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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일 물사랑
1922년 T.S 엘리엇(Eliot)는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 것이 유래가 되어 의례적으로 4월이 되면 잔인한 달이라고 들 말한다.
엘리엇은 이 시에서 전후(戰後) 서구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황무지'로 형상화해 표현하면서 .
인간의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의 가치에 주는 믿음의 부재, 생산성이 없는 성(性), 재생이 거부된 죽음 등 진정한 재생을 가져오지 않는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을 준다는 데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적 재생은 지금의 현실에서도 진정한 재생이 안 될지 모르나 계절의 순환에 따른 자연의 재생은 인간이 그릇된 손을 대지만 않았다면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금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4월을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이하기 위해 영화로움으로 가득 채워가는 너그럽고 숭고한 달이라 말하고 싶다.
따라서 오늘도 자연을 찾아, 산을 찾아, 떠나는 경인의 산우님들은 너그럽고 숭고한 자연의 완벽한 재생 에너지를 이어 받아 공허하고 진정한 재생을 이루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을 결코 잔인하지 않은 풍요롭고 향기로운 기억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보는 것이다.
어차피 세상사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쁘다는 모든 것들이 스스로 마음먹기 나름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일기예보에 의하면 이번 산행은 분명 우중산행이 분명할 듯 하여 최대장님이 게시판에 올린대로 판초의하고 여벌옷하고 샌달을 챙겨 배낭에 우겨넣고 연인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그 해후을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발걸음 예나 다름없이 가볍기만 하다.
천년뷔페 앞에서 바라본 계양산도 늘 그렇게 든든한 모습으로 멀리 원정을 떠나는 우리를 배웅이라도 하듯이 그윽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그 머리 위에는 한조각 구름이 걸려 있다
지금은 비가 안 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쏟아 부을 듯 잔뜩 날씨는 흐리지만 기상 여건과는 관계없이 산님과의 그 행복한 해후를 포기할 수 없기에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청송에 올라 청송에 자리하고 있는 주왕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잠깐 졸다가 이상하게 소란스러운 듯 하여 밖을 내다보니 제법 굵은 빗방울이 어두컴컴한 도로를 사정없이 때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영동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언제 비가 왔냐는 듯 개어 있고 도착한 치악휴게소는 낮은 구름이 스쳐지나가는 그저 그렇게 흐린 날을 보이고 한켠에 그 짧은 영화를 뒤로 하고 저물어가는 벚꽃 그 뒷모습이 오늘따라 유별나게 애처롭게 보여 한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음을 기약해 본다
이제 산하는 온통 녹음으로 치장하고 그 길고 추웠던 겨울을 이겨낸 소나무의 짙고 푸른 외로움을 위로라도 하듯 연록의 아릿한 색상이 오늘따라 환하게 가슴으로 들어오는 그런 날이다.
막힘없이 달려와 정차한 곳은 주왕산 절골 매표소 앞 오늘 1팀과 2팀으로 나누어 조금 길게 산을 타는 그룹과 주왕산의 핵심 포인트를 답사하고 그 정상에 오르는 그룹으로 나누어 산행을 하기로 달리는 차안에서 몇 차례 최대장님의 안내가 있었다.
늘 하는 말처럼 우리가 지금 관광차 나선 길이 아닌지라 서슴없이 1팀을 지원하여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산과의 가슴 설레이는 만남을 기대해 본다.
일기예보대로 우중산행을 예상했건만 구름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은 제법 한여름의 그 뜨거운 열정을 선 보이 듯 따갑게 느껴진다.
청송에서 내리자마자 매표소를 호위하듯 버티고 선 절벽은 오늘 산행 줄거리의 표제인양 그렇게 위압적으로 떡 버티고 있다.
그간 후미를 맡아 왔던 윤대장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치 않아 1팀은 여성 부장이신 정빈씨가 선두 무전기를 책임지고 후미는 대진씨가 그 역할을 하기로 하고 그 아름다운 산님의 품으로 여과없이 그대로 뛰어 들어간다.
주왕산은 경상북도(靑松郡) 부동면(府東面)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721m 이고 산세가 아름다워서 경상북도의 소금강(小金剛)이라 하며 역암,응회암 유문암 등의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기암절벽이 병풍을 두른 듯하다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한다.
계곡과 폭포가 절경을 이루어 197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신라 왕자 김주원(金周元)이 이산에서 공부했다고 하여 주방산(周房山) 또는 대둔산이라고도 한다.
중국 동진(東晉)의 왕족 주도(周鍍)가 후주천황(後主天皇)이라 자칭하며 당(唐)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주하여 이곳에서 은거한 일 등에서 주왕(周王)들과 관련지어 고려 말 공민왕 때의 왕사(王師)와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주왕산(周王山)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주왕산의 지명은 주왕굴, 주방천, 장군봉, 기암등 당시 주왕과 관계되는 지명이 많아 전설 이상의 사실성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청학과 백학이 살았다는 학소대, 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가졌던 기암, 주왕의 아들(대전)과 딸(백련)이 달구경을 하였다는 망월대, 멀리 동해가 보이는 험준한 지형의 왕거암, 주왕이 숨었다가 숨진 전설의 주왕굴 등 수많은 명승지가 있다.
이름에 걸맞게 들어서자마자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절벽과 그사이로 점차 그 짙게 물들어가는 녹음으로 멋들어지게 치장한 아름다운 그림이 우리 일행을 맞이한다.
산하는 그야말로 연녹의 그 화려함으로 치장하고 기암의 절벽은 병풍을 두른 듯 좌우를 장식하고 그 사이로 명경지수라 해도 조금의 손색이 없을 듯 맑고 푸른 물이 계곡을 이루며 흐르는 그 길을 따라 경사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평탄한 등로를 통해 자연 속으로 한발 두발 접어드는 발걸음은 그야말로 꿈길이고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행복 그자체이다.
국립공원이라는 명분으로 이것저것 손대지 않고 가능한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 나타나는 등로는 정말 근자에 들어 정말 멋들어진 모습으로 다가와 할 말을 잊게 한다.
생명의 원천 그 순수함과 범접치 못할 숭고함을 느껴 본적이 있는가
모르긴 해도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그 옆을 지나는 산우님의 자세가 자못 숙연함을 느껴지게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듯한 자연 그자체 그리고 물
아 내 필명을 물사랑이라 함을 오늘 이 자리에서 만큼은 숙명이고 운명처럼 받아들여진다거의 삼사십분 이상을 유리처럼 맑고 고운 계곡을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넘나들며 가능하면 자연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징검다리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걸어간다.
아마도 비가 많이 왔다면 이 길을 따라 오를 수는 없을 듯하고 생각해보니 일기예보대로 였다면 오늘 이시간은 허락되지 않았을거라 생각하니 정말 아찔함마져 느낀다.
무슨 꽃인지 이름모를 꽃이 연분홍빛을 띠고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에 피어 예약도 하지 않고 찾아오는 산우님들을 향해 그 환한 미소를 보내고 있다.
비경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한 계곡을 벗어나 이제는 가파를 언덕길을 따라 바람 한점 느껴지지 않는 날씨 탓에 머리 위에서 물을 붓듯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수건으로 훔쳐대며 오르는 길옆으로 정말 가슴 아픈 과거의 상처들을 아직까지 치유하지 않은 자연의 아픔이 가슴을 저며 온다.
자연은 인간에게 아낌없이 베풀지만 그 고마움을 남용한 흔적들 그 무지함에 마음이 아픈 것이다.
계곡 그 아름다움에 취하고 연녹의 산하에 취해 급한 경사길의 어려움도 그저 행복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어느덧 능선에 도착한다.
뒤따라 올라오신 박선배님과 창순씨의 이마에서도 비 오듯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당사자야 힘들겠지만 바라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으로 건강미가 돋보이는 신선함이 풍겨온다.
등로를 가로 막고 있는 부러진 나무들을 살펴보니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나무에 상처를 낸 부분에서 부러져 있는 것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슬픔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드디어 가메봉 정상에 섰다
오늘따라 정상에 섰건만 시원한 바람은 느껴지지 않고 이미 시간이 늦은터라 몹시 배가 고파 비좁은 정산 바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무겁게 지고 온 음식들을 꺼내 놓고 행복한 정상연을 연다.
그간 생각해 보면 선두팀들은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함인지 준비한 음식들이 풍성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근자에 들어서는 그 양상이 사뭇 변하여 주섬주섬 꺼내 놓은 음식들이 후미팀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더 화려하다고 할 정도로 풍성하기가 이를데 없다.
더욱이 비가 올것이라는 예보를 무시하고 무더운 날씨를 예상 했음인지 막걸리는 슬러시 막걸리 맥주는 아이스 픽쳐, 산사춘도 그 시원함이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것처럼 병에 이슬이 맺혀있다.
그러지 않아도 무더운 날씨 탓에 비 오듯 땀을 흘린 후라 버석버석 얼음과 함께 넘어가는 막걸리가 온 몸 신경의 끝까지 짜릿하게 전해오며 필설로 형언하기 힘든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제는 하산길이다.
능선 길 위에 피어 있는 진달래가 이제는 이파리의 초록색과 어우러져 그 신선하고도 화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실록의 멋으로 치장한 산하를 굽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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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녹의 순수함과 긴 겨울을 이겨낸 소나무의 짙은 색상이 어우러진 모습은 자연만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다.
얼마간을 그렇게 연하디 연한 색상으로 곱게 화장을 한 산길을 따라 내려오다 또 다시 계곡을 만난다.
물을 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때 이른 더위에 지친 산꾼 들에게는 감로수와 다름이 없음이라 자연이 발길이 물로 향하는 것을 거부하기는 힘드리라
열심히 내려가는 산우님들을 불러 세우고 바라보니 산인지 사람인지 그저 그렇게 하나 되어 있는 모습이 오늘 따라 왜 이리 좋아 보이는지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린다.
정에서 동으로 사에서 생으로 모든 것이 역동적인 계절 봄, 이렇게 삶의 한 페이지를 오늘도 기쁘고 즐거운 기억으로 채워본다.
누가 벚꽃을 피기는 힘들어도 지기는 쉽다고 했던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맑디맑은 계곡물에 그 기억들을 흩뿌리고 있는 자리에서 이제는 그들의 짧은 영화를 배웅하기위해 잠시 눈길을 던져본다.
어느 화가가 이토록 아름다운 장면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넉 놓고 바라볼 뿐 할말을 잊음은 당연함이 아닐까
하필 자리를 잘못 잡아 계곡에 살게된 나무도 비록 흐르는 물에 그 위치를 잃고 옆으로 쓰러져 있지만 새롭게 탄생되는 생명의 그 숭고함에 역행 할 수가 없어 맑다 못해 푸르게 보이는 물결에 제모습 비추며 새로움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이 어렵다 힘들다 허탈해 하는 인간들의 그 안일함에 한마디 교훈들 던지는 듯 그렇게 보인다.
계곡에서 물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산우님들을 뒤로 하고 빠른 속도로 내려와 앞서 출발한 정빈씨를 만나고 나자 이제부터는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깊은 협곡을 만나게 된다.
산을 찾아 그 기운을 받음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할 일인데 이토록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니 그 한없이 베푸는 자연의 넉넉함과 은혜로움에 마음은 감사함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제부터는 계곡이 있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단되어 자연은 있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그 순수한 정통성을 지켜가는 모습이 참으로 좋아보인다.
계곡물 그 푸르디 푸른 속에는 하늘이 들어 있고 늙은 노송의 지조가 들어 있고 그를 사랑하는 우리내 마음이 들어있다.
계곡을 따라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수달래 수단화를 만난다.
오랜 세월을 두고 냇가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붉은 수단화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잃지 않은 채 슬픈 사연을 안고 다소곳이 꽃을 피우고 있다.
수단화(壽斷花) 또는 수달래라고 하는 이 꽃은 다른 지방에서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꽃으로 여기 주왕산 계곡 에서만 피는 데 꽃빛깔은 진달래와 비슷하나 약간 더 붉은 편이며 생김새는 철쭉(연달래)과 비슷하고 그 키나 나무의 생김새도 철쭉이나 진달래와 닮은 데가 많다.
5월초에 계곡을 따라 수단화가 피면 꽃이 냇물에 비춰 붉은 물이 흐르는 듯해서 볼만 하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수단화에는 남모르는 서러움이 숨어 있으니 주왕이 이곳에서 신라군사와 싸우다 힘 이 다해 마장군 형제의 화살에 맞아 잡히자 그의 피가 주왕굴에서 냇물에 섞여 계곡을 따라 피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은 주왕의 피가 꽃이 되어 핀 것이라 해서 수단화(壽斷花)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그 뒤 해를 거듭할수록 냇가의 수단화는 더욱 퍼져 주왕산을 아름답게 장식해 왔으며 특히 5월이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 우아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비록 가까이 다가가 그 모습을 볼수는 없었지만 카메라의 줌 기능 덕택에 이 만큼 가까워질 수 있음에 만족해야 할 듯 하다.
오를때의 절골 산행로와는 다르게 이곳 대전사 방향은 도로가 말끔하게 정비되어 통행의 편의성은 좋지만 그래도 자연의 멋을 훼손한 아픔이 있다.
드디어 오늘의 산행의 종착지 대전사에 도착한다.
천년이 넘은 고찰 대전사는 주왕의 아들 이름이 ‘대전’이라 하였는데서 유래되었다 하고 주왕산 전설과 함께 재미있는 설화를 전해주고 있는데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주왕산 국립공원 입구에 위치한 대전사의 경내에는 지금도 우물을 메운 흔적이 있고 이 우물에 얽힌 얘기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어느 스님이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를 매일 냇가에서 길어다가 올리곤 했는데 하루도 쉬지 않고 물을 떠다 공양을 올리니 귀찮기 그지없어 스님들이 의논을 한 결과 앞뜰에 우물을 파서 그 물을 길어 청수로 사용했다.
얼마 후 이 절에 불이 나서 절이 모두 불타버렸는데 그 뒤 성지도사가 와서 지세를 보고 하는 말이 대전사는 터가 부선형(浮船形) 즉 배가 바다에 떠서 항해하는 혈(穴)이라 여기에 우물을 파니 배바닥에 구멍이 뚫은 격이 돼 불이 나서 절이 타게 되었다면서 우물을 메우게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대전사의 오른쪽 밭 가운데 우물을 메운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말로 뭐라 하는지 몰라 그냥 쓰던 대로 겹사구라 라고 불리는 화사한 색상을 자랑하는 꽃이 만개한 대전사는 부처님 오신 날을 준비하기위해 마당 가득 연등을 매달아 놓아 잔치집의 흥겨움이 가득하다
주차장까지 내려와 2팀의 선두인 홈지기님과 최고문님을 만났다.
홈지기님의 복장이 더위 때문인지 꼭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상인을 연상케 한다
주차장옆 식당에서 실시된 하산주 시간에는 대추가 동동 떠 있는 막걸리가 우리 경인 산님들의 갈증을 말끔이 해소해 주고 계곡과 함께 한 오늘 주왕산 산행의 그 행복한 마침표를 찍는다.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다 우연하게 올려다본 하늘은 모든 생명을 창조하고 가꾸어가는 그 신비로운 힘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구름과 함께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경이롭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