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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역사
초기 기독교 시대 ∼ 중세의 찬송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교회 음악은 출애굽기 15장에 나타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부른 노래로 보아야 할 것이다.
타종교들에서는 신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이러한 신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조각이나 회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금하셨기 때문에 기독교 미술은 발전의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음악에 있어서는 어떤 종교보다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데 성경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무수히 강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구약 시대의 제사 의식에서부터 오늘날의 예배에 이르기까지 음악은 기독교의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일찍부터 성가대가 조직되었으며, 유대인들의 성전에는 음악을 전담하는 자들이 생기게 되었다.
성경에서 최초의 조직적 성가대의 등장은 대상23:5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좀더 잘 훈련되고 익숙한 음악가들에
대해서는 대상25:7이하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저희와 모든 형제 곧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 팔십 팔인이라.' 이들은 24반차로 나누어 성전에서 봉사하도록 다윗에 의해서 임명되었다.
이들이 예배에서 담당한 일들이 대하5:12~14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들의 찬양으로
하나님께서 흡족하게 영광을 받으시고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하고 그 구름으로 인해서 제사장들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할 만큼 되었다고 한다. 이들을 성가대의 효시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성가대는 레위 지파 중 30세 이상의 남자로 구성되었는데(대상23:3) 이러한 전통에 따라 사제 그룹에 속하는 남자들만으로 성가대를 구성하였던 때도 있었으나, 종교 개혁 이후에 다시 회중들이 성가대를 맡게 되었다.
기독교 시대의 음악적 흐름을 살펴보면, 구약의 순수한 히브리음악의 시대와 박해를 당하면서도 전례음악을
전승해가면서 이방의 문화적 영향으로 변모해가는 초기 기독교의 시기, 그리고 기독교의 공인된 확고한 위상으로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발전해져가는 융합된 문화권에서의 교회음악의 형태로 선명하게 구분이 가능하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해당되는 ‘박해의 시대’에는 성도들이 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찬송을 불렀으며 (행 16 : 25∼26), 그 때문에 그들의 신앙생활과 찬송은 은밀하고도 결사적인 모습이었다.
음악의 형태는 전례되던 기악과 함께 한 찬양이 성전에서도 없어지고 회당의 순수한 무반주 찬양으로 바뀌었고,
기악의 사용은 2세기에 이르러 조심스럽게 하프와 비파만이 허용되었다.
음악의 느낌은 당시의 음란한 이교도의 천박한 노래와 달리 영혼을 감동시키는 순수함과 자연스럽고도 깊은 신앙의 흐름이 표현되었다.
초기의 2백년 동안은 기독교 음악이 체계가 잡히지 않았으며, 3세기에 이르러 많은 이교도들이 개종해서
합류하게 되므로 이교도의 나쁜 영향이 미치지 못하도록 기독교 음악을 잘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히브리의 음악은 신자의 정신 속에서 종교적 실천과 연결된 데 반해 헬라와 로마의 음악은 세속적 영향을
방어하는 양상이었다.
A.D. 313년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는 공인을 받아 박해에서 벗어나고, 380년에 로마의 국교로 인정된 이후에는 기독교가 특권세력으로 바뀌면서 교회당이 세워지며 음악적 체계와 수준도 높아갔다.
기독교 당국은 이단적 찬송을 막기 위해 악기의 사용과 창작을 규제했고 시편과 찬송가만 부르게 했다.
회중들은 예배에서 찬송이 금지되고 훈련된 성가대가 찬양하였지만 교회 밖에서는 회중들의 창작 찬송이 불려졌다.
식스투스 교황 시대에는 성가연습을 위해 수도단이 설립되었고, 대 교황 레오(440∼461)는 성가 학교(스콜라 칸토룸)가 부설된 성 요한과 성 바울의 수도원을 개설하였다. 교회음악의 본격적인 발전을 맞게된 이 때에는 교회음악이
일반 회중으로부터 전문인에게로 옮겨진 시대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교회음악의 찬송과 성가의 종류는 암브로시우스 성가와 그레고리안 성가이며, 군소적으로는 갤리칸 성가와 모자라비크 성가도 있다.
※ 암브로시우스 성가 (Ambrosian Chant)
밀라노의 대주교 암브로시우스(340∼397)는 '라틴찬송의 아버지'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는 정통신앙을 고수하기 위해서 삼위일체의 교리적 찬송을 부르게 하였다. 그의 찬송은 당시의 민요와 같이
한 음에 한 음절씩을 사용한 형식으로써 종교적 민요라고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암브로시우스 찬송의 특징은 언어의 액센트 취급에 있다. 고대의 시는 구어체의 액센트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암브로시우스는 시적인 운율에 어울리는 액센트를 사용했다.
그의 운율의 특징은 오늘날 찬송의 기본 형태중 하나인 ‘장운율’(8.8.8.8)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장운율은 각 적이 4행으로 되어있고 짧고 긴 모음이 교대로 나타나는 운율 형태이다. 암브로시우스는 서방교회에
처음으로 교송법을 도입하여 교회음악에 혁신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당시의 다른 찬송작가들이 암브로시우스 찬송을 모방했는데, 암브로시우스 찬송은 이렇게 모방된 찬송까지 통칭하는 것이며, 이후 독일 개신교의 회중찬송인 코랄의 모델이 되었다.
암브로시우스의 업적은 교회음악의 체계를 갖추기 위한 초석을 쌓은 것이다. 암브로시우스 찬송은 몬테카지노에서
교황 스테판 4세(1057∼1058)가 그레고리안 성가의 공식적인 사용을 위해서 암브로시우스 성가를 버릴 때까지 사용되었다.
※그레고리안 성가 (Gregorian Chant)
그레고리안 성가는 무반주의 단선율 음악이고, 전적으로 전음계를 사용한 라틴어 가사의 산문적 리듬을 따른
낭송풍의 노래이다. 선율의 특징은 강조하기 위한 도약이나 리듬적 요소가 없이 단순히 반복되는 조용한 선율을
가지고 여러 성서적 요소를 일련의 지적 문절속에다가 결합시키는 인상이다.
그것은 잔잔한 음성처럼 은은하면서도 호소력이 있으며, 색채와 갈등으로 표시되는 세곡음악과는 달리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로마법왕 Gregory 2세(540-640)에 의해 제정된 로마 카톨릭의 통일된 예배 의식음악은 서양 예술음악의 모태가
된 곡들이다. 이 곡들은 원래 예배중 신과의 대화를 위한 곡이다.
따라서 인간들의 음악적 흥미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화음과 반주가 없는 단선율, 인간의 흥분을 억제하기 위하여
음정의 도약과 리듬의 발전이 없다. 학문적인 음악사에서는 이 이전에 있던 고대의 음악들은 민속음악 또는
종족 음악으로 다루어지며 세계 음악사에 있어서 예술 음악이 이 Gregorian Chant로부터 서술된다.
그레고리우스는 로마의 성가학교 교육을 강화시켰고, 그레고리안 성가는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
교회음악의 모범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레고리안 성가는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여러가지로 변형되어
사용되었다. 세속적인 곡조가 예전에 끼어들고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의 가사가 사용되는 등의 현상 때문에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개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승인된 단성성가(plainsong)들이 수록된 공인된 책들이 출판되었다.
13∼14세기에서 둘 이상의 다른 멜로디가 결합된 대위법적 다성음악(polyphony)이 출현하게 되면서
로마 카톨릭의 정화운동과 옛 단선율 노래로 복귀하려는 시도가 심한 장애를 받게 되었고 결국에는 차츰 멀어지게
되었다. 19∼20세기에는 성당이나 수도원에 리이드 오르간이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자 그레고리안 성가의 순수한 무반주 영창의 모습은 사라지게 되고 오르간 반주에 의존하게 되었다.
중세음악 4세기~15세기
중세는 강력한 기독교 문화 밑에 있었던 봉건시대였다. 따라서 예배에 있어서 음악을 중요시하던 이 시기는
음악이 발달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추게 된 시대였다. 카톨릭은 그 예배의식을 음악을 통하여 이루어나갔다.
자연히 카톨릭 음악은 사회에 큰 기능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인류음악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는 차후 서양 음악의 모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장조(Major)와 단조(Minor)를 이루는
음계가 아니라 교회선법(Church Mode)이라는 특수한 음계를 가지고 있었다. 악기는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무반주의 노래가 통상적이었다.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갖가지 모양의 조각으로 장식된 성당, 하늘까지 닿을 듯 높이 솟은 첨탑 그리고
그 속에서 경건한 목소리로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는 성가대가 이 시대를 대변한다. 기독교가 중세인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나 실제적으로 이교도를 개종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완벽한 기독교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 시기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교시절과 완벽한 단절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더구나 예배음악과 같이 당장에 실용적인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중세인들은
과거의 유산에서 많은 것을 빌려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변화가 있었다면 다소 복잡한 양식이 단순화되었다는 것에
불과했다. 이것은 개종자들을 이교시절로부터 단절시키고 인간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복잡한 음악의 세속성을
거부하는 기독교의 정신주의적 세계관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르네상스음악 15세기~16세기
르네상스는 15-16세기 (약 1430-1600)에 영국을 포함한 온 유럽대륙에 퍼졌던 문예부흥운동이다.
'르네상스'의 뜻은 '재생'으로서 즉 그 전시대인 중세기 (Middle Ages)동안 이루어졌던 새로운 문화를 모두
거부하고 고대의 문화를 동경하여 그 여러 특징들을 본을 삼아 받아들인 시대였다.
르네상스는 우선적으로 고대의 철학적, 예술적인 가치관을 부흥시키려고 한 운동이고 더 나아가 르네상스는 개인이나 사회가 가지는 새로운 신념과 행동들을 새로운 발견과 빠른 변화 속에서 고대의 "황금시대와 비슷하다."고 말하여
개혁의 정당성을 나타내기 위한 운동이라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사상과 예술적 영감의 격렬한 움직임을 목격한 결과 그들 자신의 시대를 부흥 또는 재생과 부활의 시기라고 생각하고 사상, 미, 상상, 발견 실험 같은
세계에 인간이 눈을 뜬 시기로 파악했던 것이다.
이러한 지적 재생은 인간 존재의 모든 현상, 즉 미술, 음악, 정치, 종교, 문학, 자연과학, 지리상의 탐험 등에 나타났다. 르네상스 정신은 그 발상의 고장 피렌체에서 북쪽으로 퍼져, 유럽의 각 중심지로 조금씩 침투해갔다. 그리하여
이 운동은 각지에서 이 시기를 전후하여 꽃피게 되지만, 예술적 성과는 각지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는 조형예술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플랑드르 제국은 합창음악과 회화에 뛰어났으며,
영국은 연극과 기악에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레고리안 성가(Gregorian Chant)가 단성(單聲) 음악인데 비해 이 시대는 다성(多聲)음악(Polyphonic),
즉 각 파트가 독자적 성격을 가지고 동시에 움직이는 대위법이 발전하였다.
아직까지도 무반주 성악음악이 음악계를 주도하였으며 악기의 수준은 미흡하여 성악 파트를 따라가는 정도였다.
초기 르네상스 음악에 있어서 가장 큰 발전은 모두 교회음악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14세기(중세말)의 음악은 주로 교회용이라기 보다 세속적인 예술이 되어갔으나 15세기에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따라서 제일 중요하게 여긴 음악 형식도 교회음악인 모테트와 미사이다. 13세기에 발생한 모테트는 차츰 미사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15세기에 들어와서는 미사의 통상문 (미사의 순서 가운데 내용이 항상 변함없고 같은
순서를 말함)이 다성 작곡법으로 통일성 있는 곡들이 종합된 하나의 작품으로 되면서 모테트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특징적인 종교음악 스타일로 발전되었다.
그래서 14세기까지 음악의 주된 멜로디를 테너파트가 담당하였으나 15세기 중순에는 음악의 윗파트 (당시에는 'cantus'나 'discantus'나 'superius'라고 했고 현재는 'soprano'라고 함)가 주 멜로디를 담당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4성부의 음악이 되었다. 한편 후반에 이르러 세속음악 쪽이 발전하면서 음악은 교회를 벗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악기도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음악의 양상은 아직도 수직적인 화성 체계보다는 선율과 선율이 얽히는 대위법 양상에 의존하였다.
※ 모테트(motet)
중세에 많이 사용되었던 합창곡으로 성경에서 가사를 취하며 13세기 초 노트르담 악파에 의해 정형화되어 17세기 이전까지 주로 무반주로 연주하였다. 뒤파이 등의 부르고뉴 악파에 의해서 중세 모테트의 2대 특징인 정선율의 지배와 다가사성이 사라지고 4성부가 표준화되고 각 성부가 공통의 가사를 사용하게 되었다. 바로크 시대에는 독창이나 통주저음에 의한 기악반주의 도입으로 독창 모테트와 몬테베르디에 의한 협주양식의 모테트가 확립된 것이 특징이다.
※ 코랄
코랄은 4성부로 쓰여져서 초기에는 테너에 있는 선율(멜로디)을 회중들이 유니슨으로 제창하고 3성부는 소년들이
주축된 성가대가 화음으로 함께 불렀다. 이렇게 노래하는 습관은 조금은 부적절한 언어구조를 가지고도 세계 제일의 노래 잘하는 국민정서를 일궈내게 되었다.
초기 코랄 작가들은 새롭게 가사와 곡조를 창작하기도 했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예전인 그레고리안 성가의 선율과, 종교개혁 이전의 비예전적 찬송, 세속민요 등에서 자료를 가져다 만들기도 하였다. 구조적 특징은 A-A-B 형식의 소절형식(Barform)인데 이것은 15∼16세기의 시인과 작곡가들이 정기적으로 시와 음악의 기예를 닦던 마이스터징어(meistersinger)의 음악적 전통에서 온 것이며, 당시의 모든 계층이 애창하는 소박하고 유머러스하며 민요조의 무반주 단선율 노래였다.
음악적 특징은 리듬의 생동력을 들 수 있으며, 신앙의 찬송은 악구가 짧은 음표로 시작되고, 명상이나 기도의 찬송은 긴 음표로 시작되는 특징이 있었다. 개혁 당시의 코랄은 순박하고 힘찼으며, 잘 알려진 옛 선율만을 사용하였다. 음악적으로는 단순하지만 그 선율에는 독일 민족의 신앙과 고뇌 그리고 환희와 평화가 포함되어 있으며, 코랄 칸타타, 코랄 모테트의 합창곡과 코랄 전주곡, 코랄 변주곡의 오르간곡 그리고 수난곡,칸타타,오라토리오 같은 종교적 예술작품 등의 많은 예술음악의 원천이 되었다.
루터는 그 당시의 가장 진보적인 음악이론에까지 손을 대어 8개의 교회선법을 12개로 확대하여 오늘날의 장조와
단조의 조성을 낳게 하는 길을 열었으며, 그의 음악적인 공헌은 코랄 제작에 있어서 오늘날의 C장조인 이오니아 선법을 독창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루터의 회중 찬송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중 찬송의 발달은
그 속도가 빠르지 못하었고 16세기 말경에 가서야 회중찬송이 예배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 르네상스 음악의 특징
1) 성악적 폴리포니 (vocal polyphony)
2) 협화음 (consonance)을 즐겨 쓴 것
르네상스 전 시대에 불협화음이 널리 이용된 것과 달리 협화음을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또한 불협화음을 연구하고 음악구성에도 새로운 방법을 이용하여 듣기 좋은 음악이 되도록 하였다
3) 합창음악의 정립
전 시대에는 '합창음악'이라고 해도 한 성부를 한 사람이 담당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중창음악인 셈이었다.
거기에다가 될 수 있는 한 각 성부마다 다른 모습의 음악을 사용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각 성부가 관계 있게
통일성 있는 음악이 되도록 노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합창음악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4) 모방대위법 (imitative counterpoint)
모방대위법은 르네상스의 가장 찬란한 업적 중 하나이다. 이는 음악에 있어 모든 성부가 같은 중요성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으로 데모그라틱 (democratic)원리에 의한 것 이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음악을 마디를 구분하여 작곡하게 되었다(bar by bar).
5) 작품-가사(text)의 중요성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들은 작곡할 때 말(가사)에 새로운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각 단어를 이루는 몇 가지의
어절을 음악과 맞추어야 하는 낡은 개념이 아니라, 각 단어의 악센트와 운율을 고려하여 작곡하게 되었다. 이것을
'올바른 악센트 -just accent' 라고 한다. 말에 의한 감각, 말이 일으키는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 시대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르네상스 성가곡들
주님을 찬양 나의 영혼/시 100편/찬송합니다 주 예수여(하인리히 쉬츠)/거룩하신 주님(윌리엄 버드)
※ 종교개혁과 교회음악
르네상스 시대에 함께 일어난 매우 중요한 운동으로 종교개혁의 발단은 표면적으로는 성서적이지 못한 엉터리
교리의 산물인 면죄부의 발행이었지만, 이미 신앙의 정서적 환경은 대중찬송에 비신앙인의 작품이 다량 유입되고,
종교적인 노래와 세속적인 노래의 범주가 없이 혼합되는 문란함과, 종교적 선전과 이상한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노래들의 그 왜곡된 오염이 심각해서 개혁의 필요를 더욱 느끼게 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의 개혁이 교리적인
개혁만 되었으면 절반의 성공만 될 수도 있었지만, 마틴 루터는 교회음악적인 환경과 예배의식을 모두 개혁함으로써 완전한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종교개혁에 있어서 아마도 제일 중요한 대표자들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칼빈(Johann Calvin, 1509-1564)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와 넉스(John Knox, 1510-1572)일 것이다.
이들은 교회 예배의식과 그 의미, 그리고 예배 속에서 음악의 위치에 의한 판단과 이념이 서로 많이 달랐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루터이다. 따라서 루터교회의 예배의식에 음악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루터는 음악 애호가였고 교육을 잘 받은 성악가(테너)였으며 여러 악기를 연주했고
작곡도 하였다.
그는 프랑스-플란더즈적인 다성적 성악 음악 양식을 몹시 좋아하였는데, 특히 죠스캥(Josquin des Prez, ?1440-?1521)의 음악을 즐겼다. 그는 교회에 있어서 라틴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교육적인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해서
카톨릭 미사의 여러 순서를 유지하면서 온 회중이 함께 노래하기 위해 찬송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코랄을 많이 위탁하였으며 자기 자신도 여러 장을 작사, 작곡함으로써 지금까지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회중 찬송을 부르는 전통을 바로 세운 업적까지 있다.
종교개혁은 유럽역사에 크나큰 변혁을 일으켰고 동시에 세속음악과 교회음악 모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는 동서로 갈라졌지만 서방 교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로 통일되어 용어도 라틴어 하나를 사용하게 되었고,
예배의 양식이나 교회음악과 성가 한곡까지도 교황의 허가 없이는 가감이 허락되지 않았다.
종교개혁시대의 교회음악적 특징은 중세시대에 교회음악의 참여에서 제외되었던 회중들이 개혁주의 교회에서의 '만인 제사장직'의 주장으로 모든 예배음악에 참여해서 대중적인 노래가 예배에 도입되었으며, 자기나라 말과 언어로
직접 찬양할 수 있는 회중찬양의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시대는 카톨릭의 획일적인 노선에서 벗어나서 각 국가별로 자신들의 민족정서와 시대적 환경에 맞는 찬송이 발전하게 되었으며, 개인적 신앙의 자유는 종교적인 예술음악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바로크음악 17-18세기
예술사에서 흔히 바로크 시대로 구분되는 16세기 말엽부터 18세기 중엽은 중앙집권적인 통일국가와 근대과학,
근대 철학의 성립으로 특징 지어지는 근대사회 성립의 초기단계였다. 음악에 있어서의 근대적인 사고방식도 바로
이 시기에 생성되었는데, 특히 17세기는 음악에 새로운 구성 형식과 표현법 그리고 새로운 미학적 사고방식이 발달된 시기로 특징 지어진다. 바로크 예술의 특징은 흔히 르네상스 예술과의 비교를 통하여 확실하게 드러난다.
바로크는 궁정과 귀족 들의 웅장한 건축양식에서 시작된 것으로서 음악에 있어서는 질서의식과 함께 모든 요소를 종합해서 대형화시킨 바로크양식이 꽃을 피우게 된다. 바로크 음악의 특징인 통주저음의 사용이며, 개성화된 것보다는 객체화된 인간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간략하게 특징적으로 르네상스 예술은 線的이고 평면적이며, 폐쇄적이고 명확한 것에 비해, 바로크 예술은 회화적이며 입체적이고, 개방적이고 통일적이라는 것이다. 음악에서는 이 중에서 특히 회화적인 요소와 통일적인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성격이 다른 두 개 이상의 선율을 동시에 진행시키거나 먼저 나온 선율을 뒤에서 모방하는 등의 대위법적인 양식(Contrapunctal style = Polyphonic style), 그 중에서도 푸가(Fugue)가 발전한 시대이다.
따라서 음악은 마치 모직물을 짜듯이 얽힌 탄탄한 복잡한 구조물을 가지고 있으나 엄격한 규칙하에 선율중심이면서도 화성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악기가 크게 발달하여 독자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동안 느린 성악곡은 이제 빠르고 기교적인 기악곡, 특히 목관악기들의 흉내를 내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한 기사의 음절에 많은 음들을 달고 빠르게 움직이는 Melisma적 선율이 많이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작곡가는 Handel과 Bach를 들 수 있다.
개혁으로 인한 신,구교의 갈등과 반목에 급기야 전쟁에까지 치른 후에 서로 독자적인 변화와 성장을 추구하는
바로크 중기에는 정신사와 생활 전반을 규제하던 교회의 긴장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가
발산되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대단한 발전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예술양식인 오페라의 창작은 17세기 음악의 가장 위대한 공헌이지만 여러 막으로 구성된 것은 10세기의
교회극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새로운 이 형식은 음악적인 낭송을 통한 자연스러운 표현을 하려는 새로운 시도의
결과로 얻어진 17세기 바로크의 특징이며, 정열적이고 현란하며 즐겁고 화려하고 웅장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오페라 작곡가들은 가사를 음악으로 표현하는데 극적인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악기들이 개발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실내 기악음악, 독주악기 등이 발전했고 이런 모든 것이 교회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바로크 교회음악은 기보법의 발전과 악기의 발달에 힘입어 기악음악이 많이 사용되었다.
바로크시대의 직업적인 음악가들은 자신의 능력과 박식함을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형식으로 대단한 양의 작품들을
쏟아내었는데 세속 칸타타와 오라토리오 등이 나타났고, 오르간과 오르간 음악이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교회음악가들도 이런 흐름에 그들의 창작의욕을 예배와 직접 관련된 순수 교회음악에서 다 표현할 수 없으므로
종교적 성향의 수준 높은 연주회 성격의 예술 음악을 창작하게 되어 칸타타, 오라토리오, 수난곡 등이 탄생되었다.
※ 칸타타(cantata)
칸타타는 종교적 설화에 근거를 두고 관현악을 수반하는 아리아, 레시타티브, 이중창, 합창을 서정적이고 극적인
몇 개의 악장으로 구성한 17세기에 시작된 혼성곡이다. 어원은 이탈리아어의 cantare(노래부르다)이며,
기악곡 형식의 소나타에 대하는 말이 된다.
가사의 내용에 따라 실내 칸타타(cantata da camera)와 교회 칸타타(cantata da chiesa)로 나뉜다. 칸타타라는 말은 원래 실내 칸타타에 적합한 것이었지만 18세기 초부터 독일 개신교의 독창요 칸타타를 시초로 전용하게 되었다.
교회 칸타타는 그 가사의 소재에 따라 코랄 칸타타, 시편 칸타타, 격언 칸타타, 복음서 칸타타 등으로 나뉘지만,
전반적으로는 코랄의 멜로디로 사용되었다. 바흐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실내 칸타타는 격렬하고 긴장된 표현이 특색이었으며 오페라의 前身이었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베버, 브람스, 생상스, 댕디, 설리번, 본 윌리암스 등이 작곡되었지만, 칸타타는 차츰 오라토리오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 오라토리오(oratorio)
성경을 소재로 한 대규모의 서사곡이다. 독창, 중창, 합창이 두루 사용되며 오페라처럼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나
매우 극적인 음악이다. 오라토리오는 오케스트라나 오르간 반주에 의한 코랄과 독창을 포함한 연주용의 종교적인
극시이며, 종교적 오라토리오는 17세기 초에 로마에서 생겨났다.
그것은 성서에 바탕을 둔 전레적 모테트에서 발원하였고, 기독교의 전례 음악극을 대체하여 나타난 것이다. 음악적으로는 칸타타의 발전에 대한 해결과 바로크 음악가들의 폭넓은 창의력의 수단으로써 애용되었다.
칸타타보다는 더 큰 규모이며, 칸타타에 없는 劇적인 활동이 큰 규모의 칸타타와도 구별된다. 오라토리오의 발전에는 교회 칸타타 작곡에 헌신한 카릿시미(1605∼1674)의 공헌이 크다.
그는 구약성서의 인물을 소재로 많은 오라토리오를 썼으며, 라틴어 오라토리오를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고전적
오라토리오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극적인 줄거리에 생생한 현실감을 주는 단순한 호모포니 합창이 중심으로 되어있다.
라틴 오라토리오에는 교회의 사역자들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일이 많았다.
카릿시미의 제자인 스카를라티(1660∼1725)도 500여 편의 교회용 칸타타를 작곡했으며, 오페라의 작곡에 뛰어났고 오라토리오의 발전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의 발전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오라토리오와 오페라의 발전은 이탈리아에서 16세기
교회음악의 깊은 종교적 정신을 사라지게 하였고, 카발리에리(1550?∼1602) 이후 로시니에 이르기까지 주로 즐기려는 것이 되었다.
독일에서 오라토리오가 점점 발전하게 되자 전례성가 대신 코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칸타타와 오라토리오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바흐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하여 그의 2대 걸작 수난 오라토리오(마태, 요한)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인 오르간 음악을 남기게 하였다. 17세기 이후 많이 작곡되었는데, 대표적인 곡으로는 헨델(G.F.Handel)의 ‘메시아’와 하이든(J.Haydn)의 ‘천지 창조’를 들 수 있다.
※ 수난곡 (passion)
4개의 복음서를 텍스트로 하여 예수님의 수난을 음악으로 묘사한 것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오라토리오와 비슷하나 내용에 있어서 오직 그리스도의 수난을 제재로 사용한다는 것이
오라토리오와 다르다. 수난곡은 전례적인 것과 비전례적인 것이 있는데 전례적인 것은 초대 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그것은 성서의 수난 장면을 낭독하는 것으로써 그레고리안 성가풍으로 각자의 맡은 역할들을 서로 다른 음역이나 속도로 부르던 것이 수난곡의 기원이 되었다.
복음사가를 부르는 방식에 따라 낭창으로 응창적 수난곡과 다성부로 부르는 통작적(通作的) 수난곡으로 분류한다.
비전례적인 수난곡은 응창적이고 통작적인 방식과 다르게 통주저음의 반주에 의한 단선율의 독창(모노디)인
레시타티브가 사용된 오라토리오 수난곡을 말한다.
17세기 중엽부터 나타난 비전례적인 수난곡은 수난 이야기를 여러가지로 편집하기도 하고, 성가집에서 가사를
따오기도 했으며, 묵상적인 종교시를 많이 도입하여서 수난 칸타타와 수난 오라토리오가 출현하게 된다.
수난 칸타타는 교회 칸타타와 같이 성서 낭독이나 설교에 이어 연주되었으며, 수난 오라토리오는 노이마이스터의
칸타타 전용으로 작사된 대사에 의해서 태어났다.
바흐의 2대 걸작 <요한 수난곡>과 <마태 수난곡>은 성서적 성격이 강하면서 서정적이고 극적인 요소로 가득 찬 수난 오라토리오이다.
※ 바로크 성가곡들
인류의 기쁨 되시는 예수/눈물로 주를 지키고/주여 안식 주옵소서/축복, 영광, 지혜/눈물로 주를 지키고/오라, 달콤한 주검이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바흐)
죽임 당하신 어린양/감사드리세 하나님께/깨끗게 하시리/오 기쁜 소식을/주의 영광/주께 영광/할렐루야/우리를 위해 나셨다/찬양하오리/그 멍에는 쉽고/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주가 채찍 맞으므로/그의 생명 구하리/양과 같이 헤매이며/찬양하라 영원하신 주/감사하여라/진실로 주는 우리 괴롬 맡으셨네(헨델)
주의 성령(비발디)
고전음악 18세기 후반
'고전'이라는 용어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변천하는 역사 속에서 불변하는 지속적 가치를
지닌 것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런가하면 '고전'은 '낭만'과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어떤 예술작품의 '아폴론적'
특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용법을 고려할 때 '고전주의'란 어떤 특정한 시대에 유행했던 예술양식을 지칭하기보다는 빈켈 만의 정의처럼 "고대 그리스의 이상, 즉 '고귀한 단순성과 정적인 위대함'을 간직하고 있는 예술양식을 통칭하는 개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Baroque 음악이 얽히고 섥힌 복잡한 선율들의 대결이라면 고전파 음악은 보다 수직적이고 화성적 배경위에
명료하게 음악을 전개시키는 스타일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대위법적인 수법을 쓰긴 하였어도 그것은 바로크시대와
다른 긴 화성 패턴위에 이루어진다. 음악을 작곡함에 있어서는 건축적인 구조물, 즉 형식을 중요시하던 시대이다.
대표적 작가는 Haydn, Mozart, Beethovan을 들 수 있다.
※ 고전 성가곡들
하늘은 주의 영광 나타내고/주님 홀로 거룩하시도다/하늘은 선포한다/전능하신 주 하나님/하나님의 어린양/영광/거룩/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한 분이신 주님 믿나이다/거문고 들고 피리를 들어 주 하나님을 찬양하라(하이든)
영광/하나님의 어린양/오 찬양 여호와께(모짜르트)
오 주를 찬양하라/천사의 합창/기쁜 찬양 드리세/주 이름을 찬양함은(베토벤)
낭만파음악
낭만주의 정신은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예술적 관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관념은 이성으로 파악되는 확실하고 규정적인 것은 환상적이고 불가사의한 것보다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환상의 형이상학적 의미에 대한 신앙을 토대로 예술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세계,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동경의 세계를 그리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결과로 탄생한 예술작품이 현실보다 더 많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18세기에 대두된 합리주의적 계몽사상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기도 했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이성의 힘으로 확인하고 논증할 수 없는 것은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졌다.
예술에서 모든 애매 모호한 것들이 비난받았으며, 판단의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는 미학이론이 발달했다.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음악의 효과이혼도 바로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다.
비록 추상적인 音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어떤 특정한 자연의 상태를 묘사하거나 모방해야 한다는 생각이 18세기를 지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 예술이 무엇을 모방해야 한다는 생각은 빛을 잃게 되었다. 이 시대에는 '애매 모호함' 이나 '불가사의함' 그 자체가 하나의 미덕으로 간주되었다.
※ 낭만파 성가곡들
시 150편/영광송(프랑크)
거룩(구노)
감사하라 비를 주신다/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그가 이스라엘을 지키신다(멘델스존)
주는 우리의 피난처(브람스)
주님 다시 오실 때(로시니)
복된 예수 자비하심 크도다(드보르작)
변함없는 주의 사랑(차이코프스키)
※ 현대음악
'현대음악'이라는 말은 영어의 'contemporary music'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으로
원래는 '동시대의 음악'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동시대'라는 것이 어디서부터를 뜻하는 것인지 확연치 않으므로
광의적으로 20세기의 음악을 현대음악이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대를 좁혀서 볼 때 대체로 1945년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를 현대음악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현대음악에는 현대의 양식으로 쓰여진 점이 있기에, 예를 들어 1904년에 작곡된 푸치니의 '나비부인'을 20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현대음악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곡은 20세기에 만들어졌지만 19세기의 양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음악'이라는 말은 시대를 규정하는 뜻과 함께 양식을 규정하는 용어이다.
한국에서 찬송가는 근대음악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한국 최초의 찬송가는 감리교회 로스 와일러와 존스가 공동 편집한 〈찬미가〉로서 악보 없이 가사만을 적었으며, 1894년 언더우드가 악보가 들어 있는 〈찬양가〉를 편집, 간행했다. 1905년 윤치호가 편집한 〈찬미가〉는 한국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최초의 찬송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후 1983년 75 그리스도교 교파가 공동작업한 총 558장의 〈통일찬송가〉가 간행되어 한국 찬송가 사용의 일치를 보게 되었다.
※ 현대 성가곡들
주의 이름은 크시고 영화롭도다(디킨슨) // 나의 주님은 반석(엘리스 파커) // 기쁜 노래를 주님께(짐머만) // 하나님이 이 세상을(존 스테이너) // 살아계신 주(게이더) // 주 예수 이름 권세여/새 노래로 주를 찬양하라/손뼉치며 찬양하라(본 윌리암스)
어린 양의 소리( 나다니엘) // 오 예수 그리스도(베르겜) //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님(찰스 히킨스) // 찬양해 주님을(샘슨)
주 안에 위로 있네(티콤) // 축복(에반스) // 주여 나를 이끄소서(킹스레이) // 힘써 일하자(심프슨) // 모세(메데마) // 주는 산곡짝의 백합(엘리스 파커) // 만물아 감사 찬송 부르자(데이비스) // 날 구원하신 주 감사/모든 것 주심 감사(헐트만) // 이 세상의 소망이 되신 예수(웨더릴) // 성 테오돌프의 찬송(테슈너) // 오 이스라엘의 목자(모리슨) // 오 주를 높일지어다(린) // 나의 눈을 들리라(엘도존스) // 기쁨으로 주를 찬양하라(피터스) // 시 23편( 번스타인/코넬) // 시 150편(하워드 한슨/스티븐스/르윈도우스키) // 성령이 오셨네(윌리암 패트릭) // 주 달려 죽은 십자가/불같은 성령 임하셔서(피터슨) // 순례자의 노래(로드니) //
주 안에서 기뻐하라/우리 하나님께 찬양드리자(파우치) // 주님을 찬양(슬리즈) // 용서하소서 주여(브루흐) // 내가 깊은 데서(다운랜드) // 평화의 기도/주는 나의 목자(알란포터) // 어린 양들의 외침(제트) // 주는 피난처와 힘(버크) // 주 찬양(랜드거)
// 참 아름다워라(테레베아타) // 주기도( 말로테) // 주님을 찬양하라(후르에) // 주님을 찬양하라(월벅) // 위대하신 주(브엑스) // 여호와는 위대하다(허버트) // 승전가(윌리암 스테프) // 주는 나의 목자/주 나의 소망/나의 눈 여소서/시 23편/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보니/아름다운 세상 주신 주께(존 루터) // 주 걸으신 길 나 걸었네(오하라)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존 스테이너) // 찬양하리(행크 베부) // 불쌍히 여기소서(넬슨) // 내 목자 부족함이 없네(톰스) // 어린양의 소리(Dett) //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자(조셉 로프) // 어찌 날 위함이온지(레로이) // 일어나라 비추라(메이커) // 영원한 할렐루야(버틀러) // 참 아름다워라(로렌츠) // 내 영이 주께 찬양드리네(행크 베이브) // 오 신실 하신 주(런얀) // 내 영 주 찬양드리세(베베른) // 확실한 나의 간증(헤게스) // 모퉁이 돌(고스) // 기쁘게 찬양하여라 하나님께(구버) // 주께 감사드리세(클락) // 찬양하리(비비)
// 거룩 거룩 거룩(클리스테일)
흑인영가
은혜로운 길르앗/가라 모세/너 거기 있었느냐/어린양의 외침/나의 주님은 반석이시니/죄인아 귀한 때를 놓치지 마라
한국음악
시 23편(이동훈/나운영)
시 150편(이기경)
주기도/주여 주는 나를 아시나이다/주여 나를 건지소서/오라 모두 와서 보라/내가 믿습니다/목마른 사슴같이/영원한 알렐루야/주를 그리는 마음(박재훈)
용서하라(김한준)
나 깊은 곳에서(백경환)
어머니의 넓은 사랑(구두희)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성소에서 하나님을(이문승)
하나님의 어린 양(우효원)
맞으라 왕의왕(윤학원)
첫댓글 성가대방엔 다 성가곡만있는줄 알았어요ㅠㅠ 이런 귀한 자료가 있는지 잘 보지도 않고 지워 죄송합니다 어쩌다 드어가서리 이그ㅡㅡㅡㅡㅡ
하이고 ! 범인이셨군요.. 하나씩 차례대로 찾아볼랍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