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마가 나에게...
| 김수희 | 201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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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개월째 접어든 초보 달리미이다.
올해로 47해를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 로만 살던 내가 마라톤 이라니...
학교 다닐 때 달려본 게 전부인 내가 4년 전 지인의 손에 이끌려 상주 곶감 마라톤 10km를 참가하게 되었다.
힘들기만 할 것 같던 마라톤은 내 예상과 달리 유쾌하고 즐거웠다.
처음 보는 나에게 농담으로 웃겨주시는 분들.. 힘내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장애인과 동반주를 해주시는 분들까지 달리는 내내 혼자의 힘이 아닌 주변의 힘과 응원으로 즐겁게 완주 할 수 있었다.
낯선 이들에게서 받아보는 생소한 격려와 달렸을 때의 묘한 즐거움이 마라톤으로 나를 이끈 계기가 되었다.
4년만에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었고 가입 후 첫 마라톤 대회로 군산 새만금 10km를 도전했다.
준비없이 나간 대회에서 완주는 했지만 컨디션 조절 실패로 무척이나 힘든 레이스였다.
그때 자기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함께 뛰어주고 응원해주신 선배러너분이 아니었다면 마라톤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 후 노력과 훈련의 필요성을 새삼 느껴 동호회에서 하는 훈련을 열심히 참가했다.
훈련이 거듭될 수록 10km도 겨우 뛰었던 내가 20km ,30km도 거뜬히 뛸 수 있게 되었고 그 자신감으로 봉화마라톤 하프와 춘천 마라톤 풀코스를 신청했다.
춘천 가기전 워밍업이라 여겼던 봉화 하프에서 천식으로 인한 호흡조절 실패로 힘겨운 완주를 했다.
훈련 후 가졌던 기대와 자신감은 산산히 부서지고 그 후 나에게 밀려 온건 후회와 두려움이었다.
하프도 이렇게 힘든데 42.195 km라니...
중간에 힘들면 차를 타도 된다는 말만 믿고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신청한 춘천마라톤...큰 일이었다.
날짜가 점점 다가올 수록 점점 초조해지고 두려워졌다.
겁이 나서인지 몸도 아프고 마음도 핑계거리를 찾느라 바빴다. 연일 낙오되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점점 예민 해지는 나로 인해 죄없는 식구들은 내 눈치를 봐야 했고 몸이 약한 내가 처음 마라톤을 한다고 할땐 그래도 반신반의하면서도 응원해 주었던 남편도 급기야 당장 그만두라고 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남편이 20년 넘게 한번도 빠진 적 없는 테니스대회를 포기하고 생소한 마라톤 동호회를 따라 춘천마라톤 사진봉사를 자처하며 따라와 주었다.
드디어 10월 28일 새벽 4시 춘천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부터 흐리던 날씨는 춘천에 도착하니 계속 내리는 비로 인해 기온이 많이 떨어져 추위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웬지모를 설레임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와 같은 초보러너인 미순언니와 그 동안 같이 훈련을 지도해주신 훈련부장님이 자신의 기록을 포기하고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해주셨다.
비옷을 두개로 겹겹이 입었지만 신발과 양말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고 추위와 떨림으로 온 몸이 뻣뻣하다 못해 무거웠다. 오는 내내 걱정스런 눈길로 나를 챙겨준 남편과 응원해주는 동호회 동료들을 뒤로 하고 사회자 배동성씨의 54321 구령에 맞춰 출발!!!!..심장이 마구마구 뛰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춘마를 뛰는구나 ....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제대로 몸도 풀리지 않은 뻣뻣한 상태로 가을의 전설에 무거운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어제의 밤샘도 두려움과 걱정도 모두 출발선에 내려놓고 '힘들더라도 걷지만 말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뛰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엔가 무겁던 마음과 다리는 춘천의 길 위에 흘려보낸 듯 점점 긴장이 풀리고 가벼워졌다.
10km지점을 넘어서면서 삼악산의 안개 낀 모습이 신비롭고 호수를 끼고 끝없이 펼쳐지는 가을의 풍경이 한 눈에 담겨지며 문득 이 춘천의 절경을 우리 가족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5km까지 달리면서 계속 유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미순언니와 보디가드를 자처해주시며 뛰어주시는 훈련부장님 덕분에 소풍을 온듯 즐겁게 달릴수 있었다.
백설기를 닮은 스펀지, 풀을 뛰어야만 먹을수 있다는 파워젤, 평상시에는 잘 먹지도 않는 초코파이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그 맛은 이 길을 달린 러너라면 다 알 것이다.
등 뒤에 달린 각양각색의 메세지도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웃음을 주는 메세지.안타까움을 주는 메세지, 자신의 소신을 알리는 메세지..나 또한 11월에 있을 곶감마라톤을 알리는 메세지를 달고 있었는데 힘든 와중에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다.
마라톤 선수들이 30km까지는 그냥 달리기고 진짜 마라톤은 12,195km 부터라고 했던가?
선배님들의 말씀은 왜 하나도 틀리는 법이 없는지..35km를 지나면서 다시 쏟아지는 비와 추위로 내 몸의 한계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평상시보다 천천히 가라는 훈련부장님의 말씀대로 무리하지 않고 달린듯한데 레이스 도중 약간의 통증을 느끼긴 했지만 별 탈없이 여기까지 잘 왔는데..점점 발등과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제공되는 파스를 연신 뿌렸는데도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한건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중반부터 빗방울은 더욱 굵어지고 천둥번개까지 치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통증과 추위로 온 몸이 떨리고 굳는데다 정신도 점점 아득해지기까지 했다. 구급차에 올라 담요를 덮는 다른 러너들을 보면 따라가서 나도 그들이 덮는 따듯한 담요로 이 추위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마음은 앞으로 나아가려 애를 썼지만 자꾸만 제자리걸음만 하게 되었다.
훈련부장님이 비와 추위로 떠는 우리를 위해 비옷을 구하러 간 사이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언니가 마지막 급수대에서 "비 옷 없어요?"를 외치며 뛰어다녔다.
거기서 구한 비옷을 나에게 입혀주고 정작 본인은 버려진 젖은 비옷을 입고도 나를 계속 걱정해주었다. 비 옷을 구하러 다니느라 우리를 놓쳐 비옷을 움켜쥐고 뛰어다니신 훈련부장님까지..가슴이 뭉클하고 미안하고 감사했다.
더는 짐이 되지 말아야지..포기는 하지 말자.. 걸어서 아니면 기어서 것도 아니면 굴러서라도 가리라 다짐했다.
저체온증으로 정신이 희미해지려 할 때마다 필사적으로 아이들 이름을 되뇌었다.
"은호야,성민아...은호야.성민아..."심호흡을 하듯 구령을 외치듯 걸음 하나 하나에 아이들 이름을 되뇌었다.
40km를 지나 끝이 보이지 않는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던 레이스의 끝자락에 클럽식구들이 보인다.
그 빗 속을 뚫고 뛰어와 함성과 격려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 옆에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남편도 보였다. 오기전 신경쓰이게 따라온다며 짜증을 냈었는데 남편을 보니 미안하고 한없이 고마워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함께 달려준 이들과 나를 응원해주는 이들이 나를 마지막 피니쉬 라인으로 갈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나는 이 멋진 춘천 마라톤 생애 첫 풀을.. 이 거대한 산을 뛰어 넘었다.
돌아보면 혼자 뛰었지만 결코 나 혼자 뛰었던 적은 한번도 없는 듯 하다.
내 곁에서 아님 가까운 곳에서 나를 지켜봐주고 응원해준 누군가가 내 주변에 너무도 많았던것 같다.
내년 춘마에선 나에게 주었던 그 많은 것들을 나도 누군가에게 가득 안겨주리라..고맙습니다 여러분.
................................................................................................................ 13667번 김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