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더 일찍 다녀올 수도 있었을텐데..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서 혼자서는 엄두도 못내고 아빠나 나와
함께 가야만 하는 엄마의 상황을 좀더 이해했더라면..
엄마가 이모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상황은
언제들어도 나에겐 조금은 어색하다.
그리고 누군가의 동생이 되어있는 엄마의 모습은
가슴이 찡하기도 하다.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도착한 전주 이모댁은
그야말로 '민속촌'.. 골동품들이 가득하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이모댁으로
가는 1시간 내내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2차선을
구불구불 달려갔으니..
그시간에 이모는 '전주식'밥상을 한상 차려주셨다
집에서 싸간 밥을 휴게소에서 배부르게 먹은지
두시간도 안되었는데 생선까지 구우시고
청국장에 새밥을 지어신 이모를 생각해서
엄마랑 나는 또 밥한그릇을 해치우고..
내가 KBS심야토론에 빠져 턱을괴로 TV앞에
엎드려 있던 사이.. 간간히 뒤쪽에서
엄마와 이모의 대화가 들려왔다.
내가 모르던 이야기들..
엄마가 어렸을때 죽었던 이모 이야기.
배가 불러와 임신인줄 알고 산달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게 지금생각해 보니 암인것 같았다고..
아파 누워있는 언니의 머리를 형부가 발로 툭 차는것을
보고 어릴적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우리엄마.
11살에 집을 떠나 객지생활을 시작했던 우리엄마.
아..11살이라니.
죽은 이모로 시작해서 세월을 거슬러와
외가쪽 친척들 이름이 두루두루 오른 후에야
잠이 드신 모양이다.
결혼식에나 잠깐시 뵈었던 이모가
그래서 조금 어색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이모가
이제.. 진짜 이모같다.
날이 밝자마자 이모는 부엌과 장독대 그리고 창고를
부지런히 오가시며 벌써 트렁크가 꽉차도록
이것저것 챙기고 계신다.
인사치레의 사양이 필요없어서 일까.. 엄마는 오히려
"언니, 들깨도 좀 줘, 호박은 없어?" 하신다.
그래. 이곳이 엄마 친정이었지..
이모네 마을 이장님이 향어회와 매운탕을 사주셨다.
식당 주인아저씨도 합류하시니 내가 못알아 듣는 사투리가
점점 많아진다.. '거시기'와 '겁나게'가 젤로 많이 등장한다.
1시간정도로 나는 그 마을의 동정을 꽤많이 알수 있었고
정겨운 시골인심으로 내내 뿌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