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서 우리들이 처음으로 한 일은 호텔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옆 방에서 묶던 한 동료가 사우나를 가자는 제안을 했고 나는 동료들과 함께 십분 정도를 걸어서 면 소재지에 있는 사우나로 갔다. 사우나에 들어가니 다른 일행들이 먼저 와 있었고 우리들은 눈인사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탕 안의 온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따스한 느낌이 들었지 뜨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탕에서 나와 다시 샤워를 하고 사우나 안으로 들어갔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아침이어서 그런지 사우나 안의 온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채로운 것은 사우나 벽에 TV를 설치해서 아침 뉴스를 볼 수 있었다. 뉴스를 통해서 징검다리 휴일을 맞아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 많아서 제주도는 연휴의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객실의 90%를 채울 수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 나라도 살기가 무척 좋아졌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우리들만 해도 학기 중에 이렇게 제주도 여행을 하리라는 것은 몇 년 전만 해도 꿈을 꿀 수도 없었지만 이제는 가능하게 되었다. 사우나 안에서 땀을 빼려던 계획을 바꿨다. 사우나 안의 온도가 생각보다 낮아서 그리 많은 효과를 볼 수 없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대기실로 나가서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앉자 창 밖의 바다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침 바다의 모습을 보면서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바닷가를 선택했다. 바닷가를 걸으면서 만나는 신선한 바람과 바다에서 다가오는 바다의 냄새가 나의 몸을 간질이며 다가왔고 기분 좋은 하루를 예약하는 것 같았다.
8시 30분에 가이드와의 미팅이 있기에 우리들은 서둘러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 식사는 갈비탕이었고 나는 한 그릇을 다 비울 수 있었다. 서둘러 호텔을 나선 우리들이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제주도의 들과 산이었다. 정사각형으로 다듬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의 모양을 가진 밭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마늘을 수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밭 가운데 누워있는 묘소를 만날 수도 있었다. 호텔을 출발한지 40여분 지났을 때 도깨비 도로에 닿았다.
자동차가 거꾸로 올라간다고 하는 신비의 도로는 5.16도로를 타고 가다 관음사로 가는 산록도로에 있으며, 이 도로는 내리막길인데도 차가 거꾸로 올라간다고 하여 도깨비도로라 불리우고 있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착시현상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착시구간이 100미터나 된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 내리막길에 차를 세우고 이러한 현상을 여러 차례테스트 해 보지만 눈을 의심할 정도로 차는 분명히 내리막을 거꾸로 오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 버스의 기사님도 시동을 껐으나 거꾸로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자동차들이 옆에 정차를 하거나 그 도로에서 잠시 멈춰 잠시 경험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 도로에서 깡통이나 빈 병 등을 놓아보면 오르막 쪽으로 굴러가며, 차량의 시동을 끄고 기어를 풀면 차량도 오르막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신비한 도로라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동차가 산간지역의 도로를 통과하면서 많은 목장을 만날 수 있었다. 한가로이 노니는 말의 모습을 보았고 산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야생화의 군락을 만날 수 있었다. 밭이 펼쳐져 있는 데 작물을 심지 않은 것에 대한 궁금증은 가이드가 그 곳은 일교차가 심해서 작물을 재배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풀 수 있었다. 한참동안 버스가 달리다가 도착한 곳은 제주분재예술원이었다. 북제주군 한경면 저지리 중간산 마을에 위치해 있는 제주 분재예술원은 우리 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분재 전문 공원이라고 한다. 입구를 들어서면서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을 들게 한다. 입구에서 직원 한 명이 우리들에게 분재에 대한 개념과 감상하는 법 그리고 그 곳에 전시된 분재를 몇 개 설명해서 우리들의 분재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했다. 이 곳은 1992년 7월 30일 문을 연 이래 각국 언론과 저명 인사들이 '세계 유일의 테마 공원'으로 인정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 곳이 있게 한 성범영(成範永) 원장은 1968년부터 가시덤불로 뒤덮인 황무지를 개간하여 이 공원을 열 게 되었는데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친놈'취급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사라져 가는 700년 한국의 분재 문화를 되살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서로 사랑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바라는 뜻에서 이 곳을 만들게 되었다 한다. 우리들에게 설명을 하는 직원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하나의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알기 쉽게 설명을 하고 반응을 살피는 모습, 자신의 일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뜨거운 태양을 멀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내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물음표 하나를 얻게 되었다. 영춘화, 해송, 동백나무, 백일홍, 배종나무, 명자나무, 육송등 수많은 나무들이 소 우주를 만들면서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사실 나는 분재라는 것은 성장을 억제하여 나무를 학대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했는데 이번 기회에 분재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분재를 분갈이를 잘 해줘야 하는데 뿌리를 잘라줘야 식물도 살려는 의지가 강해서 다른 뿌리를 낸다는 말을 듣고 공감할 수 있었다. 다음은 시인 강윤수님의 '분재예술원 성범영 원장님'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가 보면 알리라
소중한 생명의 신비를
그 신비를 벗겨가는 명장의 손길을
제주도 한경면 저지리 외진 돌밭에
가장 값진 삶을 일구고 있는
또 한사람의 거룩한 종교를
만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