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구·북구·경산시·군위군·영천시·칠곡군 품은 '문화재의 寶庫'
조선일보 대구=박원수 기자
총 면적 125㎢ 팔공산
비로봉 중심의 동봉과 서봉 대구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동화사·군위 삼존석불 등 곳곳에 국보·보물·사적
생태탐방로·둘레길·구름다리 탐방환경 조성사업도 추진 중
영남의 명산으로 깊고도 너른 산세를 자랑하는 팔공산의 전경. 동화사 집단시설지구 맞은편에서 촬영한 모습이다. 뒤쪽에 최고봉인 비로봉과 동봉, 서봉이 나란히 서있다. /대구시 제공
중생대의 마지막 백악기가 끝날 무렵인 6500만년 전. 지상에서 번성하던 공룡이 멸종하고 있었다. 그때 한반도에는 거대한 지질학적 사건이 발생했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생겨나 높이 1000m가 넘는 큰 산을 이루었다. 이것이 바로 영남의 명산 팔공산이다.
화강암을 기반암으로 하는 거대한 산괴를 이루면서 수려하고도 다양한 화강암 지형이 곳곳에 발달해 있다. 그 아름다움은 철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팔공산의 매력에 빠져 들어 계절을 가리지 않고 팔공산의 품을 찾아들고 있다.
대구 동구와 북구, 경북 경산시, 군위군, 영천시, 칠곡군 등 무려 6개 지자체를 품고 있는 팔공산의 총 면적은 125.668㎢(3844만평). 최고봉인 비로봉(1193m)을 중심으로 동봉(1155m)과 서봉(1041m)이 양 날개를 이루는 형상을 한다. 남동쪽으로는 염불봉·수봉·인봉·노적봉·관봉 등이 이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파계봉을 넘어 가산에 이른다. 장장 20여㎞에 이르는 주능선이 대구 분지의 북부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때문에 동서로 가로지르는 종주등산로와 사통팔달 종횡으로 연결된 능선의 매력은 가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팔공산이 얼마나 이곳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느냐 하면 상당수 초·중등학교 교가속에 팔공산이 언급돼 있는 것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서울에 북한산이, 광주에 무등산이 있다면 대구와 그 인근에는 팔공산이 있다.
팔공산의 현재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그전까지 팔공산은 중악, 부악, 공산 등으로 불리워져 왔다. 중악(中岳)이란 명칭은 신라 호국성산인 오악(五岳) 중 중앙에 위치한 공산을 지칭한데서 유래했다. 신라 오악은 동쪽의 토함산(동악), 서쪽 계룡산(서악), 남쪽 지리산(남악), 북쪽 태백산(북악), 중앙의 공산(중악)을 각각 지칭한다. 따라서 오악은 신라의 상징적인 존재로 국가차원에서 숭배돼 온 영산(靈山)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팔공산은 신라에 불교가 수용되면서부터는 신라불교의 성지로 거듭나게 된다. 지금도 팔공산에는 수많은 사찰들이 골짜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가 수많은 말사와 암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큰 사찰만 해도 조선 숙종과 영조, 그리고 정조의 원당이었던 파계사, 선덕여왕의 추모제를 집전했고 고려시대에는 초조대장경을 봉안했던 부인사, 송림사, 관암사가 있다. 거기에 비로암, 도덕암, 양진암, 염불암, 거조암, 백흥암, 기기암, 운부암, 묘봉암, 중암암, 내원암 등과 같은 암자는 수를 헤아리기도 숨에 찰 정도로 불교문화유적의 산실이 됐다.
팔공산은 한편으로 문화재의 보고이기도 하다. 국보 제14호인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국보 제109호인 군위 삼존석불(제2석굴암)이 대표적이다. 동화사 입구 마애불좌상,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 13점의 보물, 가산산성 등 2점의 사적이 분포돼 있기도 하다.
또 신라의 원효, 의상, 김유신 장군, 신라 42대 헌강왕의 아들인 심지, 고려의 지눌, 일연 스님, 조선시대 성리학자 유방선, 김시습, 서거정, 이황, 이숙량, 서사원, 사명대사 유정 등 많은 인물들이 팔공산과 인연을 가지고 있다. 더우기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간 927년에 벌어진 공산전투의 자취가 곳곳에 배어 있어 역사적 관광자원도 풍부하다. 또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의 지휘 아래 승군 사령부가 동화사에 있었다. 대구지역 선비를 중심으로 팔공산에서 공산회맹(公山會盟)을 통해 대대적인 의병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6·25때는 가산 일대가 낙동강 최후 방어선 역할을 했다. 호국의 산으로서도 자리매김한 것이다.
한편으로 아픈 역사도 있다.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의 해발 600m가 넘는 팔공산 산골에는 한티순교성지가 있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한티 인근에 모인 수 십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무더기로 처형된 곳이 바로 한티순교성지다.
그래서 팔공산은 입체적이고도 다양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명산임을 다시 한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풍성한 스토리텔링의 요소를 갖춘 팔공산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좀더 나은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팔공산 소원길 생태탐방로 조성사업(26.2㎞), 팔공산 둘레길 조성사업(108.5㎞)과 같은 탐방환경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또 팔공산 케이블카 정상과 동봉 인근을 연결하는 구름다리 건설사업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금도 팔공산 곳곳에는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전달해 주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관찰되고 있다.
팔공산 갓바위
팔공산
총면적: 125.668㎢(3844만평)
최고봉: 비로봉(해발 1193m)
문화재: 국보 2점, 보물 13점, 사적 1점, 유형문화재 4점, 주요 만속자료 1점
주요 사찰: 동화사, 은해사, 부인사, 파계사
김유신·원효·왕건… 팔공산과의 인연
조선일보 대구=박원수 기자
팔공산에는 수많은 문화재와 사찰 등이 어우러져 불교와는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팔공산을 더욱 살찌우는 것은 역사적 인물과의 관련성이다. 여러 지역에 걸쳐 있는데다 영남의 대표적인 명산이기에 역사적 인물과의 관련성은 어쩌면 필수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팔공산과 관련 있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을 살펴본다.
▲김유신(595~673)
김유신과 관련된 전설이 많고 산신으로까지 승화됐다. 삼국사기 김유신전은 17세때 중악(현 팔공산)의 석굴에서 기도를 올리고 선인들로부터 비법을 얻어 삼국통일을 이루었다고 적고 있다. 구체적인 위치는 은해사골 중암암 위 장군굴이라고 알려져 있다. 인접한 곳에서 나는 물은 김유신이 마시던 장군수라 하고, 건들바위, 삼인암, 만년송 등의 전설도 있다. 명마능선에는 장군바위가 있고, 군위군 효령면 장군3리 역시 김유신과 관련한 명칭.
▲원효(617~686)
팔공산과 인접한 경북 경산시가 고향인 원효대사도 팔공산의 스토리텔링에 한몫한다. 자장율사와 당나라로 유학하려다 문득 깨친바가 있어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한 원효는 34세 이후 여러 번 팔공산과 인연을 맺었다. 불굴사 석굴에서 수도한뒤 오도굴에서 득도했다고 한다. 이후 팔공산의 삼성암, 오도암, 불굴사, 수도사와 이래저래 창건에 간여하거나 인연이 있다.
▲고려태조 왕건(877~943)
고려태조 왕건과 팔공산과의 인연은 넘쳐난다. 망해가던 통일신라 대신 패권을 둘러싸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고 있던 후백제 견훤과 고려태조 왕건은 팔공산 일대에서 공산전투(동수대전)를 벌인다. 그러나 왕건은 공산전투에서 생애 최대의 패전을 경험하게 된다. 1만여명에 이르는 군대는 전멸하고 자신의 목숨만 겨우 부지해 도망간다. 이때 왕건으로 변장한 고려 대장 신숭겸과 좌장 김락이 장렬하게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