顯考學生府君神位
두서넛 일행들과 산을 오른다.
절기는 입춘이 내일 모레인데도 겨울은 아직 그 기세가 등등하다.
저만치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中年으로 보이는 아줌마들의 일행도 산을 오르나 보다.
길가의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무덤들이 있다.
비석이나 상석(床石)이 놓여진 무덤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엿듣고자 한 것은 아니나
아줌마 두 사람의 대화가 내 입을 슬그머니 찢게 한다.
"무덤의 비석에는 왜 모두 《學生》이라 썼노?"
서슴없이 말을 받는 아줌마의 우스개로의 대답.
"공동묘지에 "入學"했다고 그랬겠지..."
.....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의식중에서
상례와 제례때 자주 접하게 되는 《學生》이라는 말.
그 말의 뜻을 알아 본다.
《學生》이라는 말은 "유학생(幼學生)"이란 말의 줄임 말이다.
그 말은『 幼學이었던 사람 』이란 말로 보면 무방할 것이다.
'유학'이란 벼슬을 하지 않은 유생(儒生)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출사(出仕)하여 벼슬 길에는 나가지 않았으나
지식의 깊이나 세상을 보는 경륜만은
쌓아온 터수가 아까운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한 세상을 살다가 가는 그들에게
남은 사람들이 그 삶을 아까이 여겨 추증하여 붙여 준 추서(追敍)이다.
아름다운 배려가 아닐 수 없다.
男子들에게 붙여 준 추서가 '학생'이었다면,
여자들의 경우에는 《유인(孺人)》이라 한다.
글자의 뜻풀이로만 보아서는
"젖을 먹여 키워준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천만의 말씀이다.
" 孺人 ! "
그것은 조선시대의 외명부(外命婦)의 벼슬 한 이름이다.
九品의 벼슬을 한 문무관(文武官)의 아내들을 "유인"이라 한다.
한 平生을 고난과 애환으로 꾸려나간
여인네들의 삶의 궤적에 대한 보답이다.
이 경우를 두고 보면 옛 우리나라의 봉건시대가
꼭 남존여비(南尊女卑)의 행태로만 되어진 것이 아님을 더듬어 알 수 있다.
제사를 지낼때 쓰는 지방(紙榜)의 뜻을 알아보자.
지방을 쓰는 것은 제사를 지내는 자리에 혼령을 모시는 설정(設定)이다.
혼령이 오셔서, 지금 이 자리에 계신다는 마음으로 지내는 제사와,
차려진 제상을 향해 아무런 의미없이 절하는 것과는
정성으로서는 큰 차이가 있다 할 것이다.
그래서 지방을 종이에 쓴 신주(神主)라 한다.
지방에 쓴 글자들이 나타내는 뜻을 풀이해 보자.
☞ 현(顯)은 "나타날 현"이니
혼령이 그 자리에 "현시(顯示)하여 계심"의 뜻이다.
☞ 고(考)는 흔히 "생각 고"로 알고 있지만
여기서는 《죽은아비고》로 읽어야 한다.
엄마에 해당되는 글자는 妣로 쓰고 《죽은어미비》로 읽는다.
따라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선고(先考)"라 하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리는 엄마에게는 "선비(先妣)"라고 부른다.
아무데서나 "돌아가신 아버지, 돌아가신 어머니..."라 하지 않는다.
☞ 부군(府君)은 부원군(府院君)의 준말이다.
王의 장인(丈人)을 말하거나
종친 서열에서 종1품의 벼슬을 뜻하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집안 대대로의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의 뜻이다.
☞ 신위(神位)는 혼령이 계신 자리라는 말이고...
▶▶지방은 꼭 종이에 붓글씨로서 한자로 써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예전에는 사진이 없었기로 그러하기도 했겠지만
문명이 발달한 요즈음에 와서는 제사상에 사진을 올려
더욱 현실감 있게 조상님을 대하고
또 그렇게 지내는 제사가 "성의롭다"고 할 수 있을테니까.
애틋한 정성이 함께한 것이라면 한글로서-
『존경하옵고 사랑하올, 우리 아버님이 계신자리』
라고 써도 무방할것이고
『 아직도 보고싶고 품에 안기고싶은, 우리 엄마가 계신자리』
라고 쓴들 탓 할 바는 못 될 것이다.
어차피 제사는 오직 "정성"을 드려 지내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인즉.
어떤 사람들이 농담삼아 하는 말처럼 〔父/親/死/亡/記/念/日]로 쓴다면-
그것은 좀 생각해 볼 일이 아니겠는가도 싶고....
현고학생부군 신위...!
현비유인모관모씨 신위...!
적어도 이 말들을 알고 지내는 제사이기만 해도
조상님들이 흠향(歆饗)하오실 성의는 다르다 할 것이다.
....
명절 잘 보내세요.
홀로선나무님이 실어주신 글입니다
멜중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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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