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와 미역향을 담고..
▲멸치와 미역으로 유명한 기장 대변항
방학이면 서울과 거제도에 사는 조카들이 친정집인 부산 해운대에 들러 전화를 건다.
"이모 해운대에 왔어요. 울산에도 가야하는데요…."
아이들의 순례가 시작됐다. 아이들이 부산에 왔다는 소식에 마음은 반쯤 이미 부산에 가 있다. 아이들이 울산에 오는 것보다 내가 해운대로 가는 편이 여러모로 편하다. 그보다 부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해야겠다.
▲멸치회와 멸치 젓갈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차를 몰고 동해남부선 철도 근처를 달리다보면 가끔 기차를 만난다. 기차가 지나치면 마치 기차 안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동해남부선 기차 그리고 바다는 늘 내게 설렘을 안겨 준다.
▲싱싱한 회와 한 번 먹으면 중독되는 맛있는 갈치
송정에서 해운대 달맞이 고갯길에 접어들면 풍선을 잡은 아이 마냥 천진해진다. 내 안의 어른스러움이 빠져나가고 자연에게 기대고 싶은 어린 마음이 된다. 아름다운 해안선의 꼭지점에 다다랐을 때 어린 마음이 더욱 짙어 그만 차를 갓길에 대 놓고 넋 놓고 바다를 바라본다.
▲대변항이 날로 커져 이젠 멸치축제를 열 만큼 성장했다.
바다의 속사정도 알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바다에 어려진 마음을 실어 보낸다. 저 바다는 송정바다도 해운대 바다도 아닌 언제나 봄날 같은 바다다. 그래서 그곳을 '봄날의 언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해운대에 들러 곧장 아이들과 친정어머니와 함께 울산으로 향했다. '봄날의 언덕'을 지나치자 아쉬움이 밀려든다. 바다의 환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기장쯤에서 대변항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 어디로 가는데요."
기장 대변항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그곳에 잠시 들렀다 가자는 말에 모두 동의를 했다. 이제 마음 편히 대변항을 둘러볼 수 있다.
▲싱싱한 가자미, 알이 삐져나와 더욱 먹음직 스럽다.
기장 대변항은 멸치회로 유명한 곳이며 아이들에게는 산교육장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차에서 내리자 비릿한 내음과 사람냄새, 삶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기장은 한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부산시에 편입되기 전만 해도 대변항은 어촌마을의 신비스런 모습이었다.
멸치회 만큼이나 유명한 죽도에 우리 나라 대부호가 전용배를 타고 드나든다는 얘기에 솔깃해 하던 때도 있었다. 신비하기도 하고 기괴한 사연을 담고 있는 죽도는 기장에서 유일한 섬이다. 큰 물살을 자연스럽게 막아주어 방파제 역할도 하고 있다. 거북이가 물에 떠 있는 형상이라고 회자되고 또한 큰사랑을 받고 있는 섬이다.
▲멸치 육젓과 물미역
죽도의 모습이 어딜 가더라도 따라 붙는다. 죽도를 눈에 담고 통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굵은 멸치들을 보았다. 통마리 젓갈이다. 육젓이라고 하는 통마리 젓갈은 강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가게마다 육젓이 진열돼 있고 껍질이 자연스레 벗겨진 싱싱한 멸치회가 시선을 끌고 있다. 멸치회 옆에 학꽁치회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강한 비린 맛으로 처음 먹는 사람들은 멸치회를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 이럴 땐 초장 맛으로 먹어야 한다. 이곳 초장 맛은 알아주는 맛이다. 소주 한 잔에 멸치회 한 점이면 "캬~ 죽이는 맛."이라고 절로 표현하게 된다.
▲빨간 등대 옆이 죽도다.
횟감으로 쓰이기도 하는 대변항의 굵은 멸치는 유자망으로 잡아 올린다. 멸치의 고장답게 대변항의 유자망 멸치는 전국 유자망 멸치 어획량의 70%를 차지할 정도이니 '멸치축제'가 열릴 만 하다.
▲날치와 한치
아이들은 쌀쌀한 바람에 투정부릴 법도 한데 어째 조용하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 모습에 안심이다.
"빨간 오징어닷!"
"어머 오징어가 왜이리 커요?"
모르는 게 많은 우리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기가 차다는 듯 생선장수 아주머니는 "오징어가 아니라 한치입니다."라 말한다.
"아 맞아 한치야!"
이미 늦었다. 오징어에 익숙해져 생각 없이 오징어란 말이 불쑥 나왔다.
"와 나비다."
'애들이 이번엔 뭘 보고 그럴까.'
뾰족하고 길죽한 몸통에 나비 날개 같은 것이 달려 있다. 게다가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있어 더욱 궁금해 진다. 식용이 아닌 관상용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머! 날개 모양이 나비 같네요."
"날치 아입니까. 잘 모르지예?"
▲싱싱한 멸치회와 학꽁치회
하늘을 나는 물고기 '날치'란다. 도감에서 본 날치의 실제 모습이 무척 신기하다. 날치는 맛이 달고 시며 독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를 낳을 때 날치를 태워서 4g 정도 먹으면 아이를 쉽게 낳는다는 설이 있다. 아이를 쉽게 낳는다는 얘기를 하다보니 미역이 떠오른다. 기장에 와서 미역을 사지 않으면 안될 말이다.
▲기장 대변항에는 멸치, 날치, 갈치 등 '치'로 끝나는 생선이 눈에 많이 띈다.
'기장미역'은 향도 좋고 흐물 되지 않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럽다. 여러 지방에서 미역이 생산되지만, 이곳 기장미역의 명성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코 끝에 매달린 미역 향기로 인해 실제 산 미역보다 몇 배의 미역을 머리 속에 담았다. 비릿한 멸치도. 저녁 식탁에 신선한 어촌의 향기가 폴폴 살아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기장 대변항 바다', 우리 삶의 안식처이자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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