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삼일
토요일 아침, 당직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집사람이 동해안으로 가잔다. 군 생활을 하는 아들이 보고픈 게다. 지난 설날 면박을 다녀왔고, 부대를 옮긴 뒤로는 면회가 안 되는 줄 뻔히 알지만 그래도 아들이 생활하는 근처에라도 가서 숨결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구들장을 짊어지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면회도 안 되는데 무엇 하러 가느냐?’고 일단 핀잔을 넣고 반응을 살폈다. 그런 내 대꾸에 서운해 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아들을 보고 싶은 염원이 강해서 그런지 아님 내 의견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지 계란을 삶는 등 여행준비에 거리낌이 없다. 그렇다. 가정의 평화란 그런 식으로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어찌 하겠는가, 딱히 정해진 일도 없으니 집사람의 행동에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다.
TV뉴스를 보니 연휴 나들이객으로 인하여 고속도로가 엄청 붐빈다고 한다. 여차하면 차량물결에 휩쓸려 큰 곤욕을 치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오후 4시 못 미쳐 집을 나섰다. 길거리의 고군분투를 예상해서 도중에 차량 기름통을 가득 채웠다. 예감이 안 좋은 서울외곽 및 영동고속도로를 피하여, 강변도로와 경춘고속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강변도로에서 고속도로로 인입하는 인터체인지에 접어들자 밀려드는 차량으로 아수라장이다. 차량은 그야말로 거북이 행렬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지루한 고행이 시작된다. 톨게이트를 지나면 좀 괜찮으려니 했는데, 그 앞길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어디까지 이러한 행진이 계속되어야 하는가. 지친 여행객들이 톨게이트 앞 대로에 2중 3중으로 차량을 대고 쏟아져 나온다. 오랜 고행에서 오줌보를 잔뜩 불린 무리들이 해우소를 찾는다. 남자들이야 산기슭에 대고 노상방뇨가 가능하지만 그럴 사정이 못되는 축들은 멀찍이 떨어진 건물로 다시 고행을 이어야 한다.
그렇게 한참이나 진행되던 행렬이 가끔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럴 즈음 차량후미에서 굉장한 충격이 전해온다. 뒤 따르든 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추돌을 한 것이다. 비상등을 켜고 내려서 보니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앳된 사내가 놀라 어쩔 줄을 모른다. 그는 당황하여 다음 절차를 어떻게 진행하여야 할지 모르고 내 처분만 기다린다. 어찌 이리 되었냐 물으니 아기를 돌아보다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고 한다. 다행이 내 차는 상당히 노화된 차량이라 그리 외양에 신경을 쓰진 않는다. 차량 후미는 다른 차에 수시로 들이받혀 상처투성이인지라 어떤 게 언제 생긴 상천지 구분하기가 사실상 불가하다. 그렇다고 내 목 어디에도 결린 곳도 없다. 그렇다면 속보이게 더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명함을 건네는 것도 마다하고 주의해서 가라고 보냈다. 차로 돌아오니 집사람이 그런다. 어찌 차만 멀쩡하면 답니까? 나한테도 어디 다친 곳은 없는가 묻는 게 순서 아닌가요? 맞다. 그게 정상적인 절차인데 차 괜찮고 나 괜찮다고 단순하게 사건을 종결지은 것이다. 목이 아프다고 하는 집사람의 말을 애써 회피하며 거북하고 뜨끈해지는 속에 찬물을 부어 부지런히 헹궈낸다.
가평휴게소에 이르러 얼른 약국부터 찾았다. 파스를 한 통 사서는 집사람 목덜미에 정성껏 붙여준다. 기분 탓인가 좀 난 것도 같다고 한다. 더 사건이 확대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런 곤혹스런 사건이 이번만은 아니다. 10여 년 전, 출근길에 어찌나 세게 받혔는지 범퍼가 산산조각이 났다. 앳된 사내가 울상을 하며 회사에 얘기는 말아 달란다. 어렵게 들어갔는데 잘릴까 겁이 난단다. 딱한 사정을 감안하여 정비소에서 범퍼만 갈려고 하는데 돈을 안 부쳐준다. 집으로 전화를 하니 아기 울음소리 속에 아내가 전화를 받는데 집을 나가서 연락이 없단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범퍼교체비만 받았다. 그 덕분으로 근 삼사일을 목이 아파서 혼났다. 파스를 붙이고 약을 먹었는데도 뒤를 볼라치면 몸 전체가 움직여야 하는 고초를 겪었다. 매사에 한 템포 느린 성격 때문에 홀로 삭여야 하는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삶은 계란으로 빈속을 채우곤 다시 행로에 들었다. 동홍천IC에서 내려 44번 국도를 타고 달린다. 의도한 속초 해안에 도착하니 10시 반이다. 장장 7시간이 걸린 것이다. 도심의 삭막함을 벗고자 떠난 행로가 이리 사람들을 고생시키는 것이다. 이런 고생의 원죄는 누구인가? 발 달린 사람이 어디든 가듯이, 차량마다 바퀴를 달아놓았으니 그 또한 그러하지 아니 하겠는가? 우린 전에 들렀던 해안으로 차를 옮겼다. 해안 근무를 하고 있을 아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주변을 서성거린다. 마침 근무 나가는 아들을 만났고 가벼운 포옹을 하고 헤어진다. 다음 날 아침에나 한 번 더 만날까 기대한다.
12시가 다 되어가니 횟집이 문을 닫는다. 우린 늦은 시간이라 생선회를 좀 사서 여관에서 먹기로 한다. 생선회를 뜨는 동안 아까 길바닥에서 주은 핸드폰을 꺼내 내용물을 탐색한다. 분명 생선회에 곁들여 마신 술이 지나쳐 핸드폰을 흘렸을 것이다. 단축번호를 눌렀으나 비었다. 전화부를 열어 이쪽저쪽 연락을 했으나 통 답신이 없다. 생선회에 음료를 사들고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 나섰다. 연휴 첫날이라 그런지 모텔이며 민박이며 모든 숙박 가능한 시설은 이미 만원이다. 어찌 하겠는가. 24시간 화장실이 개방되는 해수욕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생선회에 소주한잔 그렇게 좁은 차안에서 해변의 밤은 깊어갔다.
5시 반, 핸드폰 알람이 어제 이맘때가 됐으니 일어나라고 아우성이다. 화장실에 들려 대충 묵은 것을 털어내고 어제의 해안으로 향했다. 어제 우리가 와 있음을 알고 있던 소대장은 우리를 다시 발견하고 잠시 기다리란다. 상부에 하락을 받아 외출을 보내주겠단다. 원 취지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갑자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속초 시내로 나왔다. 아들에게는 육고기가 든 도가니탕을 우린 황태해장국을 시켰다. 식사 후 설악산으로 방향을 잡아 차를 몰았다. 진입로에 가까워지자 차량이 몰려 경계조차 넘지 못할 지경이다. 굳이 구경을 할 일도 아니기에 차를 돌려 한적한 곳을 찾았다. 느티나무 밑 돗자리를 깔고 망중한을 즐긴다. 바람이 시원하니 피곤했던 몸이 잠으로 떨어진다. 셋이서 어느 정도 피곤을 털고 있는 사이 주어온 핸드폰이 울린다.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무슨 일인가 전화를 했단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핸드폰 주인더러 우리 있는 곳을 찾아가라고 일러 준단다. 그리고도 서너 시간 주인은 기별이 없다.
12시 시내로 자리를 옮겨 돼지갈비집으로 찾았다. 그때 핸드폰 주인이란 사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이제야 정신이 들었다 한다. 이왕 찾아 주기로 한 것이니 그가 찾기 수월한 고소버스터미널로 자리를 옮겨 빨리 오라고 주문한다. 한참이나 시간이 지났는데 오질 않는다. 어찌된 일인가? 다시 전화를 넣어보니 고속버스가 아니라 시외버스터미널에 와 있단다. 집사람과 아들은 차량에 돌아가게 하고 난 길바닥의 햇살을 받으며 그를 기다린다. 이제 아들이 부대로 돌아갈 시간이 촉박한데 자꾸 시간을 지체되니 조바심이 난다. 집사람이 빨리 오라 성화다. 집사람과 아이는 식당으로 먼저 보내놓고 핸드폰 사내를 기다렸다 건넨다. 훤칠한 사내가 무지 고맙단다.
아들 외출에 따른 인사치레로 먹을 것을 구하느라 다시 바쁘게 움직인다. 음료를 사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사려는데 문 연 곳이 없다. 114로 문의를 두어 번 받아 주문을 했다. 식사를 대충 마치고 찾아가려는데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다. 다시 114로 물어보니 전에 알려준 번호를 모른단다. 시간은 없고 주인장은 열심히 피자를 굽고 있을 터인데 참말 난감하다. 또 다시 114로 지역에서 가까운 곳을 무조건 대달라고 조른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우여곡절 끝에 주문한 곳을 찾았다. 날이 덥다. 핸드폰 찾아주랴 피자집 찾으랴 긴장을 해서 그런지 옷 속이 땀으로 축축하다. 집사람과 아들은 에어컨 가동되는 차 속 뒷자리에서 뭔 말씀인지 쉬질 않는다. 부대를 찾아 준비한 음식을 건네고 소대장에게 감사의 전화를 드렸다.
오후 2시 좀 넘어 집으로 향한다. 그때 막내 동서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지금 양평인데 모여서 술이나 한잔 하잖다. 연휴를 맞아 두 동서네 가족이 와있으니 모이자는 것이다. 어제 잠을 못자 피곤하다고 하고 사양한다. 집사람이 다시 가정평화의 당위를 들어 그곳으로 가자고 한다. 어찌하겠는가. 44번국도 중간에 붙은 청운면으로 차를 몬다. 동서에게 그쪽으로 가겠다고 전화를 넣으니 불통이다. 허기진 배에 우선 막국수 한 그릇씩을 채우며 전화를 넣었으나 전과 동이다. 우리가 안 온다기에 양평수영장에 들어 본전을 톡톡히도 뽑는가 보다. 우리는 집 근처 개천에 돗자리를 깔고 어항을 놓고 견지로 피라미를 잡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농촌산골에 땅거미가 스멀거린다. 전화는 안 되고 이젠 집으로 가자. 모든 미련을 털고 귀로에 오른다. 연휴 중간 날, 귀로의 차들이 몰려드니 속도가 뚝 떨어진다. 한 시간이나 족히 왔을 때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못 받아 미안하다면서 양평으로 급히 오시란다. 다시 어찌하겠는가. 온 길을 되밟아 양평으로 향했다.
용두리에 들려 삼겹살과 음료를 사들고 들어가니 동서들이 반긴다. 야외 바비큐장에 음식상을 차린다. 텃밭에서 채소를 뜯고 숯불에 고기를 구워 소주와 맥주를 마신다. 밤이 이슥해 실내로 옮겨 다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새벽 부지런한 중간 동서내외가 산으로 올라 나물을 채취해 왔다. 야외로 몰려나온 차량이 일시에 귀로에 들 것을 생각해 오전에 짐을 챙기기로 했다. 다행이 귀로는 차량 정체 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 현충일이 낀 연휴삼일은 이렇게 막을 내렸고 가정은 다시 평온에 들었다.(201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