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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삼새 이현철
원주에서 충주방향으로 가다보면 무실이라는 동네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행가리라는 마을로 접어들어 꾸불꾸불 논두렁길을 걸어가면, 논 가운데 작고 구릉진 산이 있다. 거기에는 합펀 물레방앗간이 있었다. 그 산모퉁이를 지나 "작은 돼니 재" 라는 고개를 황급히 넘어가면 작은 연못이 나타난다. 나는 그곳에서 송장수영를 했다. 물 위에 물장군이라는 벌레가 수영이라도 하듯 나는 그 위에 잠든 자세로 누워 팔다리짓을 하였다. 지금도 물속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 올릴 정도다.
좌측 모퉁이를 끼고 홱 돌아가면 "삼새" 라는 동네가 눈앞에 활짝 펼쳐진다. 삼새는 삼 세번의 뜻으로 그 옛날, 어느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갈제 주막거리를 다가오다가 요상하게 생긴 고을이 나타나서 지팡이 딛고 세번 살펴 본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석삼에 살필 성인데 어르신 분의 발음에 의해 삼새로 전해져 내려온다. 새는 새를 이으다. 지붕을 이으다.들판에 갈대들이 많았다고 한다.
서쪽 큰 돼니 재를 넘으면 문막강 나루이고, 동쪽 돼니 재를 넘으면 우럽을 간다. 북쪽 물길 따라 내려가면 만종이고, 남쪽으로 가면 대수리 궁말 충주쪽이다. 거기서 동그란 산을 지나고 앞개울 징검다리를 건너면 뜨락이 펼쳐진다.
개울가에는 칡 공장이 있었다. 여름방학이 되자 칡살이 하러 산으로 간다. "뱀 조심하라. 옷에 칡물 들라." 어머니께서 걱정하셨다. 나는 친구들과 왜낫을 들고, 너문골로 갔다. 칡살이 한 관이면 150원이다. 나는 칡을 끊어서 사리를 만들어 등에 지고 칡공장으로 향했다. 밀집모자에 코가 칼날처럼 세운 아저씨는 나의 친구인 아버지이며 칡공장 주인이시다. 뽀빠이 10원, 라면땅 10원, 눈깔사탕 5원. 또뽑기 20원, 공책 20원 50원 100원이다. 칡사리가 돼지목도 하듯 저울고리에 걸리면 저울 추는 오르락 내리락 춤을 춘다.
'한 눈끔만 더 올라가면 더 좋을텐데, 뽀빠이 사먹게.'
생각나는 것은 뽀빠이가 아닌가. 누나는 껌이면 될 것이고 동생들은 눈깔사탕이면 되겠다.
대목일을 하시는 아버님과 고향이 이북이신 어머님의 사랑을 받았는가 보다. 어느 날, 나는 어머니 품속에서 삼새의 고요한 장막을 깨고 울음을 토해낸다. 보릿고개 시절이라 깐풍기이며 삑삐기를 입에 물고 국민학교를 다녔다. 버들가지 비틀어 사금파리로 잘라 피리를 만들어 분다. 풀피리도 분다. 야들야들한 잎을 반 접어 입에 물고 불면 그럴싸한 노래가 흘러 나온다. 그것은 나의 놀이개이자 악기이다.
누나들은 능금껌을 만들어 씹을 때 나는 삑비기 풀을 입에 물고 나발댄다. 논두렁 밭두렁 갈 때 누나들 따라 부르던 노래가 과꽃과 반달이다. 한 겨울 고개를 넘어 다니며 가제, 우렁이, 머구리 잡아 삭정이 불 놓아 구워먹었다. 서로들 입술은 검둥이를 하며. 비알에는 진달래꽃이 가득하여 꽃잎을 따서 입에 물고 다녔다. 진보라 루즈빛 물감은 입술에 묻어나거나 소매로 훔치면 물들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통학거리가 멀어진다. 국민학교도 작은 한개울 고개 두고개이지만 이번엔 작은 돼니 재를 넘어서 가야 한다. 개울을 두번 건너야 하고 논두렁 밭두렁을 질러 간다. 차가 없던 시절 아니 귀한 시절 읍내라야 고작 합승버스 새나라 택시, 고등학교 되서야 동신운수라는 버스가 사제울 이라는 마을로 지나 봉미라는 종점에 들어온다. 우리마을은 꿈도 못 꾼다. 저기 저 고개 때문에 그래서 남포짓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자전거도 귀한 시절 나는 어머니를 졸라 삼천리 자전거를 가지고 싶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자전거를 산다. 이제는 나만 외톨이가 된다. 새벽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그 집앞" 이란 가곡을 풀피리 불며 간다.
앞으로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느 날, 나를 보고 안타까운지 아버지께서는 기르던 돼지를 팔러 장에 가신다. 돼지다리를 묶어 구르마에 싣고 가신다. 그날 일요일이라 동행하였다. 고개를 오를 재 얼마나 힘겨운지 땀이 뻘뻘 흘러나온다. 돼지도 누운자리 좋지 않은 양 꿀꿀꿀 거린다. 20리 길을 걸어 가니 반나절이 넘는다. 부랴부랴 돼지를 가축장에 넘기고 중앙시장에 들어가 올챙이 국수 두어 사발 먹고는 나섰다. 배부릉산 넘어로 해 떨어지면 돌아가기가 조심스럽다. 전기가 시내 근방만 있어 외곽만 나오면 칡흙같은 밤이 된다. 그래도 보름을 택해 장을 다닌다. 왜나면 그날은 쟁반같은 둥근 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름 장이 열렸는지도 모르겠다. 늦게라도 장에서 귀가 하는 날에는 달과 그림자 셋이서 동행하기에 고독스럽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보름 날 밤이 돌아오면 요즘도 밤 시골길을 다녀본다. 갈대있는 개울따라 낮으막한 고개를 넘으며 그림자와 한몸이 되어 걸어가 본다.
삼천리 자전거 중고품 12,000원에 사고 나머지 돈으로 소니 라디오 중고품 8,000원을 주고 산다. 아버지께서는 신기한 듯 라디오 멜빵 줄을 어깨에 메고 소리를 들으며 오시고, 나는 자전거를 배울 겸 뒤에 구르마를 매달고 삼발이 사발이 이인 양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는다. 뒤뚱뒤뚱 몇번을 넘어지고 일어나고 집에 다올 쯤 되니, 해는 온데간데 없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누나는 마중을 나온다. 누나를 위해 사오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어머니 같으면 뭐라도 사들고 가실 텐데 역시 아버지 마음은 그러하지 못한가 보다. 그 자전거로 내리 5년을 타게 된다. 중, 고등학교 시절을. 앞바퀴 들어 돌리면 발전기에 전기가 발생된다. 신기하다. 달리면 달릴수록 불이 밝아져 온다. 고개에 오르는 길에는 자전거를 끌고 가지만 내리막길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다가온다.
어머니께서는 인정이 많으셨다. 말씀도 잘 하신다. 어머니의 말씀, 반만 따라가도 샌님이 될 듯 싶다. 아버지께서는 우직한 근성에 평상시 말씀은 잘 아니하신다. 나는 어려서 어머니 품에 많은 세월을 보내며, 삶의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듣고 자랐다. 나는 장구실패와 철사로 굴렁쇠를 만들어 이른 아침부터 굴리면 돼지들이 놀라 꿀꿀꿀 거린다. 애기 고무줄과 가죽, 그리고 나무를 구해 빡가총을 만들어 참새 잡는다고 남에 장독을 깨본 적도 있다. 대나무 우산 대로 물총을 만들어 친구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머구리총을 만들어, '어서 무럭무럭 자라거라, 알 낳으면 아이스께끼 먹게' 하는 생각에 개구리를 잡아다가 짓이겨 병아리 먹이로 놓아주었다. 보릿대롱으로 여치집을 만들어 여치도 길렀다.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토끼장에 산비둘기와 토끼 두마리를 길렀다.
초가를 짓는 곳이면 아버지 따라 다니면서 도와드렸다. 대들보 올리는 날은 맹꽁이의 배가 되어 손으로 배 두드리며 잠을 청했다.
몇 해가 지나니 번데기 탈바꿈 하듯 초가지붕이 스랫트 지붕으로 서서히 바뀌게 된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대추나무에 확성기가 걸리면서부터 아침마다 새마을 노래가 들려왔다. 마침 그때, 나는 내 생애에 뭔가 남기고 싶은 충동 감이 생겼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글로 남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사라져 가는 초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지냈다. 이젠, 품앗이라는 것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기계문명에 밀려 하나, 둘 사라져가는 모습이 안타까왔다. 제초기가 등장하고 와롱기가 등장하더니, 광솔 등잔에서 기름을 사용하는 호롱불로 서서히 내 눈앞에 다가섰다. 이윽고, 전기가 등장하더니만 움직이는 그림상자가 나타나지 않는가. 호롱도 헛간 신세가 되고 벼름박에 그림자는 온데간데 없었다. 라디오에서는 오후 다섯시에 방송되는 마루치아라치 파란해골 13호가 당연 인기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전우, 명장 김유신과 더불어 일요일이면 명화극장이었다. 그림상자는 우리동네에 한집 뿐이다. 면장 집에 있는 대한전선 디제로이었다. 노가지나무의 울타리를 기둥삼아 안테나 세웠다. 꼭대기에는 은빛 잠자리의 날개같은 것이 올라 앉았다. 바람부는 날이면 지지직 소리내며 화면이 주름을 만들었다. 그래도 신기하지 않는가, 소리가 흘러나오는 속을 들여다 보아도 사람은 없었다.
강원도 하면, 감자 바위를 생각한다. 나는 감자바위를 금바위라 하고 싶다. 고구마는 많이 먹으면 질리지만, 감자는 제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것은 강원도의 삶에 대한 주식이며, 겨울에는 나의 주정뱅이 음식이다. 채에 갈아서 녹말을 만들기도 한다. 그 앙금으로 부침개를 만들고, 감자떡도 만들어 먹는다.
나의 키는 다섯 자에 팔 치요, 몸과 얼굴은 그런대로 생겼다. 강원도 사람은 소처럼 우직한 근성을 지니고 있다. 내 자신도 그런 면이 없잖아 있다. 태어나서 옷 한 벌 입게 해준 부모님 덕분에 늘 고맙게 생각한다. 나를 태어나기 위해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애쓰시던 어머니의 모습 생각하며 나는 누구인가 생각한다.
본명 이현철
원주 시골 출생
저서: 동화집(할미친구 용룡이들)
특기: 고건축및, 초가모형 제작, 옛 것 재현, 그림, 조각, 설치미술, 풍수, 작명, 수맥 등등 만능 재주꾼이라고도 함.
취미: 글쓰기(동화, 시나리오, 수필, 시, 소설 창작) 옛 것 모으기
직업: 건설계통
야망:작품을 우선으로 하는 최고의 동화와 시나리오에 역점
사랑하고픈 소설가--김유정
좋아하는 시인---김소월
멋진 수필가--피천득
멋진 시나리오 작가--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 없음
안녕하세요?
인사가 너무 길은 것 같습니다.
동화나 소설을 다루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베풀어 주시면 산중에 가서 좋은 약초를 선물해드릴까 합니다.
2005년 10월20일
산중을 좋아하는 소인배
삼새 이현철 올림
011-361-5235
현재, 단편 시나리오 2편 퇴고 중
시 1000편, 수필 15편 단편소설 3편, 동화 17편, 단편 시나리오 2편, 시간나면 글쓰는게 취미.
할미 친구 용룡이들
1, 은혜를 갚은 꿩
"올망졸망 두리몽실 고사리손같은 이쁘고 귀여운 손자손녀들아, 이리로 와 봐요. 옳치, 얼굴도 이쁘네! 호호, 이 할미 닮았나 보네. 장손자도 이리 온?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해 줄게. 애비야, 가마솥에 쇠죽 다 끓었냐? 다 끓었으면, 구영에다 다 퍼 담아주고는 얼릉 빗장질하고 들어와 봐?"
"예."
"애미도 요리 와 앉고. 이 할미가 용띠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용룡이 이야기 해줄께요."
"할미, 빗장질이 뭐야?"
"응. 고것은 니 애비 들어오거들랑 물어봐요. 애비가 목수이시니까."
"아버지, 빗장질이 뭐야?"
"응, 고것이 말이여, 나무 막대같은 가로대를 나무기둥 홈속에 양쪽으로 지르고는 손자귀로 만든 쐐기를 고정시키는 것이여."
"그렇구나. 그럼 가로대는 뭐고 손자귀는 뭐야?"
"뭐, 좋은 것이라고 가르쳐요."
"애미야, 그냥 나두워라. 아, 손자가 알고 싶다는데 말이여."
"그러니까, 가로대는 수평으로 놓인 나무막대이지. 저기 저 문지방처럼. 나무기둥에 맞추려면 홈을 파는데 그 홈속에 들어가기위해서는 양쪽을 다듬지. 한쪽은 직사각형으로 한치와 한치 반으로 다듬고 반대쪽에는 사다리꼴 형태로 다듬지. 그리고나서 쐐기를 만드는데 손자귀가 필요하지. 손자귀는 "ㄱ자" 형태의 손잡이에 쇳날이 박혀있는 것을 말하는데 종류가 많지. 선자귀, 큰자귀, 까뀌, 옥까뀌, 옥동귀 따위로 나무를 깍을 때 쓰는 연장이지. 큰자귀는 대자귀로 자루가 좀 길지. 다듬이 방망이 길이로 세 배정도 될꺼야. 흔히, 우물마루 놓을 때 쓰이는 것인데 대들보를 깍을 때도 많이 쓰이지.
"우물마루?"
"응, 저기 저 뒷동산 넘어 윗담 연화 할배집 대청마루 있잖아. 길이가 자 반 정도 되는 나무판자들이 나란히 놓여져 있는 것 말이여. 우물마루판을 깎을 때에는 말타는 자세로 양발을 벌리고 가랭이 사이로 대자귀가 시계불알 몬양 오가며 대자귀질 하지."
"호호호."
"고것이 벽장 연장통에 있으니까 낭중에 보여줄께. 그리고, 빗장걸이를 갈퀴맞춤 호미걸이라 하네. 쐐기는 석수쟁이가 다루는 사각형의 정처럼 생겼는데 고걸로 가로대를 홈속에 쭉 밀어넣었다하면 제아무리 기운 센 천하장사도 요지부동이지."
"그럼, 한치는 뭐고 자반은 뭐야. 요지부동은 나중에 누나에게 물어보고."
"응, 한치는 이십분이라고 하지. 열분은 오푼이고 자반은 한자 반의 줄인 말로 반은 이분지에 일을 말하지. 이 애비처럼 목수들이 쓰는 말인데 한자가 열치이니까. 참, 누나가 학교에 가지고다니는 자 있지, 대나무로 만든 십센치의 자 말이여. 그러니까, 큰 눈금으로 세 눈금에서 아주 쬐끔 많을꺼야.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방이 사방으로 다섯자이지. 한자를 일곡척이라고도 하지. 한자가 삼십 점 삼육삼 센치이고 반은 그것에 이분지의 일이니까, 이따가 누나하고 계산을 해 봐라. 얼릉, 할머니 이야기 들어보자구나."
옛날옛날 한 옛날, 어느 고을에 사는 한 나그네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게 되었어요. 치악산 어느 기슭 오솔길을 접어들 찰라 글쎄 숲속에서, "꿩꿩꿩, 꺼겅" 꿩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어요. 짐작으로는 신림면 응봉이라는 뱀골이 있지요. 그곳에는 아홉마리의 이무기가 되어 살다가 사갓봉 아래 구룡산 근방 어디 쯤으로 옮겨왔다고 해요. 말하자면 분가이지요.
"아이, 놀래라, 간 떨어지겠네. 할미야, 과거는 뭐고 분가는 뭐야?"
"지금으로 말하면, 순사나 우리집 밑에 밑에 향나무가 많은 집에서 살고 계시는 면장님쯤 되기위한 시험이고, 분가는 사는 곳이 좁아서 식구들의 일부가 딴살림을 차리는 것을 말해요. 너도 이 다음에 커서 장가들 나이면 알꺼예요. 아마도 응근히 슬쩍 애원할 껄."
"할미야, 난 장가 안간다. 할미가 좋은데 왜 가."
"고놈, 참. 참내, 살다가 별일 다 보겠네. 그래, 같이 살자. 너가 장가 갈 나이면 이 할미는 손가락으로 구십개 하고도 일곱개는 더 구부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럼 그때까지 살라고."
"그럼, 그것을 보러 꼭 한양에 가야 돼?"
"응, 옛날에는 거기 밖에 없었데요."
"그런데 이무가가 뭐야?"
"응, 용이 되려고 여러 해 묵은 큰 구렁이라 하는구나."
"그럼, 용은 어떻게 생겼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로 머리가 말머리, 혹은 낙타머리라 하고 옆구리는 날개가 있고 네 발이 있다하네요. 사슴같은 뿔에 악마의 눈, 목덜미는 뱀, 배는 흐물흐물, 비늘은 물고기 비늘에 발은 독수리 발이라 하네요. 호랑이 발목에다가 귀는 우리집 외양간에 있는 누렁이소의 귀와 같다고 하네요. 입에 물고 있는 여의주는 태양이이라 하고."
"태양?"
"응, 그것이 있어야 요술을 부리는 힘이 있다고 하네요. 하늘에 용, 지상에 용, 지하에 용."
주위를 둘러보니, 솔밭 아래 가시덤불사이로 커다란 비단 구렁이가 보였어요. 글쎄, 고것이 꿩을 잡아먹으려고 똬리를 틀고 있었어요. 나그네는 그것을 보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나봐요. 그래서 활을 힘껏 당겨 구렁이를 쏘았어요. 잠시 후, 커다란 구렁이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갔어요.
"으앙, 무서워라. 불쌍하기도 하고. 그래서?"
어느 덧, 해는 서쪽의 능선으로 기울게 되었어요. 나그네는 오솔길을 걸으면서 곰곰히 생각했지요.
'이 깊은 산중에 인가가 있을까. 하룻밤을 묵어 가야하는데.'
뉘엿뉘엿 찾아낸 것이 어느 이름 모를 절간이었다고 하네요. 나그네는 문을 두드리며, "주인님, 계세요?" 물으니까, 이상하게도 이 깊은 산중에 말이여 소복을 입은 여인이 문을 슬그머니 열고 나타났어요.
"어이구, 무서워. 그런데, 소복이 뭐예요?"
"누가 죽었을 때 입는 하얀 옷이라고 하는구나."
"할머니, 무서워."
"이리 온? 올치."
"이젠, 안 무서워. 할미 가슴이 새가슴같아도 너무 좋으네. 엄마, 내롱."
"이눔아, 얼릉 내려와라. 할머니, 무릅아프시겠다."
"애미야, 나두어라. 재롱떨어서 이뻐죽겠다 야."
"지나가는 나그네인데 이젠 어두워서 밤길을 못 갈 것 같아서 하룻밤만 묵어갈까 왔소." 나그네가 소복을 입은 여인에게 말을 건네니까 그 여인은 하늘에 천사처럼 이쁜 눈웃음을 치더니만 쾌히 허락하면서 방으로 들어가자고 했어요.
"왜, 그 여인이 눈웃음을 쳤을까!"
"그거야, '어이구, 왠 굴러들어온 떡이야!' 속으로 그렇겠지."
"호호호."
그리고는 소복을 입은 여인은 나그네의 배를 넌즈시 홀겨보더니 배고품을 알아차렸는지 식사를 하자고 했어요. "괜찮아요" 라고 나그네는 이야기했지만, 막무간에로 저녁상을 차리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나그네는 피곤했나봐요. 배고팠던 나머지 고밥다는 인사를 나누더니, 글쎄 게눈 감추 듯 고봉밥을 단박에 흐르르 홀짝 먹었어요.
"호호호, 재미있네"
"재미있긴 무서워 죽겠는데. 그런데, 고봉밥이 뭐야?"
"응, 빈사발에 밥이 가득 담긴 밥을 말하지. 너가 매일 그렇게 먹잖여, 키 넙죽넙죽 크라고."
"엡테."
그리고는 손에서 수져를 놓자마자, 곧장 깊은 잠속으로 빠졌대요. 그런데, 잠속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잠결에 이상하다 싶어 눈을 벌떡 떠 보니, 글쎄 커다란 구렁이가 온몸을 칭칭감고 있었어요. 나그네는 깜짝 놀랐어요.
잠속에서 놀라지 않은 척 헛기침을 하며, "에헴,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죄없는 선비를 해치려고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고 나그네가 소리치니, 구렁이는 두 갈래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이야기하더라는 거예요.
"할미, 미물이 뭐야?"
"응, 고건 보잘 것 없는 물건인데 필요없는 물건을 말하지."
그건 그렇고, "손님은 오늘 오시다가 도중에서 살생을 했소. 구렁이는 내 남편이오. 그를 죽였으니 임자도 마땅히 죽음을 당하여야 하오?"
"할머니, 살생이 뭐야?"
"응, 살아있는 것을 죽이는 것이예요."
"아, 그렇구나."
나그네는 겁을 먹은 듯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넙죽 살려달라고 빌었어요. 그러자 그 커다란 구렁이는 "절 뒤 종루에 종이 있는데 그것을 세 번만 울리면 살려줄 수가 있소?" 하고, 조건을 내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나그네는 자신만만하게 귓속말로 속삭이었어요.
'알았다 요놈아, 날 새기만 해 봐라, 그까짓 종 따위 쯤은 문제없이 맞추지'
날이 밝자 나그네는 절간 뒤뜰로 나가 보았데요.
'흐흠, 어젯 밤 구렁이가 이야기한대로 종이 있군, 에헴, 우선 마음을 가다듬고'
나그네는 화살을 뽑아 실위에 걸고 종을 향해 힘껏 당겼어요.
'피옹 피옹 피옹!'
첫 번째 화살, 두 번째 화살, 마지막 화살까지 뽑아 젖먹던 힘을 다하여 종을 향해 쏘았어요. 그러나 이것이 왠 일이여, 화살은 종에 미치지 못하고 그냥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이제는 할 수 없이 구렁이에게 죽음을 당해야겠구나' 하고 탄식하면서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종소리가 울려왔어요. 언제 다가왔는지, 눈에 피멍이 들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소리를 언제 들었는지, 나그네 몰래 그 여인은 한마디의 말도 없이 고만 사라져버렸어요.
"이그, 양심불량. 그럼, 그 구렁이가 소복입은 여인."
"맞아맞아 맞아요. 엮시, 내손자 네말로 왔따야."
나그네는 종소리가 난것이 하도 신기해서 종루 밑을 살펴보았어요. 글쎄, 그 주위에는 꿩 세마리의 머리가 터져 죽어있었어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전날 살려준 꿩이었어요.
"아, 그럼 은혜를 갚은 꿩이네."
"그럼 그 꿩은 어떻게 했어?"
"저기 저, 동구밖 치악산자락에 무덤을 만들어주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소복을 입은 여인이 환생하여 아홉마리의 용으로 변했다는거예요.
"환생?"
"응,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해요."
"누나야, 아까 요지부동이 무슨 말이여."
"응, 그것은 옴싹달싹 못 한다는 뜻이야. 얼릉 잠이나 자자."
"알았또. 난, 천하장사가 죽는 걸로 알았걸랑."
2부 --5부작
요즘, 현장의 일이 주춤해져서 글에 폭 빠져삽니다.
첫댓글 어서오세요^^ 무엇이다 라고 좋은 말씀을 드려야하는데 -0-;;;. 장선생님이 자주 하시다 시피 하는 말씀을 올려야겠네요 ^^; 건필하세요 ~ >.<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가입인사가 이렇게 긴 장편에 스펙터클 서스펜스한 글은 첨입니다^^ 정말 여러가지 재주를 가지셨군요. 보통 한가지 재주도 없어서 전전긍긍인데 말입니다. 많은 재주 중에서도 글을 좋아하신다는게 맘에듭니다. 닥터도 오래전에 동화집을 냈었죠. 그리고 작품은 자기작품올리기나 공동구역을 이용하세요. 닥터
고맙습니다. 초면에 실수를
이런 가입인사 글은 처음이예요. 오홋.. ^^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