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紀 第二
東明元年 甲申 春正月 甲午 上與召皇后及后母旒氏出大殿 受群臣朝賀 以鄭共馬黎爲左右太史 以定曆日 觀天象 占風雲
동명원년 갑신 BC37,
旒氏出大殿 受群臣朝賀 以鄭共馬黎爲左右太史 以定曆日 觀天象 占風雲
二月 丁卯 陀勃薨 召皇后以國獻于芻牟 四豪三賢等率百官土豪等 請上卽皇帝位 上固辭以無德 衆請益漲 不得已乃卽位於沸流谷西城山(勃利縣二龍山) 乃順卒之界也 以萱花爲左皇后 召西奴爲右皇后 旃后爲下皇后 仲室氏爲小皇后 以黙居妻小室氏 鄭共妻張氏爲夫人 以皆有寵矣 上自娶召后以來 或居東城 或居西城 或居牛壤 或居毛屯 自是常居西城 四后二夫人遞直當夕上素好色多通侍臣之妻 自知其不美 而不能止 至是又納旒氏爲大室后 盖憐其年少 而難守寡也 上自幼好早起 必有所事期其成就所御侍巾 皆是腆厚老成之女俾補漏闕 且卽生子大室 亦勤勉人也 每朝必先起 以助上勞 上以是多之
丹公與漢素鄭共馬黎陜父吉士等 議定國號 馬黎奏曰 "臣聞上古之人以山為國者 地闢於丑 而人生於寅故也 丑寅為艮山也 門也 門是為國者居于穴也 扶餘取音于将曙 而象其門木之字也 今扶餘之運盡矣 當取音于穴 而取義於捲簾 而納明可也 高勾其麗者納明之義也 勾麗者穴之音也 當以高勾麗為號况有黑驪紇升之瑞乎" 上嘉之遂用其言 漢素曰 "扶餘以佳禾為號故 其民足以自食 然未免蒙昧 今以納明為號則民将足以自明宜加東作而勧民也"
2월, 단공이 한소정공마려협보길사등과 함께 國號을 정하기를 의논하였다. 마려가 진언하길, "신이 듣기에 上古人들이 山을 國로 삼았던 것은 땅이 丑時에 열렸으며 사람들은 寅時에 생겨났기 때문이었습니다. 丑寅方은 艮方으로 산이고 門이었으며, 문이 나라가 되었음은 穴에서 기거하였음입니다. 扶餘는 장차 밝아옴將曙에서 音를 따고 門을 형상하길 나무木라는 글자로 하였었으며, 지금, 부여의 운이 다하였음이니, 마땅히 소리는 굴{穴}에서 취하고, 뜻은 발을 말아 올려捲簾 빛을 받아들임納明에서 취하면 좋겠습니다. 발麗을 높이 걸어 올림高勾은 밝은 빛을 받아들이는 것納明을 뜻하며, 句麗라는 것은 굴穴의 소리音이니, 高勾麗로 나라의 이름을 맡게 하면 항차 검은 가라말이 흘승하는 상서로움이 있을 것입니다"라 하였더니, 상께서는 기뻐하셨고 그 말을 용납하셨다. 한소가 아뢰길 "부여는 佳禾를 이름으로 삼았더니, 백성들 스스로 먹을 것은 족하였지만 몽매함을 면하지 못하여 왔습니다. 지금 밝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이름으로 하셨으니, 백성들이 장차 스스로 밝아짐에 족할 것이옵니다. 마땅히 東作 보태시어 백성들이 힘쓰게 하시옵소서."라 하였다.
三月 丁酉 鳳凰來鳴 群臣請以鳳鳴之瑞為元年之號上曰 "漢素請加東作之意朕亦然之 朕生于亥 而天開于子日之将曙也 其山玄蒙 顓頊是也日之将明也 其山紫蒙偃皇是也 日之初明也 其山朱蒙乃朕之兆也 當以芻牟為朱蒙 而以東明為年號可也" 上乃與后妃大宴群臣 而頒高句麗國東明元年之號 以其宴殿為鳳鳴殿
3월, 정유일에 봉황이 와서 울었더니, 군신들이 봉황이 우는 상서로움으로 년호의 바탕을 삼으시라고 청하매, 상께서 이르시길 "한소가 東作의 뜻을 보태자고 청하였는데, 짐 또한 그리 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이오. 짐은 亥時에 태어났고, 하늘은 子時에 열리는데, 날이 장차 새게 되려면 그 산은 감은색빛으로 휩싸이니 바로 顓頊함이고, 날이 장차 밝아오려면 그 산은 紫빛으로 휩싸이니 바로 偃皇이며, 날이 다시 밝아지면 그 산은 朱빛으로 휩싸이게 되니 짐의 징조이오. 당당하게 芻牟를 朱蒙으로 하고 東明으로 年號를 삼음이 좋겠소이다."라 하셨다. 상께서는 이윽고 후비 들과 더불어 군신들에게 크게 연회를 베풀고 高句麗라는 나라 이름과 東明이라는 원년의 이름을 반포하셨으며, 연회를 베푼 전각을 鳳鳴殿이라 하셨더라.
五月 曷賊雪敬等一千余騎來侵靑谷 摩離擊破之 其舟楫兵仗多是沸流國物也 上命奧春與松讓相詰 丙午曷酋西文雪敬等再擧入寇汗濱上親征斬首千余級虜雪敬梟于河上時曷衆之散居汗西河北者與松讓通謀聯兵來襲汗濱之船廠鍊場上以計誘其衆於汗口而屠之殆盡其衆號哭知不可敵皆移于河北上命摩離移民營農置戌於河界監視渡人 上以船兵馬政之緊急以漢素爲造船大加鄭共爲造兵大加馬黎爲畜馬大加各領其屬而立府以陜父吉士爲左右太史命頒節侯曆于諸豪以便農牧分汗濱軍爲十二隊各置隊正其半爲騎其半爲船各援弓釼弩槍