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華山)은 왜 중국 陝西省에 머물었는가.
이 강 녕
평화산악회 고문
1. 출발부터 겪는 어려움
불타는 태양 머리에 이고
오늘도 나는 모악산을 오른다.
어제 밟던 발자국을
오늘도 어김없이 밟고 간다.
땀은 발끝까지 흐르고
온몸은 그 물로 적시지만
얼마쯤 올라가면
만날 것 같은 님이 있어
나는 이렇게 오늘도 오른다.
가냘픈 바람에도 흔들리는
마지막 촛불의 꽃이
이내 누웠다가 일어선다.
가까이 보이는 나의 종점에
또 하나의 의지가 보인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그리고 세월이 가고
그런 속에서 사람도 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어기려는 이 어리석음
그러나 나는 이 어리석음을
또 어리석게 어기면서
오늘도 모악산에 오른다.
저 가까이, 정말 저 가까이
나의 종점이 있는데 말이다
( 08. 7. 29. 習作 終點에서).
이 졸작 詩는 중국 섬서성의 화산 등산을 준비중에 쓴 것이다. 나는 이런 시를 쓰기 오래 전부터 체력이 조금씩 쇠퇴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모악산을 중인리에서 시작하여 비단길, 정상, 헬기장, 금선암, 중인리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지금도 2시간 40분 코스로 알고 다닐 정도니까 화산이 어렵다 하여 다소 걱정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낙담하고 그냥 쳐다보고 있을 정도의 나는 아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이번 우리 평화산악회 일행 23명과 함께 중국 섬서성의 태백산 그리고 그 암산으로 유명한 화산 등정에 나선다.
그 시작부터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원래 예정은 일찍 인천 공항을 출발하여 이 행사를 모두 마치고 3박 4일정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러던 것이 항공편의 차질로 서울에서 밤 21시30분에 출발하여 늦게 야 함양공항에 도착하고 입국수속이니, 가이드와의 미팅이니 하고 숙소로 이동하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외국산행이라는 극적 환경 때문에 잠을 설친 판인데 이런 과정이 이어지니 육체적 고통은 말 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등산을 마치고 입국하는 날도 그곳 밤 0시 50분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4시 40분 도착하도록 되어 있으니 3박 5일이라는 불균형의 일정이 얼마나 사람을 피로하게 하는지는 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일이다. 이런 과정이 그렇게 힘들었다.
두 번째의 어려움은 태백산을 등정하는 날의 예상치 못한 일의 발생이었다. 평소에는 태백산 중간쯤에 있는 상반사-사실은 절이랄 것도 없는 조그만 바위에 上叛寺라고 새겨졌을 뿐 절 같은 모습은 볼 수 없었고 그저 돌을 둘러쌓아 놓은 조그만 공간에 어린 아기 같은 작은 불상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를 시작하여 고산 봉경원, 팔경대, 천원지방까지 등산하도록 되어있었던 것이 이번 베이징 올림픽으로 외국인의 입산이 갑자기 거부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는 그 위에 있는 군사시설의 비밀 유지를 위함이라고 하지만 자국인들 에게는 허락하고 외국인에게는 허락지 않은 중국당국의 좁은 소견에 여기서 다시 한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될 일은 빨리 미련을 버리는 게 상책이다. 우리는 그 길로 3시간 정도를 달려 다시 서안으로 돌아 와야 했다. 말이 세시간이지 우리나라로 치 면 전주에서 서울보다 더 멀다. 우리는 아쉬움을 털어 버리고 이제 화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2. 화산은 왜 어디를 가다가 이곳에서 멎었는가.
대개 중국에서의 산행은 우리나라에서 산행과 같은 곳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산이 엄청나게 큰데다가 그 모습이 대개 기암절벽이고 그리고 하루에 완전 답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어서 중국의 천자산, 황산 등 유명한 산들은 모두 소형차나 케이블카로 그 아름다움이 절정인 곳까지 이동해서 거기서부터 실질적인 산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야 하루에 그 산의 대강이라도 섭렵하고 오지, 그렇지 않고 아래서부터 차례차례 샅샅이 산행하려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중국산의 특징 중 다른 또 하나는 웬만한 어려운 코스는 인공적으로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자연 보호를 명분으로 있는 길 외에는 등산편의를 위해서 따로 길을 만들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구별된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도 귀담아 들을 점은 있다. 그냥 길을 만들지 않는 것을 능사로 삼지 않고 길을 잘 닦아 놓고 다른 곳으로는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연보호의 길이라는 것이 그 들의 주장이다. 설사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록하는 것도 그렇게 다 접근 성을 높인 다음의 일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고 안 되고는 다음다음의 일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우리도 한번쯤 고려 해 볼 만 하다.
하여튼 우리 일행은 다음날 아침 7시 30분쯤 호텔을 출발하여 거의 3시간이 가까워서야 화산 시설지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중형버스에 갈아타고 좁은 산길을 다시 달린다.
화강암으로 형성된 산들이 그냥 독불장군처럼 지상에서 하늘로 그대로 이어진다. 이렇게 지상에서 정상이 보일 정도로 직벽으로 이루어 진 곳은 빙하시대 이루어졌다는 뉴질랜드 남 섬 ‘빌포어 사운드’하구에서 보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여인처럼 그 어렵게 바위 위에 점점이 죽을 듯 살 듯 살고 있는 나뭇가지로 그저 귀중 부위를 감춘 채 속살을 들어내듯 하늘을 향해 기둥처럼 서있다. 그 바위산들의 옆구리를 이리 저리 그 계곡을 따라 버스가 달리는 것이다. 버스는 거대한 S자를 그리면서 힘들게 올라간다. 섬서 지방은 연간 강우량이 500mm내외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계곡에 흐르는 물은 찾아 봐야 조금 보일 뿐이고 그대로 건 천이다. 우리나라의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이나 지리산 추성동 계곡을 생각한다면 그야 말로 계곡의 가치로서는 천양지차다. 이 아슬아슬한 계곡 길을 묘기를 하듯이 달리는 버스들이 정말 신기 하기만 하다.
한참을 달려 상당히 넓은 시설지구 광장에 도착하니 이제는 케이블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여섯 명씩 1조가 되어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얼마를 오르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서 여기서부터 트레킹이 시작되는 것이다. 시각은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점심은 화산을 4시간 이상 결려 돌아 와서 이곳 북봉의 한 현지 식당에서 하도록 예약되어 있었다. 핫브레이크나 연양갱같은 부패에 강한 간식과 물을 지참한 상태라 허기를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어렵다, 어렵다 고 이야기하는 가이드의 이야기는 그냥 겁주는 이야기로만 들렸는데 여기서부터 오르기 시작하면서 둘레를 살펴보니 공포감이 휩싸여 온다.
3. 화산 그것은 계단의 전시장이었다.
필자도 이날로 4401회 째의 산행을 하는 사람이다. 힘들고 어려운 계단도 무수히 경험했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은 이 고통을 참고 얼마를 오르면 조금은 편한 길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철저히, 정말 철저히 이런 희망을 무참히 짓밟은 산이 바로 이 화산이다.
6세기경 단테가 쓴 신곡의 지옥 편을 보면 지옥문에 이렇게 쓴 현판이 있다고 했다. ‘이제 그대의 모든 희망을 버리라!’ 고 말이다. 잘 하면 다시 살아서 천당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정다운 사람을 한번쯤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나마 한번쯤 실컷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그대의 모든 희망을 버리라!’ 는 이 말이 신곡의 지옥 편에 없더라도 이 말은 절망적인 말이다. 이 화산에서도 편한 한 길이 있을 것이라는 조그만 한 희망을 차라리 일찍 버려 버렸더라면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기에 비는 촉촉이 내리고있었다.
북봉(1615m)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은 험난한 계단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돌계단은 그저 바위를 깎아 만든 것이지 돌을 가져다 구조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다. 이 경사진 바위를 정으로 깎아 계단을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면 이 과정이 상상이나 되는 일인가. 그 계단 양쪽에는 간혹 세워진 시멘트 기둥이나 바위를 뚫고 박은 철 구조물에 두꺼운 철 사슬이 이어져 있다. 이 철 사슬의 굵기가 어린아이 손가락 크기에 버금가니 이 무게만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처음에는 이 사슬을 잡아보면서 ‘멍청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개미같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이어 올라오니 안전을 위해 이렇게 라도 만들어 놓아야 했을 것으로 이해 된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다. 이런 돌계단의 경사가 4,50도는 보통이고 때로는 7,80도가 넘는 곳도 있으니 만일의 경우 이것이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이슬처럼 내리는 비는 아랑 곳 하지 않은 채 그저 앞만 보고 올라간다. 단 한번도 그리고 단 한치도 발에서 시선을 뗄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우리를 이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전망이라도 할 수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도교의 도량(道場)이 있고 그 곳에서 나마 전망을 할 수 있었다.
도라 다 보면 장관이다. 이슬처럼 내리는 비 탓인가. 아까 처럼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내리 하얀 비단으로 얼굴과 젖무덤만을 들어내듯 구름에 가리운 그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수백 길 낭떨어지에 죽지 못해 살고 있는 듯한 소나무의 모습들이 빨려 들어 갈 듯한 통로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4. 하늘이 만들어 놓은 산의 꽃이 피다.
앞에서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도교의 도량들이 전망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이어져 있었다. 무슨 음악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국식음악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곳에서 피우는 향들은 왜 또 그렇게나 굵은지.......... 쉬지 않고 이런 향들이 타고 있는데 이런 곳에서 어떤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곳까지 생필품은 누가 운반해 주는지......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런걸 생각하며 있을만한 한가한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서둘러 옥녀봉(玉女峰=중봉 2042m)에 오른다. 그곳에는 조양봉(朝陽峰=동봉 2100m))으로 가는 길과 정상인 낙안봉(落雁峰=남봉 2160m) 오르는 길의 갈림길이다. 우리는 일단 조금은 지금까지 와 의 다른 길은 평안한 길을 따라 동봉인 조양봉으로 향한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남봉으로 가고 싶었지만 가이드의 말을 빌리면 이곳에서 보는 암능의 경치가 일품이라지 않는가. 우리는 거기서 왼쪽으로 한참을 가노라니 드디어 조양봉에 이른다.
아! 하늘은 어찌하여 이곳에 조양봉을 두었는가. 조양봉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것은 천당과 지옥의 차이가 아닌가. 한도 끝도 없이 깎아 내린 저 밑에 작은 섬 모습들이 구름에 쌓인 채 아련히 보이고 우리가 서있는 이곳은 발이 절여 올 정도로 아슬아슬 하다. 이제 빗줄기는 조금씩 더 굵어지고 서둘러 넘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우리를 재촉한다. 우리는 서둘러 돌아와 이산의 정상인 낙안봉을 향해 오른다. 북봉에서 옥녀봉에 이르는 길보다는 조금은 나았지만 이 길도 만만치 않다. 우리는 사력을 다해 이 길을 오른다. 얼마나 힘주어 올랐을까. 또 하나의 상당히 큰 도교의 도량이 보이고 짙은 향내와 이해하기 힘든 음악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온다. 우리는 이 도량의 내부를 거쳐 건물을 왼쪽으로 끼고 오르니 이게 바로 화산의 정상인 낙안봉이다.
아! 우리는 드디어 중국의 명산 화산에 올랐구나!
온 누리는 구름에 쌓여 보일 듯 말 듯 조그만, 그러나 거대한 몸짓을 숨긴 채 천국을 만들고 있다.
원래 이 산은 지금의 화산(華山)이 아닌 화산(花山)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중화사상(中華思想)의 영향으로 지금의 화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렇다! 하늘에서 내려다 볼 때 꽃잎처럼 비슷한 높이로 사방으로 갈라 퍼진 모습이어서 花山이라 이름하여 내려 왔는데 이를 다시 華山으로 바뀌었다니 역시 중국다운 이야기다. 우리 같으면 그대로 花山으로 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늘 하늘에서 내려다 본 바위산의 꽃으로 두었을 것이다.
花山이어! 華山이여! 이름이야 어떠면 어떠랴! 그대여! 영원 하라! 끝.
(원고량:5794자. 3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