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 , 오지않는 막차 기다리는, 사람이 그리운 사람들 - [전남매일-곽규호]

[오!마돈나]

오지 않는 막차 기다리는, 사람이 그리운 사람들

입력시간 : 2010. 06.02. 00:00

그 겨울밤 막차는 도착했을까?
극단 푸른연극마을 기획 연극 ‘사평역’ 공연
윤희철 박규상 정은희씨 등 중견배우 한 무대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는 있었지만 사평역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간이역이(었)다. 하지만 사평역은 언제나 있었다. 곽재구 시인의 시에서 삶의 모든 무대가 사평역이었다. 저마다 어떤 기다림(열차가 아닌) 속에 대합실은 아무 말도 않는 사람들의 대화로 넘친다.
곽재구 시인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대학에 다니던 소설가 임철우씨는 후일 ‘사평역’이란 소설을 내놓았다. 당연히 출발의 원작은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였다. 9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픈 시대를 이야기하게 했다. 아홉명의 등장인물은 1970~80년대 우리 사회의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전형적인 한국 사람들이다.
극단 푸른연극마을이 오는 10~13일 유스퀘어 동산아트홀 무대에 올리는 ‘사평역’은 임철우씨의 소설이 원작이다.
일단 등장인물부터 살펴 보자.
미친 여자, 병에 찌든 산골 노인, 보안법의 사슬에 걸려 청춘을 감옥에 바친 장기수,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술집 여자, 빌려준 돈 받으러 산골까지 왔다가 있는 돈까지 내주고 온 서울의 식당 여사장, 자신보다 눈꼽만큼도 나을 것이라고는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 해산물·건어물을 팔아 하루를 연명하는 아낙, 여섯 살 난 딸만큼은 따뜻한 곳에서 키워보겠노라고 약을 들고 팔러 다니는 남자, 그리고 원인불명의 임신을 한 채 역 대합실에 기거하고 있는 미친 여자, 다시 감옥으로 가야하는 아들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어 한달음에 산길을 달려 온 늙은 어머니, 이 모든 등장인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역장이 등장한다.
서민적이고, 시대적이고, 일반적인 사람들이며 시골 어느 역에서나 만날 수 있을법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사평역에서 열차를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열차는 폭설 때문인지 예정된 막차가 오지 않는다. 사평역에는 정차하지 않는 특급열차는 기다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몇 대가 지나간다.
베케트의 부조리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와 유사한 구도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 그런 고도를 끝까지 기다리는 두 사람. 변화도 극적 반전도 없는 연극. ‘세상이 그런 거지’ 하고 나즈막히 한숨을 토하는 듯한 연극.
하지만 그럼에도 연극 ‘사평역’을 만들고 무대에 올린 것은 언젠가는 막차가 올지 모른다는, 아니 반드시 올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2010년을 살아가는 관객들 앞에 무엇을 펼쳐 보이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전히 그 모양과 색깔, 속도와 수단만이 바뀌었을 뿐 그 시절, 그들이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렸던 절박함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일반 서민 대중들의 절박함이 오히려 더 가중되어 있음을 보면서 전율하게 되었다.”
연출자 오성완씨의 글에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이유가 명확히 드러난다.
연극 ‘사평역’은 오는 22일 부산에서 열리는 전국연극제 무대에 광주 대표로 출전하게 된 작품.
최노인 역의 윤희철씨, 역장 박규상씨, 노모 이당금씨, 양여사역 정은희씨, 이양댁 추말숙씨, 박씨 역 박영진씨, 종구 역 김명대씨, 미스터 정 역 김현진씨, 미친 여자 역할엔 조경란씨, 춘심이 역에 이슬비씨, 취객은 김경곤씨 등이 출연한다.
모처럼 광주 연극판에서 굳은살이 박힌 중진 연극인들이 한 무대에 서니 참 잘 만들어진 지방 연극을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나무씨의 피아노 연주, 박가을씨의 해금 연주가 극적 분위기를 살린다. 대신, 무대는 별 장치 없는 부조리극의 형식을 차용할 듯하다.
광주 공연은 목·금요일 오후 7시30분, 토·일요일은 오후 5시에 만날 수 있다.
입장료는 일반 1만5,000원이고 청소년은 1만원. 공연 문의는 (062)511-2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