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나 해 먹으려고 밭에 나왔다가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오늘 있었네. 어디가서 점심이나 먹을까?"
"우리 집에 가시죠. 제가 밥 해드릴게요."
"에이 뭐."
어디서 밥을 먹을까하다가 동네 가게엘 들었어요. 뼈해장국에 할아버지는 소주 한 병을 드시고 난 다음에 밭일을 하였습니다.
옥수수 심어 놓은 걸 이제는 다 잘라 버리자고 해서, 그걸 자르고, 밭 언덕에 동부콩 심어 놓을 걸 따라 그래서, 그걸 따고 그랬어요. 할아버지는 낫으로 옥수수를 베다가 나를 부르더니
"이건 왜 여기다 버려 놓은 거야?"
하고 묻길래,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버렸는데요. 하고 대답을 하였더니
할아버지가 한심하다고 혀를 찹니다.
예전에 밭 가는 길에 옥수수를 따고, 옥수수 대를 몇 개 잘라서 그냥 밭 언덕에다 던져 놓은 거에요. 그랬더니 그 놈들이 비를 맞고 하면서 점차 썩어갔지요. 나는 아무 생각없이 여기서 썩으라고 던져 놓은 건데, 할아버지가 그 옥수수 대를 걷어 냈어요. 그랬더니 그 맡에서 동부 콩깍지가 썩어가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이것 보라는 거지요.
여기에 이렇게 동부 콩이 자라고 있는데, 이 위에다 아무 생각없이 옥수수 대를 잘라서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거에요. 그러니까 애정이 없는 거지 뭐. 하는 소리를 듣고, 아유, 그냥 할 말이 없어요. 그저 멍하니 있었지, 뭐라 그러겠어요.
구사리를 톡톡히 먹고 나서 생각해보니, 정말 이래 가지고 어트게 농사를 배우나 싶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오늘 옥수수대를 잘라 버리는데 보니까, 아주 섬세해요.
동부 콩이 덩굴손을 뻗으며 올라가잖아요. 그러니까. 이 놈들이 옥수수대 위로도 올라와서 덩굴손을 뻗고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말라 죽은 옥수수 대 위로도 동부 콩이 올라와 있으니까, 할아버지는 이 옥수수대 위로 올라와 있는 동부 콩을 먼저 잘 뜯어서 한 쪽 언덕으로 살게 놔 둔 다음에, 옥수수대를 자르네요.
그러면서 이래요. 이 놈들이 아직 더 영글어야 할테니까, 잘 살려둬야지. 하는 군요.
그렇지요. 나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옥수수대를 말랐으니까, 여기서 썩으라 하고 던져 놓았는데요. 옥수수대를 던져 놓더라도 그 바닥에 뭐가 자라는지를 좀 보고, 던질 데를 좀 보고 던져야하는데요.
내 눈에는 바닥에 뭐가 있는 지 관심도 없었지만, 또 던질 때 동부 콩이 있는 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은 거지요. 그냥 잡초만 엉퀴어 있는 걸로만 보였거든요.
지금 밭에 가보면 여뀌하고, 바랭이풀만 아주 무성하게 밭을 점령하고 있어요. 재미있는게, 동부 콩이 여뀌에게도 덩굴손을 뻩쳐서 그 놈에 꼭 무슨 열매처럼 꽁깍지가 누렇게 익어 있네요. 파랗게 익어가는 콩깍지도 있고, 누렇게 완전히 말라서 익은 놈도 있구요. 하얀 꽃이 피었는데, 여뀌 꽃은 그렇게 이뻐보이지는 않지만, 하여튼 그 꽃에 누렇고 퍼런 동부 콩깍지가 뒤엉켜서 열려 있는데, 재미있습니다.
생명을 하나 하나 잘 돌보고 간수하고 하는 섬세한 마음이 참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나 이런 섬세함이 또 자기의 이익만 챙기려고 하는 방향으로 가는 꼼꼼함이면 이것도 문제겠지요. 이런 사람들은 인색함으로 가서, 지독한 이기주의로 통하기도 하겠지요. 인색한 섬세함이라는 것도 있을 것 같은데, 하여튼 그건 그렇구요. 참 내 맘에는 인색이고 뭐고간에 우선 생명을 돌보는 그런 섬세함 자체가 없군요. 뭔가 기본이 안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오늘도 많이 합니다.
밭에서 할아버지하고 무우하고 배추 심어 놓은데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밭에 호박이 자라고 하는데, 풀들을 그냥 뽑지 않고 놔두는데요. 바랭이 풀을 보더니 이러시는군요.
"이 바랭이 풀들이, 이것 좀 봐. 지금 한창 씨를 퍼뜨리잖아."
그래서 보니까 정말 그래요. 바랭이 풀들이 씨를 떨어뜨려서 호박 잎이 바랭이 씨로 뒤덮여서 허옇게 보이는데요.
"이 놈들이 밭에다 씨를 다 퍼뜨려 놓으면 내년 농사는 이 밭에서 짓기가 힘들지. 이 놈들이 땅에서 다 자라서 퍼지기 시작하면 호미로 막을 건 가래로도 막기 힘들어지는 거야."
그렇군요. 그러면서, 그러니까 농사는 가만히 보면 할 일이 많아요. 이 풀들을 다 뽑아야 되요.
그러고 보니까, 밭 가로 바랭이 풀이 전부 점령을 했어요.
나는 이 바랭이 풀이 보기가 좋구 그래서, 뽑지를 않고, 가끔 풀이 있는 곳에 호박 줄기가 지나가면 이 놈들이 습기가 차니까, 나중에는 호박 줄기가 습기를 이기지 못하고 썩어버리네요. 그래서 바람이 통하고 줄기도 빛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줄기가 지나가는 곳에 바랭이 풀은 가위로 좀 잘라 주었는데요. 그때 자른 놈들은 말려서 거름으로 쓰면 될테니 밭 가에 그냥 던져두었어요.
농사를 짓는 마음도 참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수확에 대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니까요. 여기서 나는 열매는 그냥 놔두었다가 썩어서 밭으로 돌아가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열매가 맺어도 오히려 그만큼 무슨 관심이 없네요. 언제 따서 먹어야 하는 건지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되구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소유 개념이 없는 것이 무관심으로 변해서 이것도 가만히 보니까, 문제가 있어요. 소유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것도, 그것도 생명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무소유냐, 아니면 생명에 대한 관심도 없는 공연히 이상한 관념으로만, 나는 그 까짓 안 가져도 돼 하는 일종의 허영기가 있는 관념의 무소유 의식이냐는 참 차이가 있는 것 같군요. 나는 다분히 관념의 허영기가 좀 있는 무소유인척 하는 것 같아요. 이것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잘 지어서, 그걸 조금이라도 잘 거두어서 이웃에게 나눠라도 주고 하면 되는데요. 이런 관념 자체도 없는 거지요. 하여튼 그렇군요. 그래도 확실히 달라요. 텃밭 농사는 아무래도 낭만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텃밭도 밭이라고 낭만적으로 짓는 사람에게 밭은 엄청나게 많은 말을 걸어 옵니다.
옥수수대를 마구 던져놓아서, 그 밑에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냥 썩어간 동부 콩이며, 조금만 부지런하면 비료를 주지 않고도 거름을 해서 키울 수 있을텐데요, 그걸 못하고 비료를 듬뿍 주어서 죽어간 고추들은 또 얼마나 많으며, 지금 밭에도 심어만 놓았지 도대체 거름이 부족하니, 밥을 제대로 주지 않고 키우는 부모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처지에서 자란 밭의 목숨들은 또 얼마며......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의 목숨으로 살아서, 나의 무의식 깊은 곳에 살아 있을 겁니다. 그런 목숨은 전부다 내 마음 밭으로 들어와 살면서 새롭게 부활을 해야 하겠지요. 이게 문학이고, 공부이고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밭에서 죽인 목숨들을 내 마음 밭에서 만큼은 헛되이 하지 말라....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첫댓글 심심풀이 텃밭가꾸기와 농사의 차이 같습니다. 농사지어 먹고 살아야하고 자식 공부시키고 옷 해 입히고 해야 하니 한 알이라도 더 거둬들여야 합니다.
예. 그래요. 나중에는 텃밭 가꾸기와 농사가 잘만하면 경계가 없는 지점까지 갈 수도 있으면 좋겠지요. 진짜 농사꾼이라면 텃밭도 이렇게 가꾸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 과정이니 배워야겠지요. 이게 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공부나 농사나 다 절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몸으로 익히려면 그 무엇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