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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06-08 | 작성자 : 채수홍 |
베트남인의 이웃국가에 대한 이미지
채수홍 (전북대학교, 문화인류학)
베트남을 연구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베트남인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이다.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한국인을 싫어하진 않는지 묻는 사람이 많다. 어려운 질문이다. 특정 국민이 다른 국가나 국민에 대하여 갖는 이미지를 결정하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베트남인은 한국을 베트남 전쟁은 물론이고 최근의 교역관계, 현지한국기업의 경영방식, 이주노동, 국제결혼, 한류 등과 관련하여 복합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지에는 한국인을 싫어하는 담론도 좋아하는 담론도 동시에 존재한다. 한국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베트남인이 한국을 인식하는 방식과 비교해 볼 때 이웃국가에 대해서는 좀 더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베트남인 외교관이나 엘리트 지식인을 만나보면 이런 점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베트남인이 이웃국가들과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관계를 맺고 갈등하면서 가지고 있는 집단적 기억과 고정된 이미지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이미지에 기초한 정치심리는 외교적 결정을 하는데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베트남인에게 가장 가깝고 믿을 수 있는 나라를 하나만 선택하라면 라오스를 지목한다. “항상 웃고 태평스러운” 성격을 가진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라고 믿는다. 베트남인은 또한 자국이 라오스를 역사적으로 원조하고 후원해왔다는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라오스를 “착하지만 못살기 때문에 도와주어야 하는 동생”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베트남은 경제성장 이전에는 정치적 동맹국으로, 경제성장 이후에는 경제적 후원국으로 라오스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국이 이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한데는 라오스가 베트남의 인도차이나 패권에 도전하지 않고 순응했으며, 민족문제나 국경문제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형재애”를 강조하는 베트남인의 시각에 “동생”으로 취급받는 라오가 온전하게 동의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라오스와 대조적으로 베트남인은 캄보디아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평화로운 라오와 달리 캄보디아인은 타인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고 “신뢰를 저버릴 수 있는”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양국이 봉건시대부터 지금의 베트남 남부를 놓고 영토경쟁을 벌였으며, 1970년대에는 베트남이 일시적으로 캄보디아를 점령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애증관계는 이해할 만하다. 최근에는 캄보디아가 베트남보다는 중국이나 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어 양국의 불신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베트남인은 캄보디아를 “가깝지만 믿을 수 없는”이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태국에 대한 베트남인의 이미지는 양분되어 있다. 베트남 전쟁 이후부터 1990년 이전까지의 시기를 경험한 세대는 태국과 베트남의 오랜 긴장관계를 기억하고 있다. 반면 30대 이하의 젊은 세대는 태국을 잘 사는 이웃으로 간주하고 관광, 스포츠를 통하여 태국을 인식한다. 흥미로운 것은 태국을 싫어하는 베트남인이 많지 않은 반면에 태국인이 베트남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믿는 베트남인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베트남인이 동남아시아 내에서 양국이 경쟁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캄보디아나 라오스를 우월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과 달리 태국에게는 경쟁심리를 느낀다는 사실이다. 베트남의 젊은 세대의 경우에도 비슷한 실력을 가진 태국과의 축구경기가 가장 큰 이벤트이다. 베트남인의 태국에 대한 이와 같은 이미지는 양국이 지역의 패권을 놓고 끊임없이 갈등해 온 역사적 맥락과 잘 어울린다. 양국의 관계는 베트남의 캄보디아 철수와 아세안 가입 이후 빠르게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경문제와 민족문제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 양국 모두 외교 다변화를 외치고 있지만 베트남인이 태국인을 대상으로 느끼는 경쟁심리는 깊은 역사적-지정학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베트남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나라도 있다. 중국이다. 베트남인은 중국인이 항상 “잘난체하고 통제하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교활한” 방법을 쓴다고 의심한다. 이처럼 베트남인이 중국인을 싫어하는 데는 이해할 만한 근거가 있다. 베트남의 “부정적 역사 속에는 항상 중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국의 봉건왕조들이 벌인 큰 전쟁만 12번이나 되고 1970년대 말에도 양국 사이에 무력충돌이 벌어졌다. 요즘도 종종 “스프레틀리 군도(Spratly Islands)"를 둘러 싼 영토분쟁이나 무역 분쟁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베트남이 중국의 커가는 힘을 의식하여 관계개선에 힘쓰고 있지만 중국은 베트남인에게 “여전히 가깝고 두려운”존재이다.
베트남인이 이처럼 이웃 4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베트남이 상대국가와 맺어 온 역사적 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베트남인은 이웃 4개국과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힘의 균형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어떤 국가에 대해서는 승리자이고 어떤 국가에 대해서는 희생자라는 믿음이 있다. 이런 믿음 속에서 순응하는 약자(라오스), 저항하는 약자(캄보디아), 갈등하는 경쟁자(태국), 순응시키려는 강자(중국)라는 위계적으로 배열된 이미지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런 이미지가 베트남의 동아시아 외교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