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부터 언더그라운드 락의 다크호스로 주목받아 오다가 91년의 시애틀 그런지 대폭발에 힘입어 확고한 인지도를 확보, 안정권에 들어선 사운드가든이 94년에 발표한 네 번째 앨범. 비틀즈에서 메탈리카, 이기 팝에서 핑크 플로이드, 블랙 새버스까지를 한데 아우르면서도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않는, 사이키델릭하면서도 때로는 직선적이고 알 수 없는 내면과 극한의 광기를 동시에 내포한, 가장 독특하면서도 독보적인 사운드를 펼쳐내는 이들의 모든 것이 여기에 담겨 있다. 최고의 히트곡이라 할 만한 'Black hole sun', 전매특허 리프와 구성을 보여주는 'My wave'와 'Spoonman', 사색적인 'Fell on black days'등이 대외적으로 앨범을 대표하는 싱글이라면 광활한 공간을 질주하는 느낌의 타이틀 트랙이나 새로운 느낌의 사이키델리아를 형성하는 'Head down', 한없이 침잠하는 '4th of july' 등은 숨은 보석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마감하는 마지막 곡 'Like suicide'는 개인적으로 꼽는 사운드가든 최고의 곡. (윤병주/노이즈가든)
19. Blur - Parklife (1994)
모든 것이 신선했다. 사운드, 가사, 태도... 새로운 트렌드가 현재 진행형으로 다가올 때의 그 느낌은 흡사 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현기증과 비슷한 강도였다. 영국의 침공. 이제는 블러 본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단어가 되고 만 '브릿팝'이지만 당시에는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꽤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될 정도로 우리나라 팝 팬들에게는 생소한 스타일이었다. 마치 너바나의 앨범이 국내에서 처음 발매되었을 때 그들의 음악이 헤비메틀의 한 분파라고 잘못 인식됐었던 사건처럼. 하지만 당시의 블러 음악을 어느 한가지 장르 속으로만 구겨 넣기에는 좀 무리가 따르는게 사실이다. 모드의 토양 위에서 자라나 펑크의 매너를 가지고 뉴웨이브의 관점으로 접근했다고나 할까? 거기다가 스트링 편곡과 브라스 섹션, 집시풍 연주까지 끼어 들었다면, 과연 어떤 단어로 이 모든 요소를 대변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지 씬에서 너바나의 [Nevermind]가 갖는 의미를 브릿팝 씬에서는 바로 블러의 [Parklife]에게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윤준호)
18. Prodigy - The Fat of The Land (1997)
90년대가 열리자마자 영국의 보수세력은 성난 세대 이후 가장 반항적인 집단에 의해 위협받고 있었다. 전혀 정치적이지 않고, 또한 전혀 사회적이지 않은 이런 반항은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레이브'였다. 그들의 반항은 낯선 방식이었다. 원활한 통행에 지장을 주는 기습적인 도로 점령과 이동 PA기구를 사용한 안면 방해, 그리고 자신을 제외한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탈진할 때까지의 댄스'였을 뿐이다. 무정부주의적인 반항보다 더욱 황당무계한 탈정부주의. 정치적으로 역이용할 방법이 없는, 완전한 '비정치적인' 방법의 반항. 아니, 반항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이 활동에 대해 영국 정부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가를 놓고 4년여를 소비했고, 결국 '레이브 금지 법안'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미 '불시에 거리를 점령하는' 방식의 레이브파티는 자정현상을 일으켜 '제대로 된 행사'로 자리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규제하려는 의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해버린 이 '레이브'라는 골칫거리는 모든 대중과 공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비탈은 그런 정부를 조롱했고, 레프트필드는 이미 모든 레이버들을 좌측으로 초대했다. 어떤 문화담론자들은 경악하고, 어떤 문화세력은 열광했다. 그리고 그 레이브의 불길은 결국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옮겨간다. 펜타토닉 스케일의 기타리스트들과 바이브레이션 깊은 보컬리스트들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미국인들도 디제이와 댄서, 그리고 한 명의 엠씨만으로 이루어진 이 밴드 아닌 밴드를 거부할 수 없었고 앨범차트의 1위 자리를 내주고 만다. 바로 이 앨범에게. (조원희)
17. R.E.M - Automatic For The People (1992)
'최고의 지성을 지닌 밴드', '주류에서 비켜 있으면서도 가장 주류였던 밴드' 심지어는 '미국 최고의 밴드'로 추앙(?)되는 R.E.M의 중심은 마이클 스타이프다. 그의 가사와 독특한 음색(보노, 리엄 갤러거, 그리고 강산에(!)까지 극찬을 보낸)은 밴드의 색깔을 규정지었다. 그러나 그의 스타덤에도 불구하고 R.E.M의 앨범들은 자니 마와 비견되는 피터 벅의 기타, 튀지 않으나 수준급의 그루브를 보장하는 마이크 밀스의 베이스, 그리고 탈퇴한 빌 베리의 드럼이 조합된 '밴드'로서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평론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이들이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음반은 [Automatic for the people]이다. 데뷔 앨범 [Murmur]와 함께 R.E.M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이 앨범은 91년 [Nevermind]로부터 촉발된 그런지에 대한 또 다른 '얼터너티브(대안)'로서 평가받았다. 'The sidewinder sleep tonite'에서의 상큼한 팝 멜로디는 거친 절규로 일관하던 당대의 분위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으나 대 밴드로서의 역량을 한껏 과시하였다. 90년대 초를 단지 얼터너티브의 시대로 국한되지 않게 한 '거장의 수작'이다. (황정)
16. Smashing Pumpkins -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1995)
'난 내 동세대에게 방어벽이 될 만한 길을 갈 것이다' 이 더블 앨범을 낸 후 호박 대왕 빌리 코건이 한 말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The world is vampire'라는데. 더구나 'I'm still just a rat in a cage'라는데. 한 물 간 유행이고, 심약한 빌리 코건의 신경질을 복돋울 말이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비교해보자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신경질이 나다 못해 무심해져버린 것이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이고, 자기 신경질에 지쳐서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의 상태가 빌리 코건의 목소리이지 않을까. 그래서 커트 코베인이 죽은 후 말만들기 좋아하는 동네에서 '차세대의 목소리'로 빌리 코건을 지목한 것은 일면 타당하다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같은 얼터너티브로 묶어버리기엔 스매슁 펌킨스의 음악과 너바나의 음악 사이가 타일랜드(샴인의 꿈 말이다)와 피안의 세계(니르바나 말이다)만큼 멀더라도 말이다. 이도저도 떠나서, 그러지 하지 않은 얼터너티브 'Zero', 'Bullet with butterfl wings', '1979', 'X.Y.U'가 수록된 이 앨범은 우리에게 멜랑꼴리와 무한한 슬픔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장대한 서사와 귀여운 피아노 소품 위를 날아다니는 퍼지 기타와 싸늘한 목소리,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 앨범을 만드는 심정으로 만들었다는 겁나는 호박 라인업에 축복을. (김용란)
15. Oasis -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1995)
왜 [Definitely Maybe]가 아니라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인가? 음악적인 면에서라면 대중의 찬사와 평론가들의 갈채 속에서 그 오만한 야심을 당당히 드러냈던 데뷔작 [Definitely Maybe]가 한 수 위라는 사실을 대부분 선선히 인정하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리고 의외로 간단하다. 이 앨범은 90년대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린 팍스-아메리카나의 보수적 시장 통제 그물을 뚫고 생존한 거의 유일한 '영국적' 사운드의 소구점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급속도로 성장한 브릿팝의 인기와 저변으로 젊은 피를 수혈받은 영국의 음악계는 예전의 활력을 되찾았지만, 세계 최대의 팝 시장이며 부와 명성의 메카인 미국 시장 진입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블러와 스웨이드마저도 그 이름에 값하는 성적을 올리는데 실패한 상태에서, '미국 딜레마'의 사막에서 영국음악의 자존심을 구제한 오아시스가 바로 이 앨범인 것이다. 이 앨범은 비틀즈라는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극명한 한계 속에서도 결코 자기중심을 잃지 않은 배짱에 의해 구축된 성과이다. 결국 오아시스는 이 앨범을 통해, 비록 혁신자는 아닐지언정, 훌륭한 어레인저로서의 놀라운 재능이 얼마나 인상적일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얼터너티브 프레스의 평가처럼 '이것은 비즈니스이다. 실재인 것'이다. (박은석)
14. Green Day - Dookie (1994)
90년대에 있어 펑크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모두 다 잘나가는 세상 모습을 보며 유독 뒤쳐져 있는 자신의 비참한 현실이, 삶의 목표와 의욕을 찾을 수 없는 빈둥대는 하루가, 그것도 아니면 너무나 빨리 바뀌어 가는 유행 속에 따라갈 수 없는 불안한 패배자의 자신이 불만인 90년대 미국 화이트 트래쉬들. 이들에게 펑크는 달콤한 마약임과 동시에 최고의 대안이었다. 이념과 경제난이 사라진 영미권의 부유한 90년대 백인 청년들에게 스스로의 성찰을 되묻는 그런지(Grunge)나 가방끈 긴 컬리지 록의 박식함은 스스로의 삶의 무게를 가중시키는 고달픈 고문이었을 게다. 모 펑크 그룹의 노래대로 'Happy, happy, joy, joy'의 생활관은 멜로디 코어/펑크(혹은 팝 코어, 네오 펑크)의 이념인 것이고, 시대적 열망에 부합하며 등장한 그린 데이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움켜진 데뷔였던 셈.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린 데이의 성공은 너무나 정책적이고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들을 한다. 그린 데이의 메이저 데뷔 앨범 [Dookie]는, 두리뭉실하고 어설픈 메시지 주장이 아닌, 자신의 경험담을 쉽게 얘기하는 것이 가장 친숙한 음악이라는 또다른 교훈을 남기기도 했다. 공전의 히트곡 'Basket case', 'Longview', 'When I come around'는 억지 픽션이 아닌 모두가 경험할 만한 욕구 불만과 생활 속의 유모어가 숨쉬고 있다. 그린 데이의 [Dookie]는 하나의 트렌드를 만든 역할로(펑크를 들으며 보드를 타고 햄버거를 먹는), LA 메틀로 대변되는 서부 록 씬에 커다란 주류를 선도했다는 점으로도 90년대를 대표하는 분명한 상징물이다. (이종현)
13. Red Hot Chili Peppers - Blood Sugar Sex Magik (1991)
이보다 자유로운 밴드는 없다! 훌렁훌렁 대중 앞에서 옷을 벗고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발언들이나 게다가 약물 중독자의 오명을 가진 밴드. 하지만 오해하지 말라! 매운 고추 아저씨들이라는 장난스러운 닉네임에... 최소한 이들의 음악은 랩과 록을 접목시킨 잡종 스타일의 밴드 중 최고의 평가를 받는 밴드이다. 그리고 본 앨범은 90년대 훵키-얼터너티브라는 음악을 창조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최고의 음반이다. 이 음반에 부여된 최고의 지위는 다름 아닌 통통튀는 훵키의 리듬감과 팽팽한 에너지 때문이다. 오리지날 기타리스트 하일렐 슬로백(Hillel Slovak)의 약물과다 복용 사망의 충격으로 만들어진 [Mother's milk]앨범이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조명 받게 했다면, 본 앨범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게 슈퍼밴드의 명성을 안겨주었다. 특히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의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의 탁월한 감각으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어떤 스타일에도 구여 받지 않으며 각자의 재치를 본 앨범에 쏟아 붓게 되었고,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17트랙을 선보였다. 하지만 국내에 발매된 앨범에는 단지 9곡만이 수록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류형근)
12. The Chemical Brothers - Dig Your Own Hole (1997)
프로디지가 록적인 어프로치에 충실했던(펑크 마인드를 가진) 테크노 해결사로, 언더월드가 트랜스 효과를 가장 잘 이용한(약물의 환각성을 극대화한) 테크노 사절단으로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면 케미컬 브러더스는 테크노의 댄스적인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 테크노 클럽 씬의 영웅이라 할 만하다. 그러기에 케미컬 브러더스의 등장은 가능성만 10년이던 영국 테크노 씬의 하나의 광명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이들의 데뷔작인 [Exit planet dust]가 발표됐을 때만 하더라도 영국에서 테크노 씬의 존재는 댄스의 하위 장르에 불과하던 것이 사실. 하지만, 케미컬 브러더스는 [Dig your own hole]을 통해 매니아들에게만 통용되던 무한 반복과 기계적 최면을 대중에게도 전량 공급했다. 이들이 들고 나온 무기는 다름 아닌 빅 비트(Big beat). 힙 합의 묵직한 비트에 드럼 앤 베이스의 날렵함을 곁들이고, 브레이크 비트(Break beat)의 적절한 활용과 재치있는 샘플링의 혼합으로 만들어진 빅 비트는 이제 90년대 중후반을 관통하는 테크노의 결정판이 되었고, 테크노 입문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매개체로 유효하다. 지금도 빅 비트의 교과서로 끝없이 회자되는 'Setting sun', 'Block rockin' beat' 등 수많은 히트 싱글이 담겨 있는 작품. (이종현)
11. DJ Shadow - Entroducing... (1996)
90년대 팝계를 강타한 유행 가운데 가요계에서도 널리 통용되고 있는 단어가 바로 '샘플링'이다. 물론 그 대중적 보급 차원에서의 결정적 공로는 퍼프 대디에게 돌려야 하겠지만 스튜디오에서 혹은 플로어 현장에서 얼굴 없이 작업하던 수많은 디제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었을 것임은 당연하다. 그 디제이들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디제이 섀도우이다. 그의 비닐레코드를 고집하는 작업 방식은 혹 미련하다거나 그게 뭐 대수냐는 평가를 받을지 모르지만 이미 만들어져 있던 소스를 재활용해서 전혀 새로운 작품을 재창조해 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며, 그 재료를 구하는 범위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폭넓고 넉넉하다. 어차피 90년대의 새로운 트렌드라는 것들이 기존의 장르들을 어떤 순서로 뒤섞는냐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러한 디제이 섀도우의 작업방식은 지극히 90년대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작곡의 개념 자체를 뒤집고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교과서와 같은 앨범이다. (윤준호)
10. My Bloody Valentine - Loveless (1991)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보여준 결과물은 현대 클래식 음악을 능가하는 완성도를 갖췄고, 또한 '주류 노이즈'에 대한 자양분을 제공하였다. 노이즈의 미학을 추구한 이들은, '슈게이징의 대표주자'라는 칭호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운드가 가진 마이너(혹은 프로그레시브)한 성향으로 폭 넓은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실험은 협력자들(스테레오 포닉스, 토터즈, E.A.R, 스테레오랩)을 비롯한 이 시대의 뮤지션들에 큰 영향을 주었고 다음 세기에 가장 근접한 사운드로 평가받았다. [Loveless]는 이들의 실험이 가장 잘 응축된 작업이다. 앨범 자체의 실험성과 완성도는 평론가와 동료들에게 엄청난 찬사를 받을 만큼 뛰어났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대중음악의 진보'에 대해 던져 놓은 화두였다. '록이 진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 음반은 섣불리 록의 죽음을 예언했던 이들을 당혹케 하는 대안이었다. [Loveless]는 90년대 최고의 반향을 이끌어 낸 음반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음악에 제시한 미래, 그리고 훌륭한 밑거름이 될 실험결과들로 인해 이 음반은 '최고'를 넘어선 가치를 지니고 있다. (황정)
9. U2 - Achtung Baby (1991)
1991년, U2가 꽤 오랜 공백 끝에 발표한 음반 [Achtung Baby]. 당시 이 음반을 잽싸게 집어 들고 음반을 듣기 시작한 사람들 반응 대부분은 '아니, 이럴 수가'였다. 1980년대, 그러니까 뻔드르르한 주류 팝 음악의 공세 앞에서 '록은 죽었다'는 탄식이 흘러나오던 시절, U2가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로 '양심적 록'의 대명사였던 점을 대비해 보면 더군다나. 비록 'One'과 'So cruel'처럼 기성 팬들에게 안도감을 던져 주는 U2식 '발라드'가 끼어있기는 했지만, [Achtung Baby]의 초점은 그와는 반대이다. 이 음반은 열정과 정돈보다는 냉소와 혼돈, 진실한 감성의 전달보다는 뒤틀린 감성의 방출을 담고 있다. 'Zoo station'의 잔뜩 찌그러진 기타와 보컬, 'Ever better than the real thing'의 댄스 리듬이 잘 보여주듯이, 이 음반은 '포스트모던'한 이미지와 전자적인 사운드의 도입이 두드러진다. 뮤직 비디오와 라이브 공연에서도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위악적이고 섹슈얼하고 혼돈스런 이미지가 적극 사용되었다. 회고해 보면 [Achtung Baby]는 [Zooropa]와 [Pop]으로 이어지는 U2의 일련의 음악적 탐험을 예비하는 신호탄이었다. 그런데 이 음반에서 U2의 음악적 변신은 무죄같지만, [Pop]에서의 변신은 유죄처럼 보인다. 왜일까? (신현준)
8. Portishead - Dummy (1994)
베스 기븐스(Beth Gibbons)와 제프 배로우(Geoff Barrow) 듀오가 출현하기 이전에도 트립합이라는 음악의 형태는 분명 있었다. 이들의 동향인 매시브 어택까지 갈 필요도 없이, 포티셰드의 데뷔 앨범 [Dummy]가 발매되기 불과 몇 달 전에 에브리씽 벗 더 걸도 매우 트립합적인 앨범을 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90년대를 지나오면서 테크노를 대표하는 -같은 의미로 세기말을 대표하는- 트립합에서 포티셰드를 중요하게 언급하는 것은 이들이 이 장르를 대중화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국 브리스톨 지역에서 촉발된 힙합과 테크노의 고급 변종 트립합은 미국으로 진출했고 급기야 한국 땅까지 상륙하는 비행을 마쳤다. 칼로 자기 살을 베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진정한 우울증'의 상태에서는 노래를 만들기는 커녕 소주를 들이키기도 싫으련만, 이들의 음악에선 '진정한 우울증'이 느껴진다. 그 우울증은 유리질 공간 안에서 숨도 못 쉬고 있는 듯한 이들 특유의 비디오 클립을 보고 나면 청자에게도 그대로 전염되고 만다. 이런 가성이 어떻게 대중화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포티셰드의 사운드는 현대인들이 말하는 소위 '군중 속의 고독'이란 것에 적절히 매치된다. '소외'와 '우울'이라는 감성을 자기만의 '특별함'으로 간직하고자 하는 지극한 평범함. 이건 어디까지나 듣는 사람에 관한 얘기이고 베스 기븐스의 우울함은 그 수준을 넘어선 듯. (김용란)
7. Metallica - Metallica (1991)
80년대의 메탈리카가 왜 하필이면 스래쉬의 '제왕'이라는, 또는 스래쉬의 '4대 천황'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단지 메탈리카의 음악을 그저 단순하게 '스래쉬메틀'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을까? 그렇다면 당신이 지금 메탈리카에게 퍼부어 대는 비난이 너무 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들이 말랑말랑한 발라드를 부르든, 아니면 3분 짜리 싱글로 가득찬 앨범을 만들어 라디오 전파를 타며 'nothing else matter'를 속삭여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을.... 믿는 도끼에 찍힌 발등이라면 병원에서 치료하고, 다른 도끼를 믿는 수밖에 없는 일이고, 이미 다른 도끼를 믿고 있다면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이 앨범은 90년대에 발표된 그 어떤 앨범보다 뛰어나고, 밴드가 발표한 앨범들이 그렇듯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어낸 앨범이다. 굳이 그 어떤 미사여구로 이 앨범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10년만에 발표한 셀프타이틀에는 그들의 자존심이 한껏 배어 있다. 한구석에 처박힌 이 앨범을 다시 들어 보라. 그래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클리프 버튼을 다시 불러오는 수밖에. (한경석)
6. Pearl Jam - Ten (1991)
'하고 싶은 음악을 완전히 펼쳐 보이지 못했다'는 본인들의 푸념에도 불구하고 평단과 팬들 모두가 펄잼의 최고걸작으로 꼽는 이들의 데뷔 앨범이다. 첫 앨범을 내는 신인에 대한 레이블의 압력이 오히려 명반을 만들어 내는 요인으로 작용했음일까. 이 앨범은, 이후 비상업 노선을 추구하며 발표했던 차작들에 보여지는 노골적인 순수주의에 비해 듣기 좋은 팝적 요소가 적당히 가미되어 단번에 90년대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아 버렸다. 당시 '그런지'라 분류되었던 수많은 밴드 가운데 가장 귀에 익은 클래식 락 풍의 스탠더드한 스타일도, 이들이 미국을 대표하는 락 밴드로 부상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보컬리스트인 에디 베더를 빼놓고는 펄잼을 논하기 힘들 정도로 그의 카리스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으로, 90년대 얼터너티브 아이콘으로서의 캐릭터는 이미 이 첫 앨범에서부터 완성되어 있다. 발표된 지 어느덧 10년이 되어 가는 이 앨범의 대부분의 트랙들은 이미 락 클래식이 되었다. 얼터너티브의 송가로 불리웠던 'Alive'를 비롯하여 'Even flow', 'Jeremy', 'Black' 등이 수록되어 있는 이 앨범은 천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윤병주/노이즈가든)
5. Radiohead - OK Computer (1997)
'Creep'이란 노래로 'Loser'를 부른 벡과 더불어 90년대 열패자의 정서를 가감없이 보여줬던 래디오헤드. 자칫하면 그런지 펑크를 연주하는 그렇고 그런 영국 녀석들로 치부될 뻔했던 래디오헤드는 95년 [The Bends]앨범을 통해 블러, 오아시스와 궤를 달리 하는 브리튼으로 인식되었고 97년의 바로 이 앨범에 와서는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밴드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장르들 간의 경계를 허무는 90년대적 특성을 고스란히 지닌 이 앨범에서 발견되는 창백하고/나른하고/소리 한 번 안 지르고/애절하고/아름답고/음울하고/냉소적인 톰 요크의 목소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할 만큼의 동시대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래디오헤드의 팬들 중에는 변형된 3개의 코드만으로 구성된 곡이 많은 [The Bends]를 보다 선호하는 사람이 많으리라. 확실히 [The Bends] 앨범에 비해 [OK Computer]는 더 서사적이고, 더 복잡하며, 그 복잡함 사이가 텅 비어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좋았어,컴퓨터 를 듣고 다시 한 번 굴곡들을 들어보면 무언가 넘치고 어지러운 기운을 느낄 것이다. 이 두 앨범을 동시에 들으면 묘한 긴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것은 래디오헤드의 눈에 비친 사회만큼이나 낯설다. 2000년대의 앨범이 기대되는 패배주의자들. (김용란)
4. Nine Inch Nails - The Downward Spiral (1994)
데뷔 앨범으로 트렌트 레즈너는 네일 둠의 교주가 되었고 그에 대한 경전은 5년만에 쓰여졌다. 풀렝스(Full-Length)앨범으로는 두 번째인 본 작은 트렌트 레즈너의 개성이 가장 잘 서사되고 있는 작품이다. 사회와 인간의 탐욕에 대한 적나라한 냉소 'Piggy'로 대표되는 이 앨범의 정서는 치유할 수 엇는 원죄에 대해 '반항이 아닌 투항'을 권유하고 있다. 일정한 단락이 없이 이어지는 개개의 곡들은 전체로 합쳐 일정한 컨셉을 이루고 있고, 그 내면은 조소와 자기모멸로 가득 찬 괴로운 인간(예수를 믿는 트렌트 레즈너는 이 앨범에서 자신을 그와 동일시하고, 끝내 그 역겨운 얼굴에 방아쇠를 당긴다)의 자해와 끝없는 자살충동으로 이어진다. (뮤직비디오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문과 폭력의 이미지는 타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을 향한 것이다.) 이 앨범의 끝없이 자신을 학대하며 동조자를 만들어 간 트렌트 레즈너의 시선이 직접화법의 언어와 뒤틀린 사운드의 조합에 투영되었으며 또한 넘치는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대책 없는 우울과 출구 없는 억압을 보여주었다. 가장 심한 우울을 가장 강한 에너지로 토해낸 이 작업은 20세기의 가장 우울한 자화상이다. (황정)
3. Beck - Odelay (1996)
허허 웃긴 놈! 세상에 별 인간이 다 있네! 벡은 이런 의미에서 허잡한 잡종인간으로 인식된다. 그의 인간성이 꾸리꾸리한 인간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음악이 그렇다는 거다. 싱어송라이터에 키보드, 드럼, 기타 모두를 연주하는 뮤지션! 말 그대로 욕심 많은 작자임에 틀림없다. 어디 이 뿐인가! 힙합, 포크, 팝송, 록&롤 안해본 게 없으니 이 얼마나 실험정신 투철한 인간인가! 차라리 잡식성 동물이라 부르고 싶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저 아저씨는 매일 매일 새로운 퓨전 음식을 요리해 먹고는 흐뭇한 표정을 짓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그 식탁에서 그는 웃음을 만들어 낼 것이다. 아주 황당하지만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하면 황당한 얘기들로... 분명 그의 친구들은 그를 왕따시키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될 것이다. 따를 당한 것은 벡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저 얼띤 놈에게 멋있게 한방 먹었다고... 혹은 나름대로 똑똑한 내가 왜! 왜! 라고 외칠 것이고, 그 다음엔 그의 집요함과 주위에 모여선 인파들에 고개를 떨구며 '나도 어느덧 벡의 추종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이 잡탕 인간이 바로 20세기 최후의 팝 아티스트로 불리는 벡이다. 그리고 벡에게 세상 사람 모두를 굴복하게 한 앨범이 바로 [Odelay]이다. 물론 94년 앨범 [Mellow Gold]의 'Loser'를 통해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당시 벡은 우연히 히트곡 하나 만든 어정쩡한 지위의 뮤지션이었고 보면 [Odelay]는 실질적으로 벡을 성공시키고, 그 가치만큼의 가치를 인정받게 한 앨범이었다. 그 명백한 증거는 이 앨범이 공개되었을 때 스핀, 롤링스톤즈를 위시한 많은 보수파 매체들의 자세돌변이다. 뒤에서 낄낄에서 치소한 '오셨어요!'로 그 멘트는 바뀌어 있었고 아티스트 대접을 받게 되었다. 자수를 짜듯 벡은 교묘하리만큼 철저하게 음악을 짜 맞추고 배치를 하였다. 그 배치의 영특한 믹스쳐는 벡을 96년 그래미 어워드에 세웠고 [Odelay]를 그해 최고의 앨범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제 더 이상 벡이 흑인이었다면 하는 가상 시나리오는 그만 만들자! 이 글을 읽으며.... (류형근)
2. Rage Against The Machine - Rage Against The Machine (1992)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의 이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이 나왔던 1992년에는 이미 힙합과 락/메틀이라는 장르의 결합은 더 이상 신선한 이슈가 아니었고 이 밴드가 표방하고 있던 좌익의 이미지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그런 신선하지만은 않은 요소가 집약된 이 앨범은 당시 락 씬에 일대 풍파를 몰고왔고,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은 앨범 한 장으로 일약 9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 가운데 하나로까지 추대되었다. 까다로운 평론가들과 대중을 단숨에 자기 편으로 만들어 버린 그들의 매력은 탄탄한 리듬과 혁신적이고도 도발적인 기타가 만들어 내는 완성도 높은 크로스오버, 그리고 보컬리스트 잭 데라로차의 카리스마로 요약될 수 있다. 한마디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은 그간 단발성 시도에 그쳐 왔던 힙합과 하드락의 크로스오버를 전업으로 하는 최초의 밴드였고, 사람들은 이처럼 신나는 하드코어 락큰롤의 그루브에 실린 정치적 메시지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Bombtrack'과 'Killing in the name'으로 시작하여 'Freedom'까지 이어지는 이 앨범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윤병주/노이즈가든)
1. Nirvana - Nevermind (1991)
긴 머리를 휘날리던 80년대 후반의 거대한 공룡 밴드들의 히트곡 퍼레이드는 여전히 계속되는 가운데, 싹수부터 달랐던 90년대 청년들은 새로운 틀을 요구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청년들은 잦은 가정 파탄과 가속화된 계층 분화 속에서 패배주의적 회의적 증후군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젊은이들은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사운드를 절실히 필요로 했고, 1991년 발매된 [Nevermind]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99년의 리스트 1위의 자리가 그것을 확인시켜준다. [Nevermind]에는 90년대의 미국 젋은이들의 의식구조가 투영되어 있다. 멤버 모두가 결손 가정에서 성장한 것에서 드러나듯, 너바나의 음악적 기저에는 그러한 개인적 고통과 번민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 음악속의 기성 세대에 대한 반발, 주류에 대한 조소 등은 그것이 투영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Nevermind]의 혁신성은 그 사운드적인 면에서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현대적인 것들, 메카니즘에 대한 반발의 표현은 정된되지 않은 불협화음과 여과되지 않은 노이즈를 그 방식으로 했다. 너바나는 펑크를 계승했지만 펑크식 3코드를 넘어서는 독특한 코드 진행을 창조했으며 또 분노와 충동을 여과없이 폭발시키는 커트의 목소리 , 공격적이며 리얼했던 밴드의 태도는 분명히 그들의 음악을 기존의 것과 구분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애틀 밴드들에게 돌아오는 시선 집중, 그런지의 확산, 결국 주류에 반하던 너바나의 거칠고 냉소적인, 블랙 조크 같던 음악은 당대 메인스트림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 예상치 못했던 거대한 성공의 결과로 커트 코베인은 그가 원했뜬 원치 않았든 '한 세대의 목소리'가 되었다. 비록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왜 또 너바나인가!'라고 짜증 섞인 의문을 던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90년대 록을 이야기하면서 너바나를 논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90년대 록의 역사는 바로 너바나로부터 시작됐고, 그영향은 실로 막대한 것익었기 때문이다. 리스트 전체로 볼 때 이제 그의 영향권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긴 하지만. [Nevermind]가 91년도에 나온 이상 이 앨범의 1위 고수는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이 결과는 기획 단계부터 '감 잡았던' 것이고, 리스트의 청탁을 받았던 모든 분들이 예상했던 결과일 것이다. 또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섭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혹시라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예상대로 본 앨범은 여전히 리스트 1위에 머무르고 있다. 이 앨범에 대한 지겨움을 얘기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재미없는 게임인가. 1위를 정해놓고 하는 게임이라니. 하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음을 내심 감지하고 있다. 단지 이제 궁금한 것은 언제쯤 이 1위 자리가 바뀔 것인가 라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그 일을 이루어낼지. 이 앨범이 1992년 당시 최고의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평정하고 있던 1위 자리를 탈환했듯이. 그리고 너바나의 폐위식이 거행되는 그때 이들은 '시대의 목소리'에서 '지나간-그러나 위대했던-역사'로 남을 것이다. (한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