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 30분 네델란드 암스텔담행 비행기에 올랐다. 작년 이맘때 해외여행이후
꼭 일년 만이다. 이번여행은 시댁 남형제 네집이 준비하여 성지순례를 겸한 테마여
행 으로 구정휴가철에 맞추어 준비한 여행. 비행시간은 총 16시간이다. 21일날 직항
으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없기도 하고, 또한 혹, 테러분자들의 비행기테러에 대한 염
려로 비교적 안전하다는 K.L.M 향공을 이용하자는 시동생의 제안에 암스텔담을 경유
하여 카이로로 가는길을 택했다. 서서히 비행기는 움직이고....구름을 뚫고 날으는
은빛날개가 햇살에 반짝인다. 기내에는 성지순례를 위한 페키지 관광객들과. 외국인
이 반반씩 탑승했는데 전석이 만석이다. 기내식이 나오자, 울 예쁜동서 '형님, 성만
찬 하셔야죠? 하며 포도주로 건 배를 제안하는 깜찍한 윗트에 기분 좋아지고... 귀
에 걸은 헤드폰에선 스트라빈스키의 모짜르트콘체르토가 이틀씩 여행준비로 잠을 설
친 몸을 풀어가고 있었다. 아까부터 어린아이가 보채며 울어댄다. 출국시 내 바로
앞에 선 외국인 부부가 앞으로 맨것이 난 배낭인줄 알았는데 지금보니 어린아이였나
보다. 그런데 더 놀라운것은 다름아닌 한국의 어린아이... 해외입양, 말 로만 듣던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입양을 하여 스웨덴으로 가는 부부였
고, 그 옆자리에는 5살과 6개 월쯤된 아이 둘을 입양하여 출국하는 부부...두 커플
이었다. 아까부터 울어대는 어린 아이는 무엇을 아는지, 언제일런지 기약할 수 없
는 이땅과의 이별이 서러워서인가? 울어대자 어쩔줄 몰라하며 보듬고 서성이는 은발
의 사내 앞에 내마음은 숙연해진다. 이것이 국민소득 일만불이나 되는 우리의 현실
이다. 깜박 졸다보니 울 옆지기 시동생과 1불짜리 몇장놓고 포카가 한창이다. 이
그...못말려. 여행중, 좋은 구경거리도 그렇지만 세계의 여러나라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야 말로 진정 한 여행의 의미가 아닐까? 경직된 몸을 풀기위해,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비행기 맨 뒤로 가서 40분 정도의 몸풀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장거리
비행을 할시에는 눈치껏 꼭 필요한 운동. 한참을 서성이면서 자연스럽게 두분과의
대화가 시작됐는데, 한분은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미국이민을 가서 다시 신학을
시작하여 지금은 국내의 교회시무 를 하시는 젊은 목사님이셨는데, 이스라엘 성지순
례는 두번째이고 해외여행을 많이 하신 분이라 여러가지 경험이야기가 끊임없어 재.
미있었고, 특히 아이들 교육에 관한 프로그램 에 많은 유익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
다. 또 한분은 지금은 프랑스에서 살고 계시면서 한국에서 한달, 프랑스에서 한달
씩 오가는 젊은 사업가, 다름이 아닌 나에게도 낮익은 빵집 '엠마'와 '땡삐르 과자
점' 체인의 회장님이시다. 수수하고 담백한 생활이야기와 신앙 이야기들로 무려 서
서 3시간쯤이나 담소하다보니 어느새 암스텔담이 한시간 거리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암스텔담은 군데군데 밀집된 도시계획과 불빛으로 화려하다. 도착하여 2시간 후
에 비행기를 타는데 이곳저곳 구경도 하고 칼스버그 맥주(500cc에 5$) 도 한잔하고
쉬었다. 인상적인것은 안마해주는 곳이 있었는데 시설은 없었고 사람이 어깨를 주물
러 주는데 15유로(1유로에 1550원 정도) 정도 한다. 다시 카이로행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록 움직이질 않는다. 기체 결함이 있는지 영 불안하다. 역시
나, 비행기 정비때문에 1시간이나 늦어졌다. 카이로공항에 도착하니 후적지근하다..
시설도 그렇구. 급하게 화장실을 갔는데 웬 여인이 화장지 50센치를 뜯어준다. 꽤
친절하다 싶구..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인가 보다 했더니, 웬걸 나와서 손을 씻는데
손을 내민다. 팁~~~. 줄을 서서 입국심사를 받는데 1시간이나 기다려도 줄이 줄어들
지를 않는다. 중간중간에 귀족이나 일부 새치기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내 앞에 헤
잡을 한 아랍인 가족이 몸종을 데리고 서 있는데, 부호인듯.. 어디서 왔냐고 묻는
다. 17시간 30분만에 드디어 후사 호텔에 도착했다.. 새벽 1시다. (계속) 일년에 두
번온다는 비가 내렸다. 말하자면 엄청 귀한비가 내렷는데 가이드 말이 우리가 귀한
손님이래서란다. 가이드는 외대에서 아랍어를 전공하고 이집트에서 7년째 살고 있는
데 대사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하고(60명 정도) 또 한국인 학교에서 아이들에
게 수학을 가르 치고 가끔 프리랜서로 가이드를 하는 앳되보이는 젊은남자분... 얼
마나 청순하고 어린 아이같이 선량해 뵈던지...그런데 37살? 이집트는 말 그대로 무
덤 문화다. 지금부터 4,500-4,600년전에 만들어진 피라밋이 그 대표인데 나란히 있
는 세개중 쿠프왕의 것이 제일 크다. 케프레왕의 피라밋과 쿠프왕의 아들 무덤인 미
체리노의 무덤은 미완성이며 쌓다말은 정사각형의 돌덩이들이 여기저기 잔재해 있
다. 무덤의 안쪽에는 석회암의 돌로 , 겉은 화강암으로 가로-세로 230미터, 높이
146.5미터로 (지금은 9미터 유실로 137,5미터) 약 250만개의 돌로 정사각형으로 쌓
아졌 있고 출입구는 북극성을 향해 있는데 그건 영원불멸을 상징하고 또한 신을 의
미한단다. 사실 무덤안을 들여다보니 별거 아니다...전시용 소장품도 없구(모조품이
라도). 그 커다란 피라밋 안에 무덤자리만 뎅그란히 있고, 오고가는 길이 얼마나 협
소하던 지, 아직 후진국으로 면모가 그대로이다. 피라밋을 지키고 있는 스핑크스는
길이 70미터, 폭은 25미터이며 그리스어로 공포의 교살자라는 뜻이란다. 그곳은 미
이라를 만들었던곳.. 보통 사진으로 보아도 코가 으깨 졌는데 예전 터어키군의 점령
시 포 부대 포격연습으로 코가 날라갔고, 수염은 영국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단다.
예수피 난교회와 모세와 선지자 예레미야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는 모세기념교회
를 둘러보 고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나일강을 지나는데 무덤들이 즐비하
다. 꼭 우리 나라 재래식 화장실 만한 무덤위에 집을 짓고 살기도 하는데 주로 범죄
자들이 많이 산다구... 나일강은 그폭이나 물길이 한강보다도 엄청 못하다. 하지만
그 길이는 6,500키로나 된다. 시내로 들어서니 간혹 아파트도 눈에 띄고, 건축양식
은 집들이 지붕이 없이 지어져 있다. 지붕 있는것은 돔형식의 지붕이 있는 이슬람
사원 뿐. 도로가 장난이 아니다. 야쟈나무가로수 사이로 왕복 4차선 정도, 시내의
보통 교통수단은 합승택시. 차선도 없구 신호등도 없구,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건너
구 합승택시를 타기위해 길 가운데 나와 서 있다. 그야말로 멋대로.. 그래도 도시
라 헤잡을 쓰기만하구 전통의상을 안 입은 사람도 눈에 띠고 얼굴 전체을 가리고 눈
만 빼꼼이 보이는 헤잡을 쓴 여인도 보인다. 우리나라의 차 포니와 엑셀이 심심찮
게 보였는데 차 판매량의 1위가 대우자동차로 30%을 차지한단다. 기름값은 리터 당
200원. 낮익은 간판 삼성, 캔터키 후라이드, 도미노피자집이 눈에 뜨이고 (피자 한
판에 6,000원) 꽃집에는 다알리아꽃으로 만든 꽃바구니와 주먹만한장미, 글라디올러
스, 공작초등이 있었다. 가이드한테 시장구경좀 하자고 간청했다... 사람냄새가 나
는곳이 그곳이 아닐까 싶어서 시장을 갔는데. 농산물시장이었다. 갈쿠리로 꿰어 걸
어놓은 고기를 사기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데 광우병 얘기는 먼 나라 얘기... 소
고기를 주로 먹는데 어린 송아지를 잡아서 맛이 괜찮단다. 한 옆에서는 닭 모가지
를 비틀어서 잡기도 하고...오이나 무우,토마토, 가지 비슷한 농산물이 리어카 같은
데 담겨져 있고, 과일은 바나나, 사과, 귤, 정도...저울은 눈끔저울이 아닌 막대저
울을 쓰고 오렌지를 3불정도 사니 큰 비날봉투로 2봉투나 됐다. 수에즈 운하를 건넜
다. 길이는 173키로. 4000년간 조금씩 공사를 진행했던 대역사이다. 1869년부터 10
년간 연결하는 공사로 완성됐고 우리는 지하터널을 지나 광야로 나왔다. 강폭은 그
리 넓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깊이가 깊은지 다행히 콘테이너를 실은 배가 지나가
는것을 볼수 있었는데 강가에서 50미터쯤 앞으로 지나간다. 원래는 강가에 사람이
다가가는것을 금지하는데. 멀리서 호르라기를 부르며 무장한 경비군들이 다가와 주
의를 주며 빨리 가라고... 운이 좋았다. 드디어 시나이 반도를 따라 출애굽한 광야
를 끼고 시내산을 향하기 시작했다.(계속)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내산으로 향했다,
일명 호렙산이라고도 하고 하나님이 친히 임하셔서 모세에게 보이셨던 성경에서 말하
는
거룩한 땅이다,
가는길에 마라의 우물과 오아시스를 들려 광야를 지나는데
내가 생각했던 고운모래의 낙타를 타고 아라비아 상인이 지나는 그런 사막이 아닌
그야말로 척박한 땅 이었다. 자갈과 모래가 섞여진 황무지에 지금이 우기이며 겨울
철이
라 양들이 뜯어먹는 도장나무 비스름한 나무들이(우슬초라고 가이드가 얘기함)군데
군데
있었는데 한여름이 되면 그나마 풀색은 찾아볼수가 없단다. 나무나 풀을 뜯어서 만
져보
니 박하향내가 나기도 한다.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어와서 모래바람으로 뿌옇다.
홍해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생각하며 이집트를 출발하여 광야를 지나면서 모세
가 이
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메추라기와 만나로 이 광야에서 40년간이나 유랑생활을 했다
니 믿
겨지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메추라기는 바다를 지쳐 날아온 철새가 너무 지쳐 날지
못하
여 손으로 잡을수 있다는 것과 만나는 개미의 분비물로 입에서 녹기도 하는 달콤한
맛이
나는 먹거리란다. 즉, 근거 있는 얘기..정말 저녁에는 추워서 불기둥으로, 한낮에
는
뜨거워서 구름기둥으로 보살폈을 하나님의 임재를 생각할수 있었다.
사막지방이라 아무리 겨울철이라도 이리 추울줄은 예상치 못했다. 바람이 얼마나 세
차게
부는지 모래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가는 도중에 무장군인들이 몇번이나 바리게이트
를 쳐
놓고 관광객들이 가는것을 첵크하는데 그건 안전을 위해서란다. 한곳에선 차를 출발
시키지
않고 기다리라더니 다른관광차 3대가 함께 출발하게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차량한대가 살짝내린 비와 바람때문에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단다.
호텔은 이집트 시내보다는 더 나았다. 사실 별4개정도의 시설이라는데 우리나라 깨
끗한
장급여관 수준보다 못하다. 물은 500미리를 1불씩 주고 사 먹었다.
식사는 누룩없이 구운 빵과 딱딱한 빵, 계란볶음, 양고기 수트, 볶은밥은 알랑미처
럼
퍼슬하고,콩으로 만든 수프, 치즈, 잼, 닭고기정도.(밑반찬 안가지고 갔으면 클날
뻔 했음)
내일 아침엔 새벽2시에 출발한단다.(계속)
시내산은 해발 2,285미터... 새벽두시에 후래쉬와 장갑, 가져간옷 중에서 가장 따
뜻한 옷을
입고 컵라면 2개를 챙겨 출발했다.
정상을 1시간 40분을 낙타를 타고 올라가고 또 한시간을 걸어서 올라가는 등정코
스...
정말 앞이 캄캄하여 후래쉬가 없으면 못올라가는 험악한길을 올라가는데 사람이 날아
갈것
같은 바람에 결국 낙타를 포기하고 걷기 시작했다. 가다가 오가는 낙타를 피하려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무릅근처를 부딛쳐 다리가 붓기 시작했다..무리이긴 했지만, 여기
까지 와서
안갈수도 없어, 강행군을 하였다. 근데 문제는 3분의 2쯤 올랐을때 울 형님 대자로
누워
더는 못간단다. 이미 호흡곤란이와서 한발자욱도 갈수가 없단다. 모두 하산을 결심
하였는데
바람이 너무세차 한쪽은 절벽이라 그것도 위험하단다. 우여곡절끝에 산정상부근의
움막에
다달을수 있었다. 예배후에 먹는 컵라면맛은 추위와 등산에 지친 우리에게 세상 어
느것보다
맛있었다. 화장실 사용료 1불, 커피한잔도 1불, 물한잔도 1불, 그야말로 원딸라..
원딸라.
산 정상에는 일부 외국인들도 담요를 두르고 웅크리고 앉아있다. 사람이 바람에 날
아갈 지경.
사막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하고 손에 잡힐듯하다.
일출을 기대했지만 구름때문에(바람때문에 서 있을수가 없음) 못보고 산을 내려오는
데, 이리
높은산을 어떻게 올라왔을까 싶다.
풀한포기 없는 붉은 바위산.... 시내산의 모습은 웅장했다. 2시간에 걸쳐 하산하
니 언제 바람이
불었는가 싶게 날씨가 온화하다.
떨기나무사이로 모세에게 하나님이 임재하셨던 성 세인트 캐더린 수도원 (BC331년
에 콘스탄틴
황제가 지음)을 들려 아침을 먹은후 누에바로 향했다.(계속)
누에바로 가는 도로는 전부 2차선이고 사막을 사이로 가끔 바위산이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사막에는 배두인이 살고 있는데 그야말로 유목민이다. 사막가운데서
한두집씩 보이는데 판자나 거적으로 대충지은 천막집에서 기거하며 모래로 세수를 하
고
가끔 무서운 도적떼로 변하여 약탈하기도 하는 집단이다.
누에바는 조그만 항구였다.
우리는 국경을 넘어 요르단 아카바로 가야하는데 2시에 출발하는 (약 1시간 소
요)국제
페리호를 타고 가기로 예약이 돼있다. 그것도 일등석으로...
누에바에서의 식사는 거의 환상적이다. 삼일간 대충 먹던 식사에서 한국인이 경영
하는
식당에는 불고기, 상추쌈, 김치, 생두부, 셀러드, 잡채, 된장찌개, 김치전등 우리
먹거리가
풍성했다. 가져간 팩소주를 곁들여 정말 맛있게 실컨 먹었다.
홍해는 정말 깨끗했다. 연두빛으로 출렁거리는 파도를 보며 정정지역이란걸 실감하
면서 꿈에
부풀었는데, 웬걸? 바람이 심해 배가 안 떴단다. 그러면 어찌 되는겨? 아무리 봐
도 이해가
안됐다. 파도도 많이 없구 바람도 괜찮은데 배가 안 뜨다니...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행사에서는 카이로에서 배가 출발했다하고 누에바 항구에서는 배가 안출발하여 언
제 갈지
모른다하니 갑자기 방향이 없어지고...적어도 명색이 국제선인데 정말 자기네 맘대
루다.
하긴 어제 시내산에서 사람이 날아갈 지경의 바람을 생각한다면 다소 이해가 되긴 했
지만.
현지가이드 말이 저녁 6시 이후에 출발하여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밤 11시에 도착
하는
완행배가 있단다. 아니 일등석에서 완행배라니...가이드 말이 그배는 너무 고생스
러워서
큰일났단다.
사실 애초에는 없던 일정을 요르단 페트라를 꼭 가야한다구 내가 우겨서 넣은 여행
지인데
이지경이니 마음속으로 애만 탄다.
갈팡질팡하다 육로로 가기로 결정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타바국경으로 향했다. 홍해
를 끼고
버스를 타고 가는 해안선은 그림같다. 해안에는 휴양시설인 갖가지 방가로가 즐비
하고 ....
문제는 타바국경에서 이스라엘을 들어가 다시 요르단까지 가는데 가이드도 없이 우리
끼리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요르단 국경을 가야한다는 거였다.
특별히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없고, 세계제일의 검색이 심한 이스라엘 국경을 과연
우리끼리
잘 넘어갈지 이집트 가이드는 한 걱정이다. 그러나 뭐 못갈라구 하는 생각으로 이
스라엘
국경을 갔다. 과연 삼엄한 무장경비속에 검색을 하는데 다행히 큰형님과 우리는
짐 검색없이
무사히 통과했다. 문제는 세째네와 네쩨네인데 온 짐을 다 풀어 놓고 검색한다,,,
그건 좋은데
세째네 중1짜리와 대학1학년짜리 아이가 몇마디 영어로 아는척을 했더니 계속 안 보
내고
훑어보기도하고 사진을 대조하며 물어보기도하며 특별한 이유없이 붙들고 있다. 드
디어 짐검
색 1시간만에 통과...미리 통과한 난 식구들 입국카드와 출국카드 쓰느라 정신 없
구...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입국수속을 밟으니 탁트인 에일럿 해안의 그림같은 야자수와 푸
른바다의
아름다운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말 아름답다.
마침 이스라엘 여행사에서 긴급히 도와주러 보낸 버스가 기다리고 있어 20분쯤 가
다
요르단 쪽 이스라엘국경에 내려줘 통과하는데 거기서도 이유없이 30분을 기다려야
했고
짐을 끌고 우리끼리 요르단 국경을 향하여 입국하니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 하시는 말씀이 당신은 7시간이나 이스라엘에서 붙들어 놓고 있어 너무 화가
나
결국 입국을 포기한 경우가 있단다. 우리끼리 2시간만에 두나라 국경을 통과한 것
이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의 새로운 경험은 여행을 풍요롭게하는 계기가 됐다.
오후 4시면 도착하여 관광하기로 했던 일정이 어긋나 페트라에 도착하니 저녁8시였
다.(계속
우리를 마중나온 분은 우리를 가이드 하기 위하여 이라크에서 삼일전에 나온 한상호
씨.
그분은 미국에서 신학을 하시고 유엔일을 하시다 NGO중동지역대장을 맡아
한달이면 20일은 이라크에서 구호활동을 하며 선교활동도 하시는 선교사님이시다.
베두인들에게 헌옷과 신발등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어떤때는
사막에서 도적떼를 만나 죽을뻔하기도 하고, 목숨내놓고 전쟁중인 이라크를 방문하
여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분인데 우리와 한달전의 약속때문에 잠시 나왔단다.... 지금 우
리가 메
스콤을 통하여 안 알려져 있는 이라크의 현실과 아랍의 정치상황을 소상히 설명해주
기도 하고,
.세계속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유엔과 같은 국제단체에서 일하며 보람을 얻는 일이
많아지길
소망하는 그분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호텔은 비교적 깨끗했다. 회교국가라 시간맞추어 마이크를 통하여 기도하는 방송이
들려오
기도 했지만 비교적 식사도 괜찮았고, 신선한 과일과 푸딩이 좋아 많이 먹었다.
바위의 도시, 페트라...요르단 국보 1호이다.
7,000년전에 나바테안들이 기원전 1세기까지 살았던 도시로 6세기경에 지진으로 묻
혀있어
전혀 몰랐다가 1950년대부터 발굴되어 그 화려한 생활면모를 엿볼수 있는 7,000년
전의 도시...
영화 인디아나존스의 "성배를 찾아서", 아라비안 로렌스, 반지의 제왕등...의 영
화 배경이
되었던 곳... 마음이 설렜다.
말을타고 1키로쯤 들어가 입구에 다달으니 웅장하고 장엄한 붉은바위 진입로에
위용을 실감케 되고, 식구들은 역시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카메라 셔터 눌르기에 바
쁘다.
천연의 요새...거대한 바위사이로 외길통로를 따라 이미 7,000년전에 농경문화가
정착되어
식수와 생활용수를 구별하여 수로가 있고, 긴 요새길을 따라가다 보니 붉은절벽에
깎아 세워진
웅장한 신전과 화려한 조각들과 광장... 더 놀라운 것은 집을 지을시 돌을 들어다
건축한것이
아니고 큰 바위 자체를 깎고 파내서 만들은 건축물이다.
로마 점령이후, 약 7,000명 정도가 앉을수 있는 스탠드를 돌을 파내어 만든 계단식
원형극장의
위용과 행정을 보았던 건물과 상점터, 수도원과 헤롯왕이 애굽공주를 위한 지은 성
채, 붉은바위
산엔 가옥인듯한 수많은 동굴들, 입이 안 다물어 진다. 동굴로 들어가 성가한곡을
부르니 소리
의 울림이 기가막히다.
아직도 발굴안된 수많은 부분이 모래로 덮어져 있는데 과연 거기엔 7,000년전의 어
떤 역사가 있
을까?
유적지 페트라에도 베두인이 살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원딸라를 외치며 계속 쫒아 다
닌다.
목판에는 조잡한 구슬로 꿰어만든 목걸이와 돌조각들과, 유물이라고 내미는 손가락
만한 조각품들...
가져간 과자와 쵸코렛을 나누어 주니 아이들이 갑자기 10여명으로 늘었다.
내 나이가 몇살인지도 모르고 배움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민족
들...인샬라.
그런데 그 천연요새를 로마가 어떻게 점령했을까?
페트라의 돌은 붉은 색이다. 어떤돌들은 손으로 만지니 돌이 부서지기도 하는데
색갈있는 돌을 가루로 빻아 흰 호리병에 넣어 모래로 그림을 그려 채워 넣으면 멋진
장식품이
되는데 너무 아름답다. 한상호님이 두개를 사서 선물로 주신다.
암만쪽을 못가 좀 아쉬웠지만 늦은 점심을 먹은후 다시 이스라엘국경으로 향했다.
드디어 예루살렘을 향하여....
</STRONG></FONT>
<BLOCKQUOTE></BLOCKQUOTE></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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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글과 사랑글
지헤 여행(2) ... 이집트에서 .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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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2.0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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