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는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간과 대화를 시도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신 가장 큰 까닭이 인간의 구원에 있다고 한다면, 계시는 본질적으로 인간 측의 반응을 요구한다. 인간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은 계시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활동을 폐쇄적으로 가두는 일이다.
데일 무디(Dale Moody)는 계시와 인간의 함수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계시는 반응을 함축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응답은 인간의 믿음이다.” 윌리엄 스티븐스(William W. Stevens)도 기독교의 계시는 인간 편에 능동적인 반응을 일으킨다고 전제하고, 기독교는 하나님의 “자기현현”(自己顯現)과 이 현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포함하는 일종의 “상호관계”라고 정의했다. 그런 점에서 계시는 일종의 대화라 할 수 있다. 대화는 홀로 이루어질 수 없듯이, 하나님의 계시 또한 상호관계 속에서 그 의미와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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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계시의 주체는 하나님이지만, 그 계시를 받아들이는 주체는 인간이란 점에서, 계시는 하나님-인간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인격을 무시한 하나님의 독단적인 계시나, 인간의 자율성만을 강조한 계시는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건전한 계시이해가 되기 어렵다.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반응을 기다리는 인격적 사랑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7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