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와 함께하는 밤
철썩! 냅다 후려친 뺨을 얼른 문질렀다. 원, 세상에 내가 내 뺨을 때리다니. 귓불까지도 얼얼하여 초저녁잠에 빠져있던 몽롱함이 싹 가셔버렸다. 부아가 치밀면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이놈의 모기 녀석 잡히기만 해봐라. 부릅뜬 눈알이 얼핏 화장대 거울에 비쳤다. 잠시 분을 삭이면서 거울 속의 사내를 유심히 바라봤다. 까칠한 피부에 헝클어진 머리, 쾡한 두 눈은 매끄럽지 않은 세파를 건너갈 수밖에 없는 곤궁함을 담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제법 의지의 표상같이 보였던 콧날도 많이 무디어져 있다. 쳐진 어깨는 또 어떠한가. 오른쪽 뺨에는 방금 모기에게 물린 상처가 도톰하니 솟아오르고 있다. 깊이 보고 싶지 않은 오늘의 모습이다.
천천히 거울 앞을 떠나며 휴일 저녁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모기를 찾기 시작했다. 방안 구석구석 마다 이 잡듯이 뒤지면서, 찰나간의 분노가 이렇게 드셀 수도 있구나 하는 신기함 마저 느꼈다. 그때였다. 왱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눈앞으로 솟구치는 모기 녀석이 보였다. 이-노옴 부르짖으며 사정없이 손으로 후려쳤다. 그러나 웬걸 모기는 곡예를 부리듯이 뱅글 돌면서 과감히 얼굴로 짓쳐들어왔다. 카미가제(神風) 특공대가 따로 없다. 헉! 모기보다 빠르게 얼굴을 돌리면서 방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잠시 정신을 차리며 숨을 고르고는 모기의 향방을 찾으니, 녀석은 어느새 천정 쪽 벽에 붙어서 나를 조롱하듯이 내려다보고 있다. 좋았어! 이놈아 파리채 따위는 동원하지 않겠다. 벌떡 일어나 창문과 방문을 닫고는 살금살금 모기 쪽으로 다가갔다. 어차피 녀석은 감금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 육탄전으로 매듭지어야지. 너의 비행술이 아무리 절묘하더라도 나의 막무가내 식 금나수(擒拿手.잡아채는 무술기예)에 걸려들고 말리라.
전화가 왔다. 수화기를 들면서 모기 녀석을 슬쩍 바라보니, 녀석 또한 탈출 작전을 짜고 있는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수화기 속의 목소리는 하필 모기소리처럼 작고 멀었다. 왱왱거리는 시장통 소음 속에서 들려오는 거나한 목소리. 빨리 나오라는 친구의 술 냄새 묻은 목소리다. 아! 이 친구 …. 언젠가 피서한답시고 산간의 계곡에 놀러갔을 때, 팔뚝과 종아리에 온통 붉은 멍울을 달고 있었던 친구. 맞아 이 친구는 유난히 피부가 약해서 모기한테 물리면 즉시 부풀어 올랐지. 다시 한번 모기 녀석을 째려보며 전의를 다졌다.
시계를 보니 밤 열시가 다되어 간다. 친구에게 다음을 약속하면서 다독거리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우선 녀석이 싫어하는 연기를 피워야겠다. 담배를 꺼내 물고 연기를 뿜어대면서 조심스레 다가갔다. 문득 생명에 대한 외경 비슷한 감정이 뿜어진 연기를 타고 가슴에 흘렀다. 흐음 저 녀석 모기. 녀석과 우리 인간들의 악연은 언제까지 영속되는가. 친구의 울긋불긋했던 상처의 모습과 함께 오버랩 되는 인간과 모기와의 치열한 투쟁의 역사가 떠올랐다. 그렇지 저 녀석들과의 전쟁은 인류의 시원으로부터 시작되었지. 에이! 흡혈귀 드라큐라 같은 녀석.
1974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발굴해낸 원시인류의 유골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3백60만 년 전의 우리 조상님이 분명한데, 그 화석 뼈에서 추출해낸 정보에 의하면 사망원인이 말라리아 모기에 쏘였을 것이라는 학설이 정설로 내려오고 있지. 아마도 저 녀석들의 노련한 흡혈 행각은 아프리카 밀림 속을 헤쳐 가던 슈바이쳐 박사의 목덜미에도, 빈민굴에서 촛불을 사루던 테레사 수녀의 손등에도 거침없이 봉침을 꽂았을 터, 하물며 나같이 온갖 세속의 영악으로 뭉쳐진 몸뚱이가 뭐가 좋아 봐 주겠는가.
살그머니 벽 쪽으로 다가가 손을 쳐들고 모기를 노려보았다. 보면 볼수록 혐오스러우면서도 무자비하게 손바닥으로 압살하여 생명을 거두기에는 찜찜한 심정이 뭉클 일어났다. 몇 년 전 감상한 영화 ‘쥬라기 공원’이 생각났다. 마이클 크라이턴의 원작소설을 보면 화석이 된 호박(琥珀)을 캐내어 그 속에 박제된 모기의 혈액으로부터 공룡의 유전자를 추출, 거대한 쥬라기 공룡을 복제해 내는 기막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황당하지만 설득력을 갖게 하는 스토리에 감탄했었다. 히야! 그렇다면 이 녀석의 조상과 후예들은 이미 2억 년 전에 공룡의 피를 빨아먹으며 오늘까지 영속의 생을 이어오고 있구나. 새삼 끈질긴 생명력의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녀석들의 강력한 무기, 말라리아균은 수많은 인류의 종족들을 쓰러지게 했다. 살아남은 인류는 오랜 기간의 질곡으로부터 허우적거리다가 마침내 면역력을 얻으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리라. 그렇다면 인류와 모기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번창했고, 악연의 동반자로서 지구의 역사를 함께한 셈이다. 아직도 녀석들의 생명력은 놀라울 정도다. 시베리아 툰드라의 모기 알은 그 추운 혹한기를 견뎌낸 뒤, 얼음이 녹는 짧은 여름 날 빙하에서 부화한다.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어서는 마침 그 시기에 툰드라 지역을 통과하는 순록의 피를 빨아먹고는 광막한 시베리아 벌판에 알을 뿌린다.
요즘 우리나라의 도심에 서식하는 녀석들의 영민함은 또 어떤가. 사계절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훈훈한 아파트 지하실에서 안거하면서 고층 엘리베이터를 떡하니 타고서 고원(高原) 원정의 별미를 만끽하고 있지 않은가. 어이! 모기여 존경스럽다. 그렇지만 가증스럽다. 에잇! 요 녀석…. 녀석을 손바닥으로 치려다가 다시 주춤거렸다. 어린 시절 쑥스러운 회상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해서다.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쯤 인걸로 기억된다. 여름방학 때 고향집에서 멀리 떨어진 친척집으로 심부름을 갔었는데,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돌아갈 차편도 끊어져 그 집에서 자게 되었다. 친척집이래야 도회지 외곽의 사글세 단칸방이었다. 주인은 촌수가 먼 문중의 아저씨뻘 되시는 분이었는데, 젊은 부부가 혼인식도 안올리고 동거 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밤이 이슥해지자 방 한구석에 마련해준 자리에 누워 홑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였다. 이십대의 젊으신 분들이라 쉬이 잠들지 못하시고 정담을 나누며 포옹도 하는 낌새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지만, 짐짓 잠들은 척 하면서 빨리 꿈나라로 직행하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억지로 보채는 잠은 오지 않는 법. 등을 돌리고 벽을 마주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야릇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두 분께서 운우지정을 나누시는 모양이다. 어린 나이지만 좁은 방 지척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난처한 마음으로 잠을 재촉해 보았지만, 한번 달아난 잠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희미한 휘파람 소리 비슷한 파동과 함께 무언가 코에 내려앉는 느낌이 왔다. 모기였다. 잠든 척하고 있는 몸이라 움칠거릴 수도 없어 안타까움에 떨고 있는데, 짜릿한 통증이 전신을 엄습해 왔다. 실눈을 뜨고 콧잔등을 보니 파리만한 모기 녀석이 씨익 웃으며 막 이륙하고 있다. 다음 날 아침, 단출한 밥상 앞에서 나의 퉁퉁 부은 눈과 코를 보면서 아저씨가 놀려댔다. 어! 이 친구 코 한번 잘 생겼네 그려.
아득한 소년 시절의 회상에 빙그레 웃으면서 벽면을 보니, 아직도 녀석이 도망가지 않고 날 노려보고 있다. 문득 이 녀석이 그 옛날 그날 밤의 모기가 아닐까, 또는 2억 년 전 공룡의 뱃가죽에 달라붙었던 쥬라기 모기는 아닐까하는 덧없는 상상에 젖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녀석의 품새가 정겹게도 보였다. 천천히 손을 내리며 엉뚱한 상상의 나래도 펴본다.
그래, 지금 너의 뱃속에는 내 피가 고여 있구나. 이제 그만 포식하고 저 창공을 날아 백두대간 산림 속에 있는 낙락장송 그루터기에서 긴 잠에 빠지 거라. 너의 육신에 마침내 흥건한 송진이 흘러내리면 그대로 굳어버려라. 몇 세기가 흐른 먼 훗날 과학이 찾아와 송진에 갇힌 너와 내 피를 꺼낸다면, 우린 다시 부활하여 자웅을 겨뤄보자. 이 지겹고도 어찌할 수 없는 생령이여.
녀석을 그대로 놔둔 채로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도시의 밤을 살펴보니 가까운 곳에서 꾸룩 꾸룩 하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하루 종일 높이 비상하지만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비둘기들이 잠을 청하는 소리다.
(2005 . 9 . 3)
1 [이하진] 지난 여름밤 그 작은 모기녀석 때문에 불면으로 고통을 받던 때가 몇 번인지 지금 생각해도 밉기만 합니다. 작은 몸으로 한 밤중 작지만 공포스런 소리를 내며 물렸다 하면 부풀어 오르며 가려운 통에 물파스와 많이 친했던 날들이 가고 이제 가을인가 싶어 모기의 공포로 부터 해방이 되나 싶었는데 여름보다 더 극성스런 모기는 낮과 밤이 없이 나오더이다. 매미에 이어 모기에 관한 수필을 읽으며 다음 작품 소재가 궁금해 집니다. 한비 작가님, 늘 건안하시고 좋은 계절 이 가을에 주옥같은 글 많이 쓰세요. 감사합니다 <2005.09.04>
2 [한비] 이하진님, 존함이 멋지십니다. 저의 졸편을 깊이 독파하신 성심에 더욱 감사드리구요. 모기는 기실 우리 모두에게 애증의 일상입니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가장 피부에 닿는 물리적인 충돌이지요. 어쩌면 이 어두우면서도 휘황한 21세기에 차마 털지 못하는 '계륵'의 본령일지도 몰라요. 우리가 숙명으로 만져야 하는... 그건 매미의 청냉한 울음과 같아요. 대저 수필이란 동족의 생존 안위를 떠나서, 시나브로 쌓여지는 서정과 감성의 발흥....즉 즉물적 삶의 행로보다 심상에 내재된 정서의 발현이랄 수 있습니다. 오늘 모기에 대한 추상은 내가, 우리가 왜.... 이 땅에 강림해 있는가를 외쳐보고 싶은 어설픈 庶人의 잠언 임을 헤아렷으면 합니다. 이하진 독자님의 격려와 혜안의 심원함에 감사드립니다. 저와 같은 천착!! 사랑합니다. <2005.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