사(澄觀國師)의 제자가 되었다. 시호는 정혜선사(定慧禪師)이다.
*貫脈 - 연결.
*階差 - 닦아 올라가는 순서.
*斷疑 - 의심이 끊어짐.
經曰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無爲則無因果凡聖也 差別則因果染淨歷然也 偈云
成就一切位 及斷種種疑
無着據一切位 而開三地五位 卽無爲中 差別義也 天親據種種疑 而斷二十七段 是顯差別中無爲法也 二菩薩 各據一邊 顯出中道直至 如如不動處也 經中旨趣 無出於是也
且五家解中 宗鏡 宣石火電光之旨 顯銀山鐵壁之機 弄顯機用 提頌綱要 道川最初敷座 末后牢關 反覆經義 讚頌其妙 六祖 則約用心而釋 雙林 則約三性而頌 上四家 性是稱實發揚 令人解粘去縛 不論其貫脈大節也
惟圭山大師 深契論釋 貫通經旨 觀照之智 實相之理 昭然心目間矣
今時學輩 滯於五家之解 而以奇言妙句 習其口學 昧於一部之宗 而於密旨幽趣 闕其心學 甚是病焉
肆以余於壬申春 以草堂疏 注於經下 疏文至簡 經義至易 住義階差 斷疑血脈 如珠照夜 如日揭天
又說聽之際 恐忘其住義 故住名標 書於經間 繡梓流通 有益於後輩 但昧者 擔麻而必謗我矣 篤於時 拘於墟者 何以語氷於夏也 後來知我罪 我祗在是乎
중간 금강경소기 서
重刻金剛經疏記序
위대하여라, 이 한 권의 경이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수미산 꼭대기이냐? 대해의 물결 속인가? 왕사성(王舍城)의 한 바퀴 달이 냉냉히 길이 비추나니 이것은 바로 여러 분의 맨 살덩이 속의 참 면목이니라.
생각하면 우리 석존(釋尊)께서 二十 一년 동안 이 경을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영광(靈光)이 홀로 빛나 밝고 밝아 어둡지 않은 그 하나를 깨치게 하기 위해서인데, 그런데도 다리 밑에 三척의 깊은 진흙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강희(康熙) 신유년 가을에 천함 만축(千函萬軸)을 실은 배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떠 와서 호남의 임자도(荏子島)에 이르렀는데 병인년 봄에 이르러 백암 화상(栢庵和尙)이 이 전보(全寶)를 얻어 판에 새기니 바로 인천(人天)의 눈이 되었었다.
그러나 세월이 쌓이고 판각의 글자가 희미해져서 학자들이 큰 병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건륭(乾隆) 경오년에 내가 다시 새기려는 원을 내어 여러 곳으로 두루 돌아다닐 때, 마음에 새기고 손에 가진지 지금까지 三년이다. 이제 다행히 그 문하(門下)의 十여인이 다 함께 서원을 세우고는 정성을 다하고 재물을 모아 출판하고 펴내어 백암의 자취를 계승하니 이른바 여우 가죽을 모아 갓옷을 만들고 모든 냇물을 끌어 바다를 이루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모르겠다. 몇 백년 뒤에 내 자취를 이어 무궁에 전할 사람은 그 누구인고? 만일 후학(後學)으로서 진실로 규산(圭山)의 소와 장수(長水)의 기(記)로서 경 속의 깊은 뜻을 찾아낼 수 있다면, 관지(觀智)가 밝아지고 실상(實相)이 나타나, 마니(摩尼)를 씻고 이 한 권을 부앙(俯仰)하고 시청(視聽)하는 사이에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빛깔마다 소리마다 다 반야(般若)의 묘용(妙用)이 되고, 아침에 핀 꽃과 서리 맞은 잎사귀가 그 면전에 빛날 것이다.
그 때는 여래의 말씀한 경전과 밀선(密璿)의 소기도 도리어 허공을 쪼개어 두 조각을 내는 것이 되고, 지금 새기는 이것도 또한 불에 데인 자리에 쑥심지를 붙이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니 여러분은 과연 알겠는가?
*本來面目 - 천연 그대로 있고, 조금도 인위적(人爲的) 조작을 더하지 않은 자태란 뜻. 사람마다 본래 갖추어 있는 심성(心性). 선가(禪家)의 제6조(祖) 혜능(慧能)이 처음 한 말.
*長水 - 중국 송나라 스님. 화엄종. 호는 자선(子璿). 수주 사람. 처음 수주홍민(秀州洪敏)에게 능엄경을 배우고, 낭야혜각(瑯耶慧覺)을 뵙고 깨달음을 얻다. 그 뒤 장수(長水)에 있으면서 화엄경의 뜻을 크게 떨쳤다. 당나라 규봉(圭峯) 이후의 고승으로 추앙받는데 저서로는 능엄경, 기신론의 기에 대한 해석서가 있음.
*불에 데인 자리에 쑥심지를 - 구창(灸瘡)은 뜸뜬 자리가 헐어서 생긴 부스럼이다. 그 상처위에 쑥뜸을 또 뜬다고 하니 그 아픔이 오죽이나 할까.
*會得 - 회통득달(會通得達). 사물의 이치를 밝게 깨우쳐서 납득함.
大哉 這一卷經 從什麽處出 須彌頂上 大海波心 王舍城一輪月 冷冷長照 則祗是箇諸人 赤肉團上 本來面目也
惟我釋尊 二十一載 談此經 欲令人人悟得箇靈光獨曜 明明不昧之一着子 而未免脚下 泥深三尺也
康熙辛酉 秋 千函萬軸之船 自無何而來 漂至湖南 荏子島 至丙寅 春 栢庵和尙 得此全寶剞劂 而眼目人天矣
星霜積而板刓字微 學者 病焉 逮至乾隆庚午 余發重刻之願 而奉行遍域 心鐫手袖者 于今三年矣 今幸門下 十餘人 同發誓願 竭誠鳩{人+전} 繡梓流通 以繼栢庵之跡 可謂集衆狐而爲裘 引百川而成海者也 又未知幾百年後 蹈余之跡 傳之無窮 者誰也 若也後學 苟能以圭山之疏 長水之記 求之於經中奧旨 則觀智明而實相顯 洗却摩尼 而透得這一卷於俯仰視聽之間
色色聲聲 無非般若妙用 而朝花霜林 燦乎其面前矣
如來說經 密璿疏記 反是 析虛空 作兩段也 今之剞劂 亦爲灸瘡槃上着艾炷去也 請諸人 還會得麽 (전=子/子+子, 人부와 합쳐 무슨 자인지 모르겠다)
중간 기신론필삭기 서
重刊起信論筆削記序
공씨(孔氏)가 춘추(春秋)를 지으매 난신 적자(亂臣賊子)가 다 두려워했고 공승(功勝)이 기신론(起信論)을 지으매 단상(斷常)의 二집(執)이 저절로 깨어졌다. 세상으로 하여금 포폄(褒貶)과 상벌(賞罰)의 조목을 알아 군자의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은 곧 공씨의 춘추요, 사람으로 하여금 중도 실상(中道實相)의 이치를 깨달아 성현의 지경에 이르게 하여 만고에 멸하지 않는 것은 오직 공승의 기신론이다.
현수(賢首)의 소와 장수(長水)의 기(記)는 또 무엇하러 지었던가. 대개 기로써 소를 통하고 소로써 논(論)을 해석하며 논으로써 경의 깊은 뜻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은 논을 의지해 밝아지고 논은 소로 말미암아 통해지며 소는 기를 얻어 나타나는 것이니, 깃과 날개가 되어 밝음을 내는데 섶을 꺾고 촛불을 잡아 관찰하는 것은 오직 장수의 기 뿐이다.
이 기가 동방에 오기 전에는 동방의 학자들로서 논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 반착(盤錯)의 베기 어려움과 유인(遊刃)이 넓지 못함을 병으로 여겼었다. 그런데 얼마나 다행한가. 강희(康熙) 신유년에 각해(覺海)에 종풍(宗風)이 불어 인자한 배가 정박하게 되어, 장수의 기가 근화(槿花)의 나라에 번지게 되었으니 이것은 소 밖의 별행(別行)인 것이다. 그리하여 백암 노장이 이 기를 소 밑에 붙이고는 출판하고 펴내어 후학들의 눈을 열어 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글자가 잘고 글줄이 쏘물며, 해가 오래 되고 판각이 이지러져 장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완월 홍(翫月泓), 풍악 인(楓岳仁), 허명 주(虛明珠), 환우 윤(幻宇胤), 남명 붕(南溟鵬), 성암 윤(聖岩允), 취송 혜(翠松惠), 용성 해(龍城海), 적주 선(赤州禪), 취운 안(翠雲岸)등, 여러 스님네가 재물을 모으고 공인(工人)을 불러 별행(別行)의 당본(唐本)을 구하여 급급히 간행하되 전하는 사람이 널리 펴지 않을까 두려워하니 그 법을 두호하고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은근하고 또 간절한 것이다. 노선(老禪)도 다행히 이 역사를 맡아 환해(寰海)에 널리 퍼져 미몽(迷夢)을 깨우치기를 바라나니 그 공도 진실로 큰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이 기로 말미암아 논소의 뜻을 통달하여 중도 실상(中道實相)에 깨쳐 들어가는 이가 있다면 이것이 어찌 어토(魚兎)의 전제(筌蹄)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만일 어토(魚兎)의 활계(活計)만을 향한다면 오히려 나귀 태와 말 배 속에 들어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말해 보라. 어떤 것을 어토라 하며 어떤 것을 나귀 태와 말 배라 하는가. 부디 여러 분은 잘못 행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春秋 - 오경(五經)의 하나로 노(魯) 은공(隱公) 원년부터 애공(哀公) 14년까지의 12대 242년의 사적을 노(魯) 사관(史官)이 쓴 것을 공자(孔子)가 윤리적 입장에서 수정을 가하여 정사선악(正邪善惡)의 비판을 내린 것이다.
*功勝 - 제12조 마명 대사(馬鳴 大士).
*斷常 - 다섯 가지 악견(惡見) 중에 제일(第一)을 변견(邊見)이라 이르며, 변견에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단견(斷見)이고 둘째는 상견(常見)임. 단견은 죽으면 모든 것이 없어져 버린다는 견해이다.
*褒貶 -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
*賢首 - 법장 현수(法藏 賢首, 643~712). 중국(中國) 화엄종(華嚴宗)의 3대 종조(三代 曾祖). 조상은 강거(康居) 사람이며, 조부 때 중국 장안(長安)에 오다. 호는 향상(香象), 이름은 법장(法藏), 속성은 강(康)씨. 17세에 태백산에 들어가 수년 동안 경논을 연구. 다시 낙양 운화사에서 지엄(智儼)에게 화엄경을 듣다. 26세 지엄이 죽은 뒤에 그 법을 깊이 수호. 28세에 칙명으로 출가하여 여러번 화엄경을 강하였으며, 53세 때에 인도 스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우전국에서 화엄경 범본(梵本)을 가지고 와서 번역할 때 그 필수(筆受)를 맡아 5년만에 마치니, 이것이 팔십화엄경. 699년 10월 측천 무후의 청으로 불수기사에서 새로 번역된 화엄경을 강하여, 현수라는 호를 받고, 이로부터 무후의 신임이 두터웠다. 책을 지어 화엄의 교리를 크게 밝히고, 화엄종의 조직적 체계를 이루어 놓았다. 당 선천 1년 11월 장안 대천복사에서 70세를 일기로 입적. 혜원의 정영소(淨影疏), 원효의 해동소(海東疏), 법장의 현수소(賢首疏)를 합쳐 기신론삼소(起信論三疏)라 할만큼 기신론(起信論)의 권위자(權威者)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20권,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 3권, 화엄지귀(華嚴旨歸), 유심법계기(遊心法界記), 금사자장(金獅子章), 망진환원관(妄盡還源觀),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 등.
*盤錯 - 반근착절(盤根錯節). 반근(盤根)은 오래 된 나무의 뿌리가 굴곡(屈曲)된 것이요, 착절(錯節)은 나무의 마디가 착잡한 것이다. 이 말은 어려운 고비를 당하여야 훌륭한 솜씨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遊刃 - 칼날을 자유자재로 놀리는 것.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에 “백정(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으니 문혜군이 잘한다고 감탄하였다. 이에 백정이 말하기를 ‘저 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은 두께가 없으니 없는 것으로 있는 것에 들어가면 넓고 넓어서 칼날을 놀릴[游刃] 수가 있다.” (피절자유간이도인자무후彼節者有間而刀刃者無厚 이무후입유간以無厚入有間 회회호기어유인恢恢乎其於遊刃 필유여지후必有餘地矣). 포정해우(庖丁解牛)의 고사이다. 능수능란한 솜씨나 작은일에 큰 인물을 쓰는것에 비유한다.
*槿花 - 무궁화.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지칭할때 배척하여 멀리할 경우에는 구이(九夷)니 육부(六部)니 하고, 예우(禮遇)하여 가까이할 경우에는 군자국(君子國)이니 예의방(禮義邦)이니 소중화(小中華)니 하며, 통틀어 말할 경우에는 조선(朝鮮), 삼한(三韓), 해동(海東), 좌해(左海), 대동(大東), 청구(靑丘), 접역(鰈域), 진단(震檀), 근화향(槿花鄕)이라 했다. *寰海 - 천하(天下).
*魚兎 - 윗글 전제를 참고하자.
孔氏 作春秋 亂臣賊子 皆懼 功勝 著起信 斷常二執 自破 使世以知褒貶賞罰之條 而至於君子之域者 乃孔氏之春秋也 令人 以悟中道實相之理 而至於賢聖之域 亘萬古而不泯者 其惟功勝之論乎
賢首之疏 長水之記 又何爲以述也 蓋記以通疏 疏以釋論 論以明經奧旨 則經籍論而明 論由疏而通 疏得記而顯 羽翼而發明之 有折薪秉燭之觀者 亦惟長水之記歟
昔記之未東也 東學之討論疏者 病其盤錯之難剖 游刃之未恢矣 何幸 康熙辛酉 覺海宗風 吹泊慈航長水之記 得映槿花之鄕 則疏外別行者也 栢庵長老 注記於疏下 而繡梓流傳 開後學之眼目 幸莫大焉
而字細行密 歲深板刓 難圖久遠故 翫月泓 楓嶽仁 虛明珠 幻宇胤 南溟鵬 聖巖允 翠松惠 龍城海 赤洲禪 翠雲岸諸師 鳩財命工 搜得■行唐本 而汲汲於刊行 惟恐傳者 不廣其法護利人之心 而勤且切矣 老禪 亦得以幸相斯役 庶幾廣流寰海 謦欬迷夢 厥功誠大矣
雖然 有能因斯記通論疏之旨 而悟入于中道實相者 豈不爲魚兎之筌躋乎 若向魚兎上活計 則猶未免驢胎馬腹裏去在也 且道 喚甚麽作魚兎 喚甚麽作驢胎馬腹 請諸人 切不得錯擧
선문오종강요 서
禪門五宗綱要序
대개 가지로서 근본이 없는 가지가 없고, 갈래로서 근원이 없는 갈래가 없는 것이다. 한 법이 갈라져 양종(兩宗)이 되고, 양종이 또한 五파(派)가 되었으니 그 가지와 갈래에 근본과 근원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대각 세존(大覺世尊)께서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반 자리를 나누어 주었으니 이것이 제一처(處) 전심(傳心)으로서 살인검(殺人劍)이다.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이것이 제二처 전심으로서 활인도(活人刀)이다.
사라쌍수(沙羅雙樹) 사이의 관[槨]에서 두 발을 보이시니, 이것이 제三처 전심으로서 살활동시(殺活同時)인 것이다.
이런 소식을 가섭(迦葉)으로부터 한 사람씩 전해 내려와 조계(曹溪)에 이르고, 조계 밑에 두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남악 회양(南岳懷讓)인데 그 활(活)을 숭상하여 잡화포(雜貨鋪)를 연 것이다. 둘째는 청원 행사(淸源行思)인데 그 살(殺)을 숭상하여 진금포(眞金鋪)를 열었으니, 이것이 곧 한 법이 살활(殺活) 양종으로 갈라진 것이다.
청원 밑에서 三종이 나왔으니 그것은 조동(曺洞)이요, 운문(雲門), 법안(法眼)이요, 남악 밑에서 二종이 나왔으니 이른바 임제(臨濟), 위앙 등이니, 이것이 곧 양종이 갈라져 五파로 된 것이다. 五파 사람들은 다 무(無) 가운데서 묘한 가락을 불어 내고는 소리를 고치고 가락을 바꾸어 이름과 모양이 자못 많은데, 그것들은 대부분 여러 책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학자들이 그 깊은 이치를 엿보지 못하여 병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환성(喚惺) 화상이 여러 책 가운데서 요긴한 이치를 모아 五종강요라 하였다. 나는 그것을 출판하여 불후(不朽)의 물건으로 만들려 하여, 그 잘못된 것을 바루고 그 빠진 것을 보완하되, 운문의 三구(句)에 대해서는 청산(靑山) 늙은이의 해석을 인용하고, 조동의 五위(位)에 대해서는 형계(荊溪) 스님의 주석을 인용하여, 그 뜻을 통하게 하고, 그 욧점을 나타내는 등, 모두 과거 현인의 저술에 의한 것으로서 조금도 사사로운 소견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스승의 지위에 있어서 총채 자루를 잡는 이는 이것을 두고 따로 이 종풍(宗風)을 변험(辨驗)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뛰어난 이가 있어서 그 본원(本源)에 투철하면 이런 갈등(葛藤)에는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앞 사람의 편집과 지금의 이 출판은 까마귀 대가리에 참새를 기르는 것이니 그 나무람을 들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多子塔 - 범) Pahuputraka 중인도 비야리성(毘耶離城)의 서쪽에 있던 탑 이름. 비야리에 있던 4탑의 하나. 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1) 옛적에 어떤 나라 임금의 부인이 육태(肉胎)를 낳자,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여 항하에 던져버렸다. 그 육태는 하류의 어떤 국왕이 주어서, 마침내 아들을 삼았다. 아들이 자라서 상류로 쳐들어가다가 이 탑에서 그 어머니를 만나게 되어, 그 땅이 부모의 나라임을 알고는, 무기를 버리고 싸움을 중지하였다고 한다. 불국기(佛國記). 2) 부처님이 석달 뒤에 입멸한다는 예언을 이 탑 근처에서 하였다고 전한다. 서역기(西域記) 7. 3) 부처님이 일찍이 이 탑 앞에서 가섭을 만나 반좌(半座)를 나누어 앉게 하였다고 한다. 육조단경(六祖壇經). 4) 왕사성의 어떤 장자의 아들 딸 각 30인이 벽지불(辟支佛)을 증득하였을 적에, 그 권속들이 그들을 위하여 세운 탑이므로 다자탑이라 한다. 조정사원(祖庭事苑) 8.
*半座 - 분좌(分座)라고도 한다. 사장(師匠)이 그 문하(門下)의 으뜸가는 제자에게 자기의 법좌(法座)를 나누어 주고 설법하여 중생을 제도케 하는 것.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자리를 나누어 주신데서 유래함.
*沙羅雙樹 - 사라쌍수(娑羅雙樹)라고도 함. 석존이 입멸(入滅)하신 곳. 중인도 구시나계라성 밖 발제하(跋提河)언덕에 있던 사라수림의 특칭. 석존이 입멸하신 보상(寶床)의 네 귀에 4쌍(雙) 8본(本)의 사라수가 있었으므로 이렇게 이름하였다 한다. 그 때에 한 나무는 무성하고, 한 나무는 말랐으므로 4영(榮) 4고(苦)라 하며, 또 그 잎이 말라죽어서 흰 학(鶴)과 같은 색이 되었으므로 학림(鶴林), 또는 학수(鶴樹)라 함.
*三處傳心 - 선종에서 말하는 세존이 세 곳에서 가섭에게 마음을 전한 것. 1) 영산회상의 염화미소(拈花微笑). 2)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자리를 나눈 것. 3) 쌍림(雙林)의 관(棺) 속에서 발을 내민 것.
*南嶽懷讓 - 중국 당나라 스님(677~744). 속성은 두(杜)씨. 금주(金州) 안강(安康) 사람. 15세에 형주(荊州) 옥천사의 홍경(弘景)에게 출가하여 율을 배움. 뒤에 탄연(坦然)의 권고로 숭산적안(嵩山覿安)을 만나고, 다음에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시자로 15년 동안 모심. 713년 남악 반야사에 들어가 30년을 있으면서 남악의 선풍(禪風)을 선양하고, 당 천보 3년 68세로 입적. 시호는 대혜선사(大慧禪師). 南嶽은 중국 호남성에 있는 형산(衡山). 남쪽에 있으므로 남악이라 한다. 천태종의 2조 혜사(慧思)를 비롯하여 선종의 남악회양(南嶽懷讓) 마조도일(馬祖道一) 등이 있으면서 선풍을 떨치게 되자 남악의 이름이 드러났다. 선종에서 이 계통을 남악하(南嶽下)라 하고, 청원하(靑原下)와 맞서서 선종의 2대분파가 되었다. 지금의 임제종은 이 남악하에서 나왔다.
*淸源行思 - 중국 스님(?~740). 선종. 길주(吉州) 여릉(廬陵) 사람. 속성은 유(劉)씨. 어려서 출가하여 육조혜능(六祖慧能)에게 법을 받고, 상수 제자가 되다. 뒤에 길주의 청원산 정거사에 있으면서 크게 종풍을 선양. 당 개원 28년 12월 입적. 당 희종이 홍제선자(弘濟禪者)라 시호.
*五宗綱要 - 1권. 환성지안(喚醒志安)이 인천안목(人天眼目)과 선가귀감(禪家龜鑑) 등을 인용하고, 명기용(明機用), 명절단(明截斷), 명향상(明向上), 명체용(明體用), 명유심(明唯心) 등의 문자를 더하여 서산(西山) 5가의 종풍과 백파삼구(白波三句)의 그림을 기록.
*荊溪 - 잠연(湛然 : 711~782) 중국 스님. 속성은 척(戚)씨. 상주 형계 사람. 형계에 살았으므로 형계라 부르며, 또 상주 묘락사에 있었으므로 묘락(妙樂)대사라고도 부름. 처음 유교인으로 727년(당 개원 15) 금화의 방암(方巖)에게 지관(止觀)을 배우고, 20세 좌계현랑(左溪玄朗)에게 교관(敎觀)을 배우고, 38세 중이 됨. 의홍 군산향 정락사에 가서 담일(曇一)에게 율장을 연구, 현랑이 죽은 뒤에는 교관을 다시 넓히기로 자임(自任), 천태종의 제5세로서 종풍을 선양. 주석(註釋)을 많이 짓고 지자(智者)의 주장을 기록하여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기에 노력하였으므로 후세에 그를 기주(記主) 법사라 함. 건중 3년 불롱(佛隴)도장에서 나이 72세로 북송 개보 때(968~976)에 오월왕 전(錢)씨가 원통존자(圓通尊者)라 시호. 법화현의석첨 10권, 법화문구기 13권, 지관보행 10권, 금비론 3권, 지관대의 3권 등의 저서를 남김.
蓋枝無無本之枝 派無無源之派 一法 分爲兩宗 兩宗 亦爲五派 其枝派 有本源 固可知也
夫大覺世尊 多子塔前分半座 是第一處傳心 殺人劍也
靈山會上擧拈花 是第二處傳心 活人刀也
沙羅雙樹間 槨示雙趺 是第三處傳心 殺活同時也
此箇消息 自迦葉以來 人傳一人 而至于曹溪 曹溪下 有二人焉 一曰南嶽懷讓 宗其活而開雜貨鋪也 二曰淸源行思 宗其殺而開眞金鋪也 此乃一法 分殺活兩宗者也
源下出一宗曰 曺洞 嶽下出四宗曰 臨濟 曰雲門 曰潙仰 曰法眼 此乃兩宗 分爲五派者也 五派之家 盡向無中 唱出妙曲 改聲換調 名相頗多 散在諸篇故 學者 未窺其奧而病矣
喚惺和尙 採集諸篇中 要義 曰五宗綱要 余欲繡梓 宜圖不朽 而正其僞補其闕 於雲門三句 引靑山叟之解 於曺洞五位 引荊溪師之註 通其義 顯其要 皆依前賢之述 而少無胸臆之見也
踞師位 執拂柄者 外是則無以辨驗宗風矣 若有箇漢 透徹本源 則伊麽葛藤也 無着處 前之採集 今之壽梓 烏頭養雀 恐招其訪爾
간 도서법집과해 서
刊都序法集科解序
향상(向上)의 한 길은 천성(千聖)도 전하지 못한 것으로서, 명상(名相)을 뛰어나고 문자를 떠난 것이어니 무슨 주각(注脚)이 있을 것인가. 설봉(雪峰)의 목구(木毬)와 귀종(歸宗)의 예마(曳磨)는 다 사람에게 보이고 세상을 이롭게 하려고 향상을 희롱하는 궤측(軌則)이다.
그러나 그 근성이 다름을 어찌하겠는가. 그러므로 규산(圭山)은 타니(拖泥)를 면하지 못하여 제가(諸家)의 언구(言句)를 모아 사람들로 하여금 三종(宗)을 희롱하여 一심(心)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니 그것을 이름하여 선원집(禪源集)이라 하고, 또 여실(如實)한 언교(言敎)를 기록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돈점(頓漸)을 구별하고 영지(靈知)를 취하게 하였으니 그것을 이름하여 별행록(別行錄)이라 하였다.
명상에 끄달리고 문자에 걸리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 뜻을 다 알 수 없거늘, 하물며 우둔한 자로서야 어찌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뱀을 마시어 결정하지 못하고 평초를 먹고 다툼이 있는 것이다.
화엄종(華嚴宗)의 회암(晦庵) 장로가 개탄하되, ‘안팎의 모든 책을 해석한 글이 모두 다 있지마는 오직 위의 두 책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유인(遊刃)하고 해석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마침 청(淸)나라의 네 용집(龍集)인 병오년 봄에 금강산에 머물다가 학도들의 청에 의하여 그 글을 가르고 그 뜻을 해석하되, 선원집의 뜻을 二량(量)으로 세우고 별행록의 취지를 二현(玄)으로 정하였는데 묘함은 고금을 뛰어나고 지혜는 여러 사람을 벗어났으니 후학의 지남(指南)이 될 만하였다. 섶을 쪼개는 도끼가 있고 밤을 비추는 구슬이 있으니 어찌 다만 그 때 一문(門)의 보배만으로 그치겠는가. 실로 우내(宇內)의 공통된 보배이었다.
문인(門人) 우암(雨岩)이 풍곡 활공(豊谷闊公)과 함께 출판하기를 꾀하여 온 나라에 공개해서 선사의 뜻을 이룬 것이다. 아아, 덕이 있으면 반드시 말이 있는 것이다.
대개 이 과해(科解)의 저술은 잡화(雜華)를 숭상하고 선관(禪觀)을 힘쓰는 여가에서 나온 것이다. 그 말한 언구(言句)가 저 목구(木毬)와 예마(曳磨)의 소식을 떠나지 않았으니, 실로 향상(向上)의 전지(田地)를 밟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새겨 이 세상에 길이 전해야 할 것이다.
*名相 - 5법 중의 2법. 모든 사물에 명(名)과 상(相)이 있다. 귀로 들어야 하는 것을 명, 눈으로 보아야 하는 것을 상이라 한다. 다 같이 헛된 것으로 법의 실성에는 계합치 않으나 범부는 이 명상을 분별하여 여러 가지 망혹(妄惑)을 일으킨다.
*軌則 - 풀이하자면 수레의 바퀴는 양쪽에 있어 그 자욱은 항상 같은 평행선을 이루어 나가니 곧, 원칙이나 고정된 법칙을 말한다. 설봉의 목구, 귀종의 예마 등의 활구나 사구도 이와 같다. 지금 세상에는 화두 풀이집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으니 한푼어치도 안되는 지식만을 쫒는다면 보아도 무방 할 것이나, 마음을 참구하는 이들은 마땅히 말이나 글을 멀리 하며, 듣고 봄에 있어 그 속의 심지를 꿰뚫어야 할것이다.
*拖泥 - 타니대수(拖泥帶水), 진흙을 끌고 물을 띰. 곧 흙탕물을 뒤집어 씀. 얽히고 설켜서 깨끗하지 못한 것 또는 어물어물하며 명확하지 못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晦庵 - 조선 스님. 쌍계사 정혜(定慧)의 법호.
*龍集 - 세차(歲次), 연차(年次), 세재(歲在)를 의미한다. 하늘에 용(龍)이라는 이름의 별[木星]이 있는데, 이 별은 1년마다 한 번씩 자리를 옳기는 데에서 온 말이다. 집(集)은 머문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옛날에는 이 용집이라는 말을 간지(干支)나 기년(紀年)의 첫머리 또는 끝에 써서 연차를 표시하였던 것이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세성은 12년에 하늘을 한 바퀴 돈다. 하늘은 12차(次)가 있으니 1년에 1차씩 옮겨가기 때문에 12년을 1기(紀)라 하며 지금 천문학에서 태세(太歲)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사람이 용집(龍集)이라고들 쓰는데 용집은 곧 세재(歲在)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서경에, ‘진성(辰星)이 방성(房星)을 따르지 않는다[辰不集于房].하였으니,’ 집(集)은 ‘따른다’는 뜻이다.” 라 했다.
禪觀 - 좌선하는 관법(觀法). 좌선하면서 여러 가지 관법을 하여 망상을 끊는 방법.
田地 - 토지(土地), 장처(場處)란 뜻. 또는 안온(安穩)한 곳.
夫向上一路 千聖不傳 絶名相 離文字 何注脚之有哉 雪峯之木毬 歸宗之曳磨 皆示人利物弄向上之軌則也
其奈根性有異 故圭山 未免拖泥集諸家言句 令人會三宗歸一心 而名曰 禪源集 又錄之如實言敎 令人簡頓漸 取靈知而題稱別行錄
泥乎名相 滯乎文字 雖英彦 莫能究其旨 況庸愚 豈可度其源 是以 飮蛇不決 食萍有爭
華嚴宗 晦庵長老 慨然乎內外諸典 無無解之文 而惟此二文 無遊刃解釋者 久矣
有淸之四 龍集丙午 春 來留金剛 因學徒之請 科其文解其義 禪源之旨 立以二量別行之趣 定以二玄 妙超古今 智出群伍 可以爲後學之指南乎 折薪有斧 照夜有珠者也 豈但當時一門之寶而止哉 實宇內之所共寶也
門人 雨巖 與豊谷闊公 合謀繡梓 公於一國 以遂先志耳 噫 有德者 必有言蓋
此科解之述 出於崇雜華 務禪觀之餘 所述言句 不離箇木毬曳磨底消息 固知踏着向上田地也 宜乎剞劂 壽傳永世哉
능엄의해초집 서
楞嚴義海抄集序
송(宋)의 장수 자선(長水子璿) 스님이 七대과(大科)를 세우고 능엄경(楞嚴經)의 대요를 묶어 그 뜻을 소하고 책 이름을 의소라 하였다.
늑담 월 스님이 그 글과 뜻이 너무 복잡함을 보고 이에 그 요의를 추려 이름을 표지월(標指月)이라 하니 그 또한 장수를 본받은 것이다. 그 표지월은 의소를 근본으로 하여 지은 것이므로, 비록 그 이름은 다르나 그 말의 뜻은 실로 다를 수 없는 것이요 다만 광약(廣略)이 조금 다를 뿐이다.
정각 법사 악공(淨覺法師岳公)이 여러 소를 두루 보고는 다시 필삭(筆削)하여 집해(集解)라 하고, 집해 가운데서 혹 허술한 곳이 있으면 사사로 조석(助釋)의 글을 두어 복잡하고 간략함이 묘함을 나타내니 그것을 사기(私記)라 하였다.
민중(閔中) 함휘 선사(咸輝禪師)가 그 여러 해석을 보고 모두 정금 미옥(精金美玉)이며 함께 큰 도리를 찬성한 것이라 하여 三十권으로 모아 만들고, 여러 소를 모아 큰 바다로 돌렸기 때문에 그것을 일러 의해(義海)라 하니, 만일 과거의 원력이 없었더라면 어찌 이처럼 될 수 있었겠는가. 화엄(華嚴)의 주산신(主山神)이 얻은 법문의 이름을 출현무변대의해(出現無邊大義海)라 한 것이 이것인가 한다.
지금 나는 온능해(溫凌解)로 전강(傳講)하는 여가에 이 ‘의해(義海)’를 얻어 두 번 절하고 완미(翫味)한즉 자못 정묘롭고 간절하여 후학을 위해 깨우치는 바가 많았다. 그러나 여러 해석의 장구(章句)가 너무 호박(浩博)하여 기억하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졸렬함을 헤아리지 않고 그 요지를 뽑아 써서 뒤의 사람들에게 공개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동방에서 숭상하는 것은 환해(環解)26) 만한 것이 없는데, 왜 남의 해석의 덧붙이기로 그 사이에 넣어 다시 그 근본을 어둡게 하는가?’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난초는 꼭 촉택(楚澤)에서만 캐야 하고 옥은 반드시 형산(荊山)에서만 구해야 하는가? 대개 문리만 꼭 맞는다면 그를 좇는 것이 옳거늘 어찌 숭상하고 숭상하지 않음으로 옳고 그르다 하겠는가?’
하였다. 바라건대 식자들은 꾸짓지 말라.
*傳講 - 강사(講師)로서 강경석(講經席)을 그 제자(弟子) 중 상수(上首)되는 자(者)에게 전하는 것.
*翫味 - 구경하고 맛을 봄.
*浩博 - 크고 넓음.
*環海 - 고려시대 보환(普幻)스님의 수능엄경환해산보기(首楞嚴經環解刪補記)를 가르킨다. 호는 한암(閑庵). 마곡사(麻谷寺)의 승려. 1245년(고종 32) 12월 19일에 문신(文身)을 새기며 능엄경 (楞嚴經)을 널리 펴려는 서원(誓願)을 세웠고, 1264년(원종 5) 구결도우문(求結道友文)을 발표하여 스스로 깨달은 능엄경의 참뜻을 영원히 전법(傳法)할 결의를 보였다. 그뒤 영산현(靈山縣) 봉귀사(鳳歸寺)에 머물면서 대장경(大藏經)을 열람하다가, 1265년 영산현 귀로암(歸老庵)이 낙성(落成)되자 주지 각환(覺幻)의 청에 따라 능엄경을 강설하였다. 오늘날 능엄경이 우리나라 불교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 된 것은 그의 노력에서부터 비롯된다. 저서 능엄경신과(楞嚴經新科) 2권과 능엄경산보기는 현존하고 있다.
*荊山 - 형산은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산으로 옛부터 옥(玉)이 많이 나는 명산이라 한다. 한비자(韓非子)에 변화(卞和)가 박옥(璞玉 - 갈지 않은 옥)을 캐서 초 여왕(楚厲王)에게 바쳤더니 왕은 돌맹이를 옥이라 한다 하여 변화의 왼쪽 발꿈치를 깎아버렸다.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또 바쳤더니, 속인다 하여 이번에는 오른쪽 발꿈치를 깎았다. 그후 문왕(文王)이 즉위했는데 변화는 박옥을 안고 형산(荊山) 밑에서 울고 있었다.왕이 사람을 시켜 물으니 “보옥(寶玉)을 돌이라 하고 정직한 사람을 속인다고 하는 것이 슬프다.” 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서 박옥을 다듬었더니 과연 좋은 옥이 나왔다. 화씨벽(和氏璧)의 고사이다.
宋長水璿師 立七大科 而括於楞嚴大要 而疏其義 題義疏
泐潭月師 觀其義文廣 乃略其要義 名曰標指 月亦師長水也 其標指之作 是本乎義疏 雖名題不同 而其語意 實不可得而異也 但廣略小差耳
淨覺法師嶽公 徧觀諸疏 或筆或削 目爲集解 於解中 或得疎漏之處 則私有助釋之文 而複疎顯妙 標爲私謂也
閔中咸輝禪師 觀其諸解 皆是精金美玉 共贊大猷 集成三十卷 會衆疏而同歸大海 故曰義海 若非承曩願力 安能及此 華嚴主山神所得法門名 出現無邊大義海者 有是哉
今愚以溫凌解 傳講之餘 得此義海 再拜翫味 則頗有精切者 多爲後學之所可開悟者也 而諸解章句 浩博難記故 不揆庸陋 抄寫要義 公諸後來爾
或曰 吾東所尙 莫若環解 何以他解 贅於其間 而復昧其本者乎
曰採蘭 寧惟於楚澤 求玉 何必於荊山 蓋文理之至當 則惟善是從 豈可以崇不崇 爲是不是哉 願惟識者 無致誚焉
시왕전 향공양 서
十王殿香供養序
가만히 생각하건대 한 기운 이전에는 본래 시비(是非)의 이름이 없었고 三재(才)가 생긴 뒤에 비로소 선악의 현상이 있어서 만류(萬類)는 구름처럼 일고 一진(眞)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러므로 九천(天) 위에는 선을 상주고 악을 벌 주는 조목이 있고 十지(地)의 밑에는 윤회응보(輪廻應報)의 법이 열렸다. 그러하거늘 소소(昭昭)한 염라(閻羅)의 업경(業鏡)과 중중(重重)한 천제(天帝)의 망주(網珠)를 누가 피할 수 있으며 누가 속일 수 있겠는가.
선(善)과 악은 경주(鏡珠) 속에 스스로 나타나고 경중(輕重)과 연치는 형감(衡鑑)위에서 도망하기 어려운 것이니 어찌 억지로 되겠는가. 저절로 된 것이다. 참으로 천지 사이에 고금을 다하고 만겁에 걸쳐 지극히 공평하여 사(私)가 없는 도이다.
지금 사순 상인(思順上人)이 시주를 모집하고 향공(香供)을 마련하여 염라전(閻羅殿)에 올림으로써 끊이지 않는 법을 도모하였으니, 이 사람의 정성은 천지를 감동시키는 것이니, 선악의 인과에 반드시 용서가 있을 것이다.
*閻羅業鏡 - 지옥 염마왕청에 있는 거울. 여기에 비추면 죽은 이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업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함.
*天帝網珠 - 인타라망(因陀羅網) 또는 제망(帝網). 제석천에 있는 보배 그물. 낱낱의 그물코마다 보배구슬을 달았고, 그 보배구슬의 한개한개 마다 각각 다른 낱낱의 보배구슬의 영상(影像)을 나타내고, 그 한 보배구슬의 안에 나타나는 일체 보배구슬의 영상마다 또 다른 일체 보배구슬의 영상이 나타나서 중중무진(重重無盡)하게 되었다 함. 화엄에서는 일(一)과 다(多)가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예로써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
*姸치 - 곱고 추함.
*衡鑑 - 저울과 거울. 저울은 경중을 달고 거울은 연추(姸醜)를 비추어 보는 것이므로, 시비(是非)와 호오(好惡)를 가리는 마음·기준 등의 뜻으로 쓴다. 감식안(鑑識眼).
竊惟一氣之前 本無是非之名 三才之後 乃有善惡之相 萬類雲興 一眞烟滅 由是九天之上 有賞善罰惡之條 十地之下 開輪廻報應之科 則閻羅業鏡之昭昭 天帝網珠之重重 孰可逃也 孰可欺也
一善一惡 自現於鏡珠之中 若輕重姸치 難逃於衡鑑之上 豈可强爲自然而然矣 眞天地間 窮古今亘萬劫 而至公無私之道也
今思順上人 募檀緣辨香供 以獻于閻羅殿 以圖不絶之規 之人之誠 感于天動乎地 善惡因果 必有恕矣 (추할치=女부+蚩)
우용 처일 대사(寓庸處一大師)에게 주는 서문
贈寓庸處一大師序
관동(關東)의 보개산(寶盖山)에 큰 법사가 있으니 그 호는 청하(靑霞)다. 생각하면 내게 아저씨요 또한 대사의 스승이다. 한 가지의 잎이 남북으로 피었으니 나뉘어 천리 밖에서 그 얼굴도 모르고 그 이름도 몰랐었다. 하늘이 이 땅으로 하여금 다행히 이 모임을 열게 하였으니, 그 침개(針芥)의 바른 인(因)을 알겠거늘 하물며 광명장(光明藏)을 대해 내게 이익을 청함이겠는가.
들으면 지행(智行)이 있는 사람은 체용(體用)의 법을 배워, 진경(塵鏡)을 二집(執) 가운데서 갈고 마니(摩尼)를 十방 안에 비추며, 근진식대(根塵識大)로 청정한 문을 열고 인과도품(因果道品)으로 장엄한 길을 얻으며, 三혹(惑)을 이미 분별하고 또 윤회를 끊는다고 한다.
어느 날 대사가 내게 감사하기를
‘보지 못한 얼굴을 보고 듣지 못한 법을 들으니, 그 공도 깊거니와 또한 이런 큰 다행이 없다.’
하였다.
대사는 또 내게 호를 청하기에 나는 우용(寓庸)이라 지어 주었다. 어째서 우용이라 했는가? 대개 망홀무위(芒笏無爲)의 사이에 살면서 만물유성(萬物有成)의 작용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또 일파문의(一派門誼)의 정을 느끼어 게송 한 편을 읊어 붙인다.
*寶盖山 - 현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에 위치. 철원도호부(鐵原都護府)에 속해 있다. 석대사(石臺寺), 지장사(地藏寺), 심원사(深原寺), 성주암(聖住菴), 지족암(知足菴), 용화사(龍華寺), 운은사(雲隱寺) 모두 보개산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발췌.
*針芥 - 침개상투(針芥相投). 자석(磁石)이 쇠붙이를 끌어당기고 호박(琥珀)이 겨자(먼지)를 수습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의기투합하는 것을 말한다.
*光明藏 - 여래의 몸은 한량 없는 광명으로 가득한 보고(寶庫)란 뜻으로 하는 말. 화엄경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에 ‘사바세계 남방에서의 열 가지 여래의 명호. 여러 불자들이여 이 사바세계 남방에 다음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이르되 풍일(豊溢)이라 여래가 거기서 혹은 이름이 본성(本性)이며 혹은 이름이 근의(勤意)며 혹은 이름이 무상존(無上尊)이며 혹은 이름이 대지거(大智炬)이며 혹은 이름이 무소의(無所依)이며 혹은 이름이 광명장(光明藏)이며 혹은 이름이 지혜장(智慧藏)이며 혹은 이름이 복덕장(福德藏)이며 혹은 이름이 천중천(天中天)이며 혹은 이름이 대자재(大自在)시니 이러한 백만 억의 가지가지 명호가 있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제각기 알고 보게 하시니라. (南方의 十種名號. 諸佛子야 此娑婆世界南에 次有世界하니 名曰 溢이라 如來가 於彼에 或名本性이며 或名勤意며 或名無上尊이며 或名大智炬며 或名無所依며 或名光明藏이며 或名智慧藏이며 或名福德藏이며 或名天中天이며 或名大自在시니 如是等百萬億種種名號를 令諸衆生으로 各別知見케하시니라 - 무비스님역 참조).’ *광명(光明)이란 부처님과 보살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미망의 암흑을 녹여 법의 진리를 밝힌다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중생의 무명을 깨뜨리고 진리를 드러내는 공능을 光明이 어둠을 밝혀 빛을 밝히는 것과 같은 작용으로 보는 것입니다. 스스로 내는 빛을 '광' 물체를 비추는 빛을 '명'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광이 두 가지 뜻을 모두 나타냅니다.
*根塵識大 - 근(根)은 감각기관이니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육근(六根)이요, 진(塵)은 육근의 대상인 육진(六塵)이니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이다. 육진은 육경(六境)이라고도 한다. 식대(識大)는 심법(心法)으로서 정신적 본질을 가리킨다. 들으면 지행이 ~ 윤회를 끊는다고 한다. - 연기(緣起)법 참고.
*道品 - 또는 도분(道分), 보리분법(菩提分法). 도(道)의 품류(品類). 열반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는 여러 가지 수행법. 여기에 4념처(念處), 4정근(正勤), 4여의족(如意足), 5근(根), 5력(力), 7각지(覺支), 8정도(正道)의 37종이 있다.
*三惑 - 삼장(三障)이라고도 함. 1) 견사혹 -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에서 끊는 견혹(見惑), 수혹(修惑). 견혹은 우주의 진리를 알지 못하여서 일어나는 번뇌. 수혹은 낱낱 사물의 진상을 알지 못하여서 일어나는 번뇌. 2) 진사혹 - 진사는 많음을 비유한 것. 보살이 중생을 교화할 때에 마음이 어둑컴컴하여 무량무수한 법문을 알아 자유자재하게 구제하지 못하는 것을 말함이니, 다만 혹체(惑體)가 수없다는 뜻만이 아니고, 알지 못하는 법문이 많다는 뜻으로 이름한 것이니, 체(體)는 한 열혜(劣慧). 3) 무명혹 - 장중도혹(障中道惑)이라고도 하니, 미(迷)의 근본을 이루어 지혜의 밝음이 없는 번뇌. 이 3혹 중 앞의 하나는 성문, 연각, 보살이 함께 끊을 수 있는 것이므로 통혹(通惑)이라 하고, 뒤의 둘은 보살만이 끊는 것이므로 별혹(別惑)이라 한다. 또 앞에 하나는 3계 안의 이(理), 사(事)를 미(迷)하여 3계의 생사를 받으므로 계내혹(界內惑)이라 하고, 뒤에 둘은 3계 안의 사람은 물론이고, 3계 밖에도 있는 번뇌이므로 계외혹(界外惑)이라 함.
*芒笏無爲 - 망과 홀은 황홀(恍惚)과 같은 뜻으로, 즉 황홀하여 헤아리기 어려움을 뜻한 것이다. 장자(莊子) 지락(至樂)에 ‘아득하고 아련하여 그 근원을 알수 없다. 아득하고 아련하여 그 형체를 알수 없다. 만물이 번성하고 있지만 모두가 무위로 부터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은 무위이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사람으로 그 누가 무위할수 있겠는가?’ (芒乎홀乎 而无從出乎 홀乎芒乎 而无有象乎 萬物職職 皆從无爲殖 故曰天地无爲也而无不爲也 人也孰能得无爲哉).
*萬物有成 -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이치, 장자 지북유(知北游)에 ‘천지는 위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말하지 아니하며, 사계는 밝은 법을 지니고 있지만 논의 하지 아니하며, 만물은 생성의 이치를 지니고 있지만 설명하지 않는다.’ (天地有大美而不言 四時有明法而不議 萬物有成理而不設).
關東之寶蓋山 中有大法師 靑霞其號也 惟余之叔也 亦師之翁也 一枝之葉 而分開南北 千里之外 不見其面 不知其名矣 天敎此地 幸逢斯會 知其針芥之正因也 況對光明藏 請益於余
而問智行之人 學體用之法 磨塵鏡於二執之中 照摩尼於十方之內 根塵識大開淸淨之門 因果道品得莊嚴之路 三惑已辨 輪廻又斷
一日師 謝余曰 見未見之形 聞未聞之法 功旣深矣 幸莫大焉
又請其號 余以寓庸贈焉 奚取寓庸 蓋處于芒홀無爲之間 而一於萬物有成之用也
又感一派門誼之情 而吟一偈 以寄焉 (어두울홀,=艸부/勿)
이명 상인(以明上人)의 시에 주는 서문
贈以明上人詩序
나는 북명(北溟)의 나그네로 한 번 지팡이를 남방으로 날린지 어느덧 六년이 되었지마는 아직 남과 허교(許交)한 일이 없이 매양 동천(洞天)을 향해 길게 한숨할 뿐이었다.
흑호(黑虎=壬寅) 봄에 명양(鳴陽)의 서석(瑞石)에 잠깐 머물러 있는데, 어느 날 스님이 천사(泉寺)로부터 표연히 거기 왔었다. 그 고명(高明)한 위의는 홀로 사람들에게서 뛰어났었다. 내 마음은 물과 같고 스님 뜻은 달과 같아서 소용과 고명(高明)은 마치 달이 물에 비춤과 같다는 것이 참으로 진실이다.
아아, 흐르면 물은 돌아 오기 어렵고 달은 그믐이 되면 이지러지기 쉬운 것이다. 달과 물이 그믐 되고 흐르는 것은 이치가 그런 것이다. 끝까지 고이어 흐르지 않으면 진실로 청탁(淸濁)의 공을 나타내지 못하고, 끝까지 밝아 그믐 되지 않으면 그 또한 주야(晝夜)의 도를 가를 수 없는 것이니, 지금의 이별도 그 이치 또한 그런 것이다. 모이고 흩어짐은 물이 막히고 트이는 것과 같고 달이 밝고 그믐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믐 되었다가 다시 밝고 트이었다가 다시 막힌다면 그것은 이별했다가 다시 만날 것임을 나는 믿는 것이다.
스님은 이것을 마음에 새겨 천리 밖에서 나를 생각한다면 나 또한 남방의 달이 북천(朔天)을 비춤을 바라볼 것이다.
洞天 - 신선이 사는 곳에 있다는 36동천(洞天)으로서 천하의 절승(絶勝) 또는 별천지(別天地)를 의미한다. ≒동천복지(洞天福地). 여기서는 인적이 드문 산촌으로 이해된다.
鳴陽 - 지금의 담양군 창평면.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全羅道) 창평현(昌平縣)에서 ‘본래는 백제의 굴지현(屈支縣)이다. 신라 때 기양현(祈陽縣)으로 고쳐 무주(武州)에 부속시켰고, 고려 때에는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어 일명 명평(鳴平). 나주(羅州)에 부속시켰다. 전하는 이야기에, 현의 아전 탁자보(卓自寶)가 남적(南賊)을 막은 공이 있어 현령으로 승진되었다. 공양왕(恭讓王) 3년에 장평갑향 권농사(長平甲鄕 勸農使)를 겸하게 되었고, 본조에서도 이에 따랐다. 성종(成宗) 5년 현인(縣人) 강구연(姜九淵)이 현령 전순도(全順道)를 능욕한 일로 광주에 예속시켰다가 10년 만에 다시 전대로 하였다.’ 군명 - 굴지(屈支), 기양(祈陽), 명양(鳴陽), 명평(鳴平).
泉寺 - 담양(潭陽) 추월산(秋月山) 용천사(龍泉寺)를 이르는 것 같다.
朔天 - 삭(朔)은 초하루를 뜻하나 북쪽이란 뜻도 있으니 여기서는 북쪽, 북방 하늘로 본다. 예) 丁亥九月朔이라면 정해년 9월 초하루.
余北溟之客也 一錫南爲 遽然六載而未有與人許交 每向洞天 長吁一聲而已
黑虎之春 暫留於鳴陽之瑞石 一日師 自泉寺 飄然到此 則威儀高明 獨出于人也 而我心如水 師意如月 疎慵之於高明 如月之於照水矣 何其疑然歟
噫 水流而難返 月晦而易缺 之月也 之水也 晦之流之理之然矣 終凝而不流 則固不現於淸濁之功 終明而不晦 則亦不分於晝夜之道 今之別也 理亦如是 聚也散也 如水之壅也決也 如月之明也晦也 晦而復明 決而又壅 則吾信此別之復會也
師 以此銘諸心 思我千里之外 則我亦見南隅之月 照于朔天矣
스님을 향산(香山)으로 보내는 서문
送僧香山序
일찍 듣건대 묘향산은 향상(香像) 보살이 거주하는 곳으로서 그 보살이 二천 권속을 데리고 항상 거기 거주하면서 무진장(無盡藏)의 법문을 연설한다고 한다. 우리 스님은 여기서 자랐고 또 여기로 돌아가나니 그 무리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우리 동방 산수의 절경으로 이보다 나은 곳이 없다. 만 길 높은 봉우리의 구름 빛은 호호(浩浩)하고 천 길 옛 시내의 물소리는 냉냉하다. 이 아양(峨洋)한 아름다운 경치는 마치 좋은 그림과 같아서 사람의 맑은 생각을 이끌어 낸다.
우리 스님이 저기로 돌아가는 뜻을 나는 안다. 우리 스님의 뜻은 도에 있고 그 경치에 있지 않다. 그리하여 그 산의 빛깔과 물의 소리에 뜻을 붙일 뿐이다.
대개 도에 들어가려면 보고 듣는 것보다 첫째감이 없다. 이제 그 빛깔은 사람의 보는 바를 바르게 하고 소리는 사람의 듣는 바를 일으키는 것이니, 만일 그 봄에 나아가 묘함을 밝히고, 그 들음에 나아가 단박 깨달으려면, 그것은 언어나 문자에 있지 않고 홀로 우뚝히 교외(敎外)에 전하는 종(宗)을 얻어야 하는 것이니, 응당 우리 스님의 마음은 실로 이런 것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즐겨 헛되이 짚신만 밟겠는가.
나아가서는 신선을 사모하여 장생술(長生術)을 배우는 선비와 스승을 찾아 패경(貝經)을 강하는 무리로서 이 산수에 다달아, 사물을 보고 도를 참구하려는 이는 사물을 보면 호기(浩氣)를 타고 맑은 바람에 목욕하면서 도연(淘然)히 만물이 생기기 전에 있는 것 같을 것이요, 도를 참구하면 실상(實相)을 깨치고 큰 법을 깨달아 창연(暢然)히 무진장(無盡藏)에 들어간 것 같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 스님은 보고 들음에 나아가 마음을 밝히고 도에 들어갈 것이니 어찌 항상 보살의 권속이 아니겠는가. 나도 또한 묘향에 놀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의 출발에 다달아 이 글을 주는 것이다.
草鞋 - 짚신. 짚세기, 미투리.
嘗聞香山 卽香像菩薩 所居處也 其菩薩 與二千眷屬 常住其中 而演說無盡藏之法門 吾師長於斯 又歸於斯 無乃其徒之一乎
吾東山水之奇勝 莫過於玆 萬仞高峯 雲光皓皓千尋古澗 水聲冷冷 此其峨洋之美景 如好畫 然發人淸思也
吾師 歸彼之心 吾知之矣 吾師之意 在道不在彼 乃寓意於其山之色 水之聲耳
夫入道 莫先乎見聞 今其色者 正人之所見也 聲者 發人之所聞也 欲其卽見而明妙 卽聞而頓覺 乃不在言語文字 而挺然獨得敎外所傳之宗 合吾師之心 固如此也 不爾 豈肯虛답草鞋也
至若慕仙學長生之士 訪師講貝葉之徒 臨于此山水 而覽于物究于道 覽物則乘浩氣沐淸風 陶然若在萬物之初矣 究道則悟實相覺普法 暢然如入無盡之藏矣
況師 卽見聞而明心入道 豈不是香像之眷屬乎 余亦有妙香之遊 故於其行也 書此贈之 (밟을답=足부+10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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