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3년 성종 12년 거란의 소손녕이 자그마치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했었다. 우리가 알기론 거란이 80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왔기 때문에 고려 조정은 싸울기세도 잃고 항복하자는 의견이 많이 나왔었고 서희가 그 때 나서 외교담판으로 거란의 80만 대군을 돌려보냈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거란의 80만 대군? 과연 그렇게 많은 대군이 고려를 침입했을까? 아마도 그것은 과장된 말일 것이다. 여기서 논리적인 말로 여러가지 의문을 제시해 본다. 거란이 1차 침입 때 동원된 군사가 80만이 아닌 증거를 적어 보도록 하겠다.
(직접제작)
첫째: 삼국의 정세를 왜곡시킨다. 당시 삼국에 정세를 보자면 송, 거란, 고려라는 세나라가 있었다. 송과 고려는 연합의 헝태를 띄는 나라로 송과 고려는 친하게 지냈었다. 반면 고려와 송은 거란을 배척했었다. (거란은 유교사상이 아니며 유목형태의 악탈하는 오랑캐라 하여 멸시함) 거란은 그 당시 발해를 멸망시키고 계속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기 때문에 송을 무너뜨리고 싶어했어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거란은 먼저 송과 고려의 연합을 끊어야만 하는 상태였다. (송을 공격하면 고려를 뒤를 칠까하는 염려 때문에)
그래서 거란은 이 연합을 끊기 위해 고려를 침입하고 그것이 993년 거란의 1차 침입이 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송이 바로 옆에 있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80만 이라는 어마어마한 전력을 고려에다가 투입할리가 없을 것이다. 거란의 80만 대군이 고려를 실제로 쳤다면 송나라는 거란의 뒤를 공격했어야 했고 오히려 거란과 고려의 싸움보다 거란과 송의 싸움이 더 커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거란과 송은 아무런 대치가 없었다. 즉 80만 대군이라는 말은 삼국의 정세 상으로 보았을 때 거짓이 된다.
둘째: 거란의 80만 대군은 안융진 하나 재대로 함락하지 못하였다.
거란의 80만 대군은 서회와 담판하기 전에 안융진을 공격한바 있었다. 이 때 안융진의 군사는 소수였었다. 그런데 80만 대군이 쳤으면 100% 함락이 되어야 하는데 함락은 커녕 계속 전투만 일어났었고 안융진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20만이 공격해도 충분히 함락 가능한데 어떻게 80만이 쳤음에도 안융진은 왜 함락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첫번쨰 싸움에서는 봉산이 함락되고 윤서안이라는 장군이 사로잡힌 바는 있었지만 그 전투는 수적으로 당연 밀렸을 뿐만 아니라 거란이 80만 대군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당연 이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안융진도 마찬가지로 수적으로 밀렸었는데도 함락되지 않았다. 거란이 80만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당연 함락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80만 대군! 그것은 과장된 말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한다.
셋째: 소손녕이 무심코 뱉은 말을 고려조정은 그대로 믿고 넘어갔었다.
고려 사신이 거란의 본진에 들어간 바 있었는데, 이 때 소손녕이 군사가 많은척 하면서 모렛바람을 일부로 내게 하며 '80만 대군이 있다'라고 위협했었는데 고려조정은 봉산에서 윤서안의 고려군이 전멸했다는 소식과 거란의 진영에 들어갔던 사신의 얼굴이 파랗게 질러있는 것을 본 고려조정은 그 허무맹랑한 말을 그대로 믿고 넘어갔었다.
넷째: 동경유수 따위가 황제보다 군사를 더 많이 동원했을까?
거란의 2차 침입 때 직접 거란의 성종이 집적 40만 대군을 쳐들어왔었는데 상식적으로 신하가 80만 대군을 이끌고 황제란 자는 40만 대군밖에 안데리고 오다니 이건 딱 봐도 모순이 있다고 본다. 여태까지 전쟁사에서 황제가 전투를 한다면 군사 수는 전보다 압도를 해야 하며, 또 일개 동경유수보다 더 대리고 왔어야 한다. 또 2차침입 때 거란의 40만 대군은 개경 까지 남하한 것을 보면 충분히 1차 침입은 80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다섯 째: 소손녕은 도통을 받지 못하였다.
거란의 병제에 기록을 보면 도통을 임명받지 못한 원정에서는 보통 기병 6만명 정도를 편성하며, 도통을 받지 못하는 원정이라면 전면전을 해서 받는 항복보다 국지전을 수행해서 원정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 보았을 때 거란의 1차 침입은 대략 6만명 정도라고 보면 된다. 도통을 임명받았을 대는 대략 15만 이상을 둘 수 있지만 소손녕은 도통을 받지 않았다고 기록엔 나와 있다.
여섯째: 실제로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거병했다면 담판할 필요는 없었다.
만약 1차 거란의 침입에서 거란이 실제 80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면 담판할 필요 없이 고려의 수도를 바로 함락시켜 종주국으로 만들어야 할텐데 소손녕이 담판하였다는 것은 80만이 아니라는 근거이다. 뭐하러 등에 혹인 고려를 놓아 주었으며 미치지 않고서야 담판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또 80만 대군이 있었다면 소손녕은 담판에서 유리한 서희의 목을 베고 곧바로 수도로 내려갔어야 했다. 담판에서 밀리고 말이 통하지 않던 소손녕, 화를 주체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소손녕은 군사가 적음을 깨닫고 화를 참으며 화친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