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잠꼬대
김승수(김길웅 차남)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아침 일찍 학교로 출근하셨다. 항상 우리보다 먼저 출근하셨는데 그 날은 오랜만에 나도 아버지와 같이 집을 나섰다.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한 새벽이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몇 번 쳐다봤는데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상기된 표정이셨다. 학교 가는 것, 가르치는 것을 정말 즐기시는 것 같았다.
그 날 저녁에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한 손에는 두툼한 봉투가 들려 있었다. 시험답안지였다. 전에도 가끔 채점하시다가 남은 답안지를 집에 가져오곤 하셨는데 나도 채점하는 걸 도와드리곤 했다. 그 날은 채점을 하시다가 피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 난 공부를 하고 어머니는 다림질을 하고 계셔서 집안이 조용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게 들렸다. 어머니와 나는 깜짝 놀라서 안방으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누구누구 40점, 누구누구 70점, 누구누구 60점........"
어머지와 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잠꼬대였다. 이럴 때 황당하다고 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내 방으로 돌아와서 한참을 웃었다.
어릴 적의 내 기억에는 집안일(못을 박는다든지, 뭘 고치는 등의) 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거의 없다. 그만큼 학교와 학생들 생각뿐이었다. 한때는 나도 선생님이 되고 싶은 적이 있었다. 집으로 찾아오는 아버지의 제자들을 보면서 아버지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잠꼬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내가 흉내낼 수 없는 열정을 보았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나의 피상적인 꿈은 지워 버렸다. 지금도 선생님이 되려면, 이를 천직이라 여기고 노동으로 생각지 않는, 교육에 대한 열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선택한 의료인의 길에서도 나의 열의가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잠꼬대가 생각나곤 한다. 어버지가 선택하신 길, 천직이라 여기시는 길, 그리고 열정을 불태우신 아버지의 길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정말 존경스럽고 부럽기까지 하다. 나는 요즘 아버지의 잠꼬대를 떠올리며 내 젊음을, 니가 선택한 길에 후회 없이 바쳐 보겠노라고 그래서 훗날 아버지 앞에 부끄럽지 않게 내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ㅡ 1996. 11. 1. CNE소식 33호 당시부산의대 인턴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